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돌, 연하남, 그 녀석
03
정태웅을 만난 건 어떻게 보면 어이가 없었고, 창피하고, 또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4년 전 그 때 그 봄은 나에게 기억하고 싶지 않지만, 기억 속에 너무도 또렷히 기억 남아있는 지나간 계절이다.
그 때 내 나이는 22살. 선생님을 꿈꾸며 임용고시를 준비하던 3학년 사범대생이었다.
그 때 나에겐 대학을 입학하자마자 사귀게 된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사람은 정태웅과는 달리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교 선배였다.
생각해보면 정태웅과 많이 다르면서도 비슷한 모습이 많은 것 같다.
하얀 피부의 정태웅과는 달리 그 사람은 얼굴이 까무잡잡하여 남자답다는 인상을 처음부터 강하게 남기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목구비가 뚜렷하진 않지만 잘 생겼다는 소리를 듣는 정태웅과는 달리 그 사람은 정말 이목구비가 크고 시원시원해
한 번 보고도 기억에 쉽게 남을 수 있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애교가 많은 정태웅과는 달리 무뚝뚝하고 표현이 많지 않은 사람이었다.
새내기 OT때 내가 먼저 반해서 사귀게 된 케이스라 나는 늘 그 사람에 매달리는 편이었다.
물론 그 사람 성격상 먼저 표현하고 다가오지 않기 때문에 내가 더 적극적이었던 것 같다.
난 그 사람을 3년 동안 사랑하면서 정말 내 전부를 바쳤다고 생각했고, 그 역시도 나와 같은 것 같았다.
비록 나에게 표현은 직접적으로 하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나름대로의 최선을 다하며 나에게 다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난 정말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단 생각을 할 정도로 그 밖에 없었고, 그래서 혼전 순결을 다짐하고 강조했던 나지만
그에게 내 처음을 바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그가 더욱 좋아지고, 그와의 결혼까지도 생각했던 나이다.
하지만 그런 나의 사랑과는 다르게 그는 순식간에 사랑이 변해서 날 떠났고,
3년 간 내가 죽도록 사랑했던 내 사랑은 4년 전 꽃이 피던 봄, 너무나 비참하게 끝을 맺었다.
그의 모진 행동에도 굴하지 않던 내가 그의 오피스텔을 찾아가 다른 여자와 그를 본 순간 모든 걸 끝낼 수 있었고,
그 날 나는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난 아무 생각 없이 시내 한 복판의 큰길가 사거리로 나갔고,
‘뛰어들어야지’,‘뛰어들어야지’ 속으로 무수히 외쳤지만 결국 난 그럴 용기가 없어 쌩쌩-달리는 차들 사이로 뛰어들지를 못했다.
용기가 없는 내 모습이 더욱 한심스럽게 느껴져 정말 죽어야 겠다란 생각과 함께
신호가 빨간 불이 바뀔 때까지 횡당보도에 중앙선 한복판에서 있던 나는 결국 찻길로 뛰어들지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 수밖에 없었다.
아마 사람들 눈에는 내가 미친 여자로 보였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주저앉아 신호가 몇 번이고 바뀌고,
사람들이 몇 십 명 몇 백 명 지나가도록 난 그 자세 그대로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일어날 기운조차, 생각조차 없었다.
“저기요, 여기 위험해요.
저 울고 싶으면 길 건너서 쭉 가면 큰 공원하나 나오거든요, 거기 가서 우세요.
거기가 울기엔 최고로 좋거든요.“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내 옆에 다가와 말을 건네는 남자 목소리. 다들 미친 여자라고 소근대며 지나갔는데,
이 남자는 오지랖도 넓지 귀찮게 말을 건네냐.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나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주는 듯한 목소리에
나는 그의 목을 끌어안고 한참이나 울었다. 그렇게 나랑 정태웅은 처음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렇게 처음으로 만난 정태웅의 목을 잡고 그 이후에도 신호가 여러 번 바뀔 때까지 계속 울으며
정태웅이 입고 있던 티셔츠를 적시고 있는데도, 착하고 오지랖 넓은 정태웅은 날 밀어내지 않고 다독여 주었다.
한참을 울던 나는 정신을 차려보니 정태웅의 존재가 머릿속에 인식되기 시작했고, 갑자기 밀려오는 창피함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나는
횡단보도에 파란 신호가 들어옴과 동시에 죄송하다고 허리 숙여 인사하고는 얼른 뛰어 도망쳤다. 그 이후에 얘기해줬지만,
정태웅은 그 당시 나를 비웃을 생각도 없을 만큼 황당했다고 한다.
나는 나를 떠난 그 사람 생각으로 그 이후에도 머릿속이 복잡하였고, 내가 민폐를 끼쳤던 정태웅은 기억에서 금방 사라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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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부터 한 달간 우리학교에서 교생실습을 할 선생님들이니까
교생선생님들 힘들지 않게 말 잘 듣고, 많이 도와드려라. 그럼 인사 부탁합니다.“
평생 교사가 꿈이던 나에게 교단에 서게 된 그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물론 이별의 아픔으로 인해 그 동안 내 꿈조차
관심을 가지지 못했지만, 교생실습을 통해 나는 정신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떨리는 마음으로 나는 내 소개를 했다.
“만나게 되서 반갑습니다. 지리교육과에 재학 중인 이은호라고 합니다.
지금 떨리기도 하고, 기대도 많이 되는데 한 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내가 교생 실습이 발령 난 곳은 남자 고등학교였다. 덩치 큰 남학생들이 주루룩 앉아있는 걸 보면서 속으로는 한 달이 고생스럽겠구나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반 이상이 엎드려 자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교생 선생님이 말씀하시는데 다들 자?
정태웅, 너 얼른 안 일어나?“
내 옆에서 나를 안쓰럽게 바라보시던 2학년 3반 담임선생님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누워있던 아이들을 깨웠고,
그 중 담임선생님이 크게 이름을 부른 그 아이는 옆에 앉은 아이가 흔들어 깨워서야 겨우 일어날 수 있었다.
“정태웅, 너 또 어제 춤추다 늦게 잤냐?”
“하암- 아, 선생님도 아시면서 왜 저만 깨우세요.”
“니 녀석은 맨날 자니까 그렇지.”
“아무튼 우리 담임선생님은 날 너무 좋아하셔... 어?”
담임선생님이 부른 아이는 정태웅이였고, 그 아이는 날 발견하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크게 뜨고는 아는 척을 해왔다.
물론 나는 그 때까지 정태웅이 누군지 모르고 있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교생과 학생이라는 인연으로 나는 정태웅과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걸 인연으로 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4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동안 태웅이와 나는 크게 발전한 것 같다. 그 당시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태웅인 가수지망생이여서
매일같이 연습실에서 연습하고 학교에 와선 잠만 잤던 그런 아이였다. 태웅이 말로는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연습생으로
기획사에 들어가 준비했다고 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준비했던 태웅이는 고등학교 3학년 겨울에 되어서 자신이 정말 원하던
가수로 데뷔할 수 있게 되었고, 아마 그 후에 우리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기도 했다.
한참 아래고 학생으로만 보였던 정태웅이 자신의 일이라는 것을 하고 20살이 넘어가면서 내 눈에도 남자로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물론 철없고 어린 생각을 하는 건 여전하지만 점점 변하는 그 녀석의 모습이 내 눈에 좋게 보였던 것 같다.
교생과 학생으로 다시 만났을 그 때부터 가수로 데뷔해 연예인이 되어 뜨게 된 2년 동안 그 녀석은 매일같이 나에게 대쉬를 했고,
결국 나 역시 그런 그 녀석에게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되어 이 녀석과 연인이 된 지 벌써 2년.
생각해보면 시간 한 번 참 빠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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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안녕하세요!”
새로운 한 주 월요일이 시작되고 나는 학교 교문을 통과하여 계단을 오르고 있는데, 뒤에서 익숙한 우리 반 녀석들 목소리가 들린다.
“현지구나. 너 감기 안 걸렸어?”
“그럼요~ 저 멀쩡해요!”
괜찮다며 나에게 으쓱대는 녀석. 표정을 보니 싸인회가서 성공했나보다.
“싸인은 잘 받았어?”
“당연하죠! 아, 선생님 정말 너무 멋있는 거 같아요-”
“누구가 제일 멋있는데?”
“다 멋있는데요, 전 태웅오빠 팬이에요!
아, 그 날 코앞에서 처음 본 건데 짱이에요!“
현지의 입에서 나온 태웅오빠란 소리에 나는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계속해서 정태웅 자랑을 하는 귀여운 내 제자다.
“남자가 어쩜 피부가 그리 좋을 수 있는지- 무슨 애기 피부에요!“
이젠 자랑할 게 다 떨어졌는지 피부 자랑까지 하고 나서는 현지를 보면서 나는 그 녀석의 피부를 생각했다.
피부가 저렇게 자랑거리가 될 정도로 좋았나? 뭐... 물론 연예인한다고 하면서부터 남자긴 하지만 피부에 투자를 많이 하는 것 같아 보이긴 했다.
옆에서 현지가 끊임없이 정태웅 그 녀석을 자랑하는 동안 교무실에 도착하였고, 나는 아이들에게 곧 교실 갈 테니 기다리고
있으라며 일주일의 하루를 시작하였다.
첫댓글 아이거재밌는데요??? ㅋㅋ앞으로계속코멘달겠습니다!!!
재밌어요!!! 다음편 빨리 보고싶습니다!!
재밌어요 ㅎㅎㅎㅎ
아잉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