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ou may download English ver. of the original article(unedited) on top.
서론
지난 20여년간 긴밀해진 중국-라틴아메리카 관계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다양한 연구가 나와 있고, 원자재 수출을 중심으로 한 무역 호황에 주목해 양 지역의 경제적 연계를 주요 분석 대상으로 삼은 연구가 다수이다. 학계에서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 중국과 라틴아메리카의 정치·문화적 연대, 그리고 미-중 패권경쟁이라는 맥락 아래 라틴아메리카의 외교 노선을 연구하기도 한다.
미국과 중국이 각자의 관점을 내세우며 경쟁의 수준을 높여 가는 현재의 국제 정세 아래, 각국 국민들이 중국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 또한 점차 늘어나고 있다. 강경한 외교적 수사를 사용했던 도널드 트럼프(Donand Trump) 전 미국 행정부, 그리고 전랑(戰狼)외교로 화두가 된 중국 외교관들이 등장한 이후, 미국과 중국은 저마다 자국의 관점이 유효함을 설파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최근 각종 매체가 보도한 주요 사안 중에서 양국의 입장이 충돌한 대표적 사례로는 코로나19의 기원, 미국 영공에서 발견된 중국 정찰풍선의 정체, 중국 내 특정인 실종 사건의 의미, 신장 자치구의 인권 현황, 홍콩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인식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시민사회가 주요 이슈에 대한 미-중 각국의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궁극적으로 정책결정자들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중요한 연구과제로 부상했다. 특히 신흥 강국인 중국에 대한 현지 사회의 시각은 지금까지 일부 예외를 제하면 주요 연구주제에서 벗어나 있었지만, 최근에는 학계에서도 이 방면으로의 관심이 증대되는 추세에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 등이 내놓은 설문조사 보고서를 바탕으로 중국에 대한 세계의 인식을 분석하고, 전반적인 대(對)중국 여론 악화 경향이 발견되는 선진국과 비교할 때 라틴아메리카가 어떠한 공통점과 차이점을 보이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이 문제에 관해 만족할 만한 결론을 내리기에는 아직 연구가 부족한 상황이지만, 아래에서 살펴볼 자료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선진국과는 다르게 중국에 대한 여론의 급격한 악화가 별달리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의 중국에 대한 인식
중국에 대한 세계 각국의 인식을 조사한 다양한 설문조사 중에서 주요 참고자료라 할 수 있는 퓨 리서치 센터의 2020년도 연구(1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에서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중국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관찰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특히 호주, 영국,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미국, 한국, 스페인, 캐나다에서는 중국에 대한 여론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Pew Research Center 2020). 일례로 당시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응답을 고른 호주 응답자의 비율은 81%를 기록해 전년 대비 24% 상승했고, 중국이 코로나19 대응에 비교적 선방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중국에 대한 인식은 2021년에 수행된 후속 조사에서도 별달리 개선되지 않았다(Pew Research Center 2021). 2021년도 설문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응답이 과반을 차지한 국가는 17개국 중 싱가포르와 그리스를 제외한 15개국에 달하며, 특히 일본(88%), 스웨덴(80%), 한국(77%)에서 부정적 인식이 두드러졌다.
중국에 대한 여론의 악화는 같은 기관의 2022년도 설문조사에서도 그대로 나타나는데, 이 최신 보고서의 내용 중 특기할 만한 점은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중국의 인권 정책과도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Pew Research Center, 2022). 동 설문조사에 따르면 19개 조사 대상국에서 중국의 인권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한 응답의 비중은 평균 79%에 달했고, 응답자 중 평균 47%는 중국의 군사력 신장, 경제 분야 경쟁, 정치적 관여보다도 인권 문제를 더욱 중요한 사안으로 꼽았다(Silver, Huang & Claucy 2022). 아울러 여러 선진국(단, 헝가리, 이스라엘,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한국 제외) 국민들은 경제적 관계의 악화를 감수하고서라도 중국의 인권 문제 대응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한편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맥락 아래 중국에 대한 유럽의 여론을 주제로 한 중앙유럽 아시아연구소(CEIAS, Central European Institute of Asian Studies)의 설문조사에서도 유사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Turcsányi et al 2020). 2020년 말에 수행된 본 설문조사에서는 유럽 소재 13개국 중 10개국에서 부정적 인식이 긍정적 인식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지역별로는 서유럽과 북유럽이 동유럽에 비해 부정적 인식을 더욱 많이 드러냈다. 특히 이 조사에서 중국에 대한 인식이 가장 나쁜 것으로 나타난 스웨덴에서는 응답자의 60%가 ‘부정적’ 혹은 ‘매우 부정적’ 선택지를 골랐으며, 이에 비해 중립적 응답 비율은 28%, 그리고 ‘긍정적’ 및 ‘매우 긍정적’ 선택지의 비율은 합계 12%에 불과했다.
이외에 영국에서도 중국의 이미지가 악화되며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바 있고, 여기에서도 퓨 리서치 센터의 조사에서와 같이 인권 및 민주주의 증진을 중국과의 외교정책에서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이 지정학적 영향권 확대 견제나 무역 증대를 중시하는 의견보다 많았다(Summers et al., 2021). 또한 비록 많은 유럽 국가에서는 중국과의 무역 자체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견해가 우세하나, 중국의 코로나19 기원 책임론이나 중국 정부의 강경 외교책 및 인권 현황이 주요 화두로 부상하면서 2020년을 전후해서는 유럽에서 중국이 지닌 이미지가 나빠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Gries and Turcsányi, 2021). 다만 한 국가 내에서도 응답자의 성향에 따라 중국에 대한 태도 또한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는데, 일례로 많은 국가에서 진보 성향 응답자들이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보다도 인권 증진을 더욱 중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퓨 리서치 센터의 최신 조사 결과는 개인적 이념과 중국에 대한 인식의 상호작용을 보여준다(Silver, Huang & Claucy 2022).
다만, 중국에 대한 인식의 전반적 악화 추세를 보여주는 상기 설문조사 결과들이 대부분 선진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나온 것임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중국은 위에서 소개한 설문조사들이 특정국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았기에 그 결과가 국제사회 전체를 대변하지 못한다는 취지의 반론을 공식 제기한 바 있다(Bloomberg News 2021). 다만 이 사안을 다루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에서의 중국에 대한 인식 관련 설문조사는 그 수가 많지 않고, 이 방면으로의 구체적인 연구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실제로 구미 선진국을 제외한 여타 지역에서 지금까지 시행된 소수의 설문조사에서는 위에서 살펴본 것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온다. 예를 들어 CEIAS 설문조사 결과에 의하면 아프리카 소재 조사 대상국 대부분(앙골라, 이집트, 가나, 케냐, 나이지리아, 남아공, 튀니지)에서는 중국이 대체로 긍정적 이미지를 유지했다. 한편 인태지역에서는 국가별로 중국에 대한 인식의 격차가 매우 크게 나타나는데,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태국, 말레이시아에서는 긍정적 견해가, 그리고 퓨 리서치 센터에서도 다룬 바 있는 한국, 호주, 뉴질랜드에서는 부정적 인식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 각국의 對中 인식
라틴아메리카 각국 내 중국의 이미지를 조사한 연구의 사례에는 몇 가지가 있으며(Aldrich and Lu 2015; Carreras 2017; Creutzfeldt 2017), 이 중 일부에서는 2010년대 초반부터 중국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역내 중국의 이미지는 시기에 따라 가변적이며, 최근 들어서는 중국에 회의적인 시각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미국과 중국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지지를 알아보는 데 참고할 수 있는 자료로는 모겐스턴(Morgenstern)과 보 히게스(Bohigues)의 연구를 들 수 있다(Morgenstern and Bohigues, 2021). 이 연구에서는 미국에 대한 역내 국민의 호감도가 이념에 따라 영향을 받는 구조적(structured) 특성을 지니는 데 반해, 중국에 대한 견해는 진보나 보수를 가리지 않는 비구조적(unstructured) 특성을 보인다는 점을 발견했다.
여기에 따르면 라틴아메리카의 진보 성향 국민들은 반미주의 차원에서 중국에 동조하고, 보수 성향 국민들도 중국의 경제적 영향력에 주목해 친중 행보를 보이는 경우가 있다. 아울러 본 연구는 중국과 미국에 대한 역내 국민들의 평가가 상호 독립적이라는 사실도 지적했는데, 이는 미-중 양국에 대한 태도가 서로 다른 요소에 기반하기에 특정국에 대한 호불호가 나머지 하나에 대한 견해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점을 의미한다.
하지만 상기 연구는 코로나19 팬데믹 본격화 이전에 수행되었고, 연구 시기상 최근 심화된 미-중 경쟁이라는 맥락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듯 세계 각국의 반중 감정은 코로나19 확산 이후에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였고, 이 점에서는 라틴아메리카도 예외가 아니다.
이 때문에 현지 각계의 연구·분석가와 공인(公人), 정치인들의 비판적 메시지가 늘어나자 볼리비아, 브라질, 페루 등에 주재한 중국 대사관들은 여기에 대응해 자국이 라틴아메리카에 지원금을 보내거나 대량의 백신을 제공하는 등 책임감 있는 강대국으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논지를 내세우며 변호에 나섰고, 이는 어는 정도 효과를 거두고 있는 듯하다.
한편 2022년 10월에 출간된 또 다른 연구는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에콰도르, 멕시코, 파나마로 구성된 라틴아메리카 7개국 내 對中 여론을 분석했다(Turcsányi et al., 2022). 이 연구에서 살펴본 바에 따르면 조사 대상국 내 중국에 대한 인식은 미국에 비해 전반적으로 떨어졌으나, 일부 국가에서는 긍정적 인식이 발견되기도 했다. 궁극적으로는 이 연구 또한 중국과 미국에 대한 역내 국민의 인식을 단순한 흑백논리로 판단할 수 없다는 모겐스턴 및 보히게스의 주장과 유사한 결론에 도달했다.
다음으로 CEIAS의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라틴아메리카 국민 중 상당수가 중국에 호감을 지닌 것으로 나타나지만, 그 비율은 아프리카에 비해 낮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례로 콜롬비아, 칠레, 브라질 3개국에서 중국에 긍정적 반응을 보인 응답자의 비율은 약 40% 수준이었는데, 이는 앙골라, 가나, 나이지리아 등지에서 기록된 60%에 가까운 수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비율이다.
참고로 CEIAS 설문조사에서는 중국과 이웃한 아시아 국가인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라틴아메리카 7개국 모두에서 중국에 비해 높게 측정되며, 유사한 분석을 수행한 현지 연구진들도 같은 경향을 발견했다. 또한 미-중 패권경쟁과 관련해 양자택일을 가정한 상황에서는 미국을 택해야 한다는 응답자의 비율이 높았으며, 이와 동시에 중국식 개발 모델에 비해 미국식 개발 모델에 대한 지지도가 높게 나타나기도 했다. 한편 경제 이슈로 눈을 돌려보면, CEIAS가 조사한 국가 중 아르헨티나를 제외한 6개국에서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중요한 국가라는 응답 비중이 80%에 육박할 정도로 높게 측정되었으며, 중국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는 7개국 국민 모두가 무역을 지목했다.
이외에 학계에서는 칠레 여론조사기관 라티노바로메트로(Latinobarómetro) 등이 수행한 중국 관련 설문조사도 중국의 역내 리더십, 다른 강대국에 비교했을 때의 특성, 경제적 영향력 등을 분석하는 데 활용하기도 한다. 2021년도 라티노바로메트로 연구진의 일원이었던 카를로스 루얀(Carlos Luján)은 중국의 리더십에 대한 역내 평가가 기술적 발전도, 과학 및 교육 수준, 미국과 함께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지위 등에 기반하는 반면, 군사력이나 사회·규범적 측면에서의 평가는 여기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분석했다. 아울러 루얀은 아르헨티나,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에서는 중국과의 관계가 미국과의 관계에 비해 양호한 상태에 있다는 평가가 우세하지만, 브라질이나 콜롬비아 등 다른 국가의 국민들은 이와 다른 견해를 나타낸다고 소개했다. 또한 우루과이, 볼리비아, 베네수엘라에서는 국가별 영향력 측면에서도 중국이 미국에 비해 우세하다는 인식이 발견된다(Luján, 2022).
결론
요약하자면,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전후해 라틴아메리카를 대상으로 수행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퓨 리서치 센터가 선진국에서 확인한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라틴아메리카에까지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히려 라틴아메리카 지역 전반에서는 중국과의 무역관계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우세하고, 경제 및 기술적 측면에서 중요한 입지에 있는 중국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도 관찰된다(Maggiorelli, et al 2023)1). 비록 서로 다른 질문을 사용한 다양한 설문조사 결과를 직접 비교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지만, 중국에 대한 라틴아메리카 국민의 인식이 선진국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만큼은 분명해 보인다.
* 각주
1) https://www.france24.com/es/am%C3%A9rica-latina/20220329-rusia-china-america-latina-latinobarometro
첨부파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