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칠 대로 치쳤다. 민중의 지팡이도 쉬어가면서 하고 싶다.`지난 6일 과로로 서울 양천경찰서 이동준(51) 서장이 한창 나이에 순직하자 경찰 내부에서는 비합리적인 근무시스템을 뜯어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현직 경찰관 3명이 지구대(파출소)의 살인적인 근무 형태가 헌법상 보장된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에 어긋난다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일선 경찰관들은 `민중의 지팡이` `치안과 대민봉사의 첨병`이라는 허울 아래 무시되고 있는 사생활과 건강 문제를 경찰청장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개념 없는 초과근무, 개선돼야=부산 사상경찰서 최모(51) 경사 등 경찰관 3명은 "국가 공무원복무규정에 근거한 경찰청 근무지침에 따른 지구대 근무 형태는 보통사람으로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리해 헌법상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한다"며 7일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주 40시간 노동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을 일반공무원에게만 적용하고 근무환경이 열악한 (상시근무체제) 공무원은 소속 기관장이 임의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했다. 주 40시간 근무의 예외인 상시근무체제의 현업기관(철도ㆍ우편ㆍ조폐 등)은 노동조합이 있어 권익을 보호하지만, 경찰은 현업기관과 성질이 다르고 노조도 없기 때문에 현업기관으로 분류돼서는 안 된다는 게 이들이 주장이다.
일선 하위 경찰들도 법정근로시간이 법률이 아닌 경찰청장 임의로 정해져 주당 50~80시간에 이르는 초과근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일선 하위직 경관들은 한목소리로 뚜렷한 기준이 없는 초과근무가 먼저 시정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강남서 지모 경사는 "사흘에 한 번꼴로 밤샘근무를 하지만 수당을 따져본 적 없다"며 "한 달 근무를 합산해 40만원 정도 받는데, 시간당 기본급에 턱없이 못 미치는 수준"이라고 밝혔다.
▶`묻지마 사명감`이 치안서비스질 떨어뜨린다=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무조건적으로 강요돼온 봉사정신과 사명감이 하위직 경관들을 격무로 몰아세우고, 치안의 질을 떨어지게 했다는 비난도 제기되고 있다. 일선 강력계 김모 경사는 "예전 선배들은 `경찰이 봉사정신으로 근무해야지, 무슨 보수를 꼬치꼬치 따지고 그러느냐`라고 했다"며 "하지만 최근엔 합리성을 강조하는 분위기에서는 더는 사명감으로만 일하기 힘들다"고 밝혔다.
막무가내 임무를 부여하고 시간외근무를 만들어 격무에 시달리게 하는 것이 전부 시간당 기본급에도 못 미치는 보수 때문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김 경사는 또 "합리적인 근무여건에 대한 이해 없이 쥐어짜기만 한다면 경찰은 양질의 치안서비스를 제공하기 힘들다"며 "시간외근무와 같은 수당에도 야간할증 등을 적용해 치안서비스질을 높여야 할 때"라고 전했다.
경찰관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노동착취 규정’으로 불리던 <국가공무원 복무규정>이 마침내 위헌 심판의 도마에 올랐다. 7일 오후 4시께 최모 경사(53세) 등 경찰관 4명이 위헌적인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로 인해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되고 있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은 경찰관들이 열악한 근무조건에 대해 정식으로 문제를 제기한 첫 사례라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지 한번 따져보기로 한다.
◆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 : 주당 근로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정한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라 <국가공무원 복무규정>도 공무원의 1주간의 근무시간을 40시간으로 규정하였다. 그런데 정부는 거기에 예외를 두어 “직무의 성질상 상시근무체제를 유지할 필요가 있거나 토요일 또는 공휴일에도 정상근무를 할 필요가 있는 기관”의 경우에 그 소속 공무원의 근무일과 근무시간을 소속 기관장이 정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것이 바로 이번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이다.
◆ 근무조건의 기준 법률주의 : 우리 헌법은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제32조 제3항). 근로조건을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의 자유로운 계약에 일임할 경우 상대적으로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에 의한 횡포가 예상되기 때문에 그 최저의 기준을 법으로 강제하려는 취지이다. 이에 따라 근로기준법은 주당 근무시간이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하는 등 최소한의 근로조건의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
그런데 상시근무체제 유지가 필요한 부서의 경찰공무원의 경우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에 근거하여 소속기관장이 자의적으로 근무일과 근무시간 등의 근무조건을 정하고 있다. 게다가 거기에 어떠한 최소한의 기준이나 원칙도 없다. 이는 최소한의 근무조건의 기준을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한 헌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 24시간 교대근무의 특수성 : 사람은 본래 ‘주행성(晝行性) 동물’이다. 우리 몸의 모든 생리기능이 낮에 일하고 밤에 수면을 취하도록 맞춰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본성에 반하는 24시간 교대근무는 다양한 신체적․정신적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영국에서 행해진 한 연구에 의하면 24시간 교대근무자에게서 수면장애, 피로, 스트레스, 과민반응, 집중력 저하, 정신장애, 근무 중 실수와 사고 등의 위험이 현저히 높아진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들은 근무자의 건강과 행복에 악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근무의 질을 저하시킬 수밖에 없어 궁극적으로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게 된다. 독일이 순찰경찰관의 근무시간을 주당 33.6시간으로 제한하고, 미국, 영국, 캐나다, 스위스 등 대부분의 국가에서 경찰 교대근무자들에게 주당 40시간 이내의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이유는 24시간 교대근무자의 특별한 위험을 고려한 특별한 배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 현업기관등과의 차이점 :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는 현업기관이나 책임운영기관 소속 공무원에게도 적용된다. 현업기관이란 권력적 행정작용을 수반하지 않는 업무, 즉 우편·철도·조폐·전매·인쇄사업 등의 민간기업과 같은 사업을 관장하는 기관을 말한다. 또 책임운영기관이란 운전면허 시험관리단 등 현업기관에 준하는 비권력적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그러나 현업기관과 책임운영기관은 노동조합이 설치되어 있어 그 근무조건은 기관장과 노동조합의 합의에 의해 사기업과 유사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즉, 기관장의 독단과 자의에 의한 근로자의 기본권 침해를 효과적으로 저지할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근로조건의 유지와 향상을 도모할 노동조합이 허용되지 않는 경찰공무원에게 있어서는 근로조건이 기관장의 일방적이고 자의적인 지시에 의해 일률적으로 정해진다.
◆ 실태 : 이번 헌법소원심판 청구서에 나타난 경찰근무의 실태는 충격적이다. 그 중 일부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로 인하여 경찰기관의 장은 아무런 법률적 제한도 없이 치안수요 증가를 이유로 근무시간을 연장하는 지시를 임의적으로 할 수 있으며, 심지어는 비번이나 휴무일을 박탈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경찰기관의 장이 자의적으로 근무조건을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밤샘근무를 마친 근무자를 다시 동원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현재 교대근무부서 및 상시근무체제 유지가 필요한 부서의 경찰관들의 주당 평균 근무시간은 최저 54시간에서 최고 80시간에 달한다고 한다. 이는 통상 공무원의 최대 2배에 달하는 살인적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지구대 근무 경찰관들은 전체 근무시간 중 절반가량을 19:00부터 다음날 09:00까지 14시간 동안 단 한 시간의 실질적인 휴식시간도 없이 근무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한다. 물론, 휴게시간을 정하고는 있으나 1시간 단위로 실시되고, 그나마 사무실 내에서 즉시 출동할 수 있는 복장과 장비를 갖추고 출동대기 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으로서 휴게시간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로 인하여 경찰관들이 과로로 순직하거나 의식불명의 상태에 빠지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만 보더라도 서울 관악경찰서 김모 경장이 과로로 쓰러져 뇌사상태에 빠졌고, 안산경찰서 소속 이모 경사도 쓰러져 현재까지 의식불명 상태라는 것이다.
청구인 중 한 명인 최모 경사는 올해로 정년퇴직을 3년 6개월 남겨둔 늙은 경찰관이다. 그는 잦은 철야근무를 하면서 몸에 이상을 느끼던 중 최근 젊은 경찰관들이 잇따라 과로로 쓰러지는 것을 본 후 이런 근무는 ‘생사의 경계선을 넘나는 드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명예퇴직을 신청하여 이달 말 퇴직할 예정이다.
또 다른 청구인 김모 경사(38세)는 "소속 직원의 인권도 보장하지 못하는 경찰이 어느 누구의 인권의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라며 아쉬워했다.
한편, 이 헌법소원을 수임한 한낭규 변호사(법률사무소 지혜)는 이 사건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 “당연히 법률로 규정해야 할 근무조건의 기준도 없이, 기관장이 일방적 지시에 의해 살인적인 근무를 강요하는 행태는 바뀌어야 한다”면서 “사회적 파장이 크기 때문에 논란이 있겠지만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선진사회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딛고 넘어서야 할 암초같은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