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작가로 벌떡 일어선 리엄 소머스(대릴 매코맥)에게 '독자와의 만남' 사회자가 묻는다. "대단한 작품의 영감을 어디에서 얻었느냐?" 뭔가 말할 듯하던 리엄은 묘한 얼굴로 웃고만 만다.
1부. 옥스퍼드 대학 영문학과를 수석 졸업한 리엄은 몇 년째 쓰는 작품을 끝내지 못하고 있다. 답답한 속내를 풀 겸 강에 나가 수영을 하던 그에게 유명 작가 J M 싱클레어(리처드 E 그랜트)의 아들 버티(스티븐 맥밀란)의 옥스퍼드 진학을 돕는 가정교사 일을 해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싱클레어는 '독자와의 만남'에서 작가라면 무조건 써야 한다며 이런 얘기도 서슴치 않는다. "뛰어난 작가는 차용을 하고, 위대한 작가는 훔치기도 한다."
그런데 설렘과 기대 속에 찾아간 집안 분위기가 묘하다. 가족끼리 대화가 거의 없다. 어느날 밤 리엄은 자신의 노벨라 '타워 24' 결말을 구상하다 깜박 졸게 되는데 건너편 본채의 싱클레어는 밤을 꼬박 새우고도 아침까지 흐트러짐 없이 집필에 몰두하고 있었다. 이에 자극을 받은 리엄은 집필에 박차를 가한다. 조심스럽기만 한 버티의 마음의 문을 열어제친 리엄은 버티의 형 필릭스가 저택 안 호수에 빠져 극단을 선택한 것이 이 가족의 문제였음을 알아낸다.
2부. 싱클레어는 오랜만에 쓰는 작품 '로즈 트리' 결말에 열정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이상한 것은 죽은 필릭스가 저택 정원의 '로즈 트리'를 무척 좋아했다는 것이었다. 그 나무는 라틴어 이름을 갖고 있었는데 주위 모든 것을 말려 죽인다는 뜻을 갖고 있었다. 싱클레어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그의 아내 엘렌(줄리 델피)과 하룻밤을 보낸 리엄은 컴퓨터 프린터로 애를 먹는 싱클레어를 도와줘 호의를 얻어 그가 쓰는 작품을 읽고 소감을 얘기해주기로 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 리엄은 싱클레어가 한사코 비밀로 감추려 하는 공간을 알게 된다.
지난해 6월 개봉한 영국과 미국 합작 스릴러 영화 'THE LESSON'의 중반까지 줄거리다. '마법사 멀린'과 '미드위치 쿠쿠' 등 드라마를 연출해 온 앨리스 트라우턴 감독의 첫 장편영화로 국내에서는 개봉하지 않았는데 얼마 전 넷플릭스에 올라왔다. 104분.
전반적으로 문학의 향기가 서스펜스나 스릴러를 압도한다. 문학이나 작가, 집필에 흥미와 애정을 갖고 있는 이라면 상당히 즐길 만하지만 장르 영화로서 스릴러를 즐기는 이라면 상당히 진부하다고 느낄 만하다. 다만 싱클레어의 저택과 가족 분위기, 호수 풍경과 어우러져 중간중간 블랙코미디 요소나 문학적인 대사가 작지만 짜릿하고 묘한 긴장감을 꾸준히 안긴다.
3부. 리엄은 싱클레어의 새 작품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으면서 3부 이하에 대해 상당히 위험한 리뷰를 들려준다. 세상에 없이 즐거워하던 싱클레어는 리엄의 솔직한 리뷰에 엄청역정을 내며 리엄의 노벨라에 대해 신랄한 혹평을 날리고, 비극적인 결말이 도래한다. 그런데 비극은 한 사람에게만이고, 셋 모두 행복한 결말을 얻는다.
영화는 스릴러와 드라마, 블랙코미디를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이도저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서구에서는 전개 속도가 느리고, 작위적인 대목이 적지 않다는 이유 등으로 혹평이 적지 않았는데 국내에서는 색다른 소재, 그랜트의 돋보인 연기 등에 높은 평점을 매겼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작가는 왜 글을 쓰는가'를 소재로 이렇게 흥미로운 각본을 쓴 알렉스 맥키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또 하나 문학의 향기가 물씬한 영화 분위기를 고급스럽게 만드는 것이 클래식이다.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 No 14 소프라노 리드', 베토벤 피아노소나타 28번과 29번이 영화 분위기를 잡는다. 엔딩 크레딧 올라갈 때 나오는 마이크 헤론이 작곡하고 인크레더블 스트링 밴드의 'AIR'가 여운을 남긴다. 앞의 클래식 세 작품은 워낙 익숙한 것이어서 'AIR'을 소개한다.
Air (2010 Remaster) - YouTu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