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립 장군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왜군이 파죽지세로 한양을 향해 진격하자 조급해진 조선 조정에서는 당시 조선 최고의 장수로 평가 받는 이일 장군과 신립 장군을 각각 상주, 충주 지역에 급파한다.
이일 장군은 상주에서 대패하고 신립이 있는 충주로 급히 도망쳤다. 신식무기 조총으로 무장한 왜군의 사기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었다.
탄금대 전투
상주에서 충주로 가는 길목에 조령이라는 고개가 있는데 산세가 험준하고 방어하기에 절대적으로 유리한 지형이라 신립 부하인 김여물 장군이 이 곳에서 방어진을 구축하고 싸울 것을 신립에게 의견을 내었다.
그러나 신립은 묵살하고 충주 탄금대에서 강을 뒤로 하고 배수의 진을 치고 싸우기로 하였다.
하지만 신립의 부대는 대부분 기병이라 강변의 진흙때문에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왜군은 조총까지 쏘아대니 속수무책이었다.
천혜의 요새 조령고개
왜장 고니시는 조령고개를 넘어올때 산세를 보고 몇 번이나 정찰병을 보내 정찰을 한 후 조심스럽게 넘었다고 한다.
아무도 없는 것을 눈치챈 고니시는 조선의 장수는 참으로 어리석다며 비웃었다고 한다.
신립 장군이 투신한 탄금대
결국 패색이 짙자 신립 장군은 부하 장수들과 강물에 투신한다. 당시 조선 최고로 평가받던 장수의 최후였다.
신립의 충주까지 돌파한 왜군은 별탈없이 한양으로 입성하게 된다.
* 조령에 진을 쳤으면 가토가 우회해서 한양으로 가버리거나 앞뒤로 포위해서 고니시랑 협동했을것이다. 애초에 군사 수도 적고 훈련도 안된 병사들로 싸우기엔 벅찬 일이었다. 만약 잘 훈련된 군사 1만 정도만 있었어도 3~4천은 김여물한테 맡겨서 조령을 방어하게 하고 신립은 조령 뒤에서 가토를 막아서 시간 끌었을 것으로 추측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