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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전염땐 뱅크런 확산… 예금보호 강화로 막아야”
은행위기 이론으로 노벨상 수상… 다이아몬드 교수 인터뷰
“은행 시스템의 근간은 신뢰
금융당국 신뢰 유지가 중요”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는 은행의 부실 경영이 원인이었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공포가 공포를 불러 위기가 현실이 되는 사태를 방지하도록 당국이 신뢰를 쌓는 게 필요하다.”
은행과 금융위기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사진)는 3일(현지 시간) 동아일보와 한 화상 인터뷰에서 “금리 인상으로 불안해진 금융 부문의 안정을 위해서는 규제 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금융위기 메커니즘을 규명한 연구로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다. 특히 1983년 은행의 역설을 규명한 ‘다이아몬드-딥비그’ 모델로 유명하다. 은행은 경제에 유동성을 공급하지만 시스템적으로 공포에 취약하기 때문에 예금자가 한 번 패닉에 빠지면 단숨에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과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다는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지난 40년간 전 세계가 겪었던 거의 모든 금융위기를 설명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최근 미국 은행 4곳이 연쇄 파산한 데 대해 “금리가 급격하게 오르면 온갖 종류의 나쁜 것, ‘지옥’이 발생할 수 있다고 예측해 왔다”면서 “파산한 은행들은 저금리에 취해 위험관리에 실패한 결과 뱅크런이 발생했지만, 앞으로 공포가 전염되면 다른 은행들에 대한 신뢰도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 상업용 부동산에 대한 우려도 제기했다. 그는 “금리가 오르면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하락하고, 대출에 문제가 생긴다. 또 오피스에 대한 수요도 높지가 않다”면서 “한국도 PF와 같은 문제를 안고 있는 만큼 이는 세계적 문제”라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대출기관의 연쇄 파산을 막기 위해 규제 당국의 감독과 신뢰 유지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규모와 상관없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해 부실 은행을 관리하고 예금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은행 시스템의 근간은 신뢰이고, 금융 당국이 신뢰를 잃으면 시스템도 신뢰를 잃게 된다”고 경고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이달 31일 동아일보와 채널A 주최로 열리는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에서 ‘금융 안정과 혁신: 한국 경제와 금융을 위한 제언’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한다.
“상업용 부동산, 은행위기 뇌관… 한국도 PF 건전성 관리해야”
‘뱅크런’ 연구로 노벨경제학상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교수 인터뷰
美은행들 고금리 위험 관리 실패
이미 파산상태서 뱅크런 발생
뱅크런 확산 공포 자체가 문제
“상업용 부동산은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문제입니다. 규제기관은 자체적인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를 수행해 연쇄 파산을 막아야 합니다.”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미 미국의 부실 은행이 파산했고, 앞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어 “당국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유지할 수 있도록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지난해 은행과 금융위기에 대한 연구로 벤 버냉키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필립 딥비그 미 워싱턴대 교수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특히 공포가 공포를 양산해 발생하는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메커니즘을 규명한 세계적 학자로 꼽힌다. 때마침 미국에서 은행 위기가 확산하고, 금융회사들의 건전성이 위협을 받고 있어 최근 인터뷰와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인터뷰에서 실리콘밸리은행(SVB)과 퍼스트리퍼블릭은행 등 미 중량급 은행들의 파산이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위험 관리에 실패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 금융당국이 감독을 강화하지 않으면 금융업에 대한 공포가 확산될 수 있다며 신뢰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3일(현지 시간)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공포의 자기실현적 뱅크런과 같은 위기를 막기 위해서는 당국의 철저한 감독과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화상 인터뷰 캡처
―노벨상 수상 이후 바쁜 시간을 보냈을 것 같다. 수상하자마자 글로벌 은행 위기가 터졌다.
“지난해 10월 시카고 시간으로 새벽 3시 40분에 연락을 받고 정말 놀랐다. 곧바로 노벨 연설문 준비를 시작해 연설 3시간 전에야 마칠 수 있었다. 이후에는 올해 2월 말까지 거의 모든 깨어 있는 시간을 노벨 논문(노벨 웹사이트에 제출할 수상 관련 논문)을 쓰는 데 보냈다. 이제 다른 연구를 시작할 수 있겠구나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SVB 사태가 터졌다. 나는 은행 실패와 같은 일이 이전부터 일어날 것으로 전망해 왔다. 그래서인지 내가 이 사태의 원인을 곧바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 됐다.”
―왜 은행 실패가 일어날 것으로 예측했나.
“노벨상 수상 직후 인터뷰에서 ‘금리를 계속 올리다 보면 모든 종류의 나쁜 것과 ‘지옥’이 터질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나는 미국의 금리 인상이 금융 부문, 특히 단기 부채가 많은 부문에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런데 이번에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감독과 규제를 받고 있는 상업은행이 그림자은행(비은행 금융기관)보다 먼저 쓰러졌다는 점이다. 또 SVB나 퍼스트리퍼블릭은행이 금리가 계속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것이라는데 ‘베팅’, 다시 말해 도박을 하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디지털 뱅크런을 비롯해 은행의 파산 속도가 이례적으로 빨랐다. 공포가 전염되고 있다고 보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것은 현재 파산한 미국 은행들은 내가 논문에서 밝힌 공포의 자기 실현적 특성에 따른 뱅크런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들은 이미 파산 상태였기 때문에 뱅크런이 일어났다. (3월 초) 뱅크런이 대규모로 일어나기 전부터 SVB에서는 예금이 꽤 빨리 빠져나가고 있었다. SVB의 예금 이자율이 국채보다 낮았기 때문이다.
걱정스러운 점은 이번 사태로 사람들이 ‘모든 은행에서 뱅크런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건전한 은행도 뱅크런이 생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이는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되며 다른 지역 은행들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는 문제로 발전할 수 있다. 공포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언론에 ‘SVB 사태는 부실 관리 문제’라고 지적해 왔다.”
―은행이나 규제당국은 혹시 모를 ‘공포의 전이’에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은행들은 회계장부상 자산 가치가 (최근의 금리 인상에 따라) 시장 가치로 어느 정도 내려왔는지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SVB가 극단적이었을 뿐 미국의 대형 은행들은 매우 견고하고, 지역 은행도 건전성이 나쁘지 않은 사례가 꽤 많다. 은행들은 또 금리와 관련된 위험을 줄여 나가야 한다. 신규 대출에 대한 기준을 높이고 자기자본을 어느 정도 늘릴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나는 미국의 금융 시스템이 상당히 안정적이라고 생각한다. 2008년과 같은 심각한 위기 상황과는 다르다. 하지만 예금보증 한도를 높이거나 강화하는 것이 신뢰 확보에 유리할 것이다.”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교수가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을 기대하고 있다”며 친필로 작성한 축하 메시지.
―금융권의 다른 리스크는 무엇인가.
“금리 인상에 따른 상업용 부동산 문제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적인 문제다. 한국에서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이 문제가 되고 있다. 대형 기관이든 중소형 기관이든 당국은 자체적으로 스트레스 테스트를 수행해야 한다.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대부분 중소형 은행에서 이뤄진다. 이 은행들이 모두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수백 개의 은행이 파산할 것이고 이를 수습하는 데 매우 큰 비용이 들 것이다.”
―한국의 예금보증 규모는 5000만 원으로 미국의 25만 달러(약 3억3000만 원)보다 낮다. 한국의 은행들은 뱅크런이나 위기로부터 안전한가.
“공개된 자료들로 보면 한국의 은행들은 전반적으로 견고한 것으로 보인다. 예금보증 한도를 높일 수 없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은행과 당국이 고객들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감독과 규제는 미국이나 캐나다와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세계 경제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인플레이션, 또 이를 억제하기 위해 더 높은 실질 금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지만 미 중앙은행 연준은 이미 금리를 많이 올렸고 실물경제, 특히 금융 부문에 많은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미국과 한국, 유럽 등지에서는 상업용 부동산과 같은 자산이 금리 인상으로 즉각 타격을 입고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이 다시 높이 뛰어오르지 않는다면 연준은 금리를 동결하는 수순으로 갈 것이다. 중앙은행은 물가 안정뿐 아니라 금융 안정도 도모해야 한다.”
―한국 경제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이번 동아국제금융포럼에 초청된 이후 시카고대의 한국 제자들과 한국 경제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한국 경제 기사도 챙겨봤다. 현재 자료를 보면 성장은 둔화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건전하게 운용되고 있는 것 같다. 3∼4% 수준인 한국의 물가는 스태그플레이션을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
다만 세계 무역의 분절(分節)화 현상은 특히 한국을 어렵게 만들 것이다. 세계 시장이 ‘친구 아니면 적’으로 편이 나뉘며 분열되고 있다. 각 진영이 서로를 무너뜨리기 시작한다면 전 세계에 고품질 제품을 수출하고 있는 한국은 더욱 힘들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미국도 어려움이 있지만 미국은 내수 비중이 크다. 나는 자유무역이 노동 계층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인기 없는 아이디어가 되고 있다.”
―한국에서 금융 부문 위기가 재발할 우려는 없나.
“나는 한국이 부채 위기와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모두 겪은 것을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금융은 부실기업 정리 제도의 개선 등을 통해 교훈을 얻었고 해외 단기 차입 의존도도 그리 높지 않다. 당시 위기의 교훈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한국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1997년 상황을 되새겨봐야 한다. 그게 한국 힘의 원천이 될 것 같다.”
―글로벌 은행들이 혁신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 금융당국이 혁신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나는 당국이 자본력이 있고 투명한 기관들 사이에서만 혁신이 일어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파산한 가상화폐거래소 FTX처럼 자본이 부족하고 불투명한 기관이 레버리지(차입)가 높은 상품을 과도하게 제공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 당국은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용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혁신을 원한다면 재무구조가 안정적이고 사기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나는 은행 시스템의 기본은 신뢰라고 생각한다. 이는 변함이 없다. 은행의 관리자와 감독자, 규제 기관을 신뢰할 수 있어야 금융 시스템이 작동한다. 감독자에 대한 믿음을 잃으면 시스템에 대한 믿음도 잃게 된다. 부실한 기관이 없도록 잘 감독하며 신뢰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2023 동아국제금융포럼 31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롯데호텔 2층 크리스털볼룸
(등록 및 안내: 동아인사이트 홈페이지)
뉴욕=김현수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