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205 (목) 몸으로 탱크 막고 계속 촬영… 국회 지킨 시민들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령' 선포에 온 나라가 비상이 걸렸다. '비상계엄령'을 해제한 것은 국회였지만, 그에 앞서 국회 의결을 위해 시간을 벌어준 건 시민들이었다. 12월 4일 SNS(소셜미디어)와 언론 등에는 비상계엄 선포에 출동한 군부대, 경찰 등 공권력에 맞서는 시민들의 모습이 조명됐다. 시민들은 국회의 비상계엄령 해제 의결을 막기 위해 국회의사당 앞으로 속속 집결하는 군부대 차량을 자신의 차로 막아서거나, 차량 바로 앞에 둘러앉아 진입을 몸으로 막았다.
또 섣부른 무력 진압을 하지 못하도록 군부대 버스나, 탱크 앞에 자리를 잡고 서서 휴대폰으로 시시각각 촬영하고 SNS에 공유했다. 과거 마지막 비상계엄령 조치가 이뤄졌던 1979년 10·26 사태와 이듬해 발생한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통해 학습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당시 광주 시민들은 전두환 군사 정부에 맞서 민주화 시위를 벌였지만, 신군부 세력의 무력 진압 앞에 속수무책으로 학살당했다. 반인륜적이다 못해 잔악하고 흉포한 진압이었다. 헬리콥터에서 시민들을 향한 무차별 총기 난사까지 벌어졌다.
그러나 이 참사는 당시를 기록한 사진 자료나, 기사 등이 전혀 없었던 탓에 다른 지역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이에 전두환 정부는 오히려 학살당한 피해자들에 간첩, 반란군, 폭도라는 억지 누명을 씌워 오랜 기간 고통받게 했다. 당시 살해당한 이들은 대학생은 물론, 어린아이들까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살아남은 이들도 묻지마 성범죄부터 각종 고문 행위를 당했다. 군사 정부는 시민들에게 헬기 사격까지 가했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오히려 해외 언론이 보도하면서 외부로 알려지게 됐다.
이 실화가 송강호 주연 영화 '택시운전사'로 만들어져 천만 관객을 돌파하기도 했다. '택시운전사'는 2017년에 개봉한 영화로, 5·18 광주 민주화 운동 당시 현장취재를 통해 광주의 참상을 해외에 알린 외신기자인 위르겐 힌츠페터와 그를 도운 택시운전사 김사복, 그리고 광주시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5·18 당시의 기억으로 일단 사진, 동영상 등으로 증거를 남기고, 진실을 알리려는 시민들의 시민 정신이 빛났다. 시민들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비상계엄령 해제 의결이 통과된 이후에도 거리를 떠나지 않고 혹시 비상계엄 해제에 윤석열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을 가능성에 대비했다.
총보다 강한 카메라? 계엄 상황 찍어 실시간 공유
12월 4일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국회의 계엄 해제요구안 가결까지 걸린 155분 동안 벌어진 계엄의 사실상 전 과정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전 국민에게 실시간 공유됐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직후 시민들이 스마트폰을 들고 국회로 몰려들며 국회 진입 통제 상황이나 국회로 날아드는 군 헬기, 완전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진입하는 모습 등이 사진과 영상으로 삽시간에 단체 카카오톡방 등에 퍼진 것이다.
일반인이 접근하기 어려운 국회 내부 상황 역시 정치인들이 유튜브를 통해 실시간 방송을 하며 여과 없이 공개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월담'을 해 국회에 진입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은 238만명이 시청했다. 국회 본회의를 주재한 우원식 국회의장의 개인 유튜브 채널도 시청자 60만명을 넘겼다.
일각에선 국민들이 간밤의 '계엄 소동'을 속속들이 지켜보면서 과거와 달리 큰 충돌 없이 계엄 해제가 이뤄질 수 있었다는 분석도 내놓는다. 서울대 김백영 사회학과 교수는 "마지막 계엄인 45년 전은 모든 상황을 실시간 공유할 수 없으니 언론 통제가 용이했을 것"이라며 "이번 비상계엄 자체가 충분한 준비 하에 진행한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사태가 금세 일단락된 데는 전 국민이 지켜본 덕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국방부, "김용현 장관이 비상계엄령 건의한 거 맞다"
국방부는 12월 4일 김용현 국방장관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비상계엄령 선포를 건의했다고 밝혔다. 국방부 관계자는 이날 용산에서 국방부 출입기자들과 만나 '장관이 계엄을 건의한 게 맞는지' 묻는 질문에 "맞다"라고 답했다. 현행 계엄법상 국방부 장관과 행정안전부 장관은 대통령에게 계엄 발령을 건의할 수 있다. 앞서 김용현 장관은 지난 9월 인사청문회 당시 야당이 제기한 '윤석열 정부의 계엄령 준비' 의혹 관련 질문에 "시대적으로 맞지 않는 일"이라며 "지금 대한민국 상황에서 과연 계엄을 한다 그러면 어떤 국민이 용납을 하겠냐"며 "저도 안 따를거 같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야권에서는 김용현 장관이 대통령실 경호처장 재직 시절 공관에서 여인형 국군방첩사령관(중장)을 비롯해 육군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이 모여 계엄령을 준비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추미애 민주당 의원은 당시 "항간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령 대비를 위한 친정 체제를 구축 중이고 후보자의 용도도 그것이라는 얘기가 있는데 근거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며 "후보자를 중심으로 대통령실과 국방부, 방첩사, 수방사가 하나의 라인으로 구축될 수 있다. 계엄령과 같은 것이 헌정 질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에서 후보자가 결단코 국방부 장관에 임명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날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윤석열 대통령의 탈당과 내각 총사퇴, 김용현 국방부 장관 해임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친윤계 인사를 제외한 대다수가 앞의 세 가지 사안(대통령 탈당, 내각 총사퇴, 국방장관 해임)에 대해 동의한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날 중 윤석열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12·3 비상계엄 파동… 계엄 선포·해제 막전막후
12월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한덕수 국무총리와 대다수 국무위원이 선포 직전까지 계획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기습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조선일보 취재에 따르면 11월 3일 저녁까지도 정부 고위 인사 대다수는 계엄 선포를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날 오전 10시 정부세종청사에서 한덕수 총리 주재로 통상적인 국무회의가 열렸고, 이후 장차관들은 각자 일정에 따라 서울과 세종의 정부청사나 지방 출장지로 흩어졌다.
한덕수 총리는 12월 3일 오후 1시 30분에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간담회를 하며 내년 경제 성장 전망을 논했다. 이상 조짐이 나타난 것은 오후 5시쯤이었다. 국방부 장관과 더불어 계엄법에 따라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날 오후 ‘중앙·지방 정책 협의회’ 등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울산에 가 있었다. 이상민 장관은 행사가 끝나는 5시 30분까지 있다가 항공편으로 서울로 돌아갈 예정이었으나, 오후 5시쯤 갑자기 퇴장해 기차 편으로 급거 서울로 향했다. 이 때문에 김용현 국방장관과 이상민 장관은 이날 다른 국무위원들과 달리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방침을 사전에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오후 6시 20분쯤 서울 미근동 경찰청 청사에서 퇴근하다가 대통령실에서 ‘별도 명령이 있을 때까지 사무실에서 대기하라’는 취지의 연락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조지호 경찰청장은 다만 대기 이유가 계엄 선포 때문이라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한덕수 총리와 일부 국무위원은 이날 저녁 늦게 대통령실의 호출을 받았다.
12월 3일 오후 9시쯤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경제부총리,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안부 장관, 조태열 외교부 장관, 김영호 통일부 장관 등이 용산 대통령실 청사로 모였다. 이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을 선포할 생각’이라는 뜻을 밝혔고, 대다수가 난색을 보이며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고 한다. 국무위원들은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경제에 큰 충격이 올 수 있고, 국민이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고, 절차적·법적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반대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 뜻은 확고했다고 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야당이 감사원장과 검사 탄핵을 시도하는 데 대해 “이런 식으로 가면 나중에는 판사까지 탄핵하겠다고 할 것이고, 그러면 사법부에까지 문제가 생긴다”며 큰 우려를 나타냈다고 한다. 현장에 있었던 한 국무위원은 “대통령 생각이 너무나 강해, 아무도 뜻을 꺾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자 한덕수 총리와 국무위원들은 ‘계엄을 선포한다면 국무회의를 열어 심의하자’고 건의했다고 한다. 헌법과 계엄법, 국무회의 규정에 따르면 계엄 선포는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이에 따라 국무위원들이 급히 현장에 오지 않은 다른 국무위원들에게 전화를 돌렸고,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속속 대통령실에 도착했다. 늦게 도착한 국무위원들도 계엄 선포에 부정적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국무회의에 배석하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도 뒤늦게 도착했다. 이들은 현장에 와서야 계엄 선포 계획을 알았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좀 더 생각해보자며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결국 계엄 선포안이 국무위원들에게 배포됐고 12월 3일 오후 9시 40분쯤 윤석열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가 열렸다. 국무회의 개의(開議) 정족수인 11명을 간신히 넘긴 상태였다. 계엄법에 따르면 국방부·행안부 장관은 ‘국무총리를 거쳐’ 대통령에게 계엄 선포를 건의할 수 있는데, 김용현 장관이 이 자리에서 계엄을 건의했다고 한다. 국무회의에 참석한 한 국무위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흥분한 상태였고, 심의를 마칠 때까지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았다”고 전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후 12월 3일 오후 10시 23분 대통령실 청사 1층 브리핑실에서 카메라 앞에 앉아 계엄 선포 대국민 담화를 읽어 내려갔다. 담화 발표 소식을 접한 일부 기자가 청사에 와 있었지만, 브리핑실 출입문은 봉쇄돼 기자들은 방송을 통해 계엄 선포 소식을 들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입에서 “비상계엄을 선포한다”는 말이 나온 것은 12월 3일 오후 10시 27분이었다.
이 직후 김용현 국방장관은 전군에 ‘비상경계 및 대비 태세 강화’ 지시를 내렸고, 조지호 경찰청장은 경찰청 간부 회의, 최상목 부총리는 기획재정부 간부 회의를 긴급 소집하는 등 부처별로 계엄 선포에 따른 후속 조치에 나섰다. 11시 25분엔 박안수 육군 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 명의로 ‘포고령 제1호’를 발표했다. 정치 활동을 금지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한다는 내용이었다. 헌법에 따르면 국회가 재적 과반수 찬성으로 계엄 해제를 요구한 때에는 대통령은 이를 해제해야 한다.
국회는 계엄 선포 2시간 30분 만인 12월 4일 오전 1시 1분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출석 의원 190명 전원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해제하기까지는 이로부터 3시간여가 걸렸다. 윤석열 대통령은 오전 4시 26분부터 방송된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무회의를 통해 국회의 요구를 수용해 계엄을 해제하겠다”며 “다만, 새벽인 관계로 아직 (국무회의) 정족수가 충족되지 못해, (국무위원들이) 오는 대로 바로 계엄을 해제하겠다”고 했다.
이 방송이 실제 녹화된 것은 3시 26분이었고, 당시 한덕수 총리를 비롯한 국무위원들은 정부서울청사 등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한다. 한덕수 총리 등은 다시 대통령실에 모였으나, 계엄 해제 요구안 심의를 위한 국무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아니라 한덕수 총리가 주재했다. 총리실은 오전 5시쯤 “4시 30분에 국무회의에서 계엄 해제안이 처리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6시간에 걸친 비상 계엄 사태가 종료됐다.
이에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12월 3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청사에서 한국을 공식 방문한 사디르 자파로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을 맞아 정상회담을 했다. 이날 윤석열 대통령은 ‘회담을 빨리 끝내고 오찬을 갖자’며 일정을 서둘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이날 오전부터 비상계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온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계엄 선포를 위해 국무회의를 열었고 문서를 갖춰 서명까지 했으며, 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서 가결되자마자 즉각 군에 철수하라고 지시했고 계엄 해제안 처리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며 “법적 절차는 다 지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야당 인사들이 입법 농단으로 자기들의 유죄를 무죄로 만들고 나라는 아예 마비시켰는데, 계엄은 이런 망국적인 위헌·위법 행위에 대해 대통령이 꺼낸 최후의 수단이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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