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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결핍이 우리가 선택한 결과라면?
바로 지금이 풍요의 정치를 실천할 순간일지 모른다!”
진보와 보수가 모두 풍요의 가치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금까지의 미국 정치의 문제를 거슬러 올라가 보자면, 주거 시설을 적정 가격에 구할 수 없었고 주거 시설이 부족했던 역사를 추적해보면 된다. 오랜 세월 동안 주거 시설을 넉넉하게 짓기를 거부한 끝에 미국은 전국적인 주택난에 직면했다. 오랜 세월 동안 이민을 제한한 끝에 미국은 노동자가 모자라는 지경에 이르렀다. 기후 변화가 초래할 결과에 대해 수십 년 동안 경고를 받았지만, 미국은 절실히 필요한 청정에너지 기간 시설을 구축하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야심만만하고 거창한 공공 프로젝트는 설사 완공된다고 해도 늘 공기(工期)를 넘기고 예산을 초과했다.
이 책은 오늘날 미국이 겪는 문제들이 과거에 저지른 실책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한 세대에게는 해결책이었던 정책이 그다음 세대에게는 문제를 일으킨다. 1970년대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규정과 규제는, 2020년대에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도시 인구 밀도와 청정에너지 프로젝트 추진에 걸림돌이 되고 말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정부가 책임을 지도록 하려고 마련한 법은, 정부가 결과를 수습하기엔 너무나도 어렵게 만들어버렸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문제를 인식하는 역량은 향상되었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은 감소했다. 20세기에 걸쳐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은 정부에 맞서 싸우고, 진보주의자들은 정부를 곤경에 빠지게 했다. 정부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사이 정부의 역량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은 묻혀버렸다. 소비재의 풍요에 파묻혀 주거 시설과 에너지와 기간 시설과 과학적 돌파구의 결핍에 관한 관심을 게을리했다.
저자들은 결국 지금의 결핍은 바로 우리의 선택의 결과이며, 어쩌면 달리 선택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산재해 있는 수많은 어려움들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축적되어온 결과다. 필요한 것들을 충분히 생산하고 건설하고 실행하지 않았기에 맞게 된 위기다. 진보적 관점을 가진 두 저자가 2024년 트럼프에게 패배했던 미국 대선 결과를 받아들이면서, 지난 50여 년간의 리버럴 진영의 병리적 현상과 통치 실패를 반성하고 풍요의 정치를 되찾을 것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있다. 역설적으로 진보나 보수 어느 한쪽에 닥친 문제와 비극이 아닌 어쩌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음을,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닌 진정으로 더 나은 사회, 더 나은 미래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이자 제언이 될 수도 있음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풍요로워야 하는데 결핍된 것이 과연 무엇인가? 건설하기 쉬워야 하지만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아직 존재하지 않지만 발명되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더 나은 사회와 미래를 만들 것인가?
풍요는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이다!”
분파적 양극화 시대, 꼭 읽어야 할 시의적절한 지침서
원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서는 삶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제도들을 규명하고 직시해야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더 많이 건설하고 발명해야 한다. 리버럴 진영의 경우, 정부가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보수 진영의 경우, 정부가 필요할 때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된다. 저자들은 풍요와 번영을 위한 아이디어와 과학 기술은 이미 충분함에도 각종 규제와 이해당사자들의 충돌로 더 나은 사회가 실현되지 못하고 있었던 지금까지의 현실을 비판하며 정치권 전반의 각성을 촉구한다.
“우리는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구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로 많은 미국인은 청정에너지 혁명에 결사반대한다. 심지어 민주당 텃밭인 리버럴 성향의 주들조차 탄소 배출 제로인 원자력 발전소의 폐쇄와 태양광 발전 시설 건설에 반대한다. 우리는 주거 시설은 인권이라고 말하지만,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들은 신규 주택을 건설하기 너무 까다롭게 해놓았다. 우리는 개선된 의료 보험과 더 효과적인 의약품과 끔찍한 질병의 치료법을 원한다고 말하지만, 과학자들이 가장 전도유망한 연구를 포기하게 만드는 연구, 지원, 규제 체제를 용인하고 수많은 이의 생명을 연장하거나 개선할지 모르는 발견을 가로막고 있다.”_본문 중에서
이렇듯 고발에 가까운 실제 사례들을 낱낱이 파헤쳐 ‘민주당을 향한 통렬한 반성문’이자 ‘민주당 지도부가 돌려 읽은 필독서’로 지칭되며 미국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던 이 책은, 불평등과 차별 문제에만 집중하느라 중산층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생산 증가에 집중하지 않았던 점을 꼬집으며, 각종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철폐하고, 엘리트 이기주의와 규제주의, 관료주의에서 벗어날 것을 일깨우고 있다.
이 책에서 정의하는 어번던스, 즉 ‘풍요’는 상태를 말한다.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보다 더 나은 삶을 창출하는 데 필요한 것들이 충분한 상태. 저자들은 주택과 사회 인프라, 청정에너지와 의료 분야의 구축을 중심으로 어떤 것들이 건설되고 발명되고 실행되어야 하는지, 민주 정치에 핵심이 되어야 할 근본적인 질문들을 함께 던진다. “풍요는 끊임없이 제도를 고쳐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약속이며, 바로 지금이야말로 풍요의 정치를 실천할 순간일지 모른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미국뿐만 아니라 대한한국의 정치권에도 매우 유의미한 시사점을 준다. 과연 결핍의 정치를 넘어서 풍요와 번영의 정치로 복원하는 길은 가능할 것인가? 분파적 양극화 시대, 미국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우리 사회의 정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고민해볼 수 있는 훌륭한 계기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우리가 바라는 미래를 표현하는 단어가 있다. 풍요(abundance)다. 우리는 결핍된 미래가 아니라 풍요로운 미래를 내다본다. 우리에겐 집 안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정도로 물건은 넘쳐나지만 바람직한 삶을 구축하는 데 필요한 것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를 바로잡자는 게 우리가 주장하는 바이다. (…) 우리는 풍요를 상태로 규정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영위해온 삶보다 나은 삶을 만드는 데 필요한 게 충분한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우리는 미래를 구성하는 기본적 요소들에 집중하겠다. 바로 주거, 운송, 에너지, 건강이다.
_서론 〈결핍을 넘어〉 중에서
정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미국인은 ‘이론적으로는’ 보수이고, ‘실질적으로는’ 리버럴이라고 알려져 왔다. 미국인은 말은 보수주의자처럼 하지만, 리버럴처럼 통치받고 싶어 한다. 미국인은 이론적으로도 실질적으로도 낮은 세율을 선호하지만, 세금으로 지원하는 사회 정책도 좋아한다. 미국인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하는 정치인에 열광하지만, 본인이 또는 자기가 알고 아끼는 사람들이 추락할 때 구해줄 탄탄한 사회 안전망도 원한다. 이러한 현상은 아주 잘 알려져 있고 쉽게 눈에 띄므로 얼마나 현실에 역행하는지 놓치기 쉽다. 민주당 텃밭인 주들의 유권자들도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 분열된 자아를 드러낸다. 다만 보수주의자들과 정반대다. 즉 그들은 이론적으로는 리버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보수주의자다.
_1장. 〈성장〉 중에서
민주당이 통치하는 지역의 각급 정부마다 직면하는 문제는 한 가지 프로젝트에 너무 많은 목표를 추가한다는 점이다. 동시에 너무 많은 목표를 달성하려는 정부는 아무것도 달성하지 못하고 만다. 이를 ‘만능이 되려다 무능해지는 리버럴리즘’이라고 일컫겠다. 물론 만능이면 가장 좋다. 하지만 뭐든지 다 잘할 수는 없다. 할 수 있을 만큼만 선택해야 한다. 아카데미 수상작 영화 〈에브리싱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는 이것저것 몽땅 집어넣은 베이글을 만들려다가 아무것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블랙홀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공공사업도 마찬가지다. 정부가 적절한 수의 목표와 기준과 규정을 추가하면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목표를 너무 많이 추가하면 공공사업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붕괴한다.
_3장. 〈통치〉 중에서
이민 정책과 관련해 20년 동안 투쟁이 계속됐음에도, H-1B 비자 발급 건수는 인구 성장이나 과학자, 엔지니어, 연구자의 절실한 수요에 걸맞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처럼 의도적으로 인재 유치를 제약하면 전도유망한 많은 외국인 학생과 연구자들이 학업을 마친 후 미국을 떠나 자신의 기술과 혁신적인 잠재력을 다른 곳에서 발휘할 수밖에 없다. 1985년 미국으로 이주한 커리코가 이주 시기를 몇 년만 더 늦췄다면 H-1B 비자 발급 상한선으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지 못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아마도 mRNA 연구도 지연되어 참사가 일어났을지도 모른다.
_4장. 〈발명〉 중에서
제2차 세계대전과 워프 스피드 작전에서 얻는 올바른 교훈은 정부는 발명이나 혁신의 적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정부는 발명과 혁신 둘 다 촉진할 수 있다. 1940년 OSRD가 페니실린의 화학적 특성과 생산 과정에서 부딪히는 난관들을 규명하고 장애물 넘기를 순탄한 길로 전환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2020년 미국 정부는 신속한 백신 개발을 방해하는 장애물을 규명하고 이를 제거했다. 두 가지 사례 모두에서 정부는 국가 최고의 문제 해결사 역할을 했고, 당시 상황에 적합한 정책을 수립했다. 이는 새로운 종류의 기업가적 국가의 미래상이다. 장애물을 탐지해내는 탐정 역할을 하는 정부다.
_5장. 〈실행〉 중에서
풍요는 참신한 도발적 질문을 중심으로 정치의 방향을 재설정한다, ‘공급으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라고 말이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단순한 질문에서 수많은 소중한 질문들이 꽃핀다. 주거 시설이 충분치 않다면 주거 시설을 더 지을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청정에너지가 충분치 않다면 청정에너지를 더 많이 생산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면 그 이유는 뭘까? 정부가 시한에 맞춰 예산을 초과하지 않고 대대적인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되풀이해서 실패한다면, 뭐가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그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우리가 당면한 중요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다면, 어떻게 해야 기술을 발명할 시기를 미래에서 현재로 앞당기고 배포할 수 있을까?
_결론. 〈풍요를 향해〉 중에서
이 명쾌하고 심도 있는 책의 저자들은 과도한 규제가 진보적인 변화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상충 관계는 어떨까요?
노아 카지스
모든 정치 운동은 과거에 대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관점을 형성합니다. 보수주의자에게는 1950년대 커피 광고에 나오는 이상적인 교외 주택가의 모습일 수 있고, 진보주의자에게는 뉴딜 시대의 공공사업진흥국(WPA) 포스터에 담긴 연대감일 수 있습니다. 에즈라 클라인과 데릭 톰슨에게는 1964년 뉴욕 세계 박람회의 "퓨처라마" 전시에서 보여준 기술 낙관주의, 즉 달까지 가는 통근 비행기, 사막을 농지로 바꾸는 담수화 기술, 해저 호텔과 같은 비전이 그 역할을 합니다. 그들의 저서 『풍요(Abundance)』에서 그들은 이미 존재하는 놀라운 기술뿐만 아니라 아직 발명되지 않은 기술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새로운 정치를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미래는 예정보다 늦어지고 있으며, 『풍요』는 그 책임을 20세기 후반의 자유주의에 돌립니다. (클라인과 톰슨은 우파도 비판하는데, 그들 자신도 자유주의자이지만 이 책은 오직 같은 당파에 속한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이야기의 절반만 보여주는 인위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클라인과 톰슨은 자유주의자들이 가진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기 위해 고귀하게 싸웠지만, 애초에 재분배할 것을 더 많이 창출해야 한다는 목표를 간과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무분별한 성장의 결과, 즉 도시 재개발의 불도저와 산업화로 인한 오염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려고 했습니다. 그들은 성공했지만, 오늘날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국가의 역할을 너무 제한적으로 만들었습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설 때, 예를 들어 코로나19 백신을 개발, 생산, 배포하기 위한 숨 가쁜 노력처럼, 기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그러지 못합니다. (저자들은 미국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의 독자들도 인프라 프로젝트나 혁신 기회가 좌절되는 현실에서 유사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클라인과 톰슨의 사례 연구는 각각 뉴욕 타임스와 애틀랜틱에서 활동하며 정책 저널리즘을 통해 보여준 명확성, 접근성, 그리고 엄밀성을 바탕으로 서술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그들은 캘리포니아 주가 40여 년 전부터 자동차와 비행기를 대체할 친환경적이고 교통 체증 없는 교통수단인 고속철도 연구를 시작한 과정을 설명합니다. 본격적인 계획 수립에 10년이 걸렸고, 자금 확보에는 또 15년이 걸렸으며,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지금도 고속철도는 아직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고속철도 사업은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잠재적 피해를 막기 위해 마련된 복잡한 절차들에 묻혀버렸습니다. 사업의 환경적 영향을 파악 하기 위한 환경영향평가는 2012년에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비용은 계속해서 증가했습니다.
그들은 과학적 발견의 속도가 느려지는 이유를 연구자들이 연구비 관리 업무에 최대 40%의 시간을 소비해야 하는 과도한 서류 작업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절실히 필요한 주택과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막는 도시 계획부터 연방 규정 제정 및 공무원 채용 과정의 경직성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시스템이 행동의 이점보다는 해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하며, 개혁의 보상이 막대하다고 설득력 있게 역설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절차적 장애물을 무엇으로 대체해야 할까요? 여기서 『풍요 』는 가장 어려운 문제를 회피합니다. 현상 유지의 낡고 비용이 많이 드는 측면들을 비판하는 논리를 펼치면서도, 무엇을 유지해야 하는지, 어떤 비용이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는 답을 내놓지 않습니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비판자들이 "상충관계 부정"을 하고 있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혁신이 오직 현명하고, 기술관료적이며, 선한 목적을 위해서만 활용되는 미래를 제시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똑같은 함정에 빠지고 있습니다.
클라인과 톰슨은 시스템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화시키려 애쓰다 보니 더 이상 공익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하게 된" 상태를 경화증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들은 정치적 혼란에 반대하며 "강력한 리더십"을 중시합니다. 그들에게 있어 반대 세력은 모두 의심의 대상입니다. 풍요 사상가들에게 있어 이러한 반대 세력은 입법부와 법원, 환경 운동가, 노동조합, 주민자치회 등을 포함합니다. 특히, 그들의 비다수파적 영향력에 대한 회의론은 기업 권력에는 비교적 덜 적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앞서 설명한 사례들에서 이러한 통치 방식이 옳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우리 모두가 공익에 부합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동의한다는 전제입니다. 이러한 성급한 자신감은 때때로 민주주의에 대한 조용한 불신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들은 한 구절에서 "과학을 민주적으로 책임지게 하려는 본능이 과학적 과정을 더럽혔다"고 지적합니다.
이 책은 바이든 행정부 시절에 집필되어 헌정 위기 한복판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와 일론 머스크가 헌정 민주주의의 근간을 공격하는 가운데, 클라인과 톰슨은 때때로 머스크처럼 실리콘 밸리 특유의 두려움을 드러내며, 민주주의와 풍요로운 미래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고 주장합니다. 물론 그들이 권위주의자는 아니며, 2025년이 아닌 2050년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는 점에도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건설적인 자유주의"를 추구하는 우리로서는 다원적 민주주의의 노력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마치 애니메이션 '퓨처라마'처럼, '풍요'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입니다.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현실적인 어려움은 숨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