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2장 16 - 22절
16. 미디안 제사장에게 일곱 딸이 있더니 그들이 와서 물을 길어 구유에 채우고 그 아비의 양무리에게 먹이려 하는데
17. 목자들이 와서 그들을 쫓는지라 모세가 일어나 그들을 도와 그 양무리에게 먹이니라
18. 그들이 그 아비 르우엘에게 이를 때에 아비가 가로되 너희가 오늘은 어찌하여 이같이 속히 돌아오느냐
19. 그들이 가로되 한 애굽 사람이 우리를 목자들의 손에서 건져내고 우리를 위하여 물을 길어 양무리에게 먹였나이다
20.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21. 모세가 그와 동거하기를 기뻐하매 그가 그 딸 십보라를 모세에게 주었더니
22. 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이솝 우화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미 원숭이가 귀여운 새끼 두 마리를 낳았습니다. 한 날 한 시에 낳은 같은 아기 원숭이었지만 이상한 본능이 작용을 해서 한 마리는 간이라도 빼 줄 수 있을 듯이 귀여워했고, 한 마리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어미 원숭이에게 사랑받지 못하던 아기 원숭이가 이런 어미의 태도를 느끼고 결국 어미를 떠나 혼자 다른 숲으로 가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미의 도움 없이 혼자 먹이를 구해야 하고, 싸워야 하고, 추위를 이겨야 하고, 모든 위험을 헤쳐 나가야 했기 때문에 파란만장한 삶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편 어미의 편애를 한 몸에 받던 원숭이는 언제나 어미 품에 안겨 이리저리 끌려 다니다가 결국에는 숨이 막혀서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모세를 광야로 끌고 가신 하나님의 마음이 어떤 마음이었을까에 대해서 우리는 이솝 우화를 통해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모세는 장차 하나님께 쓰임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야 할 지도자였기 때문에 잠깐의 실수를 눈감아주고 모르는 척 덮어 주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애굽의 궁궐에서 더 많은 리더십을 훈련받고 지략을 배웠다면 더 쉽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나님은 모세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시고 호되게 훈련하셨던 것입니다. 광야에 가서 쓸쓸하게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도움을 받으면서 사는 모습이 얼마나 처량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모세의 모습이 바로 그런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왕자에서 몰락을 한 후에 이방 땅에 가서 처가살이를 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니 얼마나 황망한 모습이었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인도하실 때 대충 눈감아 주고 모른 척 하시지 않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히브리서 12장 7, 8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해 주시고 있습니다.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 우리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의 방식이 다 적용될 수밖에 없습니다. 잘못하면 징계를 받아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잘못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리시지 않는다면 그것 때문에 오히려 서운해 하고 섭섭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지 징계를 거부하거나 징계 때문에 상처 받고 시험에 드는 것은 올바른 믿음의 모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를 더 크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때로는 징계도 내리신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면 그 어떤 징계도 참고 인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시는 징계 때문에 오해를 하고 서운한 마음을 가져서 시험에 빠지는 경우들이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생각하시고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려 주시는 채찍이기 때문에 그런 상황 속에서도 감사함으로 그 징계도 받으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징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내려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 실망할 것이 없고 섭섭할 것도 없습니다. 모세의 도움을 받아서 양 떼에게 물을 쉽게 먹인 미디안 제사장이 딸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20절에 보면 “아비가 딸들에게 이르되 그 사람이 어디 있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그 사람을 버리고 왔느냐 그를 청하여 음식으로 대접하라 하였더라” 왜 그 사람을 버려두고 왔느냐? 이렇게 책망을 하면서 그 사람을 빨리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라고 말을 했던 것입니다. 고된 징계 중에도 절대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는 까마귀를 통해 먹을 것을 공급하신 하나님이시고 모세에게는 광야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을 통해 일용할 양식과 살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이실 정도로 절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확신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기 위해서 예수님의 승천과 함께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내려 주시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우리가 성령님을 통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누릴 수 있기 때문에 우리를 절대 버리시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님과 날마다 동행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기도 시간에만 성령을 찾고 구해서는 안 되고 성령님이 우리의 중심이 되고 우리의 호흡이 되실 수 있을 정도로 보다 더 친밀하게 성령님과 교제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받으면서 부족함이 없는 은혜,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의 은혜를 통해 시절을 쫓아 과실을 풍성하게 맺을 수 있는 복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모세를 버려두지 않으셨던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은혜와 사랑으로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징계 중에 있을지라도 우리를 챙기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고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오늘도 하나님의 영과 힘껏 교제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이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풍성하게 내려 주실 줄 믿으시고 기대와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복된 하루가 되시고 그런 기대와 소망 때문에 오늘도 하루 종일 기쁨으로 충만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는 모든 성도님들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