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태 선생의 이야기에 따르면 조선의 팽형은 다음과 같다.
우선 죄인을 앉혀놓고 "팽형을 하겠다."고 선고한 후, 가마솥을 내 온다. 가마솥을 내오면 집행인들이 열심히 장작을 넣고 불을 피우는 척을 하거나 종이 한장 넣고 태운다. 그럼 죄인을 아무것도 없는 빈 가마솥에 넣은 후 뚜껑을 닫고 잠깐 기다린다. 이 때 죄인의 유가족들은 정말 상을 당한 것처럼 막 통곡해야 한다. 그리고 죄인을 가마솥에서 꺼내는데, 이 때부터 그 죄인은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죄인의 유가족들은 죄인을 죽은 사람 취급하여 말도 붙일 수 없고, 장사도 치러야 하고 시묘살이도 해야 하며 매년 제사도 지내야 하고, 당연히 죄인도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며 낮에도 자기 집의 방 한칸에 갇히다시피 살면서 어떠한 편의 및 서비스도 받을 수가 없다. 평생 그렇게 살다가 죽는 것이다. 식사도 몰래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 심지어 이러한 상황에서 부인과 정을 통하여 아이가 생기면 그 아이는 사생아가 된다. 조선 말기에는 몰래 돌아다니다가 놀림거리가 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살아있으되 살아있지 않는 것과 같은 존재의 소멸. 심지어 자살한 사람은 나중에 무죄로 입증되면 신원이 회복되는 것과 달리 팽형을 택한 죄인은 죄가 없어져도 신원이 회복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목숨을 보존하는 대가로 명예가 영원히 죽어버린다. 아무리 그래도 중국 쪽에 비하면 꽤나 온건하다. 원래 조선은 유교주의적 입장에 따른 교화에 의한 통치를 중시하고 과도한 형벌을 금기시했기 때문에 이러한 경우가 많았다. 죽이진 않아도 사회적으로 매장시킨다는 점에서 파문하고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보통 팽형을 하기 전 "자결과 팽형 중 어떤 걸 할 거냐?"고 물었는데, 자결을 택한 사람이 더 많았다고 한다. 이러한 형벌이 고종 조까지 진행되어 일본인과 선교사의 기록에 남겨지기도 했다.
첫댓글 실제로 하는것도 잔인하지만, 안하고 저러는 것도 잔인하네요;;;;ㄷㄷㄷㄷ
근데 지금이라면 모를까 조선시대면 그냥 딴데로 이사가서 아무도 모르는데서 살면 되지 않나요?
그 당시에도 호구조사 다 했습니다.
오히려 예전이라면 모르는 동네에 가면 동네사람들이 수근수근하면서 바로 관리들 귀에 들어갈듯요..
그럴수도 있겠군요 ㅋㅋㅋ
조선시대의 입소문은 장난 아니죠. 다 동네에서 오래살고 다들 아는 사이인지라, 낯선 외부인들 오면 엄청 눈에 뜁니다.
지금이 훨씬 더 익명성이 보장되죠.
산속 동굴에 가서 살아야죠
팽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나 보군요
팽 당했다는 말은 토사구팽에서 나온거 아닌가요?
팽형의 팽자랑 토사구팽의 팽자랑 같죠 ㅎㅎ
그 팽이 삶을 팽자에요ㅎㅎ
더 무서운데요....;;
22222222222사는게 사는게 아니고...완전 유령임..ㅠ.ㅠ
ㅎ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ㄷ 살아있는 유령이 요기있내;
차라리 팔이나 다리를 하나 자르는게 나을것 같네요
구체적으로 누구때부터 시작한건지....국사에서 다룰법한데 이정도면.
왕따
이런거좀 국사 배울때 알려주지. 암튼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