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사장의 어깨와 가슴 보석에 기록된 주의 백성의 이름
출애굽기 28:6~14
요절:“그 두 보석을 에봇의 두 어깨받이에 붙여 이스라엘 아들들의 기념 보석을 삼되 아론이 여호와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그 두 어깨에 메워서 기념이 되게 할지며”(출애굽기 28:12)
찬송가 92장(위에 계신 나의 친구)
우리는 구약의 모든 제도와 사건들과 율법의 규례들이 우리 구주 예수님을 예표하는 그림자임을 알고 있습니다. 그 중에 구약의 대제사장 역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원받은 주의 백성들을 중보하는 완전한 대제사장 되심을 설명해주는 존재입니다. 특별히 대제사장이 구약의 교회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깨에 메고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사하는 중보 사역과 간절히 위하여 기도해주는 중보자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을 출애굽기의 제사장 복식에 대한 규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은 에봇이라는 특별히 영광스러운 옷을 지어 겉옷 위에다가 입도록 되어 있는데, 그 에봇의 양 어깨 부분인 견대 위에 이스라엘의 열두 아들들의 이름을 여섯 개씩 두 개로 나눠 적은 호마노 보석을 달게 했습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구원받은 백성들을 어깨에 짊어지고 하나님 앞에 나서서 그 백성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후일에 선한 목자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양을 찾아서 자기의 어깨에 매고 오시는 모습과 흡사합니다. 완전한 대제사장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은 마치 자기의 어린 자녀를 두 어깨에 무등 태우고 즐거워하는 부모님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늘 붙들어주고 지지해주시는 선하신 대제사장이신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복식 중에 판결 흉패가 있습니다. 판결 흉패는 대제사장이 입는 옷 중 하나인데 에봇 위에 대제사장의 가슴에 걸쳐 입는 네모진 판다가 열두 개의 보석을 네 줄로 정렬하여 붙여 놓은 이름판입니다. 그 열두 개의 보석 위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의 이름 곧 르우벤으로부터 베냐민에 이르는 이름들이 도장파듯이 하나씩 새겨져 있습니다. 그 열두 개의 보석은 홍보석, 황옥, 녹주옥, 석류석, 남보석, 홍마노, 호박, 백마노, 자수정, 녹보석, 호마노, 벽옥이라는 보석들입니다. 이 귀하고 아름다운 보석들 위에 이름들을 새겨서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마다 그 이름이 새겨진 판결 흉패를 가슴에 붙이고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게 하였습니다. 이로써 대제사장은 백성들의 중보자가 되어서 하나님께서 항상 그 구원받은 백성들을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하나님 백성들의 이름은 고귀한 보석 위에 깊이 아로새겨져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자기의 구원받은 백성들의 이름들을 한 사람 사람 가슴에 품어 기억하며 늘 중보 기도하고 계십니다. 요한복음 10:2 말씀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요한복음 10:2~4)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선한 목자 우리 구주 예수님은 그의 양무리의 양들의 이름을 각각 다 알고 계시고 그 이름들을 하나 하나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시내 광야 가시떨기 불꽃 가운데에서 모세를 향하여 “모세야 모세야”라고 부르시듯이, 성전에서 누워 자는 어린 사무엘에게 찾아오셔서 “사무엘아, 사무엘아”하고 부르시딧이, 주님은 지금도 우리의 이름을 다정하게 각각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에에도 천사들이 천성 문 앞에서 어린양의 생명 책에서 우리 이름을 하나 하나 확인한 후에 들여보낼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지 아니한 자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 구주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의 이름을 다 친히 아시고 그 사람을 다 개별적으로 아시기에 절대로 잃어버리지 않으시며 하나님 앞에서 그의 백성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제사장 어깨와 앞가슴 흉패에 지극히 보배로운 보석 위에 우리의 이름을 새기신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황송하고 감사하게 됩니다. 죄와 허물이 많고 불충한 우리를 자기 어깨에 태우고 가슴에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감으로써 우리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 가운데 살게 해주시니 참으로 황송하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아니하고 무시당하고 때로 비천하게 여김을 당할 수 있으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기의 어깨에 무등 태우시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며 지극히 보배로운 보석 위에 새긴 우리 이름을 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주신 것을 생각하면서 마음에 큰 위로를 얻고 영적인 자부심을 가지게 됩니다.
복음 성가 중에 이런 찬송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세상 사람 부럽지 않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 이 세상의 권세자들 날 부러워 해
성령 충만 받은 것을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나도 역시 부귀 영화 부럽지 않네
예수님의 친구 된 것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세상 사람 날 부러워 아니하여도 하늘나라 천군천사 날 부러워해
영원토록 누릴 영화 생각할 때에 할렐루야 찬송이 저절로 나네”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수 시절에 당시 로마총독이었던 베스도와 팔레스타인 분봉왕인 헤롯 아그립바와 버니게 공주와 천부장 등 수많은 고위 권세자들 앞으로 불려갔으나 그들 앞에서 결박한 채 죄수 옷을 입고서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사도행전 26:29)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 대통령, 재벌 총수가 부럽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극히 크고 존귀하고 영원한 부와 영광과 권세를 가진 하나님 아들의 품안에 있는 보석이요 그 어깨 위에 무등태워진 지극히 존귀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지극히 부족하고 비천한 우리를 지극히 존귀하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도록 불러주신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를 하나님 백성으로 설 수 있도록 자기의 피로써 구속하시고 가슴에 품어주신 구주 예수님을 기억하면서 날마다 기뻐하며 날마다 감사합시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날마다 담대하게 우리의 대제사장이시고 구속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합시다. 그리고 주의 제단 앞으로 나와 날마다 구주의 존귀하신 이름을 부르며 담대히 기도하는 우리 모두가 됩시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