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역대상인(商人) 열전 - 전국시대 거상 ‘백규’
‘시간=돈’ 깨달은 중국 최초 경제 이론가
춘추시대부터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자유 상인은 전국시대 들어 상업자본을 바탕으로 더욱더 성장해간다. ‘천금(千金)’으로 대변되는 춘추시대 부상(富商)은 이제 ‘만금(萬金)’이란 수식어가 붙는 ‘거상’으로 변모했다. 거상들은 축적된 부를 이용해 사회적·정치적 지위까지 획득함으로써 위상을 높였다. 전국시대 거상 출현을 알리고, 이들의 치부 방법을 실천과 이론으로 뒷받침한 인물로 ‘백규’란 상인이 있다.
본격적인 경영이론과 경제 사상을 정립하고 이를 실천해 상업자본의 축적과 거상의 출현을 알린 백규.
▶주(周)나라 출신 상인
▷시세 변화를 정확히 예측
백규는 전국시대 사람으로, 태어나고 죽은 해는 알려져 있지 않다. 상공업으로 크게 부자가 된 사람들의 기록인 ‘사기’와 ‘한서’의 ‘화식열전’을 통해 그의 일생을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백규는 주(周)나라 출신으로 대략 위나라 문후 때 재상을 지낸 저명한 법가 인물 ‘이리(李悝, 기원전 455~기원전 395년)’와 비슷한 시기에 활동한 상인으로 추정된다. 한서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직접 상업 활동에 종사한 것은 물론 경영과 무역, 생산 발전 등 경제에 관한 기본적인 이론을 최초로 수립한 인물이다. 자신의 이론을 책으로 남기지 않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기록만으로도 백규는 뛰어난 사업가이자 경제 사상가였다는 사실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역발상해라. 시장 변화를 주시하고 상황에 맞게 빠르게 대처하라.”
백규 경제 사상의 기본이다.
그가 활동한 전국시대 초기는 노예제에서 봉건제 사회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주요 생산 방식은 농업과 목축업이었다. 시장에서 교환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상업 활동이 활발하진 않았다. 이런 사회 조건에서 백규는 특유의 지혜와 날카로운 안목으로 시세 변화를 관찰하고 매매 교역을 통해 큰 이익을 얻었다. 사마천과 반고는 백규 경제 사상을 법가 사상가인 이리가 주장했던 ‘땅을 최대한 이용한다’는 농업 사상과 함께 거론함으로써 그의 사상을 높이 평가했다.
백규는 다른 상인과 비교해 시장에 대한 통찰력이 남달랐다. 다른 사람은 물건이 남아돈다고 생각해 내다 팔 때 그는 대량으로 사들였다. 또 다른 사람들은 부족하다고 여겨 사들일 때 그는 급히 필요로 하는 곳에 내다 팔았다. 쉽게 말해 ‘쌀 때 사고 비쌀 때 내다 파는’ 경제 활동의 기본 원리를 잘 지켜 부를 축적했다. 이는 오늘날 시장경제의 기본 원칙이기도 하다. 그의 이론은 진, 한 이후 각 왕조의 시장 교역과 물가 정책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백규는 아주 예민한 두뇌를 소유한 인물이었다. 경제 상황이나 교역 장소에 대한 정보, 시장 변화에 대단히 민감히 반응했다. 일단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바로 사들이거나 내다 팔았다. 그는 1분 1초를 다퉈가며 경영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요컨대 백규는 ‘시간이 곧 돈’이란 점을 누구보다 일찍 깨우쳤던 사람이다.
그러면서도 재물이 쉽게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본 축적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자신은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노복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거친 음식이라도 달게 먹었고 하고 싶은 것을 자제할 줄 알았다.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처를 강조한 것도 평가할 만한 부분이다. 그는 4가지 원칙만 잘 지키면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했다.
“첫째, 다른 사람이 없는 제품을 내놔야 한다. 둘째, 상대가 동일 제품을 내놓는다면 먼저 선보여야 한다. 셋째, 상대방의 신제품보다 더 새로운 제품으로 시선을 사로잡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앞서 3가지 조건에서도 경쟁 업체에 쫓긴다면 제품 원가를 낮춰 가격 우위를 점해야 한다.”
백규는 시장경쟁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시적인 안목으로 경제 활동에 접근했지만 사업에서 작은 이익을 차지하려 하지 않았다. 삐뚤어진 논리와 얄팍한 꾀로 의롭지 못한 재물을 얻으려는 시도 또한 없었다.
또 많은 것으로 모자란 것을 보충하거나 구제할 것을 주장했다. 즉, 각종 상품이 서로 교환되고 유통되면서 서로 발전하도록 돕고, 무역과 물물교환을 경제와 생산성 향상의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풍년이 들어 곡식 값이 떨어지면 그것을 대량으로 사들이는 대신, 농가에서 필요한 실이나 옻을 내다 팔아 그들의 수요에 부응했다. 흉년이 들어 곡식이 모자라면 곡식을 내다 팔아 식량을 공급했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백규 경제 사상은 소박하면서도 깊은 뜻이 있었다.
기상 변화, 즉 날씨를 잘 살펴 화물을 비축할 때와 유통시켜야 할 때를 정확히 파악했는가 하면, 경영인이 가야 할 진정한 길을 알고 있었다. 사마천은 백규의 경영철학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백규는 돈을 늘리기 위해 값싼 곡식을 사들였고, 곡식을 늘리기 위해서는 상품(上品)의 종자를 사들였다. 가장 소박한 음식을 먹었으며, 소비 향락 욕구를 억제하고 의복도 절약하면서 일을 할 때는 노예들과 고락을 같이했다.”
진정한 ‘상도’가 무엇인지 일깨워주는 인물인 셈이다.
백규 경제 사상에 함축된 의미는 심오하다. 백규는 자신의 경영법을 아무에게나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는 경영자가 갖춰야 할 자질이자 조건으로 지(智), 용(勇), 인(仁), 강(强) 4가지 덕목을 강조했다. 학문의 경지에까지 이른 그의 사상은 쉽사리 배우고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시 많은 고관들이나 권력자들은 백규의 이런 사상을 이해하지 못했다. 오늘날 경영자들도 그의 사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는 자신의 사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경영은 마치 이윤과 여상(강태공)이 계책을 꾀하고, 손자와 오자가 군대를 부리고, 상앙이 변법개혁을 시행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임기응변하는 지혜(지·智)가 없거나 일을 결단할 수 있는 용기(용·勇)가 없거나 주고받는 미덕(인·仁)이 없거나 지켜야 할 것을 지키는 강단(강· 强)이 없는 사람은 내 방법을 배우고 싶어도 절대 가르쳐주지 않는다.”
경제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만든다. 오늘날 이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백규가 생활했던 시대에는 이를 제대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백규는 경제가 정치나 군사만큼이나 중요하다고 봤다. “경영하는 사람은 나라를 관리하고 군대를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부한 지혜와 결단, 임기응변할 줄 아는 능력과 덕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 백규의 생각이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백규는 직접 노력하고 실천하면서 자신의 경제 사상을 보다 구체화했다. 사마천은 백규에 대해 “그는 직접 시험을 해봤고, 남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했다. 아무나 그렇게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평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