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보 백보 요. 도진 개진이라고 밀어 붙인다 해도 별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
(조선작 소설 '미스楊의 모험', 1975) '그거나그거나 도진 개진.
개꿈여 개꿈. 찬규는 원앙이 綠水를 만난 듯, 물 본 기러기 꽃 본 나비가 된 듯.' (박범신 소설 '불의 나라', 1987)
'도찐 개찐~도찐 개찐~ 엎어치나 메치나, 거기서 거기 오십 보 백 보~' (KBS 2TV 개그콘서트 '도찐 개찐' 코너, 2004)
앞에 인용한 두 문장은 유명 문인의 작품, 뒤의 인용문은 인기 개그맨들의 풍자코너에 나오는 말이다.
30~40년 전에는 '도진 개진'이었던 것이 '도찐 개찐'으로 바뀐 걸까.
쓰임새로 봐서 뜻은 대충 알겠는데 어디에서 유래된 말일까.
표준어법으로는 뭐가 맞을까.
국립국어원은 그동안 '도 긴 개 긴' 만 표준어로 인정했다.
이 말은 원래 윷놀이에서 나온 것이다.
도개걸윷모의 다섯 말 가운데 도 긴(한 끗 차이), 개 긴(두 끗 차이)을 일컫는다.
긴은 남의 말을 쫓아 잡을 수 있는 거리를 뜻하니 한 칸인 도나 두 칸인 개의 거리는 별 차이 없다는 얘기다.
그저께 국립국어원은 '표준국어대사전 2015년 2분기 수정'을 통해 '도찐개찐'을 '도긴개긴'으로 순화해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나마 기계적인 띄어쓰기는 어색하므로 붙여써도 무방하다고 했다.
그러면 '진'과 '찐'은 어디서 왔을까.
충청도 사투리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긴'이 입말 '진'으로 바뀌고 된소리 '찐'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된소리(ㄲ ㄸ ㅃ ㅆ ㅉ)나 거센소리(ㅋ ㅌ ㅍ ㅊ)가 예사소리보다 言衆의 입맛에 더 달라붙는다.
우리 입맛에 맞는 것은 사실 '도찐개찐'이다.
우리말 '칸'과 한자 '간'도 비슷하다.
세 칸의 띠집이 곧 초가삼간(草家三間)이다.
'칸'은 공간의 구획이나 넓이를 나타내는 말로 한자어 '간'에서 왔다.
그러나 '칸막이, 빈칸, 방 한 칸, 등 모두가 쓰는 '칸'이 표준어가 됐다.
그런 점에서 보면 많은 사람이 쓰는 '도찐개찐'을 애써 막을 필요가 있을까 싶다.
짜장과 짬뽕을 '자장'과 '잠봉'으로 발음하면 웃음보만 터진다.
다중이 즐겨 쓰는 게 살아있는 언어다.
우렁쉥이보다 멍게, 선두리보다 물방개를 더 많이 사용함으로써 표준어가 되지 않았던가.
부정어에만 한정했던 '너무'를 두루 쓰도록 허용한 마당에 도찐개찐을 금하는 건 아무래도 좀 옹색하다.
맞춤법을 고침으로써 사람들의 언어습관을 바꾸겠다고는 것은 선후가 뒤 바뀐 것일수도 있다. 고두현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