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다섯명에게 중국의 경제 성장을 이끌어 나갈 20~30대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비법을 물었다.
자동차 디자이너, 유아교육 회사 사장, 금융투자회사 전무, 왕훙(網紅·중국의 인터넷 스타), 리서치회사 이사 등 직업도, 경력도, 나이도 제각각인 이들은 중국의 밀레니얼 세대(1980~2000년대 초반 태어난 세대)를 고객으로, 직장 동료로 대면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이 입을 모아 말한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은 ‘도전적인 자세와 적극적인 태도’였다.
중국 상하이를 근거지로 유아 교육 회사 ‘상상락창의센터(想象乐创意中心)’를 창업한 김희종(44) 대표는 올해로 창업 9년차다. CJ 바이오사업팀을 거쳐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팀에서 근무하던 중 상하이로 건너가 35세(2009년)에 상상락을 창업했다. 현재 중국 26개 도시에서 55개의 유아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상하이의 ‘BMW 디자인 스튜디오(Design works)’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근무하는 강원규(43) 디자이너는 독일 뮌헨에 위치한 BMW 본사에서 근무하다가 지난해부터 상하이에서 일하고 있다. BMW는 미국, 독일, 중국 등 3개 대륙의 나라에서 각각 1곳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운영하는데, 이 조직들은 각 나라의 수요를 파악해 글로벌 상품을 기획한다. 상하이에 위치한 중국 스튜디오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팔릴 만한 디자인을 구상한다.
중국의 ‘버크셔 해서웨이’로 불리는 중국 최대 금융투자사 푸싱그룹(復星集團)의 이재철(35) 전무는 해외 신규 사업 개발·투자 업무를 맡고 있다. 푸싱그룹은 프랑스 리조트 회사인 클럽메드, 명품 브랜드 랑방, 맥주 브랜드 칭다오맥주, 영국 축구단 울버햄튼 등 100여개의 자회사를 거느린 자산 규모 90조원의 중국 최대 민영 기업이다. 그는 LG생활건강, 알리바바 티몰을 거쳐 이 회사에 합류했다.
이향주(33)씨는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 미용 분야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한국인 스타 왕훙이다. 이씨는 ‘팔로어(이씨의 소식을 받아보는 웨이보 회원 수)’ 58만명을 거느리고 있다. 그는 한국 브랜드를 중국 시장에서 홍보하는 행사 진행 MC를 맡거나, 중국 홈쇼핑에서 한국 화장품 브랜드를 판매한다.
영국계 리서치 회사 ‘서드브릿지’ 중국 지사에서 팀장(이사)으로 근무하는 이보람(38)씨는 한국과 일본 지역까지 총괄하고 있다. 이 이사는 저렴한 가격의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중국 회사 ‘샤오미’의 역량에 큰 충격을 받고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이후 중국 스타트업에서 근무하다가 현재의 회사로 이직해 근무하고 있다.
‘이코노미조선’은 이들에게 중국 밀레니얼 세대들의 소비 성향과 동료로서 밀레니얼 세대를 주제로 한 이메일 인터뷰를 11월 26~29일 진행했다. 인터뷰 답변을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중국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 특성은.
이보람 중국 밀레니얼 세대는 중국 정부의 1자녀 정책에 따라 이른바 ‘소황제’로 불리며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자랐다. 또 다양한 나라에서 들여온 제품에 관심을 갖고 이를 소비하며 자랐다. 이들은 미국과 일본에 대해 정치·역사적으로는 날을 세우지만, 미국과 일본으로 여행을 가는 데는 주저하지 않으며, 이들 국가의 제품도 마음껏 소비한다. 내가 살고 있는 상하이가 개방적인 도시라서 더 그런 면이 부각되는 것 같긴 하다. 아직도 베이징 등에서는 미국이나 일본에 엄청난 반감을 표현하는 젊은이들도 있다고 전해들었다.
김희종 1980~90년대생이 나이가 들어 아이를 낳으면서 유아 교육 시장의 주요 소비자가 됐는데, 이들은 서비스에 대한 눈높이가 정말 높다. 중국 경제가 급격히 성장했던 시기에 자란 탓일까, 요구 사항이 참 까다롭다. 중국에서 이들의 눈높이에 들지 못하는 브랜드는 점점 설 자리를 잃는다. 또 이들은 가성비를 따지는 합리적인 소비를 한다. 예전 중국 소비자들이 무조건 잘 알려진 브랜드만 선호하던 것과는 다르다.
강원규 중국 젊은이들은 프리미엄 제품을 살 때 중국 시장에 특화된 제품보다는 ‘세계 시장에서 제일 좋다고 인정받은 제품’을 사고 싶어 한다.
중국 밀레니얼 세대를 이해하기 가장 좋은 방법은.
이재철 중국 밀레니얼 세대가 이용하는 서비스를 직접 사용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중국에 살고 있어도 중국 밀레니얼 세대를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중국 젊은이들의 삶을 직접 체험해보지 않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중국 최대 커뮤니티형 전자상거래 사이트 ‘샤오홍슈(小红书)’ △세계 바리스타들이 실력을 겨루는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십’ 대회의 우승자가 만든 맛있는 커피를 스타벅스보다 20% 싼값에 팔고, 커피를 무료로 배달해주는 루이싱(瑞星) 커피’ △자주 사용해서 회원 등급이 올라가면 교통 혼잡 시간에 차를 우선 배정해주는 차량 공유 서비스 ‘디디추싱(滴滴出行)’ 등을 체험해보라. 중국 밀레니얼 세대가 기업이 어떤 가치를 제공할 때 열광하는지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직접 느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일터에서 동료로서 만나는 중국 밀레니얼 세대는 어떤가.
강원규 중국 밀레니얼 세대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도전적이다. 일할 때 일단 ‘부딪혀 보자’는 식으로 과감하게 의사결정을 한다. 자신들이 뭔가를 새롭게 만들어서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엿보인다. 내가 날마다 일터에서 만나는 상하이 사람들은 찬란한 미래를 향해 돌진하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한다. 요즘 중국 사람들을 보면서 ‘미국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을 찾아 떠나던 사람들의 열정이 저런 것이었을까’ 생각한다.
이보람 중국 젊은이들은 ‘안정’보다는 ‘성장’을 중시한다. 참 적극적인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중국 기업들은 신입사원에게 매우 낮은 급여를 주기 때문에 젊은이들은 직장을 그만둬도 잃을 것이 별로 없다. 이 때문에 오히려 회사를 그만두고 창업을 생각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중국 기업의 성장과 혁신의 비결은.
이재철 내가 일했던 중국 기업은 치열한 경쟁 그리고 성과에 대한 확실한 보상으로 성장과 혁신을 유도했다. 알리바바, 푸싱 등 중국의 초대형 기업은 스타트업과 같은 수많은 소규모 조직의 결합이다. 회사 내부는 약육강식의 정글같다. 소규모 조직들끼리 회사 내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한다. 다른 팀 사람들과 조직을 꾸려 사내 창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회사가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심사를 통해 유망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직원들이 아이디어를 실현해볼 수 있도록 예산을 준다. 회사 구성원들은 이런 일들을 자발적으로 나서서 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다. 회사에서 연말 인사 평가를 통해 확실하게 성과에 대한 보상을 해주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알리바바는 성과급에 더해 스톡옵션을 주기도 했다.
이런 치열한 분위기는 ‘만만디(慢慢的·천천히라는 뜻의 중국어로 느긋한 중국 사람들의 삶의 태도를 뜻함)’로 알려진 기존 중국 문화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이재철 완전히 다르다. 중국 사람들은 일을 할 때 속도가 정말 빠르다. 알리바바에서 전자상거래 사이트 ‘티몰’의 미디어 커머스 사업을 맡았던 적이 있다. 미디어 커머스는 전자상거래 회사가 온라인 생방송을 기획해 왕훙이나 연예인을 출연시켜 제품 사용 방법을 알려주고, 이 제품을 판매하는 마케팅 기법이다. 나는 티몰에 미디어 커머스를 도입하자고 2015년 12월에 제안했는데, 5개월 만인 2016년 4월에 첫 방송을 했다. 회사 내부에서 4명이 팀을 이뤄 밤낮없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린 결과였다.
이보람 중국 사람들이 만만디 태도를 취하는 경우는 본인과 관련이 없거나 빠른 일 처리가 필요 없을 때다. 본인 또는 가족이나 친구의 일이면 발 벗고 나서서 빠른 속도로 일을 진행한다. 회사에서도 월급, 보너스, 승진 등 자신의 이익에 직결되는 일이라면 굉장히 ‘콰이콰이(快快·빨리빨리)’ 움직인다. 야근이나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중국 소비자들이 한국 제품과 서비스를 어떻게 생각하나.
김희종 중국 소비자들은 한국 제품과 서비스를 선호한다.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한국 문화가 창의적이며 아름답다는 인식이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문화는 미국·유럽 등 서구 문화에 비해 중국 사람들이 좀 더 받아들이기가 쉬운 것 같다. 상상락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한국에서 들여온 유아 교육 프로그램’에 대한 호감 덕이다.
이향주 화장품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로 한국 제품을 선호한다. 한국 제품의 품질에 대한 믿음과 한국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 사람들 사이에서 ‘한국인은 피부가 좋다’는 인식이 있어서인지 화장을 지우는 클렌징 제품이나 세안 직후 바르는 스킨, 로션 등 기초 제품, 마스크팩 등은 한국 화장품의 인기가 어마어마하다. 중국 홈쇼핑에 출연할 때 중국 소비자들로부터 항상 듣는 질문은 ‘한국 드라마 속 배우들은 어쩜 그렇게 다 피부가 좋냐’ ‘한국에 여행을 가보니 한국 여자들의 피부가 다 하얗고 잡티 하나 없는데 비결이 뭐냐’는 것이다.
한국 기업이 중국 진출을 고려할 때 유의해야 할 점은.
이향주 어느 한 지역의 의견을 중국이라는 국가 전체의 의견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지역마다 문화가 천차만별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 중국은 정말 상상 이상으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한 달에 3~4번은 중국에 가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게 된다. 중국 시장에 진출하려면 이런 빠른 변화에 익숙해져야 한다.
김희종 중국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중국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사업을 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중국 사람은 이렇다’라고 정의할 수 없다. 지역, 성별, 나이대에 따라 문화가 정말 다르다. 중국 현지인들을 고용해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국 사람들이 가진 일반적인 사고의 범위를 벗어나는 직원들이 많았다. 또 중국은 더 이상 ‘세계의 공장’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중국에서 성장 가능성이 크고 유망한 산업은 서비스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