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고개
경상남도 김해시 한림면 금곡리
모정교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946-3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장대리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 매우리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모정리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왕신리
모정교차로(박달재교차로)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모정리
모정길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
충청북도 영동군 학산면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전라북도 남원시 신촌동
경상남도 사천시 이금동
모정네거리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모정동
경기도 양주시 옥정동
모정동(毛亭洞)
양강도 혜산시 운총리 소재지의 아래에 있는 마을. 본래 함경남도 혜산군 운흥면에 소속된 리였는데,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
모정동(茅亭洞)
황해북도 평산군 용궁리 소재지 서남쪽에 있는 마을. 지난날 띠풀이 많았다.
모정동(茅井洞)
황해남도 삼천군 괴정리 서북쪽에 있는 마을. 본래 송화군 장양면에 소속된 리였는데, 1952년에 리가 폐지되면서 마을이름으로 이용되고 있다.
모정등재
광주광역시 남구 원산동
모정리(慕亭里)+보충 요망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에 있는 리(里).
마을 중심은 완만한 구릉성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외곽부는 산지로 조성되어 있다. 뒤로는 시향산이 있고 앞으로는 천등산이 자리잡고 있다. 주륜리와 왕당리를 병합하여 모정리가 되었다. 자연 마을로는 왕당이, 웃담, 원모정 마을 등이 있다. 왕당이 마을은 어귀에 서낭당이 있으며, 뒷산에 산제당이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웃담 마을은 모정 위쪽에 자리한다 하여 이름 붙여지게 되었으며, 원모정 마을은 모정리의 원 마을이라는 의미에서 불리워진 이름이다.
모정리(慕亭里)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는 리(里).
평야가 넓으며 중부고속도로가 관통하고 있다. 남쪽에는 성암천이 흐르고 오창 휴게소가 인근에 있다. 자연마을에는 모정골, 산형, 새신대, 신대, 장성이 있다. 모정골은 모정리의 원 마을이었다 하여 그 이름이 남아있는 것이다. 새신대는 신대 옆에 새로 생긴 마을이라 지어진 이름이다. 신대는 산정 서쪽에 새로 생긴 마을인데 지형이 고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환대라고도 불린다. 장성은 마을의 뒷산이 성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모정리(茅亭里)
전라북도 순창군 금과면에 있는 리(里).
모정리는 중앙에 모정천이 흐르며 하천 연안의 충적지가 형성되어 모정평야라 부른다. 외모, 신모 등의 자연마을이 있다. 이 지역은 고려말에는 마암(磨岩)이라 하여 대사성(大司成)이 나올 만큼 유명한 마을이었고 조선조에는 매우(梅宇)라고 하여 진사(進士)가 아홉 장이 나온 마을이었다. 마암이라고 하였던 것은 맷돌과 같은 바위가 있었기에 그 바위 밑에 소규모로 살 때였고 그후 매우(梅宇)라 하는 것은 마을 뒷산의 형상이 집안에 매화꽃이 만발한 모양(梅花發)이라 하여 불리던 것이다. 모정리에는 무형문화재 제32호인 순창농요 금과 들소리가 있다.
모정리(慕程里)
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에 있는 리(里).
진안 용담간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로서 교통이 편리하고 비교적 넓고 기름진 들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자연마을로는 두곡, 여의곡 마을이 있다. 두곡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산줄기가 마치 용의 모양과 같은 형국으로 이 마을이 바로 그 용두(龍頭)에 자리잡고 있다 해서 마을 명칭을 처음에 머리실이라 부르다가 후에 머리 두(頭)자를 붙여 두곡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의곡마을은 처음에 모든 일이 뜻대로 잘 이루어진다 하여 마을명칭을 "여의실(如意室)"이라 불렀으나 그 후 주민들이 이 마을 주위에는 산골이 많으니 실(室)자를 곡(谷)자로 고치자고 하여 마을명칭을 "여의곡(如意谷)"이라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모정리(茅亭里)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에 있는 법정리(里).
군서면 서쪽에 있으며 서쪽은 서호면 엄길리, 북쪽은 군서면 양장리, 동쪽은 군서면 동호리, 남쪽은 군서면 서구림리와 경계를 맞대고 있다.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산천이 흐르고 모정저수지가 있다.
본래 영암군 서종면(西終面) 지역으로 송암(松岩)이라 불렸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비죽(飛竹)을 병합하여 군서면 모정리로 개설되었다.
-1940년 학파 농장이 조성되면서 모정에서 이거하여 이루어진 검주리(黔蛛里)를 병합하였다.
모정리는 풍수지리적으로 소가 누워 있는 모습을 한 와우(臥牛) 형국으로 알려져 있다. 마을의 지명도 외양골, 초장골, 방축리, 두데미 등 소와 관련되어 있다. 대부분 평지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산천이 흐르고 있다. 서쪽에는 학산 간척지, 동쪽에는 지남 평야가 펼쳐져 있다. 마을은 10~20m의 낮은 구릉지에 형성되어 있으며, 북쪽에서 남쪽으로 긴 띠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의 동쪽에는 모정 저수지가 있으며, 농업용수뿐만 아니라 주민들에게 수변 공원 역할까지 하고 있다.
모정(茅亭)이라는 이름은 마을 내에 있는 쌍취정(雙醉亭)과 관련이 있다. 임구령(林九齡)에 의해 지남제가 축조된 뒤, 영풍정 자리에 쌍취정이라는 별장을 지어졌다. 하지만 나라에서 너무 호화롭다는 이유로 철거 명령이 내렸다. 그때부터 기와지붕에 띠를 엮어 사용하였고, 띠 모(茅) 자와 정자 정(亭) 자를 써서 모정이라 하였다.
모정 마을을 모정리 1구, 검주리 마을을 모정리 2구로 운영하고 있으며, 자연 마을로는 모정 마을과 검주리 마을, 비죽마을과 중리마을 등이 있다. 비죽마을은 비취, 비축이락도 하였으며 모정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신라 때 도선국사가 처녀의 몸에서 태어사 서구림리의 국사암에 내버린 것을 비둘기, 소리개떼들이 날아와 보호했다는데, 그 소리개떼들이 이곳에서 날아왔다 한다. 중리마을은 중말, 중몰이라고도 했으며 모정리의 복판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중리라 한다.
총 면적은 358만 7045.3㎡이며, 밭이 45만 7000㎡a, 논이 172만 4000㎡를 차지하고 있다(2013년 1월 기준). 총 141세대, 284명(남자 131명, 여자 15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2014.12.31 현재). 주요 작물은 쌀, 보리, 콩이다.
주요 문화재로는 광산 김씨 3대 효자들의 덕행을 기려 임금이 직접 교지를 내려 하사한 세현문(世顯門)[삼효자문], 쌍취정, 김병교 영세 불망비, 원풍정(願豊亭) 등이 있다. 또한 세시풍속으로 농사의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며 정월대보름에 진행하는 줄다리기와 강강술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