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시 ] 덕수궁
 
대한제국은 정말 예술의 암흑기였을까?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
 
지난 주말에 다녀온 전시가 너무 좋아서, 소개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아 오랜만에 포스팅을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리고 있는 <대한제국의 미술 - 빛의 길을 꿈꾸다> 전이 바로 그것이다.
먼저 다녀온 친구가 "네가 좋아할 것 같아. 꼭 보면 좋겠어"라고 거듭 강조하길래 어제 시간을 내어 덕수궁까지 다녀왔는데 매우 만족스러웠다.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정리가 안될 수 있으니, 전시 스포는 싫다, 기본적인 관람 정보만 확인하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스크롤을 아래로 쭉~~~ 내려주세요.
개인적으로 MMCA 덕수궁관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 위치에 있다.
덕수궁 입장 후 산책하듯 천천히 걷다 보면 안쪽에 자리한 전시관, 계절의 변화에 따라 매력도 달라지는 곳이다. 특히 봄, 가을에 너무 아름다운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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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고종(1852-1919)과 순종(1874-1926) 시기는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제에 의해 강점이 시작됐던 때로 암흑기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최근 학계의 노력 속에 대한제국에 대한 역사적 평가 역시 점차 재위치를 찾아가고 있다. 사실 대한제국은 근대적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치열한 모색을 하고 있었으며, 고종은 그 한가운데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기에 대한 평가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지만 어려운 정치적, 사회적 여건 속에서도 한민족이 근대로 나아가는 중요한 기 점이었다는 것만큼은 주지할만한 사실이다.
- 국립현대미술관(MMCA) 전시 소개 중 -
전시 설명에도 나와있는 것처럼 이 전시를 보기 전까지는 나 역시 대한제국 시기는 예술의 쇠퇴기라고 인식해왔다.
조선시대 전통 궁중미술과 근대 한국미술, 그 사이의 어두운 시절. 이것이 내가 가진 막연한 이미지였다. 그러나 이번 전시를 통해 대한제국의 미술에 얼마나 주체적인 변화와 노력이 있었는지를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개인적으로 잘 모르는 전시를 볼 때, 혼자 먼저 한 바퀴를 쭉 돌고, 두 번째 볼 때 보슨트의 설명을 꼭 듣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 전시 역시 그렇게 봤더니 남는 것이 많았다.
전시는 1부 ‘제국의 미술’ 2부 ‘기록과 재현의 새로운 방법, 사진’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 이렇게 총 4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장 내부는 로비만 촬영이 허가되어, 작품 사진을 따로 찍지는 못했고 인상적이었던 작품들만 몇 개 찾아왔다.
가장 먼저, 1전시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정면으로 보이는 고종의 어진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傳 채용신, 고종 어진, 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80x104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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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말기, 고종이 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으로 전환되고 자연스레 궁중 미술에도 변화가 생기는데 이는 위의 어진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
황제가 된 고종의 위상에 맞춰 황룡포를 입은 모습이 담겨있는데, 황색은 황제와 황후에게만 허용되는 색이었다.
이를 통해 국가적으로 어렵던 당시의 상황 속에서 황권을 강화하려는 고종의 의도가 드러난다.
황룡포의 주름진 부분들을 매우 입체감 있고 섬세하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당시 서양 미술의 사실적인 화풍을 수용, 변화를 꾀하려 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불화에서도 드러나게 되는데, 바로 아래의 신중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문성, 만총, 정연 외 10인, 신중도神衆圖, 1 907, 면에 채색, 181.7x171.2㎝, 신원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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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도’는 불법을 수호하는 여러 신을 그려놓은 불화의 한 종류로, 불교 회화는 보수성이 강해 다른 그림들에 비해 변화가 크게 드러나지 않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신중도를 보면 하단 가운데 부분에 대한제국 군복을 입은 호법신이 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군모에 그려진 오얏꽃, 어깨 견장의 태극무늬까지 당시 군복을 꽤 자세히 표현되어 있다.
도슨트 설명에 의하면 어려웠던 당시의 국가 상황 속에, 호법신에게 신식 군복을 입혀 나라가 더욱 굳건해지고 오래도록 수호 받기를 원했기 때문일 거라 추측된다고 한다.
또한, 이 그림의 군복이 일본군 복장과 비슷하여 혹시 일제의 잔재가 아닌가 하는 염려에 신원사에서 오랫동안 공개를 조심해왔다는 이야기도 살짝 들었다.
그러나 연구에 의하면, 그림 속 호법신의 복장은 대한제국의 신식 군복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위의 두 작품도 인상적이었지만 가장 소름이 돋았던 작품은 바로 아래의 작품이다.
해학반도도海鶴蟠桃圖, 1902년 추정, 비단에 채색과 금박, 227.7x714cm,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Honolulu Museum of Art, Gift of Anne Rice Cooke,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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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의 한 면을 크게 차지하고 있는 이 12폭의 병풍은 그 크기도 크기이지만, 화려함과 섬세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진짜 실물의 1/100도 못 담아요. 꼭 실물로 봐주세요! ㅠ.ㅠ)
단순히 금색을 칠한 것이 아니고, 비단에 금박을 입힌 것인데, 가까이서 두 눈으로 보고 있으면 전율이 이는 느낌이다.
나중에 도슨트 설명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위의 해학반도도는 국내 소장이 아닌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고, 2007년에 수복을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잠시 들여왔다가 이번 전시를 위해 수석 큐레이터님이 직접 섭외해 다시 들여왔다고 한다.
약 1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된 것인데, 향후 10년간은 또 공개 예정이 없다고 하니 이 기회에 꼭 보고 오는 것을 추천한다.
이렇게 정교하고 화려한 작품이, 유출되어 해외에 소장되어 있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그것이 당시 우리 시대상을 정확히 보여주는 것도 같아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2층에서는 근대화의 일환으로 사진을 적극 수용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데 1880년대 한국에 사진관이 설립된 이래로 어진이나 기록화 등 궁중회화의 상당 부분이 사진으로 대체되었다고 한다.
또한 사진이 단순히 새로운 장르로서 받아들여진 것이 아니라, 당시 회화로 표현이 어려웠던 극사실성을 추구하는 또 하나의 기법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김규진, 대한황제 초상, 1905년 추정, 채색 사진, 22.9x33cm, 미국 뉴어크미술관 소장
Collection of the Newark Museum, Gift of the estate of Mrs.Edward Henry Har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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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바로 위의 작품인데, 황제의 어진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흑백사진 위에 채색을 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흑백으로는 황제의 상징인 황룡포가 제대로 표현되지 않아, 그 위에 색을 덧입힌 것이라 한다.
이렇듯 회화의 표현방식과 장점은 유지하면서 사진의 사실성을 보완책으로 받아들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황후의 초상이라든가 가족으로서의 왕실 구성원들의 모습 등 기존의 유교적 관념 아래 잘 드러내지 않았던 모습이 사진에 등장한 점 또한 인상적이었다.
3부 ‘공예, 산업과 예술의 길로’ 에서는 고종, 순종 시기 공예품의 전반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고종의 직접 지원으로 설립된 한성미술품제작소(이후 이왕직미술품제작소로 명칭 변경)를 통해 공예 부문의 개량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점,
단순 실용 기물들이 아닌 감상용 공예품들을 제작한 모습들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전시된 공예품들을 쭉 보면 전통적 양식과 서구 및 일본의 공예 양식이 공존하는 모습이 눈에 띄게 드러나는데, 이는 고종이 지향한 '구본신참'의 모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라 할 수 있다
4부 ‘예술로서의 회화, 예술가로서의 화가’ 를 통해 고종, 순종 시기에 도화서가 해체되면서 기능적 장인에 가까웠던 화가들이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다.
도화서에 소속되어 익명으로 작업을 하던 화가들이 개인 예술가로서 대우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통해 작가 개인의 개성이 반영된 작품들이 두드러지게 되는데, 전시실을 쭉 둘러보며 그림마다 고유의 특징이 드러난 것을 찾아보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수 있다.
당시의 대표적 인물인 김규진을 주축으로 한 서화연구회, 안중식과 조석진의 서화미술회, 한국 최초의 수묵채색화 동인회인 동연사 등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다.
특히 서화연구회와 서화미술회 등 화단을 통해 도제식 미술교육이 이루어짐으로 근대 한국 미술사의 대표적인 화가들이 길러지게 된다.
이런 부분을 통해 대한제국의 미술이 조선과 근대의 가교 역할을 해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전시 마지막 부분에서 만날 수 있는 창덕궁 부벽화를 주제로 한 미디어 아트는 절대로 놓치지 말아야 한다!!!
1917년, 조선 왕조를 거치며 가장 오랜 시간 황실의 공간이었던 창덕궁이 화재로 내전 일부가 전소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훼손된 창덕궁을 재건하기 위해 경복궁 일부 건물을 헐어 옮겨 희정당, 대조정, 경훈각이 세워지는데 이 건물들의 벽을 장식하기 위해 당대의 주요 화가들이 참여하게 된다.
(특히 김규진은 단독으로 희정당의 부벽화를 담당하였다.)
이 그림들은 대한제국의 실질적 마지막 궁중회화이자 당시 미술의 극치라고 평가된다.
이번 전시에서는 빛을 주제로 창덕궁 부벽화를 새롭게 조명한 미디어 아트를 선보였는데, 가운데 마련된 자리에 앉아 차분히 감상하는 것을 추천한다.(약 10분 정도 소요)
전시를 쭉 둘러보고 나오며 - 예상했던 것보다 대한제국 시대의 작품들이 상당히 많구나 - 암흑기였을거라 생각했는데 굉장히 화려하고 변화 수용에 적극적인 시기였구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고 당시의 역사와 미술사에 대해 더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무엇보다 이 전시는 실제 고종이 머물렀던 대한제국의 상징적 장소인 덕수궁에서 진행되는 전시라 더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이 전시가 대한제국시대 궁중 미술을 조명한 국내 첫 전시라고 들었는데 앞으로도 더 활발히 연구가 이루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을 남기며 포스팅을 마무리해본다.
▶ 관람 정보
- 전시기간 2018. 11. 15 ~ 2019. 02. 06
- 관람시간 화, 목, 금, 일요일 10:00 ~ 19:00 수, 토요일: 10:00 ~ 21:00 (야간개장) 매주 월요일 휴관
- 관람료 덕수궁 입장료 포함 3000원 (만24세이하, 만65세이상 무료)
- 도슨트 12시,1시,2시,3시,4시 (수,토요일 5시추가) 제1전시실 입구
즐겁고 행복한 나날 되세요.... 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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