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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 29. 가겠나이다 - 마 21: 32. 믿지 아니하였도다.
마 21: 29. 가겠나이다 -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 대답하여 가로되, 아버지여 가겠소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
한 아들은 가겠다고 했으나 안 갔고,
1]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순종이 표현되고 있는 이 대답에는 '내가(*) 틀림없이 가겠다'고 하는 확신과 자발적 의지가 내포되어 있다.
맏아들은 부르심이 있자 기다렸다는 듯이 즉시 응답하였다. 그러나 그는 복종할 생각도 없었고 이에 대해 뉘우칠 마음의 변화도 전혀 없었다.
이 모습은 바로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고 맹세하면서도 성전 밖에서는 그 맹세를 이행치 않는 서기관, 바리새인들의 위선적인 생활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 21: 30. 싫소이다 -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이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가로되 싫소이다. 하더니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
다른 아들은 안 가겠다고 했으나 갔다.
1]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아버지의 면전에서 그 명령을 단호히 거절하는 이 표현은 어쩌면 하나님 앞에서 공공연한 죄를 짓는 것을 상징하는 말일 수도 있다.
그에게 있어 아버지의 명령은 너무 갑작스러운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의 명령은 다른 모든 해야 할 일보다 우선순위에 있는 것이므로 '싫다'고 거절한 태도는 어쨌든 잘못된 것이었다.
2]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뉘우친 것에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
'뉘우치다'라는 말에 사용된 '메타멜로마이'(*)는 마음과 생각과 의지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가리키는 '메타노에오'(*)보다 약한 의미로 감정적인 차원에서의 후회, 뉘우침, 나중에 유감(遺憾)으로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메타멜로마이', 즉 '뉘우치고'가 꼭 회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가룟 유다도 뉘우쳤으나 스스로 목매어 죽어 버렸다.
* 마 27: 3-5 – 3 그 때에 예수를 판 유다가 그의 정죄됨을 보고 스스로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4 이르되,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그들이 이르되,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냐? 네가 당하라. 하거늘 5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그러나 본문의 둘째 아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낀 동시에 '자신의 의지'를 실현할 장소로 가지 않고 '아버지의 의지'를 실행하기 위해 포도원으로 갔다. 그렇기에 그의 행동 전체, 즉 '뉘우치고 간' 바로 그 행동 자체가 올바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에오'가 되었다.
매튜 헨리(Matthew Henry)에 의하면 '뉘우침'이란 말에는 '때 늦은 지혜와 병 치료 후의 몸조리'라는 뜻이 있다고 한다.
헬라어 전통 본문에는, 맏아들이 처음에 싫다고 대답했으나 후에 뉘우치고 갔고, 둘째 아들이 처음에 가겠다고 대답했으나 가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마 21: 31. 아버지의 뜻대로 -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그 둘 중에 누가 아비의 뜻대로 하였느뇨? 가로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다.
포도원은 하나님의 나라 곧 신약교회를 상징하였고, 맏아들은 세리들과 창기들을, 둘째 아들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을 상징하였다.
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두 아들은 모두 죄인이다.
맏아들은 아버지를 속이고 그 명령을 행하지 않은 거짓과 위선의 죄를 범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은 완전히 거절하는 무례를 범하였다.
맏아들은 예의가 바른 자이지만 정직하지 않은 자이고, 둘째 아들은 정직하지만 고집이 세다. 예수께서는 이 물음을 유대 교권주의자들에게 제기하심으로써 그들이 답변을 통해 스스로의 정죄를 선언하게 하셨다.
2]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일종의 이스라엘의 천민 계층으로 그들은 완전히 죄인들이요 소외당하는 자들이었다.
특히 그들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는 자들, 사회의 쓰레기들이라고 공식적으로 말해지던 부류이다.
'세리'라는 말인 '텔로네스'(*)는 '통행세 등을 착복하는 자들'(RSV, tax collector)로 보통 '강도'라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동족의 피를 빨아먹는 매국노로 취급될 정도였다.
3]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앞서가다', '앞으로 인도하다'의 뜻인 '프로아고'(*)를 '너희 보다 먼저 들어가리라'고 표현하기 보다는 세리와 창기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만 '너희는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번역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 (Bonnard, NIV).
대부분 사람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 율법주의자들에게도 소망이 되는 말씀이며 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으로 이해한다.
먼저 회개하는 자가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 따라서 나중에 회개하는 자들은 나중에라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사실도 암시하고 있다.
헬라어 전통 본문은 여기서도 첫째 아들이라고 되어 있다.
마 21: 32. 믿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저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종시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
세리들과 창녀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으나 세례 요한이 옳은 길을 외칠 때 회개했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자부하였지만, 요한이 전하는 말씀을 따라 회개하지 않았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른 자인가? 신앙생활은 처음보다 끝이 그리고 입술의 고백보다 실제적 행위가 더 중요하다.
1]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기는 믿었으며,
두 아들의 비유와 23-27절의 예수의 권위에 대한 논쟁과 연결하게 하는 구절이다.
요한은 회개한 죄인들이 지금 들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쳤었다.
NIV는 '요한은 의의 길을 너희에게 보여 주기 위해서 왔다'고 번역하였으나 '의의 도로 왔다'(John came to you in the way of righteousness)고 함은 아마도
(1) 무엇이 옳은가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전파하기 위하여 왔다고 하는 의미와
(2) 요한은 의로운 일을 행한 자, 즉 '의인'이었다고 하는 의미가 동시에 내포되어 있다 하겠다.
사실 '의'를 뜻하는 헬라어 '디카이오쉬네'(*)는 '실행되는 의'(rightousness that is peacticed), '하나님의 뜻을 수행함'을 의미한다. (Hill, Przybylski).
따라서 요한이 의의 길을 걸었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다고 하는 것은 요한의 사역과 죽음을 의로운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며, 이는 요한이 증거한 예수의 사역조차도 의로운 것임을 믿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의'는 좁은 의미의 윤리(倫理)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넓게는 예수를 믿고 그를 메시야로 영접하는 것까지를 의미한다.
세리들과 창녀들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렸으나 요한이 옳은 길을 외칠 때 회개하였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자부하였지만, 요한이 전하는 말씀을 따라 회개하지도 않았다.
누가 하나님의 뜻을 따른 자인가?
겉으로만 종교적으로 보이고 내면적으로 주님과 먼 위선자들이 아니고, 외적으로 죄인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 회개하고 주님을 믿고 그의 긍휼을 바란 자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른 자이다.
신앙생활은 처음보다 끝이 그리고 입술의 고백보다 실생활의 열매가 더 중요하다.
2]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예수께 도전했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이제 처지가 바뀌었다. 예수께서는 탁월한 변론가로서 어느듯 수세에서 공세의 입장이 되셨다.
'무슨 권위로?', '누가 이 권위를?'하고 도전해 온 그들의 질문을 봉쇄해 버린 예수께서는 이제 오히려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했다.
(1) 회개하는 자의 축복
① 두 아들의 비유
맏아들은 아버지의 명령을 받고 대답만 하고 순종하지 아니했고,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대답했다가 뉘우치고 나중에 순종했는데 어느 아들이 아버지의 뜻대로 한 아들이냐는 것이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다.
여기에서 맏아들은 물론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너희'(32절)는 대제사장,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들을 망라한 것이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세리와 창기를 가리키고 있다. 즉 맏아들은 기만과 불순종을 했음에도 회개할 줄을 모르는 자인데 비하여 둘째 아들은 처음에는 불순종했으나 회개하고 나중에 순종한 자를 뜻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맏아들인 '너희'를 정죄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늦게 하늘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② 회개하는 자의 축복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 2)고 외친 것은 세례 요한이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도 이 말씀으로부터 비롯했다.
* 마 4: 17 -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회개는 천국의 문턱이다. 회개하지 아니하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세리와 창기들은 평소에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자타가 죄라고 인정하기 때문에 회개하기가 쉽다. 그러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그들의 사회적인 신분과 체면 때문에 그들의 범죄는 위장에 능하고 세련되고 교묘한 방법이 동원된다.
그리고 그들의 죄악은 표면적으로 잘 나타나지 아니하며 때로는 봉사와 선행으로 가장하여 사람들 앞에 나타나기 때문에 그들은 죄를 지으면서도 사람들에게는 거룩한 자로, 고귀한 자로, 존경받을 자로 여겨진다.
그러므로 그들은 회개하기가 어렵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심으로써 '요한의 세례'가 어디서 왔는가를 은연중에 표명하시는 효과를 거두고 계신 것은 탄복할 만하다.
회개의 문으로는 세리도 창기도 대제사장도, 장로도 구별 없이 들어올 수 있다. 그러나 천국의 문으로는 오로지 회개한 자만 들어올 수 있다.
(2) 자기의 죄에 의하여 정죄를 받음
① 자기의 죄가 자기를 정죄함
두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물었다. '그 둘 중에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그들이 대답했다. '둘째 아들이니이다'.
그들의 대답은 스스로를 정죄하는 대답이었다. 비유에서 맏아들은 그들을 상징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서 그들 스스로가 스스로를 정죄함으로써 회개하기를 바란 것이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을 정죄하지 아니하신다. 다만 인간의 죄가 스스로를 정죄할 뿐이다.
* 요 8: 11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 욥 15: 6 - 너를 정죄한 것은 내가 아니요 네 입이라. 네 입술이 네게 불리하게 증언하느니라.
② 정죄의 기준
이 비유 중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자는 회개하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한 자들이다.
이것은 곧 믿음과 연관하여 설명되고 있다. 즉 회개와 순종 그것은 곧 믿음이며 그것은 곧 정죄와 구원의 기준이 된다.
요한을 믿고 회개하고 순종(세례)한 자는 예수도 믿고 순종할 것이다. 그러나 요한을 믿지 아니한 자는 예수도 믿지 아니할 것이다.
(3) 일을 해야 할 포도나무
① 포도원은 세상이다.
포도원은 일터이며, 그것은 이 세상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일하기 위해 태어났다. 그러므로 일하지 아니하는 자는 살아 있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사도 바울이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 10)고 한 것은 그런 의미이다. 이 세상에서 할 일이 없는 자는 두 가지의 경우이다.
첫째는 과거에 일을 하지 않았거나 일을 했어도 잘못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일을 뺏어간 경우다.
* 마 25: 28 -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둘째는 늙어 죽음을 기다리므로 일을 맡기지 않는 경우다. 일을 안 하거나 할 일이 없는 것은 다 같이 '죽음'과 관계가 있다.
② 포도원은 교회다.
포도는 예수의 피를 상징한다.
* 막 14: 24 –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포도원은 예수의 피로 산 생명들의 동산이다. 포도원은 그러므로 주의 일을 하는 곳이다. 그것은 예수의 구속 사역에 동참하는 일이며, 포도원에서의 근무 수칙은 '충성'이 있을 뿐이다.
* 계 2: 10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서머나 교회의 목사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했다. 고난은 기껏해야 우리의 육신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것뿐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죽음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주께서는 열두 제자들을 전도자로 내보내시며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다. (마 10: 28)
사도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노라”고 말하였다. (고후 5: 1).
10-1) 두려워말라(위로) :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서머나 교회에 대한 서신에서는 책망과 심판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고 곧바로 권면 즉, 곧 있게 될 고난을 상기시키며 두려워 말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보아 당시의 신자들이 장차 임할 핍박과 고난을 생각하고 두려워하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 시기: 장차, 미래.
ⓑ 이유: 시험.
현재도 시험과 고난이 많은 교회지만 장차에도 마귀가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한다. 십일 동안 환난을 받게 하지만 두려움이 없으면 승리한다. 시련과 연단 속에 변함이 없는 금촛대 신앙이 된다.
* 사 48: 10-11 – 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 불에서 택하였노라. 11 나는 나를 위하며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 말 3: 2-3 – 2 그가 임하시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가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공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바칠 것이라.
* 사 13: 12 - 내가 사람을 순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인생을 오빌의 금보다 희귀하게 하리로다.
ⓒ 대책- 두려워 말라.
단 1: 12-15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열흘 동안 시험을 당했으나 다른 사람보다 윤택하고 지혜와 총명을 십배나 받으므로 신앙의 자유를 얻고 승리함 같이 서머나 교회도 오메가적인 환난 즉 정한 때에 당하는 환난을 잘 견디면 큰 축복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 마 10: 22,28 - 22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긑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 눅 12: 4-7 – 4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 도다. 7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
10-2) 너희 가운데서 :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 몇 사람
여러 대중이 아니다. 단체의 핵심이 되는 중추적인 몇 사람을 넘어지게 한다.
* 단 3: 16-18 – 16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17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본문은 장차 서머나 교인들이 받게 될 핍박의 내용이다. 서머나 교인들을 핍박하는 것이 유대인이든 당시 정부이든 간에 그 핍박의 주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마귀'였다.
마귀는 서머나 교인들을 시험하기 위해 몇몇 사람을 감옥(獄)에 넣을 것이다. 개(사자)와 개(犬) 사이에서 나오는 진리(言)를 옥(獄)이라 했다. 개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니 거짓 지도자들의 거짓 진리와 거짓 영을 가슴에 품고 있는 자들은 옥(獄)에 갇힌 자들이다. 그들은 거짓 영으로 세뇌(洗腦) 당하여 거짓 진리에서 나오지 못하는 자들이니 옥(獄)에 갇힌 자들이다.
* 사 56: 10-11 – 10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11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 마 7: 6 -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
* 빌 3: 2 -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 계 22: 15 - 개들과 점술가들과 음행하는 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는 다 성 밖에 있으리라.
계시록 18장 2절의 개역 성경을 보면 처소(바벨론)라는 낱말에 '1' 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책 아래를 보면 '1' 은 옥(獄)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 계 18: 2 - 힘센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獄)이여! 귀신의 처소(獄)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獄)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의 모이는 곳(獄)이 되었도다.'
바벨론이 지옥이요,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 영이 지옥이다. 귀신에게 붙잡힌 자들과 더러운 영에 빠진 자들과 가증한 지도자들을 옥(獄)이라 하였다.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회칠한 무덤이요(마 23: 27) 평토장(平土葬)한 무덤과 같다(눅 11: 44)고 하시고 강도들의 굴혈(掘穴)과 장사꾼들의 소굴과 같다고 하심과 같다.
거짓 진리와 거짓 영(靈)에 사로잡힌 지도자들을 귀신(鬼神)이라 하고, 기사와 이적이나 예언과 방언과 같이 없어지고 사라지는 영(靈)을 가진 자들을 더러운 영들이라 하였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는 자들을 가증한 자들이라(딛 1: 16)고 하였다.
ⓑ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시험을 받게 하리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데테'(*)는 '유혹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시련을 통해서 '시험하다'는 뜻으로 감옥에서 받을 온갖 고난이나 핍박을 의미한다. 이러한 고난과 핍박을 그리스도인들은 감수해야 하며 심지어 순교로까지 자신들의 신앙을 증명해야 한다.
* 눅 21: 12 -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 엡 6: 12 -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0-3) 십일 환란 :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 여러 견해.
ㄱ 상징이다
숫자의 영적 의미가 열은 완전을 상징한다. 환난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렌스키[R. C. H. Lenski] : 우리는 십일 동안을 완전한 기간이라는 뜻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주의 목적에 따라 완전한 시련 기간으로 충분해야 한다. 실제적인 기간이 열에서 나타난 것이 아니다.[성경주석 계시록, p.86]
로버트슨[A. T. Robertson] : 십일을 문자대로 이해하려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고난 받는 십일은 영원한 기간일 수도 있다.[신약 원어연구해설 요한계시록, p.176]
마운스[Robert H. Mounce] : 극단적이며 완전한 환난을 상징하는 숫자이다. 임박한 위기의 심각성과 조화를 이룬다.[성경주석 요한계시록, p.106]
ㄴ 로마의 열 황제를 상징한다.
네로[Nero]로부터 디오글레시안[Diocletian] 황제까지 약 250년 동안 로마 황제로 부터 받은 환난이다.
반 린[August Van Ryn] : 십일은 초대 교회가 로마 황제로부터 당한 열 차례의 핍박 기간을 가리킨다.[요한계시록 강해, p.36]
할레이[H. Halley] : 열흘 동안의 환난은 로마 열 황제로부터 열 번의 박해를 받은 것이다.[최신 성서 핸드북, pp.826-7에서 요약]
⒜ 네로[Nero ; AD. 54-68] : 64년 로마 화재, 바울, 베드로의 참수형.
⒝ 도미티안[Domitian ; AD. 81-96] : 사촌 동생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성도 살해, 부인을 추방, 사도 요한의 밧모 섬 유배.
⒞ 트라얀[Trajan ; AD. 98-117] : 고발된 그리스도인을 처형, 시므온의 십자가형, 안디옥 감독 이그나시우스는 짐승의 밥이 되었다.
⒟ 하드리안[Hardrian ; AD. 117-138] : 로마 교회의 목사와 성도를 처형, 신자들의 사회적 지위는 향상되었다.
⒠ 아우렐리우스[Marcus Aurelius ; AD. 161-180] : 잔인한 박해자, 저스틴 순교.
⒡ 세베루스[Setimius Severus ; AD. 193-211] : 애굽, 북아프리카 지역에서 핍박.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매일 화형, 십자가형, 참수형으로 처형.
⒢ 믹시미누스[Maximinus ; AD. 235-238] : 오리겐이 숨어 지냄.
⒣ 데시우스[Decius ; AD. 249-251] : 키프리안[Cyprians]이 '온 세계가 황폐되었다'고 할 만큼 박해가 심했다.
⒤ 발레리안[Valerian ; AD. 254-260] : 기독교를 멸절시키려 함. 키프리안 순교.
⒥ 디오클레시안[Diocletian ; AD. 284-305] : 전국적인 박해, 10년간 화형, 짐승의 밥이 되도록 했다.
ㄷ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10년 박해이다.
국교로 인정받기 직전의 극심한 10년 동안의 기간으로 본다.
ㄹ 짧은 기간이다.
바클레이[William Barclay] : 십일이란 짧은 기간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경고요 약속이다. 투옥이 올 것이다. 고난의 강도는 심하나 그 기간은 짧다.[성서주석시리즈 계시록, pp 126,7]
알포드[Henry Alford] : 짧은 제한된 시간을 의미하기 위하여 사용 되었다.[왈부르드, 요한계시록 해석, pp 88,9]
ㅁ 제한되어 있다
하나님의 섭리 속에 환난의 대상이나 기간이 열흘로 제한되어 있다.
나일스[D.T. Niles] : 제한된 사람들을 시험한다. 제한된 시간이므로 견디지 않으면 안 된다.[모리스, 틴델 신약주석 요한계시록, p.77]
ㅂ 출 7장 14절부터 12장 36절에 나오는 열 가지 재앙을 상징한다.
ㅅ 문자적 십일이다.
ⓑ 저자의 견해.
문자적으로는 서머나 교회에 주신 말씀이다.예언적으로는 로마의 열 황제로 인한 핍박을 예표 한다.응용적으로는 전 세계의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 요 16: 33 -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딤후 3: 12 -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 고전 10: 13 -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서머나 교회에는 장차 10일 동안의 환난이 있을 것이며 마귀가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할 것이다.
그 교회의 목사가 견고히 섰음에도 불구하고 그 교회에 시험과 환난이 있을 것이다. 10일 동안의 환난은 서머나 교회에게 닥칠 문자적으로 10일간의 환난이든지 혹은 상징적으로 어떤 제한된 기간을 가리킬 것이다.
성도들이 당하는 핍박과 고난은 영속적이지 않고 지나가는 한 과정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낙심치 말고 믿음과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끝까지 충성해야 한다.
10-4) 충성하라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주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목사에게 “죽도록 충성하라”고 말씀하셨다. ‘충성’은 끝까지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참 충성은 죽기 전까지는 증명될 수 없다.
충성은 죽음을 통해 참으로 증명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2: 11, “또 여러 형제[구원받은 성도들]가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사탄]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순교는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확실한 표이다. 물론 참 하나님, 곧 신구약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과 그의 뜻을 위한 순교와 충성만이 의미와 가치가 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기누 피스토스 아크리 다나투'(*)에서 '기누'는 '기노마이'(*, '되다')의 현재 중간태 명령형으로 과거의 순교자들이 순교하기까지 충성하여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드러냈던 것처럼 서머나 교인들도 죽기까지 신앙을 지켜야 함을 시사한다.
이것은 당시 극심한 황제 숭배 강요 속에서 죽음의 위협을 받고 있던 교인들을 향한 단호한 명령이다.
ⓐ 죽도록
* 마 10: 39 -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 막 8: 35 -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 충성: 참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정성.
충성(忠誠)이란 하나님의 말씀(言)을 마음(心) 중심(中)에 이루었던(成) 사람을 말하며, 충신(忠信)이란 예수님(人)의 말씀(言)을 마음 중심에 모신 사람을 말한다.
그러므로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이 충성(忠誠)된 충신(忠信)이다. 그 주님이 서머나 교회를 찾아 오셔서 십 일 동안의 환난 속에서 충성(忠誠)된 충신(忠信)들을 찾고 계신다.
충성(pistos) 이란
진실(眞實)한 자를 말하며 진리로 열매가 된 사람이다.
믿음이 있는 자를 말하니 하나님의 말씀으로 거듭난 사람이다.
확신을 가진 자를 말하니 진리와 일체화(하나)가 된 사람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자요, 하나님과 하나가 되신 분이다(요 1: 14, 요 10: 30).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啓示)되면 예수님과 같은 자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의 몸과 같이 변하게 된다. 그 때 우리는 충성(忠誠)된 충신(忠信)들이 된다.
* 요일 3: 2 -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빌 3: 21 -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고전 13: 12 -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히 3: 5-6에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예수님은 집 맡은 아들로 죽기까지 충성하셨다. 모세의 충성은 이 민족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자신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 달라고 했다.
* 출 32: 32-33 - 32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33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
예수님의 충성은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합니다. 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죽기까지 충성하셨다.
참 충성은 죽지 않고 충성할 수 없다. 죽고자 하면 살게 되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라고 하신 말씀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복음을 위해 진정 충성할 수 있을 것이다.
* 마 26: 39 -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10-5) 생명의 관 :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주께서는 죽도록 충성하는 종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생명의 면류관은 면류관의 종류들 중 하나라기보다 생명의 영광 혹은 영광스러운 생명이라는 뜻일 것이다.
죽기까지 참된 믿음을 지키고 충성하는 자는 영광스럽고 복된 영생을 누릴 것이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들, 충성치 않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보장되지 않는다. 주님을 배반하고 떠난 자에게는 영생의 영광이 약속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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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감사합니다.
뉘우친 것에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뉘우친 것에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
(^~^)항상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별일 없이 사는게 큰 행복입니다.
오늘도 순탄한 하루 되시고 늘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
뉘우친 것에 끝나지 않고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