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언 21:6 속이는 말로 재물을 모으는 것은 죽음을 구하는 것이라 곧 불려다니는 안개니라 (개역개정판)
잠언 21:6 속여서 얻은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고 죽음의 덫과 같다. (현대인의 성경)
프랑스 카페 왕조 제11대 국왕 필리프 4세(Philippe IV, 1268-1314)는
그 잘생긴 외모로 인하여 미남왕, 또는 단려왕이라는 별명이 붙어있다.
보통 중세 시대는 무슨 사자왕, 경건왕, 이런 별명이 붙는 것도 많고
외모에 대한 평가가 무슨 역사적 기록에 남는 공식적인 것도 아니긴 하지만 (믿을 수 없다는 뜻임)
템플 기사단을 박해하는 등, 온갖 정적들을 남겼던 46년의 생애(당시로서는 단명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였을 것이다) 동안 정적들조차도 그 외모의 뛰어남을 인정했다면
뭐, 사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파미에의 주교이자 필리프 4세의 정적이었던 베르나르 세세(Bernard Saisset)의 평가는 극히 이례적이다.
"그는 사람도, 짐승도 아니다. 그는 조각상이다. Ce n'est ni un homme ni une bête. C'est une statue."
(그 베르나르 세세는 왕에게
'밤에도 빛나는 올빼미 같은 임금님, 눈 크게 뜨고 째려보는 것 말고 말없이 우두커니 있는 것까지 똑같으시네요...'
라고 빈정대다가 죽을 뻔한 위기에까지 몰렸다는 말은
야사치고는 너무 많이 알려져 있어서, 진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측근에게 아래의 평가를 받는다고 하는데
“항상 정조를 지키고, 순결하며, 겸허하되, 외모를 뽐내지 않으며, 말로 으스대지 않고, 성내지 않으며, 증오도, 시기도 하지 않으며, 모두를 사랑하신다. 우아함의 극치이자, 너그럽고, 경건하며, 자비로우시되,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면서, 타인을 비방하지 않으신다. 신실한 믿음으로 성당을 짓고 자선을 베풀며, 잘 생긴 외모처럼, 행동거지가 우아하며, 맞서는 모든 적들에게조차 엄숙한 분이다.”
이런 평가를 받는 그도
최초의 은행 비스무리한 집단이었던 템플기사단을 박해하고, 교황과 대립했으며, 금화와 은화의 함량을 속여 국가가 앞장서서 위조지폐를 만들어 민생을 파탄에 이르게 한 흑역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은
돈 때문이라는 의견이 많다.
돈이 없어 늘 전전긍긍했던 프랑스 왕실의 유구한 전통을 이어받고, 또 계승했던 그는
유대인과 이탈리아 출신의 템플기사단 회계 담당자들의 재산을 몰수하고 쫓아냈다.
개인회생절차를 셀프로, 힘으로 진행한 최초의 인물일 듯 하다.
무리한 전쟁으로 매번 막대한 빚을 졌던 것은
영란은행을 설립해서 엄청난 해군력과 막강한 경제력을 구축했던 영국과 늘 비교되는 부분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유명한 사건
아비뇽 유수를 단행했던 그 사건...
정치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뭐 신앙적인 이유도 있었을까나?)
성직자들에게 세금을 거두는 문제가 단초가 되었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그래... 결국은...
돈 때문이었겠지.
아름다운 남프랑스의 도시 아비뇽...
지금은 인구 10만 가량의 작은 소도시지만
물맑고 공기좋은 남쪽 도시라는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것 같다. (올해는 좀 많이 더웠을 것이다...)
우리에게도 그런 남쪽 도시가 있다.
일찍이 공기가 좋고 기후가 높은 편이었던 마산은
경남 지역에서는 유독 요양원이 많은 편이었다.
남해의 도서지방을 제외한 한반도의 기온분포로서는
통영 다음으로 마산이 높은 기온분포를 보여왔으며
도서 지역인 거제에 비해 강수량도 높지 않아
요양지로서는 좋은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물이 좋아 간장과 소주도 품질이 높았다는데
그래서 러시아도 이곳을 눈독들여 일본과 경쟁했다는 것은 유명하다.
(영국, 프랑스부터 마산까지...[우크라이나까지] 러시아도 참...)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가 1941년, 마산에다 ‘상의군인요양소’를 세웠으니
이것이 바로 국립결핵요양원의 모태이다.
그 많은 지역중에 하필 마산이었던 이유는
러시아가 마산을 눈독들인 이유와 비슷한 이유였을 것이다.
1940년대, 가포의 결핵요양원과 월영 홍골(지금의 경남대) 언저리에 철도(교통)병원이 자리잡게 되고 해방된지 채 1년도 안된 1946년 6월 1일, 미군정청 주도하에 국립마산요양원이 개원한다.
1950년대엔 자북동에 위치한 일본병참부대가 육군군의학교와 제36군 병원으로 바뀌었으며
1960년대는 국립결핵요양원, 군의학교, 36군 병원, 철도병원까지 있는 휴양지가 되었는데,
지금의 휴양 개념과는 달리
가난한 자들의 질병 치유와 회복을 위한 성격이었을 것임에는 분명하다.
어느 지역에서나 그랬겠지만
수전노들은 득실댔고
19세기말부터 마산 앞바다를 간척한다고 달려드는 사람들과
한양 마포나루까지 배편을 운영했던 마산어시장에는
바닷물보다 짠내나는
속고 속이는 장사치들의 무용담(?)이 넘쳐났다고 한다.
마산 아재들과 아지매들의 성질을 돋우는 일들이 왜 없었겠나?
한일 양국을 가리지 않는 장사치들의 이야기는
약간의 '미담'과
대다수의 '무용담'이 뒤범벅되어
일종의 도시전설처럼 내려왔다.
어물전에 비린내가 진동한다는 요즘 정치판이지만
그때 그 시절... 그립긴 해도,
막상 그 시절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은 전쟁터 비슷한 환경이었을 것이다.
그러한 치열한 삶의 현장 마산에
가난한 자들과 군인들을 위한 회복의 공간이 마련된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결핵...
한국이 선진국이라고 하던데
2024년만해도 결핵 환자는 17,944명이다.
인구 10만 명당으로 보면 28.2명으로 OECD 평균 발생율 10명의 3배 수준이다.
당연히
이러한 질병은
부유한 이들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병은 아니다.
마산은
여수 애양원이 나병환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페병쟁이 취급 받으며 힘들어하던 결핵환자들에게
부족하나마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맑은 물로 제조했다는 국내 최장수 기업 몽고간장의 생산, 판매 현장은... 서글픈 이야기로 넘쳐났다.)
다시 프랑스의 미남왕 필리프 4세 이야기다.
금화와 은화의 제조 비율을 조작하고(국가가 앞장서서...)
유대인과 이탈리아 기사단원들을 탄압하며
종교지도자들에게도 엄하게 대했던 그 군주는
다른 왕들에 비해 훨씬 좋은 평가(와 외모)의 소유자였지만
결국 재물과 권력 앞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일평생 재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동분서주했지만
결국 해결하지 못하였다고 보는 편이 맞을 것 같다.
일평생 평안함과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자녀들은 대부분 요절했다.
돈을 좇는 삶이었지만 부유하게 살진 못했고
두 며느리들의 불륜 때문이었는지, 중세치곤 드물게 국민적 저항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본인도 사냥을 나섰다가 멧돼지에 의해 낙마하여 목숨을 잃고 만다.
답이 안나오는 십자군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름 경건하게 살아가려고 했지만
결국 돈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삶을 살았던
잘생기고 인품 좋으며 신앙도 좋았다던(그러면서도 교회와 사사건건 대립했던) 그 사람은
결국 재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어떠한가?
속여서 얻는 재물은 사라지는 안개와 같다고 했는데(잠 20:6)
재물 그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열심히 일해도 텅텅빈 지갑을 두고 기도하지 않았으며
가난한 자들을 위해 지갑을 열지도 않았으면서
다른 사람들 앞에 경건한 척 했다면
내가 누리는 것들이 속이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속이는 재물을 좇는 결과는
...
참으로 허무하고 서글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