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떨어질래야 떨어질 곳이 없는 바닥이다.
연일 남 헐뜯기 바쁜 민주통합당의 한계가 여실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막장 줄세우기 정치]가 민주통합당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 17일 방영된 MBC 시사매거진 2580 <우리는 머슴입니다> 편에선 [공천이라는 족쇄]에 묶여 국회의원의 모욕적인 말을 참아내고 부당한 지시까지 따르는 기초의원들의 실상이 보도됐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우리는 머슴입니다’ 편 VOD 화면캡처.
#. 2011년 12월11일 한 고속버스 안.
“문제의식도 없고 소명감도 없고 아니, 능력 없으면 부지런하기도 해야죠.
부지런하지도 않고 동네 정치도 안 하고 뭣 하러 시의원 합니까?
월급 300만원 타먹으려고 시의원 하는 게 아닙니까.”
혼이 나는 건 오산지역 민주당 시의원들.
전당대회에 가는 길이라 다른 민주당 관계자들도 함께 타고 있었지만, 시의원들에 대한 모욕적인 말은 계속됐다.
“시의원 된 거 아직 잉크 도장도 안 마른 시기입니다.
앞으로 이런 분들이 시의원 더 오래하면 진짜 나 끔찍합니다.
지금도 지역 국회의원 이야기 안 듣는데.
지역 국회의원 이야기 하는 거 동네 선후배가 이야기 하는 거 아닙니다.
동네 개가 지나가면서 짖는 소리가 아니에요.”
시의원들을 이렇게 몰아세운 사람은 오산에서 3선을 지낸 민주통합당 안민석 의원이었다.
#. 전당대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고속버스 안.
또 다시 마이크를 잡은 안민석 의원이 이런 식이면 우리는 앞으로 공천도 없다며 느닷없이 서약서를 쓰라고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나 공천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대들이 잘나서 시의원 된 거 아니라고 이렇게 명심하시기 바라겠어요.
신당에서 잘하겠다는 각오 담은 서약서 준비하십시오.”
- 안민석 의원
#. 기자 리포팅
이날 버스 안에서 시의원들에 대한 질책은 30분간 계속됐다.
시의원들이 대체 뭘 얼마나 잘못했기에 이렇게까지 혼난 것일까.
원인은 며칠 전 끝난 오산지역 보육연합회 회장 선거 때문이었다.
2011년 12월 새누리당 시의원의 아버지인 김모씨가 오산보육연합회 회장으로 선출됐다.
안민석 의원은 김씨가 당선되는 걸 막으라고 시의원들에게 지시했는데, 뜻대로 안 되자 화를 낸 것이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우리는 머슴입니다’ 편 VOD 화면캡처.
#. (버스 안 마이크 음성)
“내가 그날 그렇게 화요일날 막아야 된다, 당신들이 막아라, 그 세 분한테 묻고 싶어요.
그 며칠 동안에 이거 막기 위해서 무슨 노력을 했는지, 능력이 안 됐을 겁니다.
보육연합회 회장, 한나라당 쪽에서 보면 뭐라 그러겠습니까?
뭐라 그러겠어요?
아유, 병신들!
네?
우리 병신들이에요.”
(자막: 아유 병신들! 네? 우리 병신들이에요)
안민석 의원에게 모욕적인 막말을 들어야 했던 지역 시의원들의 심경은 어땠을까?
#. 당시 버스에 타고 있던 최웅수 오산시의장 인터뷰
“(내가) 정치를 잘못했구나.
내가 왜 (시의원을) 했나, 그런 생각이 들었고 정말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정말 어느 누구한테도, 부모님한테도 듣지 못했던 그런,
제가 월급 받으러 온 것도 아니고..”
▲MBC 시사매거진 2580 ‘우리는 머슴입니다’ 편 VOD 화면캡처.
#. 기자 리포팅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오산지역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던 최웅수씨는 안민석 의원의 재선을 도왔고 그 공로로 2010년 지방선거에서 안민석 의원의 도움으로 민주당 공천을 받아 시의원이 됐다.
최웅수 의원은 지난 2년 간 경기도 기초의원 중 가장 많은 28개 조례안을 발의해 초선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의장까지 올랐다.
하지만 최웅수 의장은 최근 민주당으로부터 당원자격정지 3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제명안까지 올리며 최웅수 의장의 징계를 주도한 건 바로 그를 공천했던 안민석 의원이었다.
시의원이 된 뒤 안민석 의원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점차 사이가 나빠졌다는 것이다.
#. 최웅수 오산시의장 인터뷰
“언론에 나가는 거는 지방의원으로서는 적절하지가 않다, 시의원들이 시의원답게 해라,
체육회 행사나 따라다니고 경로당을 찾아다녀라, 그런 말씀을 하셨죠.”
하지만 시청 안에 도의원들의 사무실을 만들어 달라거나 자신이 밝혀낸 버스회사의 비리 문제를 당분간 제기하지 말라는 등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요구가 많았다는 게 최웅수 의장의 주장이었다.
보육연합회 회장 선거에 개입한 것도 정치적 이유 때문이었다.
“그때 당시는 19대 총선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아마 사회단체장을 우리 쪽에 있는 사람이 돼야만 다음 (국회의원) 선거 때 유리하지 않느냐,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안민석 의원의 지역사무실 운영비를 부담하라는 요구까지 받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MBC 시사매거진 2580 ‘우리는 머슴입니다’ 편 VOD 화면캡처.
#. 오산시의원 전화 인터뷰 (음성변조)
“전에 있던 사무실이 굉장히 크고 넓고 좋아요.
그러니까 이거를 옮기지 말고 이대로 그냥 같이 쓰고 하자.
그러면 조금 공동으로 좀 부담하면서..”
#. 민주당 관계자 전화 인터뷰 (음성변조)
“부위원장급 같은 사람은 5만원,
시의원들은 뭐 10만원인가 20만원인가 이렇게 내라고.. 그런 겁니다.”
시의원들은 왜 모욕적인 말도 참고 부당한 지시도 따르는 것일까?
#. 최웅수 오산시의장 인터뷰
“반론을 하고 싶었지만 곧 반론은 다음 차기 2014년도 지방선거 때 공천을 못 받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해야겠죠.”
안민석 의원은 버스에서 자신이 한 발언에 대해 편집된 발언만 잘라 들으면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오해할 수 있다고 밝혀왔다.
사무실 운영비 부분에 대해선 같은 당의 시도의원들과 한 사무실을 쓰면 효율적일 것 같아 제안한 것이라면서 오히려 무상으로 사무실을 제공할 경우 선거법상 위반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기자 리포팅
같은 당 소속인데 당연히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지 이렇게 생각할 수 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의원, 군의원까지 정당의 공천으로 줄세우기한 결과는 효율성보다는 부작용을 더 많이 낳고 있다.
(중략)
유독 기초의원 공천권에 매달리고 있는 민주통합당이다.
2013년 현재 새누리당이 기초의원 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음에도 민주통합당은 꿈쩍 않고 있다.
“민주당은 노원병은 무공천으로 결정했고
기초단위는 공약에 반하여 공천하기로 했다.
어찌 보면 지도부가 정반대의 결정을 한 셈이다.”
“새누리당의 눈으로 볼 때 민주당은 무공천의 약속을 지켜야 할 곳에는 공천을 하고
마땅히 공천을 해야 할 곳은 무공천하여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귀를 의심케 한다.”
“여야가 나란히 같은 방향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민주당이 역주행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어찌 보실까 두려울 뿐이다.”
- 새누리당 황우여 최고위원 발언 中
지방정치는 중앙정치에 철저히 예속돼 있다.
대선-총선은 물론 하루가 멀다하고 전당대회에 동원되는 기초의원들은 선거운동원으로 전락하기에 이르렀다.
때문에 기초의원에 대한 정당공천 폐지 주장은 그동안 시민단체와 지역협의회 등에 의해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물론 기초의원 공천제가 폐지되면 후보 간 변별력이 약화되고 지역 토호세력 중심의 지방자치가 이뤄지는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정가에서는 “변혁은 하루 이틀 만에 이뤄지지 않는다”는 말이 나온다.
정당 공천에 따른 비리-잡음, 주민의사 왜곡으로 인한 역기능과 폐해로 지방자치 위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통합당이 스스로를 돌이켜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