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의장군 곽재우
일찍이 무과에 급제했으나 벼슬 길에 뜻이 없어 고향에서 유유자적하던중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한양이 함락당하고 전라도를 제외한 온 국토가 유린당할때 경상도 의령땅에서 최초로 의병을 거병했다.
고향에서 곽재우가 북을 매달아 치면서 의병을 모았다는 나무
경상도를 관통하여 흐르는 낙동강
곽재우는 낙동강에 말뚝을 설치해 왜군의 보급 수송선이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갈때마다 배가 걸려 오도가도 못하게 했다.
그때마다 숲속에서 불화살이 날아와 왜적들은 영문도 모른채 피를 뿜으며 강물에 곤두박질치고 배가 불살라졌다.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고바야카의 군대를 괴멸하다시피 대승을 거둔 정암진
전라도로 진격하려던 고바야카의 군대는 미리 정찰대를 보내 가기 좋은 길 방향으로 나무 푯말을 세웠다.
그러나 곽재우 장군이 날랜 군사 몇 명을 보내 정찰하게 하고 정암진 늪지대로 푯말을 돌려 세우게 했다. 그리고 정암진 곳곳에 군사들을 매복시키고 기다렸다.
결국 늪지대에 발이 묶인 고바야카군은 제대로 저항해보지도 못한 채 대패하고 전라도 진격을 포기해야 했다.
늪지대에 발이 묶인 왜군과는 달리 곽재우의 의병들은 고향의 지리에 매우 익숙해 늪지대와 절벽을 오가며 신출귀몰한 유격 전법으로 왜군의 혼을 뺐다.
의병 50명이 왜군 2,000명을 물리친 대승이였다.
그는 전투를 할때 항상 백마를 타고 붉은색 도포를 입고 싸웠다. 자신과 비슷한 날랜 부하들에게도 백마에 붉은색 도포를 입고 싸우도록 했다.
이러한 전술에 왜군들은 크게 혼란했고 귀신이라는 공포심도 심어 주었으며 왜군에 비해 턱없이 적었던 군사가 많아보이는 효과까지 발휘했다.
정암진 전투 이후에 의병 지원자가 급증해 곽재우의 의병 규모도 크게 증가했다. 이후 경남 낙동강일대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유격전을 전개해 왜군에게 피해를 입혔다.
경남 창녕의 화왕산성
화왕산성에 얽힌 일화도 유명하다.
왜적이 곽재우가 주둔한 화왕산성을 칠때 웬 나무상자가 보여 군수물자인줄 알고 열어보니 벌떼가 달려들어 크게 피해를 보았다.
그 다음 발견된 상자도 당연히 벌떼인줄 알고 불을 붙였다가 폭약이 들어있어 수많은 왜군이 폭사했다.
이때 왜군이 당황한 틈을 타 의병들이 돌격해 적을 크게 물리쳤다.
곽재우장군의 칼
그는 무예도 출중하여 단기로 적진에 뛰어들어 적의 목을 베어오곤 했다.
남해에선 이순신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었고 경상도 육지에서는 정기룡과 곽재우가 활약해 결국 왜적은 충청도에서 전라도로 우회하는 방법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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