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속죄일의 희생 제물과 영문 밖에서 고난당하신 예수님
히브리서 13:8~13
복음성가, 영문 밖의 길
오늘 본문 말씀은 히브리서를 기록한 기록자가 당시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에게 쓴 편지 중 일부로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속죄일의 희생 제물로 표현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당시 유대인 기독교인들 중에는 동족 유대들의 박해가 극심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 유대교로 돌아갈까 하는 유혹을 받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그 조상적부터 오랫동안 율법을 따르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드리는 제사 예식에 익숙해 있었기 때문에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화목제물을 먹는 것에 대하여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시금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을 제사장과 함께 먹는 일에 회귀하려는 유혹을 받았습니다. 이에 제가 믿기로는 히브리서 기록자인 사도 바울이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하는 자는 유익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제사장들조차 먹지 못하는 고귀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특권이 있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10절과 11절에서 바로 그 점을 말씀한 것입니다.
“우리에게 제단이 있는데 장막에서 섬기는 자들은 그 제단에서 먹을 권한이 없나니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밖에서 불사름이라”
여기서 말하고 있는 바 속죄 제물인 짐승의 피를 대제사장이 성소 곧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 뿌리고 나오고 그 짐승의 고기들은 제단에서 불태우고 그 나머지 내장이라든지 껍질이라든지 하는 것들은 영문 밖으로 가지고 가서 정결한 곳에서 다 불태워 하나도 남김없이 없애우곤 합니다. 그렇게 짐승의 피를 가지고 성전 안 지성소에 가지고 들어가는 속죄제사는 세 가지뿐입니다.
하나는 기름부음받은 제사장 곧 대제사장이 자기의 죄를 깨달아서 하나님께 제물을 그릴 때입니다. 그는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여호와 앞에서 그 송아지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회막 성소에 들어가서 일곱번 뿌리고 향단 뿔에 바르고 송아지 피 전부를 번제단 밑에 쏟고 송아지의 기름과 콩팥들을 번제단 위에서 태우고 그 송아지의 가죽과 고기와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과 똥 전체를 진영 바깥 재 버리는 정결한 곳에서 불로 다 태워야 합니다. 그 제물은 제사장이나 백성이 전혀 먹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 회중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였을 때에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이 수송아지 머리에 안수하고 그것을 잡아 피를 가지고 회막에 들어가 뿌리고 피 전부를 번제단 아래 쏟고 그 기름은 제단에서 불태우고 그 나머지 고기나 모든 것은 다 진영 밖에서 불살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것도 제사장이나 백성이 그 고기를 먹지 못합니다.
또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년 대속죄일마다 백성들이 금식하면서 성전에 와서 회개의 기도를 드릴 때 드리는 제사입니다. 이스라엘 달력으로 7월 10일마다 대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자기를 위하여 수송아지를 드리고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서 뿌리고 성소도 뿌립니다. 그리고 속죄일을 위하여 구별된 두 마리 염소 중 하나를 잡아 그 피를 지성소에 들어가 백성의 죄를 위하여 뿌리고 분향단에 바르고 나와서 제단의 귀퉁이 뿔에 바르고 제단 위에도 뿌려서 백성의 죄로 인하여 더러워진 성전을 성결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리고 나머지 한 염소는 산 채로 백성의 대표인 장로들이 염소 머리에 안수하여 백성의 모든 불의와 죄를 아뢰고 그 염소에 자기들의 죄를 두어 정한 사람에게 맡겨 광야로 보냅니다. 그리하여 광야에서 멀리 보내어 그 염소를 놓아 광야 짐승에게 잡혀 먹혀 죽게 합니다. 그리고 그 속죄일에 잡아 드린 수송아지와 염소의 고기들을 가죽과 똥을 밖에 가지고 가서 다 불사릅니다. 그래서 대속죄일에 드려진 모든 것들은 제사장이나 백성들이 아무도 먹지 못합니다.
그런데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제단이 있는데 이 제단에는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살과 피를 드려서 백성의 죄를 씻은 십자가 제단입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죄를 위한 희생 제사 역시 온 백성의 죄를 씻기 위한 것이기에 바로 이렇게 지성소에 피가 뿌려진 제물로서 결코 제사장들이 먹는 일에 참여할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의 육체들이 진영밖에 나가 정결한 곳에서 불살라 태워진 것처럼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과 성안에서 죽임을 당하지 않고 예루살렘 서문밖의 골고다 언덕에서 그 몸이 십자가 나무에 매달려 고통으로 불살라지고 무덤에 묻힌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이르기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대속죄일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들과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해마다 속죄일인 7월 10일마다 금식하며 모여서 수송아지와 수염소를 잡아 그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가지고 가서 뿌리고 제단에 바르며 그 속죄 염소 하나를 지목하여 죄를 그 머리에 두고 산 채로 광야로 끌고 가서 버리며 그 제물들의 고기들은 진영 밖에서 불로 살랐던 것은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의 모든 죄인들을 위하여 속죄하려고 자기 몸을 속죄 제물로 드린 것을 예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침내 때가 차매 온 인류의 속죄 제물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오셔서 그처럼 인간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고 예루살렘의 대제사장 가야바의 선고를 받아 사형당할 죄인으로 낙인찍혀서 우리 모든 죄악을 대신 짊어졌고 그의 몸이 영문밖에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여 마치 불살라지게 됨으로써 택하신 자들의 모든 죄가 다 속량된 것입니다.
이러한 제단에서 구약의 제사장들은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를 위한 음식으로 내어주셨으니, 그의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는 제사장들보다 더 고귀한 영적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의 살과 그의 피를 먹고 마심으로써 우리는 죄가 사해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주님의 속죄 제사로 인하여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와 사랑을 나누게 놀라운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 출신 기독교인들은 다시금 제사 음식을 먹으려고 다시 돌아가 성전에서 제사 드리는 옛 행위를 그리워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도리어 그리스도인들은 그 옛 제사장들이 먹지 못하는 더 거룩하고 지극히 보배로운 하나님의 아들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영적인 축복을 누리는 자들이 되었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깊은 사랑과 교제를 나누는 은혜를 누리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우리의 죄를 사하고 지극히 복스럽게 하시려고 자기 몸을 기꺼이 드리신 우리 구주 예수님을 위하여 우리도 그가 기꺼이 짊어지신 세상적인 치욕을 우리가 부끄러워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사도는 당시 히브리인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당부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도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이렇게 자기를 낮추어 세상에서 온갖 치욕과 고통을 한 몸에 당하시고 기꺼이 자기의 생명을 내어주고 성문밖에서 불사름까지 당하신 우리 구주를 생각한다면, 우리가 주님을 믿는 신앙 때문에 당하는 세상의 모욕과 멸시를 부끄러워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 우리 구주 예수님을 죽이는 데 앞장선 대제사장과 악한 유대인들의 도성에서 평안하게 안락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사도는 기꺼이 타락한 도성 예루살렘 안에서 유대교의 패역함을 용납하지 말고 기꺼이 그러한 불신앙의 자리를 떠나고 치욕을 감내하신 우리 구주 계신 십자가의 자리로 나아가자고 권면합니다. 당시 흔들리던 히브리인 기독교인들을 향한 사도의 이러한 권면은 참으로 강력한 도전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를 죄악에서 건지시려고 자기 피를 다 쏟으시고 수치를 짊어지시고 예루살렘 영문밖 사형틀에서 발가벗겨진 채 온갖 모욕과 멸시를 당하시며 손과 발에 대못을 박혀 피 흘리시는 고통의 불사름을 기꺼이 당하신 우리 구주를 기억합시다. 그가 오랫동안 속죄일에 드려진 속죄 제물의 본체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신앙 때문에 고난과 박해와 멸시와 조롱을 당할진대 이천년전 우리의 죄 때문에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밖의 골고다로 올라가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서 안락한 도성에서 머물려 하지 말고 차라리 세상에서는 주님과 함께 멸시와 박해를 받을지라도 믿음으로 세상의 도성을 떠나 영원하고 안전한 하늘 도성 주님 계신 곳을 향하여 한발자국씩 나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