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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CRET OF KOREA
대통령 후보2012/10/09 19:54 프레이저보고서 박 정희, 이후락뿐만 아니라 박종규도 스위스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미 하원윤리위가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이 계좌는 박종규가 미국쌀 수입관련 커미션등을 관리했던 계좌였기 때문에 이 계좌또한 박정희 정권차원의 스위스 비자금 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입니다. 미 하원윤리위는 코리아게이트 청문회에서 박동선의 로비를 조사하던중 한때 박동선이 쌀중개권을 상실했던 사실을 밝혀내고 그 중개권을 다시 쟁취하는 과정을 살펴보다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비밀계좌를 발견했습니다. 2012/09/27 - [분류 전체보기] - [미의회가 밝힌 박정희정권 스위스계좌 1] 박정희자금 이후락이 스위스계좌에 예치, 김성곤이 육영수에게 돈 상납 : 프레이저보고서 2012/10/09 - [분류 전체보기] - 도망간 박근혜 조카사위 하와이별장은 바로 여기 - 노태우아들, 이명박 사돈총각도 같은 콘도 : 박영우 국감출석않고 하와이행? 박동 선은 1968년말 미국쌀 중개권자로 선정됐다가 1970년말 공화당에 정치자금을 제대로 내지 않고 미하원 외국원조심의위원장인 패스만의원이 박동선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박종규가 쌀중개권을 박탈, 자신의 측근인 강선태에게 중개권을 맡겼습니다.
이때 박종규는 자신이 직접 쌀중개권을 관리, 그 커미션으로 정치자금을 조성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나 박동선이 절치부심끝에 1년여뒤인 1972년 3월 21일 다시 쌀중개권을 쟁취하게 됩니다. 쌀중 개권을 되찾는 과정에서 박동선은 미 상하원의원들을 동원해 박정희에게 편지를 보내게 하는가 물론 1972년 1월에는 미 하원의 아태소위원장과 미 하원의 외국원조심의위원장등 2명의 하원의원이 청와대를 방문해 박정희와 담판을 지음으로써 마침내 박종규에게 빼앗겼던 쌀중개권을 회복했고 바로 이때 미 하원의원과 박정희가 나눈 대화가 미국에 도청돼 1972년 2월 3일자로 키신저에게 보고됐었습니다. [FBI정보메모 2012/09/16 - [대통령 후보] - 안치용,‘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출판 : 미국의 청와대도청은 실재- 박정희 방탄차 알고보니 CIA가 제공 ] 박동 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하면서 1971년 박종규가 정치자금명목으로 관리했던 쌀중개 커미션중 일부인 19만달러를 돌려받게 됩니다. 박동선은 김형욱과 이후락 당시 중앙정보부장등에게 이 돈이 미의원들에게 전달될 돈이라고 말했고 김형욱, 이후락이 중재에 나서 19만달러를 되찾은 것입니다. 1970년 박종규가 받은 쌀 커미션은 약 80만달러로 추정되지만 로비자금 19만달러만 박동선에게 되돌려 준 것입니다. 여기 서 중요한 것은 박동선이 19만달러를 인출하는 과정입니다. 김형욱은 박종규로 부터 서류 한장을 전달받아 박동선에게 전했으며 바로 이 서류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에서 19만달러를 인출해도 된다는 인출지시서였습니다. 이 한장의 서류로 박종규도 박정희 정권 비자금 명목의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관리했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박동 선은 1972년 3월 21일 쌀중개권을 회복, 조달청이 발급한 쌀중개인 지정서와 스위스은행 예금인출서를 들고 미국으로 온뒤 자신의 조지타운대학 동창이자 부하직원인 류재신에게 예금인출서를 주며 스위스로 보냈습니다. 류재신은 스위스로 날라가 해당 스위스 은행에 이 서류를 제시하고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한 것입니다. 박종규 스위스계좌관련 류재신증언록 - 1977년 10월 21일 증언 류재신은 1977년 10월 21일 미 하원윤리위원회에 출석해 스위스 비밀계좌의 19만달러를 박동선의 계좌로 송금하는 과정을 상세히 증언했으며 이는 하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1권 192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류재 신은 스위스에서 예금을 인출할때 인출서의 서명란을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불행히도 그 서명을 봤다'고 말했습니다. 류재신은 자세한 설명을 요청하자 '서명란에 딱 한글자의 한자가 적혀 있었으며 그 한자는 'JIN'[진] 이었다고 증언했습니다. 류 재신의 이같은 증언은 박동선이 1978년 4월 4일 하원윤리위원에서 밝힌 내용과도 일치하며 이 박동선의 증언은 하원윤리위 '한국영항력조사' 청문회 부속보고서 2권 80페이지에 수록돼 있습니다. 김형욱또한 상원윤리위 청문회에서 1978년 7월 10일 자신이 박동선이 19만달러를 돌려받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과정을 증언했으며 이 증언도 상원윤리위 '한국영향력조사' 부속보고서 2권 1108페이지부터 1110페이지에 기록돼 있습니다. [하단 첨부파일 참조]
박종 규가 관리하던 이 스위스 비자금계좌도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됩니다. 그 이유는 박종규가 쌀커미션을 정치자금으로 활용한다는 명목하에 고위층허락을 받고 박동선에게서 쌀중개권을 회수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계좌는 고위층이 그 존재를 알았던 정치자금 관련 스위스은행 비밀계좌로 볼 수 있습니다. 그렇 다면 과연 이 인출서에 나타나는 서명 '진'은 누구의 서명일까요, 하원윤리위원회도 끝내 이 서명이 누구의 서명인지는 밝히지 못했지만 이 계좌가 박종규가 관리하던 계좌라던 사실은 밝혀냈습니다. 박종규가 관리한 박정희 정권의 제3의 스위스 비밀계좌, 이 계좌도 낱낱이 밝혀내야 합니다.
박종규의 계좌가 스위스 어느 은행에 개설돼 있었는지는 내일 또 알아보겠습니다. 대통령 후보2012/10/07 18:24 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스위스계좌입금 - 걸프사진술1 박정희방미자금 20만달러스위스계좌입금 - 걸프사진술1 프레이저보고서 메이저오일컴퍼니인 걸프사가 지난 1969년 박정희 방미경비 명목으로 20만달러를 스위스 UBS 비밀계좌에 입금시켰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걸프사는 1978년 박정희 정권에 대한 정치자금제공여부를 묻는 미하원 외교위 프레이저소위원회 설문에 대해 '지난 1969년 박정희 방미경비명목으로 이후락이 지정한 스위스 UBS 계좌로 20만달러를 입금했다'며 입금경위를 2페이지에 걸친 문서를 통해 상세히 설명한 것은 물론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스위스 UBS의 입금서류등도 확보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걸프사는 지난 1962년 대한석유공사[유공]과 합작으로 국내 최초의 정유공장을 설립했고 이 유공정유공장은 노태우정권때 그의 사돈인 SK로 인수됐으며 스위스 UBS는 세계최대의 프라이빗뱅크로 최근 미국정부에 미국인 비밀계좌 정보를 제공하기도 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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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사의 답변은 프레이저청문회에서 증거[증거 157번]로 채택돼 종합보고서의 부속보고서 1권 840페이지와 841페이지에 수록돼 있으며 그 내용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았습니다.
‘걸프사는 1969년 석유판매회사인 흥국상사 주식을 추가로 사들이기 위해 협상을 벌였고 주식 25%를 2백만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계약서 서명만 남겨둔 상태에서 이후락이 걸프사 한국책임자 힐 보닌 주니어에게 연락해 이 계약과 관련해 논의할 것이 있다며 회의를 요청했다. 그래서 힐 보닌 주니어와 이후락, 서정귀 그리고 한국 주주 대표등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후락은 이 회의에서 박정희 대통령의 미국여행경비로 사용해야 하니 주식매입대금 2백만달러중 20만달러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 요청은 걸프사 한국투자담당자인 굿맨을 통해 로니에게 전해졌고 로니는 이후락의 요청대로 주식매입대금중 20만달러를 지급하라고 승인했다. 걸프사는 1969년 8월 21일 피츠버그에서 20만달러를 스위스 취리히의 유니언뱅크[UBS]의 서정귀 명의의 계좌로 송금했다. 서정귀명의의 계좌에 입금된 이 돈은 인출서류 서명등 제반증거를 볼 때 이후락이 서명을 하고 찾아간 것으로 의심된다. 서정귀의 스위스 유니언뱅크 계좌번호는 626,965.60D 였으며 19만9천7백50달러는 1969년 12월 인출됐다’
정리하자면 1969년 걸프사가 흥국상사 주식 25%를 2백만달러에 인수하려하자 계약직전에 이후락이 박정희 방미경비명목으로 20만달러를 요구해 이를 스위스 UBS의 서정귀계좌로 송금했고 이돈은 이후락이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걸프가 1967년 50만달러에 흥국상사 주식 25%를 인수한 것을 감안하면 흥국상사 주가는 2년만에 4배나 오른 것이며 이는 걸프의 사업이 박정희정권의 비호아래 승승장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위스UBS 계좌번호 626,965.60D-박정희방미자금관련계좌
걸프사는 프레이저소위원회에 스위스 유니언뱅크[UBS]가 1969년 9월 2일자로 작성한 서류도 제출했습니다. 프레이저청문회 종합보고서의 부속보고서 1권 842페이지에 수록된 이 서류는 세계최대의 프라이빗뱅크인 UBS의 입금관련서류로 스위스 유니언뱅크 서정귀 명의의 계좌에 19만9천7백50달러가 입금됐음을 통지하는 서류였습니다.
박정희는 1969년 8월 20일 방미길에 올랐고 걸프사는 20만달러를 8월 21일 입금한 것입니다.
이 서류에 기재된 계좌번호는 걸프가 프레이저소위원회에 제출한 답변서의 계좌번호와 정확히 일치했고 서정귀는 J,K.SUH로 명기돼 있었습니다. 특히 놀라운 것은 이 서류에 이후락의 사위 정화섭의 이름이 영문으로 적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이 계좌가 명의만 서정귀일 뿐이지 사실상 이후락이 관리하는 비자금 계좌였음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이후락의 아들 이동훈은 프레이저소위 조사관과의 면담에서 이후락이 박정희의 비자금을 스위스에 예치해 관리했으며 사위인 정화섭이 박정희 비자금관리를 도왔다고 증언했습니다. 정화섭이 중앙정보부에 국장으로 재직하면서 정권의 해외비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따라서 이 서정귀의 UBS 계좌역시 이후락이 관리하던 박정희의 스위스은행 비밀 계좌중 하나일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이 계좌를 박정희의 비자금계좌로 인식했기 때문에 이를 명확히 밝히기 위해 걸프사에 추가정보를 요구했습니다. 이에 따라 걸프사는 1978년 6월 프 레이저소위원회에 보낸 편지를 통해 스위스 유니언뱅크에 계좌주인에 대해 문의했으나 은행측은 예금주의 비밀을 보장하도록 돼 있는 스위스 은행법을 어길수 없다며 불가입장을 통보해 왔다고 밝히고 UBS가 작성한 이 문서역시 증거로 제출했습니다.
스위스 유니언뱅크가 걸프사에 보낸 1978년 6월 22일자 공문은 간단했습니다. 은행측은 ‘걸프사가 지난 (1978년) 6월 15일 텔렉스를 통해 서정귀계좌에 대해 문의했지만 계좌주인이 사망했을 경우 법정 상속인만이 그 정보를 얻을 수 있다’라는 한 문장의 답변이었습니다. 계좌정보를 주인외에 절대 공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위스UBS 계좌번호 626,965.60D-박정희방미자금관련계좌 걸프사는 스위스 유니언뱅크[UBS]에서 받은 이 공문을 프레이저청문회에 제출하면서 별도공문을 통해 '걸프사는 소위조사에 최대한 협조하갰지만 걸프사가 스위스 유니언뱅크에 더 요구해봤자 정보를 얻을 수 없을 것 같다'고 밝혀습니다. 바로 이 스위스 유니언뱅크 즉 UBS에 개설된 계좌번호 626,965.60D라는 계좌, 이 계좌가 박 정희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제2의 스위스 비밀계좌로 추정됩니다. 박정희 방미자금 20만달러가 바로 이 계좌로 입금됐기 때문에 박정희와의 연관성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후락이 떡고물을 만지긴 했지만 박정희 방미자금까지 손댈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특히 걸프사는 이후락뿐 아니라 박정희의 조카사위인 김종필과도 절친했기 때문입니다. 프레이저청문회도 보고서를 통해 걸프사가 김종필과 절친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UBS의 이 계좌에 과연 얼마가 예치돼 있었는지도 낱낱이 밝혀내야 할 것입니다. 이 비자금은 박정희정권이 걸프에 막대한 이권을 안겨주는 더러운 뒷거래의 대가이기 때문입니다. 호남정유가 1970년대초 걸프사를 독점혐의로 제소한 것도 박정희정권이 걸프사에 독점에 가까운 특혜를 줬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후보2012/10/03 19:47 프레이저보고서 박정희스위스비밀계좌관련부분 프레이저보고서 박정희스위스비밀계좌관련부분 미의회가 코리아게이트 청문회등을 통해 밝혀낸 박정희정권의 스위스 비밀계좌에 대해 몇차례에 걸쳐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맛보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그 원문과 함께 짚어보고 내일부터는 우리가 몰랐던 또 다른 스위스 계좌들의 흔적을 증거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박정희정권의 스위스비밀계좌이야기는 미하원 외교위원회의 프레이저청문회 보고서에서 시작됩니다. 프레이저청문회는 1978년 10월말 발간한 종합보고서 233페이지와 234페이지에서 박정희가 정치 자금을 스위스은행 계좌에 예치해 관리했으며 김성곤이 육영수여사등에게도 자금을 상납했고 이후락의 아들 이동훈이 박정희 자금 스위스계좌의 존재를 증언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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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형욱은 김성곤이 박정희와 육영수여사[마담 박], 정일권, 이후락, 박종규에게도 그들 개인들을 위해 자금을 제공했다고 증언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반면 김형욱은 김종필은 김성곤과 라이벌관계였기에 김성곤이 많은 돈을 주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육여사 수수설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프레이저소위원회는 '소위가 확보한 서류와 증언들에 따르면 박정희에게 전달되는 돈은 이후락이 이를 모은뒤 박정희를 위해 스위스은행 계좌에 예치했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후락등이 박정희에게 자금을 전달했으며 이 돈은 청와대내 대통령 집무실 책상뒤의 캐비넷에 보관됐다고 기록했습니다. 스위스은행계좌의 존재는 은행기록과 이후락의 아들 이동훈의 증언, 박정희의 심복과 청와대 고위공직자의 심복들에 의해서 입증된다고 밝히고 이동훈은 소위 조사관에게 스위스의 돈은 박정희가 사용하는 정부자금이며 이후락이 관리를 했지만 이후락 개인을 위한 돈은 아니었다고 증언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이동훈은 또 이후락이 일본에도 이후락자신을 위해 2백만달러를 예치, 관리했다고 증언했습니다. 이동훈은 박정희가 스위스 비자금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지지자들뿐아니라 야당지도자들을 매수하는데도 돈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프레이저보고서는 다른 페이지에서 이후락이 권좌에서 밀려난 이유, 이후락 사위 정화섭의 박정희 비밀계좌관리사실등에 대한 이동훈의 증언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이처럼 박정희는 이후락을 통해 스위스은행에 비밀계좌를 개설, 비자금을 관리했음은 명확합니다. 다만 그 액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후락이 실각한 뒤에는 또 다른 사람이 박정희 비밀계좌를 관리했을 것입니다. 이후락이 1969년말 대통령 비서실장에서 물러나서 중앙정보부장으로 복귀할때까지의 공백기, 그리고 1973년말 중앙정보부장에서 해임된 이후에는 박종규 경호실장에게 힘이 쏠리면서 박종규가 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이 프레이저위원회의 분석입니다. 그렇다면 1979년 10월 26일 이후 박정희 사후에는 그 돈은 어떻게 됐을까요?. 아마도 누군가 돈을 인출해 갔을 것입니다. 이 돈이 어디로 갔는지 반드시 찾아내서 국고로 환수해야 합니다. 그 돈은 대한민국의 이권에 대한 뒷거래의 대가로 조성된 돈이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후보도 자신이 진정 이 나라의 지도자가 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 또는 정권차원에서 관리했던 스위스계좌에 대해 낱낱이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프레이저청문회등 코리아게이트를 조사한 미 상하원 청문회보고서와 부속책자를 검토한 결과 박정희 정권차원에서 최소한 3개이상의 스위스은행 비밀계좌에 비자금을 유지, 관리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머지 2개 계좌는 앞으로 구체적 증거와 함께 그 흔적들을 찾아보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박정희 대미로비 X파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