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6부- 행복에 대하여
몇년 전 터키의 카파도키아를 여행한 적이 있다. 회사에서 특별상을 받아서 여행을 온 한 팀이 있었는데 그들과 함께 선셋투어를 갔다. 버섯같은 기암들 사이로 태양은 주황색 물감을 뿌리며 말로 형용할수 없을만큼 아름다운 모습으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숨이 턱 막힐듯한 장엄한 모습으로 인간이 만든 그 어떤 예술작품도 그 만큼의 감동과 환희를 줄 수 없을것 같았다. 그때 내 몸에서는 엔돌핀보다 4000배나 약효가 높다는 다이돌핀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한 청년이 이렇게 소리쳤다. 혜은아! 혼자봐서 미안하다. 사랑한다! 그리고 다음엔 꼭 같이오자~~ 아름다운 광경을 연인과 함께 보고 싶어 하는 그 청년의 간절한 마음이 진하게 나에게 전해져 왔다.
ⓒ카파도키아 일몰장면
행복은 고대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철학적 성찰의 대상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선이 행복이며, 행복은 덕을 통해 얻어진다고 생각했다. ‘덕’이란 이성, 즉 선악을 구분하고 사리를 분별하는 능력과 의지에서 오는 것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인간을 삶의 길잡이로 삼은 소크라테스가 이성에 따라 덕을 좇는 삶의 모범을 실천해 보이기 위해 독배를 마셨는지 모른다.
쾌락을 추구했던 에피쿠로스는 쾌락이 인생의 최고 목표이며 행복한 삶은 최대의 쾌락과 최소의 고통을 의미한다고 가르쳤다. 에피쿠로스학파의 관심은 오늘날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 것과 달리 방탕과 향락적인 생활이 아니었다. 그들의 관심은 심리적 안녕으로 친구들과의 진실한 유대 관계, 육체적 고통이나 정신적인 걱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개인이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경험하는 주관적인 심리상태이다. 에피쿠로스 철학의 목적은 공포와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평온한 삶이었고 쾌락과 고통은 선과 악의 척도가 되었다.
에피쿠로스와 달리 스토아학파의 출발점은 불행과 비극이었다. 철학자였던 로마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전쟁터에서 비참한 패배를 경험하면서의 인생의 의미를 깨달았고 인생의 최고의 전환점을 맞이했다. 그리고 남은 생을 통해 그의 철학서인 명상록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스토아학파는 행복을 욕망에 몸을 맡기는 쾌락의 삶이 아니라 욕망을 버리는 금욕적인 삶을 통해 실현하여, 영혼의 평안을 찾는 것이 행복에 이르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로마시대의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도 인간은 육체에 구속되어 있지만 올바른 이성에 의해 인간답게 살아가며, 죽음으로써 노예상태로 부터 벗어난다고 하여 선을 추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며 기꺼이 죽음을 택했다.
근대에 들어서면서 행복에 대한 논의는 심리학자들이 주도했다. 19세기 심리학은 철학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의 정신세계를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학문으로 재탄생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 심리학은 인간의 의식과 행동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통해서 정신장애의 치료, 천재를 발견하여 육성하는 일, 사람들을 좀더 행복한 삶을 살도록 돕는 일을 구현하고자 했다. 하지만 전 세계를 혼동의 구렁텅이로 몰고간 2차 대전을 겪으면서 심리학의 목적은 오직 정신장애의 치료 하나로 압축되었다. 전쟁에서 돌아온 수많은 퇴역군인들이 참전 후유증으로 다양한 심리적 장애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겨우 한숨을 돌리게 된 근대가 되어서야 인류는 다시 인간의 행복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Maslow, Rogers, Jung, Allport, Erikson 등의 심리학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통합하여 행복에 이르기 위한 6가지 요건들을 발표하였다.
1. 환경의 통제(environmental mastery)
주변 환경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잘 처리하는 능력과 이에 대한 통제력이다. 이러한 통제력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환경적 조건을 효과적으로 잘 활용하며 자신의 가치나 욕구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하고 창출해낸다.
2. 타인과의 긍정적 인간관계(positive relations with others)
타인과 따뜻하고 신뢰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타인의 행복에 관심을 지닌다. 공감적이고 애정어린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이 있고, 인간관계의 상호교환적 속성을 잘 이해한다.
3. 자율성(autonomy)
독립적이며 독자적인 결정능력이다. 자신을 특정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에 저항하는 능력을 지니고 있고 내면적 기준에 의해 행동을 결정한다. 외부적 기준보다 자신의 개인적 기준에 의해 자신을 평가할 줄 안다.
4. 개인적 성장(personal growth)
자신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고 있다. 자신이 발전하고 확장되고 있으며 자신의 잠재력이 실현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니며 새로운 경험에 개방적이고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해 노력한다.
5. 인생의 목적(purpose in life)
인생의 목적과 방향감을 지니고 있고 현재와 과거의 삶에 의미가 있다고 느낀다.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신념체계를 지니고 있으며 삶에 대한 일관성있는 목적과 목표를 가지고 있다.
6. 자기수용(self-acceptance)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긍정적 태도를 지닌다. 긍정적 특성과 부정적 특성을 모두 포함한 자신의 다양한 특성을 인정하고 수용할 줄 알고 과거의 삶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느낀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행복의 확산을 위해 행복에 대하여 과학적 탐구를 하고 연구하는 기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서울대 최인철교수가 만든 행복연구센타가 대표적인 곳이다.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매우 낮은 것으로 유명하다. 세계 10위 경제 대국인 한국의 삶의 만족도는 OECD 최하위권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에 따르면 2018∼2020년 동안 한국의 국가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5.85점이었다. 전체 조사 대상 149개국 중 62위에 해당하는 점수다. OECD 37개국 가운데는 35위로, 한국보다 점수가 낮은 국가는 그리스(5.72점)와 터키(4.95점)뿐이다. 국가 행복지수 순위가 가장 높은 나라는 7.84점을 획득한 핀란드였고, 덴마크(7.62점), 스위스(7.57점), 아이슬란드(7.55점), 네덜란드(7.46점) 등 순이었다. 한국의 연간 근로시간은 길기로 유명하다. 우리나라는 멕시코 다음으로 가장 길었다. 한국의 미세먼지 농도는 27.4마이크로그램(㎍)/㎥로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고 노인 빈곤율은 2018년 기준 43.4%로 OECD 평균의 3배에 달했다.
하지만 이러한 환경적인 측면보다도 한국인의 행복지수가 떨어지는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저명한 행복심리학자 에드워드 디너(Ed Diener)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한국인은 물질적인 가치를 지나치게 중시하며 경쟁적인 삶의 태도를 지니고 있다. 그러면서 직업이나 환경에 대한 만족도가 낮을 뿐만 아니라 지지적인 인간관계와 타인에 대한 신뢰도 부족하다." 고 했다. 그는 인간의 행복은 다양한 욕망을 충족시킬수 있는 환경적, 상황적 조건에 비례한다고 했지만 욕망충족과 행복과의 관계는 그의 주장대로 정비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심리학자들과 달리 과학자들은 행복의 감정을 호르몬의 작용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 우리가 목표로 정한 것이 성취될 때 느끼는 짜릿한 감정은 도파민(Dopamine)의 분비로 인한 것이고, 불안과 초조함을 없애주고 평안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세로토닌 때문이다. 또 어떤 사람에 대해 신뢰하고 친밀감을 느끼는 것은 옥시토신의 작용때문이며,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통증을 없애주는 것은 엔돌핀이 분비되기 때문이라는 거다.
최근에는 엔돌핀보다 약효가 4000배가 높다는 다이돌핀이 발견되었고, 아난다마이드라는 호르몬도 발견되었다. 아난다마이드(Anandamide) 라는 "행복"이라는 뜻의 산스크리스트어인 "아난다"에서 따온 것으로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면역기능이 있고, 스트레스도 잘 극복하고 우울증에 빠지지 않고 긍정적인 사고를 하게 한다. 또한 이 물질이 많은 사람은 상처도 빨리 낫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이 아난다마이드라고 하는 물질을 태생적으로 많이 갖고 태어나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가장 높은 사람은 나이지리아인으로 분비율이 45%이며, 이에 반해 북유럽인은 21%이나 아시아인의 분비율은 14%밖에 되지 않는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마라톤 선수들이 경험한다는 Runner's high도 엔돌핀이 아니라 아난다마이드라는 물질의 작용으로 밝혀졌다. 아난다마이드는 여러 사람과 어울릴 때 많이 만들어지며 달리기, 돼지고기, 초콜릿을 먹을때에도 만들어진다.
하지만 이 모든 행복에 대한 지표들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생각과 감정들이 가장 크다고 할수 있다. 행복은 물질의 풍요, 환경적 상황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감정의 깊이와 관련이 깊다. 행복은 삶과 밀착된 상태에서 나오는 감정이다. 사람은 욕망을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동물이고, 이 욕망에 몰두해 있기 때문에 지금 내게 주어진 평범한 행복들을 소홀히 여기는 경향이 있다. 행복은 남보다 좋은 차, 남보다 좋은 집에 사는 과시욕이 아니다. 행복은 순간을 포착하고 붙잡을수 있는 능력이다. 행복은 감동을 받는 것이다. 감동을 받으면 우리 몸에서는 엔돌핀, 다이돌핀, 아난다마이드가 생성된다. 감동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우리의 삶은 더 알차게 되고, 풍성하게 되고, 풍요롭게 된다. 그래서 우리가 매일 매일 감동받는 삶을 살아갈 수 만 있다면 우리는 매일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행복의 비밀은 같은 것을 보고도 다르게 생각할수 있는 능력, 작은 일에도 감동하며 기적같이 생각하는 감수성에 있다. 자연에 사계절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도 사계절이 있다. 중국 속담중에에 "인생에 태양만 비치면 사막과 같이 되어 버린다"라는 말이 있다. 자연의 사계절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인생의 사계절도 감내할 수 있는 법이다. 행복한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이 불행일지라도 가지고 있는 것을 다 사랑할 줄 알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다.
자연은 언제나 우리에게 감동을 준다. 봄에는 대지의 생명을 일깨우는 생명의 충만함을 느끼고, 여름에는 뜨거운 햇살이 주는 생명의 충만함에 도취된다. 가을에는 형형색색 알록달록 온천지를 물들인 단풍을 감상하며 그윽해지는 자연의 깊이를 깨닫고, 겨울에는 설경속에서 또다른 새로운 세계와 생명을 느낀다. 이렇게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능력이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풍요로워지기도 빈곤해지기도 한다. 인간이 커다란 감동을 체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종교적인 환희와 자연이 주는 장엄함 뿐이라고 한다. 나는 터키의 카파도키아 센셋투어의 그 감동과 그것을 함께 봤던 그 청년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는 오직 두가지 방법밖에 없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알버트 아인슈타인)
출처 : 세이프티퍼스트닷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