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을 준비하는 대학생들도 어려워하는 토플 iBT(Internet-Based Testing; 인터넷 기반 시험). 읽기(Reading), 듣기(Listening), 말하기(Speaking), 쓰기(Writing) 항목으로 구성된 영어인증시험으로 비영어권 국가 학생이 영어권 국가 대학에 지원할 때 필요하다.
이 시험에서 해외 연수도 사교육 경험도 없는 한 여고생이 120점 만점을 받았다. 강남 8학군 출신도, 부잣집 딸도 아니다. 주인공은 민족사관고 2학년 오재현(15)양. 대전출신의 오양은 초등학생 시절 이미 토익 940점을 받아 지역 일간지에 등장했고, 중학생 2학년 때 처음 본 토플 iBT에서 110점을 받은 바 있다.
24일 강원도 횡성에 있는 민족사관고에서 오양을 만나 토플 만점 비법과 어린 시절부터 영어로 두각을 나타내게 한 공부법에 대해 들어봤다.
◇ 토종 고교생의 토플 만점 비법 세 가지
“3년 만에 토플을 봤어요. 따로 준비는 안 했습니다. 시험 전날 동생이 보던 토플책을 빌려보고 ‘말하기’ 항목 출제유형을 처음 파악했을 정도예요.” 인터넷에 떠도는 기출문제 후기는 구경해 본 적도 없다. 오양이 공부한 것은 토플이 아니라 영어 그 자체였다.
오양이 토플을 처음 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 “특목고 진학에 필요하다”며 아버지가 권했다. 오양이 꼽은 토플 만점을 위한 첫 번째 비법은 충분한 시간투자. 학교 끝나고 4시쯤 집에 와서 영어공부에 기본적으로 6시간을 투자했다. 주말이나 방학 때는 하루 15시간씩 듣고 쓰고 말하며 강행군을 펼쳤다. 시중에 나와 있는 토플교재는 거의 다 사서 풀어봤다. 이때 획득한 점수는 110점. 훗날 만점을 위한 튼튼한 토대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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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만난 오재현양.
단순히 토플 공부만으로는 만점을 받을 수 없었다. 두 번째 비법은 천문학, 생물학, 심리학 등 기초학문에 대한 흥미와 다독(多讀)이었다. 토플에는 기초학문 관련 지문이 출제된다. 배경지식을 숙지하고 있으면 훨씬 유리하다. 외국대학 진학을 준비하면서 ‘대학과목 선이수(AP, Advanced Placement)’를 위해 공부했던 생물학과 심리학이 토플에 큰 도움이 됐다. 이렇게 읽은 외국서적만 300권. 책값만 1000만원이 넘는다. 오양은 “오히려 학원을 안 다닌 덕에 남는 시간이 많아서 가능했던 일”이라며 웃었다. 이렇게 읽기 항목은 자연스럽게 정복됐다.
세 번째 비법은 적극적인 성격이다. 한국 학생들이 토플에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듣기와 말하기. 듣기는 이미 초등 3학년 토익시험에서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을 정도로 재능이 남달랐지만 말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오양은 학교 원어민 영어강사에게 적극적으로 말을 걸며 친분을 쌓았다. 그의 재능과 노력을 발견한 강사는 각종 영어말하기 대회에 추천하고 지도교사를 자청했다. 3년 동안 말하기 실력에 비약적인 발전이 있었다. 오양은 “좋은 선생님을 만나 오히려 학원에 갈 타이밍을 놓쳤다”면서 “적극적인 자세가 말문을 트이게 한다는 속설이 맞더라”고 말했다.
◇ 비장의 무기는 ‘독학 콤플렉스’
하지만 오양을 만점으로 이끈 가장 큰 비법은 독학에 대한 콤플렉스였다. 민족사관고 입학 당시 동급생들의 토플 iBT 평균은 109점. 오양의 성적은 평균치였다. 게다가 첫 영어시험에서 전교생 150명 중 100등이 넘어가는 성적을 받아들고 충격에 휩싸였다. 해외대학 진출을 희망하고 있는 이 학교 국제반 학생 다수는 해외연수 및 체류 유경험자이고 심지어 미국시민권 소지자도 있다.
해외연수는커녕 강남 학원가 근처에도 가본 적 없는 오양에게 ‘독학 콤플렉스’가 고개를 들었다. “‘열심히 해도 안 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에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어요” 하지만 오양의 강한 정신력과 승부근성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졸음이 오면 ‘똑같이 공부해서는 절대 이길 수 없다’는 생각에 샤프로 허벅지를 찔러가며 이겨냈다. 선생님이 에세이(essay) 시험의 주제를 사전에 제시하면 수정을 거듭한 자신의 문장을 달달 외워서 시험장으로 향했다. 이때 쓰기 실력은 몰라보게 늘었다. 결국 민사고 국제반 학생들로 구성된 영어쓰기 과목에서 1위의 자리에 올랐다. 자연히 토플 쓰기 항목은 더 이상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 천부적인 소질에 조기교육
오양은 영어 조기교육에 대해 “영어가 모두에게 필요하지도 않고 사람마다 효능이 달라 말하기 조심스럽다”면서도 “내 영어실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오양은 2살 때 한글을 뗄 정도로 언어습득능력이 탁월했다. 학원 영어강사였던 어머니는 세 살배기였던 그에게 영어 그림책, 동화책, 비디오테이프를 사주며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없애나갔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던 7살 때부터는 중학생용 독해문제집을 사서 천천히 풀었다.
맞추는 문제가 제법 늘어가던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의 권유로 처음 토익에 입문했다. 첫 성적은 990점 만점에 680점. 현재 국가고시 응시기준이 700점인 것을 고려하면 상당한 점수였지만 어린 나이 탓에 어휘력이 많이 부족했다. 이후 읽기 공부에 매진했다.
당시 오양이 가장 좋아했던 책은 ‘해리포터’. 시간날 때 DVD를 여러 번 돌려봤다. 책 내용을 확인하면서 듣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려운 단어나 관용표현 몇 개 빼고는 거의 다 들리게 됐다.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모르는 단어를 찾아볼 정도로 몰입한 결과 어휘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됐다. 결국 읽기점수를 150점 가량 향상시키며 6학년 때에 940점을 획득했다. 오양은 “이때가 영어공부 성패의 분수령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림책, 독해문제집, 소설책, 토익, 토플, SAT의 단계를 거치면서 영어는 제게 새로운 도전의 장이 됐습니다. 도전의 힘이 금전이나 유행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