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요즘 잘 들리지 못했죠.
오늘은 정말.. 정말 긴~~~! 소설을 들고 왔습니다.
이 감당하기 힘든 스크롤의 압박에 불안감이 먼저 저를 덥쳐오는군요..^^;
이번소재는 '고등학생 밴드' 와 '금단의 사랑'. 입니다.
정말 몇날 며칠을 힘들여서 쓴 소설입니다.
결국.. 오늘 완성해서 시간이.. 어느새.. 밤을 홀딱 넘겨버렸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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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리고 스크랩건에 대해서 말씀드릴게 있는데..
제소설을 스크랩해가시는건 괜찮지만..^^; 저에게 말씀정도는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전에 쓴 '사랑에 미치다'라는 소설도 어떤분께서 말씀도 없이 스크랩을 해가셔서..
당황했었답니다.
아, 잡소리가 너무 길었네요;
아직 정말 부족한 실력이지만,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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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 Voice ~행복한 목소리.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노래를 만들어 줄게. 그 행복한 목소리로 노래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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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었던 고등학생 밴드 "Happy Voice".
교내 최고 문제아들만 모아만든 밴드라 일명 "문제아 밴드"라고도 불리운다.
작곡에 관해서 천재성 기질을 보였던 나는 이 밴드의 작곡가이자 보컬이였다.
내가 만들어낸 곡마다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와 쉴새없이 공연을 하러 다녔고,
연예계에서는 끊임없는 섭외가 밀려올뿐만 아니라, 유명세를 탄 덕에 방송사에서
인터뷰도 나와 우리 학교는 학교의 명예를 빛냈다는 점에서 우리밴드에게 상을 내렸다.
그정도로 Happy Voice의 치세는 대단했다.
하지만 내가 오토바이 사고를 당하고 난 뒤, Happy Voice는 무너지기 시작했다.
큰 수술 후, 남게된 휴우증. '수전증'
무슨 일을 하건간에 손에 사시나무 떨 듯 떨려버려서 정상적인 생활도
힘들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다.
언제나 피아노로 작곡을 했던 나였기에, 더이상 피아노를 치지 못하게 되면
작곡도 할 수 없었다. 결국엔 슬럼프까지 불러와 머릿속에서 조차 작곡의 구상이 불가능했고,
그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려 성대에 염증이 생기는 '성대결절'까지 걸려버렸다.
노래까지 못부르게 되버린 것이다.
그야말로 최악이였다. 하도 방황하던 인생이라 음악이란 것의 매력에 빠지게되면서
음악에 내 모든인생을 걸려고 했었다. 아니, 이미 걸었다.
작곡도, 노래도 할 수 없게 되버린 나로서는
더이상 살아갈 이유가 없어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갈 때 까지 가버렸을때,'죽음' 거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홀로 나를 키워오신 아버지가 뒤늦게 재혼하고 싶은 여자가 생겼다고 말하셨다.
언제나 '죽음'이라는 단어를 곁에 두고 언젠가는 '죽음'을 결심할 나한테는
마침 좋은일이였다. 새가족이 있으면, 내가 죽어버려도 아버지는 외롭지 않겠지.
큭, 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닌 상태였다. 흔쾌히 승낙했다.
아버지의 재혼은 빠르게 이루어졌고, 새어머니는 나보다 나이가 한 살이 많은
딸을 데리고 오셨다. 새어머니는 그렇다쳐도, 그 딸이라는 여자는 영 첫인상이 좋지 않았다.
뭐가 그렇게 좋은지 연신 웃어대는 그 얼굴이 어쩐지 얄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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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때와 같은 저녁. 나는 여느때와 같이 내방에 붙어있는 작은 베란다안으로 들어가
화분안에 숨겨놓았던 담배를 꺼낸다.
'새가족'과 동거에 들어간지도 벌써 한달이 지나가고 있다.
나는 아직도 그들에게 적응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내가 '누나'라고 불러야 하는 그여자에게는..
아아, 어쨌든 나는 오늘도 자살을 꿈꾸고 있다.
어떡하면 예술인답게 멋진모습으로 죽을 수 있을까.
나는 사후세계나 환생 같을걸 전혀 믿지 않는다.
그래서 나에게 주어진 인생은 딱 한번뿐이라고 생각한다.
한번뿐인 인생. 싱겁게 죽을수는 없다.
나는 내가 미쳤다고 단언할수 있다.
미치지 않고서야 자살을 매일같이 꿈꾸는건 힘들다.
이렇게 담배를 입에 물고 멋지게 자살하는 방법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는것이
요즘 내 즐거운 낙이다.
-똑똑.
.. 유일한 휴식시간을 방해하는 노크소리.
짜증스런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불청객을 확인해 보니,
..
"너, 또 담배니? 몸에 안좋다고 끊으랬잖아."
베란다유리문 너머로 비치는 웃는얼굴. ..'그여자'다.
기어코 등장하셨군. 방문 잠구는걸 깜빡했구나, 젠장.
나는 여전히 담배를 꼬나문채, 베란다문을 열어제꼈고,
"양은주.."
이여자의 이름을 중얼거리듯이 내뱉었다.
그여자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왜'라는 대답을 대신했다.
"..니까짓게 끊으라고 해서 끊을 수 있었을 담배였으면 진작에 끊었어.
내가 담배를 펴서 몸이 썩든 말든 신경꺼. 니가 상관하는 그 자체가 기분 드러우니까."
퉁명하다 못해 살벌하기 그지없는 내 말에도 그여자는 아랑곳 않고
내 입에 물려져 있던 담배를 빼앗아 언제 가져왔는지 모를 재떨이에 비볐다.
내가 어이없는 눈초리로 노려보자, 그여자는 빙긋 웃으며 나를 베란다안으로 몰아내고
자기도 베란다로 나와 베란다문을 닫았다.
기가 막히는군. 나는 보란듯이 담배 한개피를 더 꺼내 입에 물며 말했다.
"..뭐하자는거야, 여기서 연애질이라도 하자구?"
그여자의 표정이 뾰루퉁해 진다.
"참.. 말하는것좀 봐. 너 내가 그렇게 싫으니?"
"어."
"되게 아쉬운 대답이네.. 누나는 세연이랑 친해지구 싶은데.
어짜피 이제 한가족인데, 친해지는게 좋잖아. 응?"
"닭살멘트 날리긴.. 나 너랑 말하기 싫거든. 내 힘으로 쫓아내기 전에 알아서 닥치고 꺼져."
내가 진심으로 짜증난다는 말투로 말하니, 그여자도 상황파악을 했다는듯,
다시끔 빙그레 웃고서는 몸을 틀어 베란다문을 열었다.
나가기 전,
"그래도.. 니가 마음을 열 때까지 누나는 기다릴게.
엄마랑 나.. 너무 멀리하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달칵.
"지랄하네.. 내가 너한테 마음을 열때 쯤에는..난 벌써 죽고도 남았을거야."
그여자가 나가고, 나는 그제서야 혼잣말을 덧붙이며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아, 손가락 사이에 낀 담배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놈의 빌어먹을 수전증.
..심기가 불편하다. 도무지 상대하고 싶지 않은 여자. 양은주,
그여자와 같은 성을 써야한다는 사실조차 꺼림칙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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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일상의 되풀이, 지루해 미쳐버릴것만 같은 생활을 하기에 딱좋은 본거지. 학 교.
드디어 그 지긋지긋한 학교수업이 끝을 맺었다.
원래 학교정도야 제치면 그만이지만,
고등학교 삼학년이 된 이번에는 학교 꼬박꼬박 다니겠다고 아버지랑 굳게 약속해놨으니..
어쩔수가 없다.
어쨌든간에, 뭐 든것도 없는 가방을 들처매고 빨리 교실을 나가고 싶어
안달이 난 몸을 이끌며 교실 밖으로 나가려는 순간,
"양세연."
지긋지긋한 목소리 하나가 내 발목을 붙들어 맨다.
건성스레 고개만 휭하니 돌려 삐딱스런 표정으로 그 인물을 쳐다봐줬다.
우리밴드 기타리스트신 유 영.새끼다. 이 새끼가 할말은 뻔하다.
"오늘 연습도 그냥 제치는거냐?"
그래, 예상했던 말이 꼭 들어맞았다.
나는 영의 어께에 능청스럽게 팔을 걸쳤고,
"영, 이새끼야.. 몇번을 말해. 곡도 없고, 보컬도 없는데 무슨 연습질이냐고."
"..꼭 새로운 곡이 있어야지 연습할수 있는것도 아니잖아. 노래는 경주가 불러준댔어."
"미친.. 그새끼는 드러머가 무슨 노래질이야. 그러면 너네끼리 해. 어짜피 난 할 짓도 없으니까."
굳은 표정으로 가만히 서있는 영의 어깨를 가볍게 원터치 해 주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또다시 영의 무거운 목소리가 내 발목을 잡아끈다.
"...그만큼, 애들이 연습에 목말라 있다는거 몰라?"
"....."
"양세연, 니가 제일 강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잖아. 그 열정이, 'Happy voice'가,
이런식으로 무너지는거였냐. 슬럼프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거고,
성대결절, 그거 약물치료만 제대로 하면 나을수 있다며. 도대체 뭐가 문제야?"
"..늘 새로운 노래로 신선하게 나오는게 'Happy Voice'의 매력이였어.
그 매력을 잃어버렸으니까. ..'Happy Voice'는 무너진거나 마찬가지지."
.....
무겁다. 무거운 공기가 우리 둘을 짓누른다.
무거운 공기는 어색한 공백을 불러온다. 우리는 한동안 바보처럼 그자리에 굳어있었다.
"..니 맘대로..."
그러다가, 유영이 머뭇머뭇 말을 되이었다.
"..니 맘대로 'Happy Voice'를 무너뜨리지마.
매력을 잃어버렸으면 다시 찾아와야 되는거잖아.. 우리는 아주 작은..
장애물을 만났을 뿐이야. 장애물을 만났으면 그 장애물을 넘을 생각부터 해야지.
그런게 우리의 신조였잖아..."
.............
..하여튼 유 영.이새끼는..말뽄새 하나는 피곤하게 잘굴린다니까.
일일히 내치기도 미안할만큼,
나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등뒤에서 흠칫하는 유 영의 움직임이 느껴진다.
큭,
"유 영. 뭐해, 연습실로 내려가자고."
내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잔뜩 긴장하고 있던 녀석이 씨익 웃으며 나와 발걸음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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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학년 새학기가 시작되고 나서, 한번도 와보지 않았던 연습실.
오랜만에 맡아보는 연습실의 구질구질하게 매쾌한 냄새.
싸늘하게 피부로 밀착해오는 찬공기.
이것들을 느끼면 항상 기분좋은 설레임이 다가왔다.
지금은.. 이상하게도 그 설레임이 다가오지 않는다. 내 열정이 식어버렸기 때문일까.
영이 연습실문을 활짝 열었다.
악기만 만지작만지작 대고 있던 밴드 구성원 녀석들이 내 얼굴을 확인하자 마자
환호성을 지르며 달려왔다.
"이야!!! 양세연, 이새끼!! 얼마만이냐!! 백만년 만인가?!"
먼저, 오버제왕 드러머. 송경주가 내 등짝에 매달린다.
"니가 없으니까 연습도 제대로 안되서 내 베이스에 곰팡이 폈어!! 책임져!!"
내 두볼을 손가락으로 주악주악 늘어뜨리며 호들갑을 떠는 베이스기타리스트. 노국현.
"보고싶어 뒤져버리는줄 알았잖아!! 교실로 찾아가도 잠만 처자고!! 나쁜새끼!!"
아예 날 발로 차대는 키보디스트(키보드 담당).강의재.
..이 촐랑이들도 겁나게 오랜만이네.
나는 촐랑이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면서 말했다.
"야야, 붙지 좀 마. 이새끼들이 간만에 봤다고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하네.
연습이나 바로 들어가. 실력은 녹슬지 않았겠지."
녀석들은 자신있게, 예스를 외치고 각자 악기를 향해 자리를 잡았다.
아직 성대를 무리시키면 안되기때문에, 노래는 할수 없지만 연습지도는 해줄수 있다.
녀석들은 이래서 내가 필요한 것이다.
"일단 school of rook.으로 손좀 풀어보자구."
우리들이 맨처음 선보였던 곡.우리의 전문곡.
내가 '스쿨 오브 락'이라는 영화를 보고 단번에 필을 받아 두시간만에 작곡을 완성했던 곡.
한마디로 내 처녀작이다. 제대로 된 작곡을 완성했던건 이 곡이 처음이였다.
"좋아, 시작해."
시작신호를 보내는 내 제스처와 함께, 귀에 익은 반주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연주된다.
노래 없는 반주가 쓸쓸하다. 하지만 자극은 되지 않는다.
반주소리를 들을때 마다 뜨거워지던 성대가 반응이 없다.
...
절실해지는 담배를 꺼내려 바짓주머니를 뒤졌다.
그런데 담배대신 진동이 울려대는 핸드폰이 잡힌다.
반사신경으로 느낌 먼저 오는 핸드폰을 꺼내 슬라이드를 올렸다.
「세연아~ 아직 학교지? 지금 니네학교 교문 앞이야.
누나가 오늘 맛있는거 사줄게^^ 같이 가자. 얼른 나와~」
어이없는 문자내용. 그리고... 낯익은 핸드폰번호.
저장은 해두지 않았지만, 이제는 눈에 익어버린 번호.
..양은주..이여자. 어째버릴까.
나는 아주 자연스럽게 핸드폰 배터리를 빼버렸다.
기다리던지, 말던지. 마음대로 하라 그러지.
담배에 불을 붙이는 동안, 연주가 끝났다.
이제, 잔소리의 시간.
"송경주, 너 자꾸 엇박자로 나가고 있어. 너 때문에 애들이 자꾸 헷갈려 하잖아.
노국현 너는 삑사리 좀 그만내고, 키보드랑 일렉기타쪽은 그럭저럭 괜찮아."
소리에 유난히 민감한 내 귀는 연주 도중에 나는 왠만한 미스는 다 잡아낼수 있다.
날카로운 내 지적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뭐가 그렇게 좋은지 헤실헤실 쪼개고 있기 바쁘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쪼개냐?"
내가 미간을 찡그리자, 영이 싱긋, 눈웃음을 짓고서 말했다.
"이제야 양세연 같아서."
다른녀석들도 동감하듯 베시시 웃어대며 고개를 끄덕인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얼른 이 닭살스러운 분위기를 다른쪽으로 몰아내 버리고,
"야야,쪼개고 있을 시간 없어. 방금 거 다시해. 이거 우리 전문곡이야.
이런식으로 나오면 안되지."
녀석들에게 시작신호 제스처를 보냈다. 다시 연주가 시작된다.
...이렇게 들뜬모습으로 연습에 임하는 녀석들을 보기가 미안하다.
내안의 'Happy Voice'는.. 이미 죽어버렸으니까,
녀석들의 연주소리를 들으니, 그 현실성이 뼈저리게 다가온다.
더이상 저기에 낄 수 없을 것 같은 느낌.
"..후우."
결국 녀석들의 연주가 끝을 맺어갈때 쯤, 담배를 한꺼번에 다섯개피나 태워버렸다.
요란스러운 드럼소리가 마무리를 짓고, 연주가 끝났다.
이번 연주는 꽤 매끄러웠다. 박수를 쳐주며 녀석들을 칭찬해주려던 순간,
.......
"와아!!! 브라보!!브라보!! 정말 굉장해!!!"
...
내 눈을 믿을 수가 없군.
"정말 굉장해!! 반주 만으로 이렇게 귀에 쏙쏙 잘 들어오다니!!
굉장해! 뭔가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느낌? 브라보!! 앵콜~!"
왜,
양은주가 우리 연습실안에 들어와 박수를 쳐대면서 설치고 있는거지.
나는 상황파악을 뒤로 하고 그여자의 손목을 잡아 내앞으로 끌어당겼다.
"어, 세연이 역시 여기있었구나!"
"...니가 왜 여기있어."
"헤헤, 기다리고 있는데 니가 하도 안오고 핸드폰도 꺼뒀길래~지나가는 학생들 붙잡아가면서
너의 행방을 캐물었지! 니가 밴드 한다는건 몰랐었는데, 멋지다~ 정말 멋져!!"
그여자는 놀라움의 교성을 질러대며 내게 손목을 잡힌 채 연습실 안을 찬찬히 둘러봤다.
나는 그여자의 손목을 흔들어제껴서 그여자의 시선을 내쪽으로 향하도록 만들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삭막해지고, 그여자에게 뭐라고 한마디 말하려는데,
또 다른 누군가의 손이 그여자의 손목을 꽉 붙든 내 손을 감쌌다.
"세연아, 그만 놔줘. 얘 손목 빨개진거 안보여?"
"...유 영, 상관하지 말고 저리로 꺼져봐. 오늘 이여자한테 단단히 말해둬야겠어."
"여자한테 이런짓 하는거 꼴사납다."
..유 영의 손에 한층 더 힘이 들어갔다.
....이새끼는 쓸데없이 기사도 정신이 높다. 내가 이대로 이여자의 손목을 안놓고
버티고 있으면 나한테 주먹을 날려서라도 나와 이여자를 떼어놓을것이다.
어쩔수 없이 그여자의 손을 놔줬다.
그여자는 잔뜩 빨개진 손목을 뒤로 감추고 빙긋 웃어보였다.
"..세연아, 미안해. 내가 불쑥 찾아와서 화났구나."
"....나 화난거 알았으면 나가."
나는 아예 그여자에게 등을 돌려버렸다.
그여자도 우물쭈물하다가 나갈려고 하는것 같았으나,
"세연이 양누나 되시죠?"
......
유 영, 저새끼가 대체 왜저래.
유 영은 나가려던 그여자를 잡고 있었다.
그여자는 금세 표정이 환해지면서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어..어떻게 알았어? 티가 나나?"
"킥,아니요. 제가 눈치가 좀 빠르거든요. 이렇게 왔으니까 저희 연습하는거 구경하고 가세요.
저 까칠한 녀석은 무시하구요."
꽃미소를 날려대는 유 영의 말을 듣고 그여자가 내 눈치를 조금 살피는걸 본
유 영은 눈빛으로 나에게 협박했다. ..어느새 다른 녀석들도 양은주가 마음에 들었는지
애원하듯 낯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빌어먹을,
"씨발, 마음대로 해. 니네끼리 잘들 놀아보라고.. 난 빠져줄테니까."
나는 발로 문을 차서 열고 거칠게 나와버렸고, 날 불러대며 뒤따라오려는 그여자와 녀석들에게
라스트로 소리 한방을 질러주었다.
"따라오지마!!!!"
.........
..................
그렇게 정신없이 걸어대다가,
학교 운동장의 구석탱이에 처박혀 있는 벤치에 주저앉았다.
하늘은 이미 시커메져 있었다.
쥐새끼 하나 돌아다니지 않는 어두컴컴한 운동장.
이런 어둠속에 있다보면 마음이 편해진다.
어쩌다 일이 이지경까지 와버리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갑작스러운 그여자의 등장에도 충분히 혼란스러웠건만,
그런 그여자의 편에 서서 날 몰아세우는 그녀석들의 모습이란.
결국 나만 여자를 괴롭히는 야만스러운 놈으로 전략했군.
입안이 텁텁해온다. ..담배가 필요하다. 여느때의 버릇처럼 왼쪽 바짓주머니에 손을
넣어봤지만, 잡혀야할 담배는 잡히지 않고 주머니 안이 횅~했다.
...그러고 보니, 가방도,핸드폰도, 모두.. 연습실에 두고 왔다.
..빌어먹을...오늘 정말 가지가지 하네.
그렇게 성질 부리면서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면 내꼴이 뭐가 되겠어.
그냥 내일 아침일찍 가지고 갈까, 아니.. 그러기엔 지금 너무 담배가 땡겨.
...교복차림으로 담배를 살수도 없고, 아, 빌어먹을.
한참을 고민하던 끝에, 살짝 망설여졌지만 두고 온 물건들을 찾으러 연습실로 가기로 했다.
그냥 아무말없이 물건만 가지고 나오면 그만이다.
연습실 앞에 다달으니 연습실 안에서는 아직 녀석들이 맹연습을 하고 있는지 연주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I never die.' 난 죽지 않아.
언젠가 기분이 엄청 암울한적이 있었는데 그 때 홧김에 만든 곡이다.
지금 그 곡이 연습실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가만, 노랫소리도 섞여있다.
누군가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내가 아닌 누군가가.
괘씸하지만 끌리는 목소리다.나는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다들 나를 무시하고 있어. 지들이 뭐라고 나를 무시하는거야.
적어도 나는 너희들처럼 가식적이지 않지. 너희들이란 작자들 보다 나은 몸이지.
니들이 어떻게 지껄이든 신경 쓰지 않을거야.
I never die!! 난 죽지않아.
날 계속 짓밟아봐. 그래봤자 난 계속 일어설수 있어.
I never die!! 난 죽지않아.
날 비참하게 만들어봐.그래봤자 난 쓰러지지 않아."
...이럴수가, 이건.. 내가 꿈꾸던 이상의 목소리였다.
중성적이면서 허스키한 목소리. 그속에서 느껴지는 파워.
그 목소리를 내려고 얼마나 수련을 거듭하고 거듭했는가.
무리한 탓에 성대에 염증이 생겨 비릿한 피가 솟구쳐 올라올 정도로, 그렇게 노력했지만
끝내는 가지지 못했던 목소리. 그야말로 내 상상속에서나 떠다니던 목소리.
그 목소리가 지금 실제로 내 귓속을 자극하고 있다니.
아니, 이렇게 놀라고 있을때가 아니였다. 나는 얼른 연습실 문을 박차고 들어갔다.
-쾅.
내 등장으로 잘나가던 연주소리가 뚝 끊겼다.
모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들의 시선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얼른 마이크를 쥐고있을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그리고,
"앗!세연아! 다시 왔구나!!"
........
손에 쥔 마이크를 흔들며 격렬하게 나를 환영해주는,
...양은주. 설마.. 저여자가..그럴리가, 말도 안돼.
"너...아까 그 노래,니가 불렀던 거였어?"
목소리가 떨린다. 그여자가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아..응, 애들이 하도 불러보라구 해서.. ..내 멋대로 노래불러서..화났니?"
...........
이상하게도, 내머리는 쉽게 이 상황을 수긍하고 있었다.
내가 가고 있는 앞길을 꽁꽁 가로막고 있던 그 무언가가 시원하게 걷히는듯한 느낌이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느새 내 손은 그여자의 어깨를 강하게 잡고 있었다.
그래, 그 목소리를 누가 가지고 있던지 상관없어.나는 저여자의 목소리를 가지고 싶다.
"..부탁이야. 'Happy Voice의 보컬이 되어줘."
내 생에 그여자에게 부탁이란걸 하게 될줄은 몰랐다.
그여자도 놀랍다는 표정이였다. 다른녀석들은 미친듯이 환호해댔다.
주위가 시끌벅적 하지만 지금 내 정신은 온통 그여자에게 쏠려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만약 이여자가 뭐라고 거절을 하든, 반드시 우리밴드의 보컬을 하게 만들거다.
그런 집념으로 그여자의 대답을 기다렸다.
그여자는 잠시 생각하는듯 싶더니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좋아."
.......
"꺄울!! 여자보컬이다아아!!!"
곧이어 다시 터지는 녀석들의 환호성 소리.
아무래도 잔뜩 긴장해 턱턱 막히던 숨이 뻥 뚫렸다.
하지만 그 안정도 잠시,
"대신!"
그여자의 단호한 한마디로 연습실안은 쥐죽은듯이 조용해졌고,
"세연이가 날 누나라고 불러주고 다정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
........
뜻밖의 제안.
어짜피...저여자가 이렇게 순순히 받아들여 줄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내키지 않는 제안이였지만, ..미치도록 가지고 싶다. 저여자의 목소리를,
어쩌면, 날 괴롭히고 있는 슬럼프까지 물리쳐줄지도 몰라. 저 목소리라면,
나는 아직까지도 조금씩 가슴속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자존심을 짓뭉개버리기로 했다.
"..좋아, .. 누나."
'누나'라는 말이 떨어지자 마자
그여자가 하얀치아까지 드러내며 활짝 웃는 모습을, 나는 외면해버렸다.
.......
.....................
양은주가 'Haapy Voice'의 새로운 보컬이 된지 약 다섯시간이 지났다.
지금은 내 방에서 오랜만에 책상에 자리잡고 앉아있는 중이다.
신기하게도 계속 머릿속에서 새로운 멜로디들이 춤을추며 떠다니고 있다.
비록 펜을 쥐고 있는 손가락은 미친듯이 떨고 있어도,
망설임 없이 매끄럽게 음악노트에 작곡을 해나가고 있는중이다.
진정 슬럼프를 극복한 것일까.
하지만 구상만으로는 부족했다. 진짜 소리가 필요했다.
...내가 만드는 곡은 장르는 락이지만 피아노소리를 거쳐야지 완성된다.
그게 내 독특한 콤플렉스다.
한참을 갈팡질팡하던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먼지가 수북히 쌓여버린 피아노를 향해 다가갔다.
건반위에 손을 올려놓아보았다. 처음 피아노 건반을 만졌을 때와 같이, 차갑고 딱딱한 느낌이다.
지금이라면 할 수 있을것 같았다.
조용히 숨을 가다듬고, 손가락을 놀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괜찮게 가나 싶더니, 역시 손이 흔들려버린다.
결국 나중에는 주체할 수 없이 떨리는 손 때문에 건반을 빗겨나가
우스꽝스러운 연주가 되버리고 말았다.
"빌어먹을!!!"
나는 애꿎은 음악노트를 찢을기세로 구겨버리다가, 이내 혼자 지쳐버려서
힘없이 침대로 쓰러졌다.
...할 수 없는걸까. 수전증은 통과할 수 없는걸까.
-달칵.
눈을 감고 있는데 방문이 열리는 소리와, 누군가의 인기척이 다가오는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바로 눈을 떳다. 주스와 사과나 딸기따위의 과일 류가 담긴 쟁반을 들고서
어깨를 움찔하는 양은주가 보였다.
"아.. 나 때문에 깻니? 미안.. 이걸 들고 노크하기도 좀 그래서 불쑥 들어와버렸어."
미안한 감정은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게 빙긋 웃으며 말하는 여자.
평소때의 나 같으면 거친 욕설을 퍼부으며 저여자보고 나가라고 하기 일쑤였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여자는 또다시 빙긋 웃고는 쟁반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내가 누워있는 침대를 가로질러
피아노쪽으로 걸어갔다. 그여자가 피아노를 매만지며 말했다.
"작곡..한다고 그랬지? 그럼 피아노로 작곡 하겠구나."
"...어."
씁쓸하군. 저여자는 아직 내 사정을 모른다.
갑자기 허기를 느껴 그여자가 가지고 온 쟁반위에 담긴 과일들을 하나 둘 집어먹었다.
"난..솔직히, 믿어지지가 않았어. 니가 'Happy Voice'의 보컬이 되어달라고 부탁했을때 말이야.
기뻣어. 이걸로 너와 조금은 가까워질 수 있겠다. 해서..
이왕 된거, 부족한 실력이지만.. 나 열심히 할게. 세연이가 날 '누나'로 불러준 답례로 말이야."
....
나는 그여자의 말에 마땅히 대답할게 없어 그냥 묵묵히 과일만 퍼먹었다.
그여자는 그런 내모습을 흐뭇히 지켜보더니,
매만지기만 하던 피아노 건반을 지긋이 눌러 소리를 냈다. 그러다가,
"나 세연이가 피아노 치는거 보고싶다. 쳐줄래?"
........
푹. 가느다랗지만 예리한 바늘이 가슴에 박히는 느낌이다.
굵다란 대못이 박히는것 보다,더 쓰리고 아프다.
"...못 쳐."
나는 애써 태연한 척, 굳게 다물었던 입을 떼었다.
그여자의 눈이 예상했던 대로 동그란 모양으로 커졌다.
"왜..?"
"일년전에, 오토바이 타다가 사고 났거든. 갈빗대가 부서지고,
오른쪽 다리뼈는 완전히 골절, 무엇보다 치명적이였던게 두 팔이였어.
뼈들이 다 으스러져서 그냥 부서진것보다 심했지. 지금 움직일수 있는것만으로 기적이야.
어쨌든.. 그 사고로 인해 큰 수술을 했고, 수술 휴우증로 '수전증'이 온거야.
조금만 무리해도 팔 전체가 흔들리는데, 피아노를 칠 수 있을리가 있겠어?"
그여자는 못들을걸 물어봤다는듯 고개를 떨구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미...안.괜한 걸.. 물었구나."
"....됐어. 어짜피.. 알게 될 사실이였을거야."
아무래도 다운되어 있던 분위기가 한층 더 다운되버렸다.
암울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낯설어 하던 그여자는 분위기를 전환시키고자
환한표정으로 탈바꿈하고 말을 꺼냈다.
"아, 그럼... 작곡은 뭘로 하는거야? 요즘엔 컴퓨터로 작곡한다든데..
음.. 아니면 순전히 머릿속으로만 그려내서 하는거야?"
.....그 질문은.. 분위기 전환은 커녕 더 다운시켜버릴것 같은데.
"...피아노가 아니면 못 해. 그게 내 작곡방식의 단점이야.
그래서 슬럼프까지 빠져서 오랜기간동안 작곡을 못했어. 오토바이 사고가 난 후로 한번도."
그여자가 잠시 주춤했다. 또 괜한걸 물었구나.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뭔가 생각이 떠오른듯 다시 입을 놀린다.
"..그럼, 다른사람보고 부탁하면 되잖아?"
..흥, 그러고 보니 생각해보지 않았던 방법이다.
아니, 생각해 볼 가치도 없다.나는 자기중심주의적이라서 내가 작곡중인 곡을
다른 누군가가, 그것도 피아노로 친다는것을.. 상상하기조차 싫은 일이다.
"그런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해. 그리고 내가 직접 쳐야지 제대로 느낌이 온단 말이야."
"..피, 그런게 어딨니? 해보지도 않고서 그러는거야?"
"해 보기도 싫어. 이건 초상권 문제야."
"어머.. 별게 다 초상권 문제다."
"....뭐?"
내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심기가 불편한 표정을 지어보이자,
그여자는 아예 피아노의자에 앉아 피아노를 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나 피아노 칠 줄 알아. 내가 도와줄테니까 해보자. 해보지도 않고서 포기하는건
너무 나약한 일이잖아? 'Happy Voice'의 미래도 달려있고 말이야. "
...이제껏 내가 들어왔던 이여자의 발언 중에서 가장 열받는 말같군.
하지만 어째서일까, 저여자의 웃는얼굴이 밉지가 않다.
내 눈에는 항상 저여자의 웃는얼굴이 삐뚤어진채로 비쳤는데.
"응?응? 하자~~ 해보자. 나 여섯살때부터 피아노 학원 다녀서 꽤 잘쳐~"
.....한 번정도는, ..허락해줘볼까.
.....
나는 구석탱이로 던져버렸던 음악노트를 집어 그여자에게 건네주었다.
"일단.. 여기 주요음 부분만 쳐봐."
"어엇..세연아! 허락해주는거야?"
"...들어보고 결정할거야. 일단 쳐보라고, 잘 친대매. 못 치기만 해봐."
그여자는 빙긋 웃어보이는걸로 대답을 대신했고,
음악노트를 펼쳐놓고 연주를 시작했다.
소리에 집중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
................
..
"...!"
피아노소리에 집중하며 귀를 기울리던 나는,
다시한번 그여자에게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아직 미완성인 악보인데도, 내가 원하는 대로, 척척 맞추어 연주하고 있었다.
마치, 내마음을 읽는것 처럼.
...그제서야 나는 깨달았다.
이여자는 나를 위해서 존재한다는 사실을.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만한 생각이지만, 이여자야말로 내가 원하는 모든것들을
손에 쥔 사람이다. ..절대 놓쳐서는 안된다.
알 수 없는 흥분감에 심장이 터질듯이 뛰고 있다.
식어버렸던 열정이 다시 불타오른다. 그래, 그 느낌이였다.
뜨겁다. 그 기분좋은 타오르는듯한 뜨거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연주가 끝나고 나서, 나는 '그녀'의 손등을 맞잡아 들어올려,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쌩뚱맞은 행동임에도,그녀는 동요하지 않았다. 그저 온화한 미소만 띄우고 있을 뿐.
"...앞으로.. 계속 부탁할수 있을까."
그녀는 그 말이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아직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녀는 놓치고 싶지 않은 '꿈'일 뿐이다.
...............
..
그녀의 도움으로 작곡은 삽시간안에 완성했고, 'Happy Voice'는 다시 일어섰다.
이미 고등학교는 졸업해 대학교를 다니고 있는 그녀를 우리밴드의 정식 구성원으로 넣기위해
교장에게 직접 허락을 받았다.
남학생들만 이루어진 고등학생 밴드에서 대학생인 여보컬라니,
굉장히 파격적인 컨셉이라 허락 맡는 일이 쉽지 않았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식으로 밀어붙이기 까지해서 결국 허락을 받아냈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 두려워하지 않고 쉽게 적응해나갔다.
밤늦게 까지 계속되는 연습에도 불평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정 'Happy Voice'를 사랑하는것 같았다.
어쨌든,
처음 새로운 노래를 선보이던 날,
우리는 우리학교의 강당에서 공연했다.
거의 죽어가고 있었던 'Happy Voice'의 새로운 노래,
새로 들어온 여보컬..이라고 해서
교내 학생들 말고도 엄청난 인파가 쏟아져들어와 그 큰 강당안이 사람들의 머리통으로
꽉꽉 메꿔질정도였다.
그만하면 긴장할만도 할텐데,
"안녕하세요~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Happy Voice'의 새로운 여보컬, 양은주라고 해요~ 나이는 꽃다운 스무살!
소개는 이쯤해도 되겠죠? 그럼, 출발합니다!
제목은 '슬럼프'. start!
'어느 날, 그 어느 날, 달갑지 않은 친구가 찾아왔어.
그 친구는 자기를 '슬럼프'라고 소개했지.
난 왜 나를 찾아왔냐고 물었어.
그러자 '슬럼프'가 말했어.
널 혼란에 빠뜨리고 싶어서야!
난 혼란에 빠졌어. 슬럼프에 빠졌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무서워,두려워, 이런건 정말 싫어!
♬
그 언제쯤 '슬럼프'와 절교할 수 있을까.
난 '슬럼프'에게 어서 떠나라고 말했어.
'슬럼프'는 내 애원을 들어주지 않았어.
오히려 이렇게 말했지.
니가 그럴수록 난 더 널 괴롭히고 싶어져!
난 혼란에 빠졌어. 슬럼프에 빠졌어.
아무것도 잡히지 않아. 아무것도 할수가 없어.
괴로워,숨막혀, 이런건 정말 싫어!
아니야, 괜찮아. 난 극복할 수 있어.
쫓아낼거야. '슬럼프'를 쫓아낼거야.
결국 '슬럼프'는 날 떠나갔어.
난 웃으며 '슬럼프'를 배웅했지.
안녕! 잘가! '슬럼프' 다시는 찾아오지 마.
영원히 good bye, bye, bye.' "
*
그녀는 무대에서도 전혀 긴장하지 않고 완벽하게 공연했다.
그리고 결과는 대 성공이였다.
사람들의 함성소리와, 온몸을 뜨겁게 달구는 열정을 되찾았다.
그 때, 나는 벅차올라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비록 내가 저 무대에 서지는 못하지만, 사람들의 갈채박수와 함성소리. 그걸로 만족했다.
비로소 내 심장이 뛰는 느낌이 되살아났고,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모든것들이 내가 살아야 할 이유다.
이것들이 날 흥분하게 하는 이상, 내 심장은 끝까지 뜨겁게 뛸 것이다.
........
..................
슬럼프의 탈출과, 어떤 노래든 소화해내는 완벽한 여보컬.
시간이 가면 갈수록, 우리는 유명세를 떨치게 되었다.
수많은 매스컴전선을 타고, 팬클럽 형성, 그로인해 딸려오는 명예까지.
이렇게 순식간에 상황이 반전되다니.
너무 갑작스럽게 온 행운에 두려워질 때가 많다.
그리고 그 두려움은, 적중했다.
..................
.............................
그저, 평범하기만 한 저녁 때쯤.
나는 한가로이 담배나 태우며 느리게 서쪽산으로 사라져가는 노을을 감상하다가
곧 그녀가 연습실로 올 시간임을 알고 연습실을 향해 내려갔다.
연습실 안은 아우성소리로 시끌벅적했다.벌써 그녀가 온 모양이였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보니, 작은 장미꽃다발을 받아들고 수줍게 미소짓고 있는 그녀와,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은 유 영, 그리고 생일폭죽을 터뜨려대며 난리법석을 떨고있는
나머지 녀석들이 보였다.
..
이거, 뭐하자는 시추에이션일까.
아니,다른 얼간이 같아도 금방 알 수 있는 상황이였다.
.... 갑자기 가슴 한구석이 쑤셔온다.
한참 원맨쑈를 펼치고 있던 송경주가 이제서야 날 발견한 듯
드럼스틱을 쥔 손을 나에게 흔들어보였다.
"세연이 왔냐!! 방금 염장지르는 커플이 탄생하셨다!!
은주누님이 영이 새끼의 프로포즈를 받아들였다는 말씀!! 꺄울!! 우리 세연이 매형 생긴거야?!"
....
하아? 그래, 어짜피 이 뻔해먹은 스토리는 이해하고 있었어.
영과 그녀가 똑같은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빨갛게 상기된 얼굴로.
'축하해'라는 말을 원하는 것일까.
...속이 뒤틀리는군. 이유는 모르겠지만 구역질이 치밀어오르는것 같아.
....젠장, 역겨워. 뭐지, 이 역겨운 느낌은.
-쾅.
나는 감정을 담아 문을 닫아버리고 연습실 밖으로 나와버렸다.
이대로 있으면 미칠것 같아서 얼른 담배 한개피를 꺼내 입에 물었다.
하지만 담배에 불을 붙여도, 그 매쾌한 연기를 힘껏 들이마셔도
진정 되질 않는다. 특히... 이 떨리는 손이.
그 때, 누군가의 그림자가 다가왔다.
그게 누구인지 단번에 알수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담배를 떨어뜨려 발로 짓이겨버렸다.
"...뭐가 그렇게 화가 난거니?"
그녀가 먼저 입을 떼었다.
...아는 척은 지지리도 잘하는 여자.
"..누가 화났다는 거야. 화 안났어. 그냥 화약냄새로 가득한 연습실이 답답해서 나온거야."
"세연이는 항상 자기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화 났잖아. 인상부터 확 구기고 있으면서."
"...."
바로 인상을 피는 나를 보고, 그녀가 풉, 하고 웃는다.
무안함에 나는 헛기침을 한번 하고 말했다.
"..그래, 화 났어. 마음에 안들어. 명색이 밴드를 거의 이끌어 가는 보컬이라는 여자가,
같은 밴드의 기타리스트랑 연애질이나 하는모습을 보고있기가 힘들것 같거든.
불건전해. 인정 못한다구. 누나한테 실망했어."
"나도 그점은 감안하고 있어. 절대 밴드에 소홀해지지 않을거야."
"..."
"약속할 수 있어. 이제 'Happy Voice'는 내 인생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버렸으니까."
...그런게 아니야. 라고 내 머리가 아닌 마음이 소리친다.
무시하고 싶다. ..이제껏 유지해온 감정의 밸런스가 불안정하게 흔들리고 있어.
이러면 안되는거잖아. 양세연.. 이 병신같은 놈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거야. 저런 여자.. 누구랑 사귀든 내가 무슨상관이냐고.
"...그럼.. ..됐어. "
나는 그렇게 짤막히 말한 뒤,그녀를 빠르게 제치고 다시 연습실로 내려갔다.
더이상 그녀의 얼굴과 마주하다가는.. 알 수없는 감정의 뒤틀림이 폭발할것 같았다.
그리고 끝내, 축하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
...................
늦은 밤.
시계는 벌써 새벽 세시를 가르키고 있지만, 나는 도저히 잠에 들수가 없다.
작곡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그냥 멀뚱히 침대에 누워있기만 한지도 네시간이 지났다.
꿈틀,꿈틀. 가슴속에서 자꾸 이상한게 꿈틀거린다.
특히 다정하게 서로 꼬옥 붙어있는 양은주와 유 영의 모습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심장이 구역질이 올라올 만큼 분노하면서 빠른템포로 뛰고있다.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아. 두사람의 웃는 얼굴이.
...이유도 모를 초조함에 갈증까지 왔다. 목구멍이 바싹바싹 마른다.
나는 조심스럽게 방에서 나와 거실에 있는 냉장고로 향했다.
거기서 물병을 꺼내 그대로 마셨다. 꿀꺽,꿀꺽, 소리까지 내면서 마시고 나니
한결 나아진 것 같았다.
"무슨 물을 그렇게 급하게 마시니?"
-흠칫.
갑자기 등장한 그녀의 목소리에 그만 물병을 떨어뜨릴뻔했다.
목소리가 난쪽을 돌아다보니,희미한 달빛에 살짝 비친 그녀가 보였다.
"...깜짝이야. 무슨 인기척도 없이 오냐."
내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하자, 그녀가 빙긋 웃으며 내손에 들려져 있던
물병을 가로채 역시 그대로 병째 마셨다. ...그런데, 그거 내가 입댄거잖아.
그녀는 물병을 싸악 비워버렸다. ..할 말이 없군.
그녀가 물로 채워진 배를 만족스럽게 통통 쳤다.
"나도 갑자기 목이 말라서 말이야. 이제 좀 살 것 같다. 잠까지 깨버렸지 뭐야."
"..아, 그래. 나도 갑자기 갈증이 와서.."
"어라? 와~ 그럼 우리 통한거야?"
"..킥, 참 통할것도 많다."
"아우~ 잠도 다 달아났는데 우리 베란다나 나가서 바람이라도 쐴래?"
나는 말대신 그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녀도 빙긋 웃으며 나에게 몸을 맡겼다.
..........
"시원하다~ 밤바람 냄새는 참 좋아. 그치?"
그녀의 긴생머리가 바람에 찰랑거린다.
그녀가 쓰는 은은한 샴푸향이 바람을 타고 내 콧등을 간지럽힌다.
이제는 익숙해진 그 향기가 오늘따라 더욱 애틋하게 느껴진다.
밤은 사람의 감성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고, 감정의 기폭을 넓힌다.
그래서 지금은 내 정신이 아닌 것 같다. 세상에, 그녀의 샴푸냄새에 넋을 잃고 있다니.
그녀가 바람결에 휘날리는 머리칼을 쓸어넘기며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같이 베란다에서 바람을 쐴 줄이야. 몇개월전만 해도
상상할 수 조차 없었던 일이야."
"....그랬었지. 누나 목소리, 누나 피아노 실력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겠지."
"난 지금 니가 날 누나라고 불러주는것도 꿈같아. 비록 조건이하에 듣는 호칭이지만,
니가 처음으로 날 누나라고 불러줬을 때.. 나 정말 기뻤어. 날아갈 것 같았어.
이런 내 마음.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니?"
나는 피식, 힘없는 실소를 내뱉었다.
"글쎄.. 알고 싶지도 않은 걸?"
내 말에 그녀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치.. 퉁명스러운 건 아직 변하지 않았어."
"이게 내 성격인데 어떻하라고."
"그래.. 그게 니 매력이지. 요즘엔 까칠~하다고 하나? 하여튼 그 까칠한 성격의
남자들이 인기가 많다잖아."
"...그런가. 하여튼 여자란 족속들의 심리란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각자의 취향 나름이겠지~ 그런데 세연이 넌 여자친구 안사귀니?
넌 얼굴도 예쁘장~하게 생긴대다가 키도 크구, 은근히 다정한 면도 있잖아.
인기 되게 많을 것 같은데."
.....
순간, 말문이 턱 막히면서 가슴이 따끔거려왔다.
따끔.따끔. 기분나쁜 통증이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다.
"..누나는 영의 어떤 면이 좋아서 사귀게 됬어?"
"...!"
나는 그녀의 질문을 제치고 말았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질문이라는 듯 그녀의 두볼이 붉어져왔다.
이내,
"..으음...처음에는.. 별다른 감정은 없었어. 영이가 고백하기 전까지만 해도..
솔직히 나도, 영이의 특별한 무언가가 좋다는건 아니야.
단지.. 날 좋아해주니까.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너무 다정스럽고 예쁘게 느껴져서 그런거야.
난 아직도 영이에 대해서 모르는게 더 많지만.. 사귀면서 점점 알아가는것도
괜찮을거라고 생각해."
....
"단지.. 그것 뿐이야? 누나 마음은? 아직 영을 좋아하지 않는다는거야?"
"잘..모르겠어."
"그냥 영의 마음에 보답하려고 사귄다는 뜻이잖아. 그게 뭐야."
어느새,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흔들어 대고 있었다.
멈출 수가 없다. 내안의 무언가가.. 눌러담고 있던 무언가가 확 일어섰다.
그녀의 표정이 굳어가기 시작한다.
"세..세연아.."
"그런 마음으로 사귄다는 건 영한테도 실례라구. 좋아하는게 확실한것도 아니면서,
거절하기 미안하니까 덜컥 사귀어버린거야?"
"부모님 깨시겠어.. 왜 그러니. 왜 그러는거야."
"그럼 넌 너 좋다는 남자는 다 사귈거야? 지금 또 누군가가 너 좋다고 고백해오면
사귈거야? 고맙다고 사귈거냐구!!"
"세....연..아."
결국에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제서야 내 이성이 고개를 들었다.
거칠어진 숨소리와 그녀가 훌쩍이는 소리만이 귓가에 맴돈다.
나는 잔뜩 빨개진 그녀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그러자마자, 그녀가 얼른 나에게 떨어져 베란다 난간에 기댔다.
그녀의 온 몸이 바들바들 떨고 있다.
내가... 무슨 짓거리를 한거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까지 한 적은..
"..하.... ..미안.. 미안해. 나도 모르게.. ..정말 미안해. 누 나.
잠깐 정신이 홱까닥 했나봐. ..나.. 잠에 취했나봐. 자야겠어."
나는 머리를 매만지며 휘청휘청 거리는 몸을 이끌고 베란다를 나왔다.
그 때, ....인정 할수 없는.. 아니, 인정해서는 안되는 사실을 인정해버렸다.
...
나는 지금 지독한 상사병에 걸렸다.
나는 지금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있다.
나는 지금... 양누나인, 양은주를.. ...
사랑하게 되버렸다.
.............
.........................
그날 밤 이후,
달라진거라고는 없었다.
그녀는 평소와 똑같이 날 대했다.
열받을 정도로 말이다. 언제나 처럼 빙긋 웃으며 나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를 완강히 거부해버렸다.
몇개월 전, 그녀에게 못되게 굴었던 내 모습으로 돌아와버렸다.
지금의 내모습이 추하다는건 알고 있다.
억지스러운 투정과 심술을 동시에 부리는 어린아이 같다는건 알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랑을 하면, 그것도 이루어 질수 없는 사랑을 하면,
누구든 유치해지는대다가, 추해진다.
나도 지금 가질 수 없는 사랑에 미쳐가고 있는 사랑의 노예에 불과하다.
그 사실이 몸서리 쳐질정도로 꺼림칙하다.
...........
결국, 나는 연습실에도 내려가지 않게 되었다.
완벽히 삐뚤어진 셈이다. 그녀와 대화를 끊은 지도 일주일이 넘어간다.
내가 이렇게 억지를 부려봤자, 그녀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쯤은 냉정한 머리가 판단하고 있었다.
...왜 하필 그녀일까. 왜 하필 그여자가.. 내 심장을 차지해버린걸까.
빌어처먹을 역겨운 운명의 장난이여. 왜 나를 이렇게도 괴롭히는 거지.
지지리도 견디기 힘든 모든 수업이 드디어 막을 내렸다.
나는 귀찮은 녀석들이 나를 찾아오기 전에 얼른 가방을 매고 도주할 준비를 단단히 했다.
핸드폰 배터리는 빼놓은지 오래다. .. 이 심술이 언제까지 갈 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유 영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다.
만약 그녀석의 얼굴을 본다면 주먹부터 날아갈 것 같다.
...........
.................
다행히도 녀석들과 마주치지 않고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나를 반겨주셨다. 나는 '다녀왔습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만 올리고
만약 친구들한테 전화가 오면 난 없다고 전해달라고 부탁드리고는 방안에 처박혔다.
...
평소엔 흥미도 안붙인 컴퓨터 게임에 억지로 빠져보려고 노력하길 이십분.
..때려치워버렸다. 미세하게 떨려대는 손이 엄청나게 거슬렸기 때문이다.
덕분에 기분만 더 잡쳤다. 나는 잠긴 문을 확인하고 담배를 꺼냈다.
담배에 불을 붙이기 직전,
-쾅쾅!
'세연아. 세연아!!'
다급한 어머니의 목소리.
뭔가 심상치 않음을 단번에 느끼고 바로 문을 열어드렸다.
어머니는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경련을 일으키는 듯한 몸짓으로 쓰러지려고 하셨다.
나는 얼른 어머니를 지탱해드렸다.
어머니는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말하셨다.
"...은주가... 은주가... 방금.. 쓰러졌다고.. 연락이 왔다.
그...그... 밴드.. 연습을 하다가.. 갑자기...쓰러졌다고..."
.....
눈앞이 캄캄해진다.
나는 책상서랍을 뒤져 오랫동안 묵혀놓은 오토바이 키를 찾아들고,
"..어머니는 아버지한테 연락하세요."
반쯤 풀어헤친 교복와이셔츠 바람으로 현관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
미친듯이 달려서 사고가 난 후, 쳐다보지도 않던 오토바이에 몸을 실었다.
시동을 걸면서 핸드폰에 다시 배터리를 끼워넣고, 유 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바로 전화를 받는 녀석.
'야, 이 미친놈아. 여태껏 뭐하느라 핸드폰도 꺼놓은거야?!'
"잡소리는 나중에 지껄이고, 지금 어디야. 어디야!! 양은주 어딨어!!"
'여기 여의도에 있는 성모병원 응급실이야. 빨리와, 미친새끼야.'
불필요한 말은 필요없다.
핸드폰을 대충 바짓주머니에 쑤셔놓고, 오토바이를 전속력으로 몰았다.
............
미친속도로 질주해 병원 응급실에 도착.
나는 오토바이 키를 그대로 끼워둔 채, 응급실 안으로 들이닥쳤고,
바로 녀석들의 튀는 색깔의 뒤통수가 눈에 띄었다.
한 침대를 둥그렇게 원을 만들어 에워싸고 있는 녀석들.
나를 제일 먼저 발견한 건 강의재였다.
녀석은 잔뜩 충혈된 눈으로 터덜터덜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어깨에 얼굴을 파묻었다.
나는 그런녀석의 머리언저리를 토닥토닥 문질러주고는, 양은주가 누워있는 침대로 향했다.
창백한 얼굴은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있었다.
...그냥 예삿일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녀석들이 이렇게 의기소침해 하는 이유를..
"......많이..심각하대냐."
조용한 내 물음에, 노국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그런가봐. ..방금.. 영이가.. 의사한테 불려갔어."
.....단숨에 주먹이 쥐어진다.
...유 영. ..왜 하필 그새끼가..
후우..이 상황에도 질투에 울컥하다니. 양세연, 너란 놈은..
암울하다 못해 침울하기까지 한 이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송경주가 특유의 밝은 목소리로 우리를 위로했다.
"..뭐...의사한테 불려갔대도, 괜찮을거야! 별거 아닐거야. 은주누나 쌩쌩했잖아!
이정도로 죽지않아! never die!! 단순한 과로일거야. 암, 그렇고말고!"
녀석의 말에, 의재도,국현도,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괜히 한번 쓰러진거 가지고 오버는~ 의사쌤도 참~"
"우리 은주누나 깨어나면 뭐부터 먹이러 가자!!"
녀석들이 한껏 웃음충전을 하는 동안, 저 멀리서 유 영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경주가 바로 뛰어나가서 영의 어깨에 팔을 들처맸다.
"영아! 뭐래냐? 별거 아니래지? 단순한 과로래지?"
"....."
영은 아무 말 없이 입술을 꽉 깨물고 다짜고짜 내 손목을 잡아 끌었다.
"...뭐야, 이새끼야."
".....너부터... 알아야 될 것 같아서."
영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입술에 피가 새어나올 정도로.
나도 아무 말 않고 일단 영을 따라가기로 했다.
영이 내 손목을 붙들고 간 곳은,
콧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늙은 노년의 의사가 자리잡고 있었다.
"...양은주 환자분, 보호자 되십니까?"
의사가 근처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는 손짓을 하며 물었다.
"...그런..데요."
나는 영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손에 깍지를 끼었고, 이내 말을 이었다.
"안타깝게 됐습니다."
"....뭐가.. 안타깝다는 겁니까?"
"환자는 지금 후두암 말기에 들어섰습니다.
지금까지 목소리를 낸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할 수 있죠.
지금 당장 수술한다고 해도 .. 살 가망은 거의 없을것 같군요."
........
영은 눈시울을 가득 적신 채 고개를 숙여버렸다.
...그런데... 이게 지금 무슨 소리지?
이 노친네가... 나한테 뭐라고 지껄인거야?
"...그게... 무슨 소리... ..그럴리가 없잖아요.
어제까지만 해도 그여자.. 잘만 얘기하고.. 잘만 웃고.. 아무렇지도 않았다구요.
그거 그 병.. 담배 많이 피우면 걸리는 병 아니에요? 그 여자 담배 절대 안피워요.
술도 안마시구요. 몸에 해로운 짓은 절대 안해.
그런 여자가.. 어떻게 지금 후두암? 후두암 말기라는 거야. 당신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거야?
아니면 나이를 너무 먹어서 노망이 든거야, 뭐야?!
그딴 엉터리 진단이 어디있어!!!"
나는 의사가 앉아있는 유리테이블에 주먹을 꽃아버렸고,
의사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리는듯 싶었지만 깨져버린 유리에 베여 피가 새어나오고 있는
내 주먹을 살짝 감싸잡았다.
"..그 심정,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마 이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고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몇 안될겁니다. 하지만 현실을 인정하세요. 늦었습니다."
"...하, 뭐라는거야. 이 노친네가.."
"그녀는.. 이미 이 병원에서, 나에게 후두암 진단을 받은 지 오래입니다.
한 팔개월 전쯤이였죠. 수술을 하면 살 수 있었지만, 목소리는 잃어야 했죠.
운이 안좋게도, 성대와 밀접한 곳에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기 때문에
수술을 하면 성대를 모두 절제해야 했죠. 그녀는 목숨과 목소리 중에 목소리를 택했습니다.
그녀의 의지는 감히 제가 꺾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죠. 전 그녀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아마 암이 진행되는 동안, 그녀는 목소리를 낼 수도 없을만큼 힘들었을 것입니다.
다른사람 같았으면 음식을 삼키지도, 제대로 된 목소리 조차도 낼 수 없었을 겁니다.
전 그녀를 기적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녀같은 환자는 처음입니다.
당신들의 눈을 완벽히 속였을 정도라면.. ..그녀는 사람의 한계를 초월한듯 싶군요.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죠."
......
마침내 분노할 대로 분노해 버린 내 손은 의사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웃기는 소리 하지마!! 그럴리가 없다고 말했잖아!! 양은주는 지극히 정상이라고!!
그냥 과로로 쓰러진거라고 말해!! 말하란 말이야!!"
점점 창백해지는 의사의 안색을 본 영이 얼른 나를 제지하려 나섰다.
"양세연!! 진정해!!! 사람 하나 죽이려는 거야?!"
"씨발, 놔, 이새끼야!! 이봐, 말해. 말하라구.. 아까 그거.. 오진이라고 말해. 말해!!"
"양세연!!!!!"
..............
..................
몇시간 뒤,
나는 겨우 진정이 되서, 놀란표정으로 병원으로 달려오신 부모님을 맞았다.
의사의 진단을 들으신 부모님은 기절초풍을 하실 기세였고, 어머니는 아예 쓰러지셨다.
....아마, 모두 모르고 있던 모양이였다.
아버지는 쓰러지신 어머니를 응급실에서 돌보셨고,
나는 급한김에 입원해버린 그녀를 보러 그녀가 입원해 있는 병실로 찾아갔다.
입원실에는 이미 녀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두들 사실을 알아버렸는지 하나같이 눈시울이 빨갛다.
내가 오자, 녀석들은 알아서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녀는 의식이 돌아와있었다. 태연하게 빙긋 웃으며 나를 맞아준다.
"세연이...왔네?"
...그녀의 목소리는 믿을 수 없이 잔뜩 쉬어있었다.
이제서야.. ....힘든 연기를 그만 둔건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너...바보야?"
내 목소리도 잔뜩 메어버렸다.
"...치.. 또.... '너'래. ..누나라고 좀.. 불러주면 안돼?"
"....바보한테 무슨 누나야. 병신, 너 진짜 병신이지. 왜 사서 죽을짓을 해.
팔개월 전이면... 니가 우리밴드 보컬 맡았을 때잖아.
그딴 병 걸린거 알았으면 진작에 말해야 되잖아. 왜 목숨까지 팔면서 노래를 해,
그까짓 밴드가 뭐라고, 노래가 뭐라고!!!"
...벌써 눈물이 속눈썹을 적셨다.
마음은 벌써 오열하고 있는 상태다.
내 발악질에 갈곳을 잃은 그녀의 시선이 아까 유리테이블을 깨버려 깨어진 유리에
찢긴 내 손등에 머물렀다. 그녀가 힘없이 축 늘어진 손바닥으로 피로 얼룩진 내 손등을
감쌌다. 그리고 말했다.
"...너한테는.. 그까짓 밴드가 아니잖아. 그리고 나한테도.. 그까짓 노래가 아니였어.
난 니가 만든 노래를 부르면서, 진정으로 행복함을 느꼈어.
잔뜩 병든 내 목소리도, 밴드 이름처럼 행복한 목소리로 탈바꿈 하는것 같았지.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됬을때는.. 이미.. 너의 곡과, 멤버들의 연주,내 노래에
흠뻑 빠져있는 상태였어. 난 그 황홀한 중독에서 헤어나올 수 없었어.
목소리를 잃었다면.. 난 목숨은 건졌지만 죽은것과 다름없었을거야.
내가 여기까지 오게 된 이유를 알겠니? 바로 너희들과 같은 열정 때문이야.
그 열정이, 나를 버티게 했어. 독하게 버티게 했어."
"......."
"나.. 이렇게 될 줄..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거든.
우리 아빠도... 내가 세살 때,후두암으로 돌아가셨어.
수술 하고 나서 깨끗이 완치되신 줄 알았는데.. 암세포가 다른곳까지 퍼져있었던거야.
후두암은 유전적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
그녀의 말소리가 끊겼다. 그녀는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려줬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훌쩍이던 그녀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각오하고는 있었는데.. ..
나.. 후회 안 해. 지금까지.. 정말... 정말 즐거웠거든.
내 생에 최고의 전성기였어. 최고였어. 내가.. 'Happy Voice'의 보컬이 된건..
큰 행운이였어. ..고마워... 세연아, 나같은걸.. 보컬로 써줘서. 정말.. 고마웠어."
"...병신, 뭘 착각하고 있는거야?"
"....?"
"꼭 마지막인것 처럼 얘기하고 있잖아. 난 너 쉽게 못 보내.
넌 내가 찾고 있던 꿈의 이상형이야. 그 목소리도, 피아노 연주 실력도,
너 때문에 'Happy Voice'가 겨우 다시 일어서게 됐는데 이대로 널 보내 줄주 알아?
지금까지 악바리 처럼 견뎌온 주제에, 다 들켰다고 약한 척 하지마.
너 그렇게 연약한 여자 아니라는거 다 알고 있어.
그렇게 약하게 나오면 다시는 '누나'라고 안불러 줄거야.
알겠어? 누 나. 우리의 계약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녀의 눈물이 왈칵 쏟아져내린다.
나는 그녀를 내 품에 안았다.
...신이든,저승사자든, 다 덤벼봐.
이여자.. 절대로 안 건네줄테니까.
..............
나는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곡을 하기 위해서다. 최고의 곡을 만들어 보이겠어.
듣는이 마다 기분이 행복해 지는 곡. 내 도전의 한계까지,
......
작곡을 하는데에 도움은 당연히 녀석들에게 받았다.
우리는 거의 꼬박 하루를 연습실에서 보냈다.
새로운 작곡에 미쳐있는 우리가 수업따위가 안중에 들어올리 없었다.
그래서 학교측은 아예 우리를 자유롭게 풀어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수업을 제치고, 여유롭게 작곡에 심혈을 기울일 수 있었다.
............
그리고, 작곡을 거의 완성해 가던 어느 날,
우리는 다같이 그녀의 병실에 들렀다.
이제 그녀는 거의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게다가 몰라볼 만큼 비쩍 말라버린 몸이 유난히 눈에 띈다.
...어째서, 그녀는 병원에 입원하자 마자.. 이렇게 급격히 시들어버리는걸까.
마치, 새장안에 갇혀 자유로이 노래하지 못하는 작은 새처럼.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살아있는 미소만은 잃지않았다.
그 미소가.. 지금 유일하게 나를 안심시켜준다.
.......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떠나가질 않는 그녀의 병실을 잠시 담배를 피우러 빠져나왔다.
...내가 생각해도 요즘 난 심각한 것 같다. 이제는 담배 없이는 못살게 되버렸군.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러니까.. 니가 성대결절에서 못벗어나는거다. 미친놈아."
... 달갑지 않은 목소리 등장.
"담배때문에 이놈의 고질병이 안낫는다는 근거라도 있냐?"
나는 삐딱하게 서있는 채로, 유 영새끼에게 가운데손가락을 날려보였고,
영은 털털하게 웃으며 내옆에 자리잡고 섰다.
"뭐..굳이 근거같은거 안따져도 간단하게 생각해 볼수 있는 문제잖아.
담배는 좋은점이 하나도 없으니까, 목에 나쁜 영향을 전혀 안끼친다고는 할 수 없지."
...이 새끼가, 어디서 말재주를 굴리고 앉아있어?
"..담배도 좋은 점이 있어, 새끼야.."
영이 의아한 표정으로 '뭔데?'라고 물었다.
"내 마음의 유일한 안식처라고.. 이 담배가, .. 정말 미쳐버릴것 같을 때
이거 하나만 물고 있으면, 정말 신기하게 기분이 괜찮아 진다니까."
"....미친놈. 중독자가 되셨구만."
"..용건만 말하고 꺼져라.. 담배맛 떨어진다."
영은 잠시 망설이는 듯, 인상을 찡그리다가, 이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은주 누나한테 차였다."
.......
나는 얼마동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이 무안하고도 뻘쭘한 분위기에 초조한 마음으로 담배나 뻑뻑 피고 있을 뿐이였다.
그러다,
"....너네들은.. 뭐... 사귀는 것 같지도 않았어."
...라는, 개념을 국에 말아먹은 말을 지껄이고 말았다.
영은 내 말에 화가 난것 같지는 않아보였다. 오히려 씨익 웃어보였다.
"그냥.. 그렇게 알아두라고, 새끼야."
그렇게 말하고선, 내 등짝을 한번 힘있게 철썩, 하고 때리더니
도망치 듯 빠르게 병실로 돌아가는 녀석.
...존나 애교있네.
.....
저 새끼... ...
....내 마음을.. 눈치채고 있었나.
.....
어쨌든 그렇게 달가운 소식은 아닌것 같다.
나는 왜 그녀가 영과 헤어졌는지 알 수 있을것 같았다.
..당연하잖아. ...그 바보같은 여자.
..............
뭐든 정신없게 만들어 버리는 녀석들이 가버리고,
병실 안엔, 그녀와 나. 단 둘만 남아있다.
그녀가 나에게 할 얘기가 있다며 나를 붙잡아뒀다.
하지만, 어째서 인지.
...벌써 몇십분 째, 입을 열려고 하질 않는다.
"아,할 얘기란게 뭔데, 누님아."
결국 답답한건 못참는 내쪽에서 먼저 말을 꺼냈다.
그녀도 그제서야 말할 기분이 생긴 듯했다.
"...세연아, 요즘들어 나.. 굉장히..빠르게... 죽어가고 있는것 같지 않니?"
".....무슨 또.. 암울한 소리야."
"참... 이상해. 여기에 있으니까.. 더 몸이 아파오는 것 같아. 온몸이 이곳을 거부하고 있어.
나... 이런곳에서... 눈감고 싶지 않아."
....그녀는 뭔가 여운을 남기는 말을 끝내고, 내 눈과 마주쳤다.
아마, 그 다음의 말은 내가 이어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 같았다.
"...빠져나가고... 싶다고?"
그녀가 방긋 웃었다. ..예스라는 뜻이겠지.
....저 아름다운 미소에 홀려서는 안된다. 강해지자, 양세연.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세상에 묶어놔야해.
그녀와 눈을 맞추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돼."
...그녀의 눈썹이 울상을 만들어내 간다.
나는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갔다.
"지금 그 상태에서 병원을 나가는건 자살행위라는거 몰라?
난 그런꼴 못 봐. 괜한 짓 해서 누나가 내 눈앞에서 쓰러져가는거 못 본다구.
병 다 나을 때까지 여기서 한발자국도 못 나가게 할거야."
"...세연아.."
".....무슨 말을 하든지.. 절대 안돼."
"세연아..!"
-움찔.
처음이다. 처음으로 그녀가 나에게 화를 내듯 소리를 질렀다.
그래봤자 목소리는 가느다란 쇳소리를 내고 있을 뿐이였지만,
...
병실안이 쓸쓸한 공백을 되찾자, 그녀가 숨을 가다듬고 말했다.
"..나... ...곧 죽을 몸이라는거. 누구보다 니가 잘 알고 있잖아.
넌 인정하지 않으려는것 뿐이잖아. 그만 인정해줘.
니가 계속 그런식으로 나오면.. 난..저승에서도 편히 눈을 못감을거야."
"...그럼.. 눈감지마. 내가. 평생.. 저승으로부터 지켜줄게."
"..억지 부린다고 되는 일이 아니야. 내 운명은 이미 정해졌어.
난 그 운명을... 이런 곳에서 맞이하고 싶지 않아. 제발.. 내 마지막 소원이야.
연습실로.. ..모두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줘. 제발.."
그녀의 말을 듣지 않으려 두귀를 손으로 막아버렸다.
하지만 그녀의 다 꺼져가는 목소리가 계속 귓속에 웅웅댔다.
그 소리에 못이겨,그녀를 끌어안아버렸다.
그녀의 울음소리가 뚝 끊겼다.
나는.. 그녀의 귓볼에 입술을 갖다대어 살짝 키스했다.
움찔하는 그녀의 당황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지지만 멈추지 않았다.
천천히 입술을 그녀의 입술로 옮겨갔다.
그리고, 내 입술과, 그녀의 입술이 나란히 포개어졌다.
그녀는 저항없이 날 받아들였다.
짧은 키스가 끝난 후, 다시 그녀를 내품에 안았다.
"...양은주."
"응..."
"사랑해."
..........
그녀의 눈가가 내 어깨에 파묻혔다.
내 어깨는.. 그녀의 눈물로 흠뻑 젖어버렸다.
"...나....는....난..."
나는 흐느낌에 말도 제대로 잇지 못하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말 안해줘도 되. 넌.. 내가 널 사랑하고 있다는 것만 알면 되."
......
그녀의 앙상한 팔이 내 등을 감싸안는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말없이 꼬옥 껴안고만 있었다.
........
"...양은주."
"......응..."
"정말 미치도록 사랑하니까.. ..제발..떠난다는 소리만은 하지마."
...........
..................
부모님께는 정말, 정말로 죄송하지만..
결국 그녀를 업고 병원 안을 빠져나오고 말았다.
후우... 별 미친짓거리를 다하게 되는군.
그렇게 밤늦게 까지 불이 켜져 있는 우리의 연습실에 다달았고,
문을 열자마자, 놀란 토끼눈이 된 녀석들이 쏟아져나왔다.
녀석들의 시끄러운 아우성을 물리치고, 지쳐있는 그녀를 낡아빠진 소파에 눕혔다.
경주가 내 뒤통수를 후갈기며 말했다.
"개호로잡새끼야!! 너 은주누나를 납치해 온거냐?!"
나는 뒤통수를 매만지며 송경주를 확 째려봤다. 녀석, 뒷걸음부터 친다.
"씨파, 너 지금 내 뒤통수 갈겼냐? 납치라니, 그딴 저질스러운 언어 쓰지마.
난 누님이 원하시는대로 따라줬을 뿐이니까."
..
모두들 의심쩍은 눈초리로 그녀를 향해 시선을 모았다.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곡이 완성되면 즉석에서 공연해 주자구."
내 말에 녀석들이 힘차게 예스를 외쳤다.
세상에서,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노래를 만들어줄게.
..........
..................
녀석들은 정말 진지하게 작업에 임했고,
그녀는 그런 녀석들을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곡은 거의 완성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마무리만 하면 된다.
어서, 그녀에게 선보이고 싶다.
이 행복한 노래를. 내 모든 심혈을 기울여, 만든 노래를.
.......
그리고,
어느새 밤을 홀딱 넘겨, 따사로운 아침햇살이 작은 창문을 향해 들어오고 있었다.
밤샘작업으로 작곡은 완성 됬다. 이제 직접 연주를 하며 녀석들과 호흡을 맞춰보면 된다.
그녀에게 노래를 부탁하는건 무리일 테니, 노래는 조금 힘들겠지만 내가 하기로 했다.
나는 들뜬마음으로 완성된 악보를 들고,잠들어 있는 그녀곁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녀는 죽은듯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 감격스러운 순간은 지금 느껴야 한다.
"누님. 일어나봐, 방금 작곡이 완성됐어. 완벽해, 내가 만든 곡 중에서 최고야.
빨리 봐봐. 일어나보라니까."
....
아무리 그녀의 어깨를 흔들어 봐도, 그녀는 눈을 뜨지 않았다.
곧이어,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그녀를 지키지 않은 사이, 누군가가 그녀를 데려가 버렸다고.
"...양은주, ..은주야. 잠깐만.. 잠깐만이라도 일어나봐. 완성됐다니까.
이 곡, 진짜 환상적이야.들어줘, 제발. 일어나서.. 들어줘."
나는 더이상.. 그녀에게 억지를 부릴 수 없었다.
점점 싸늘해져가는 그녀를 붙들고, 바르르 떨고 있는 나를 보고,
녀석들이 자다말고 일어나 이쪽으로 달려와, ..그녀가 떠났다는 것을 알고,
연습실 안을 울음바다로 만들어 버렸다.
조용히 손으로 이마를 받치고 흐느끼는 영.
바닥에 엎드려서 오열하는 경주.
그녀를 흔들며, 일어나라고 울부짖는 의재.
벙찐 표정으로 그럴리가 없다고 중얼거리다가 울음을 터뜨려버리는 국현.
녀석들은 세상이 떠나갈 듯 울었지만,
..
나는.. 끝까지 울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우아하다 싶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그녀는 절대로 아픈모습을 우리에게 보인적이 없었다.
병마가 괴롭혀대는 고통에도 단한번 표정을 찡그려보인적이 없었다.
그저 조용히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언제나 여유롭게 웃고 있었다.
그녀는 우리를 끝까지 우리를 배려했던것이다.
몸이 견딜 수 있는 한계가 초월해 버린지 오랜데도.
그녀에게는 역시 '완벽'이라는 단어가 어울린다.
너무 완벽해서.. 그걸 질투한 하늘이 데려가버린 것일까.
아니면 내가 그녀를 완벽하게 가지기 전에 데려가버린 것일까.
그녀와 내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기도 전,
...........
너무 성급하게 데려갔으니까.
....
나는 아직까지 그녀에게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을 듣지 못했다.
하지만, 내 마음대로 생각하려고 한다. 아마, 그녀는 내가 생각한대로 말하려고 했을것이다.
...........
.................
그녀의 장례식이 끝나고, 우리는 제각기 위치로 돌아왔다.
우리는 할 일이 남아있었다. 하늘끝까지 가버린 그녀에게 선물을 보내는 일.
........
얼마만이지.
보컬로서 무대에 서보는게.
나의 오랜만의 재등장에, 자질러지게 소리를 질러대는 극성의 여성팬들.
나는 마이크를 손에 쥐었다. 차가운 감촉이 손바닥안으로 들어온다.
...똑같이 이자리에 섰었던 그녀와 한몸이 된 느낌이다.
"오늘은.. 나 말고도, 우.리.가 정말 심혈을 기울여 만든 곡을 선보일까 합니다.
이곡은 특별히.. 너무 빨리 저 하늘로 날아가버린 작은새를 위해서 만든 곡이죠.
다들, '양은주'라는 이름을 'Happy Voice'가 이곳에 존재하는 이상, 기억해 주십시오.
제목은.. 'Happy Voice'. start."
.....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질 권리가 있어.
세상이 날 집어삼킬 기세로 덤벼들어도,
나는 끝까지 행복한 목소리로 노래할거야.
happy voice! 행복한 목소리는 행복을 불러오지.
happy voice! 누구든 일단 소리 높여 노래 불러봐.
정신없이 노래에 심취해있을 때에는,
어느새 니가 행복해져 있다는 사실을 느낄거야.
♬
인생은 그렇게 고달픈거야. 무너지지마.
불행이 있으면 반드시 행복도 있는거야.
믿어봐, 믿어도 되. 자, 다 함께 불러보자구!
happy voice! 이 주문을 있는 힘껏 외쳐봐!
happy voice! 주문을 외우는 순간 행복해져.
세상이 행복함이라는 술에 취해버릴때까지,
우리는 happy voice로 노래해야해.
자신있게 행복을 외쳐봐.
happy voice는 이미 너의 소유.
모두가 가지고 있어.
우리는 행운이 아닌 행복을 바라고 있어.
우리는 영원히 happy voice!"
...........
"꺄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아!!!!!"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들의 함성소리.
...이 노래와 함성소리를 너한테 바친다.
듣고 있어? 우리의 노래를, 우리가 너에게 보내는 노래를.
나는 사후세계나 환생같은걸 믿지 않지만, 너한테만은 미신이라도 통하게 하고 싶어.
이 곡이 마음에 들었으면, 너도 가끔 보답해줘.
귓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을 너라고 생각할게.
휘잉~ 하고 기분 좋은 소리를 내면서 스쳐지나 갈때,
그 때, '이 곡, 마음에 꼭 들어.' 라고 말하는걸로 알게.
......
바람이 분다. 이곳은 강당 안. 실내임에도 바람이 분다.
열정과 땀으로 젖은 머리결을 바람이 시원하게 식혀준다.
그녀가 왔다. 이 노래를 들어준 것이다.
-휘잉~
'이 곡, 정말..마음에 꼭 들어. 세연아.. ..세연아.'
그녀의 목소리도 들린다.
나는 그제서야 눈물을 흘릴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주저앉아 흐느끼는 나에게,
녀석들은 들고 있던 악기들을 내려놓고 조용히 다가와.
나를 감싸안아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어루만져주고 있었다.
카페 게시글
인소닷단편소설
[단편]
[김여자님] Happy Voice.
김여자님
추천 0
조회 558
07.02.28 05:27
댓글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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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대단해요!그러지말고 장편쓰시라니까요ㅜㅜ
아아 안녕하세요 라익후러브님^^ 사실 저도 이 소재를 가지고 언젠가는 장편을 써볼까 하고 생각중이랍니다. 좀 여운이 남아서요..지금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힘들것 같지만요; 이번에도 감상평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아...........님짱이에요
눈초비님 반갑습니다.^^ 한없이 부족한 소설에 '짱'을 날려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기나긴 내용이 지루하지는 않으셨는지 살짝 걱정이 되네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정말 오래간만에 울어보는 것 같아요. 막 뭐라 표현할 수 없게 뭉클하구요. 정말 잘 읽었구요. 앞으로도 이런 소설 기대해도 괜찮죠? 건필하세요!!
파란형광등님 반갑습니다.^^ 아.. 소설을 보고 우셨군요. 괜한 죄책감이 드는걸요^^; 그만큼 재밌게 읽어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파란형광등님의 기대에 뒤쳐지지 않게 더욱 노력해서 그 결과물을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건필할게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단편을 읽으러 올때마다 김여자님 글이 없어서 언제 오시려나 했는데..감탄..또..감탄..이에요..말로 표현을 못하는..
동욱러브님 안녕하세요^^ 이번엔 공백기간이 좀 길었죠. 소설은 쓰고 싶은데 도저히 짬이 나질 않더라구요..^^ 제 소설을 기다려주셨다는 말씀인데, 감동먹었습니다.ㅜㅜ 감사합니다. 조만간 또 찾아뵐게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와 ㅠ 진짜 진짜 감동적입니다 . 울트라캡숑슈퍼짱짱이에요 ㅠ 진짜 장편한개 쓰세요 그 언제라도 제가 달려가서 읽겠습니당!!
휘르바람님 반갑습니다.^^ 딱 제가 컴퓨터를 끄기전에 휘르바람님의 감상평을 발견! 언젠가는 장편도 꼭 도전해보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휘르바람님 글솜씨도 울트라캡숑슈퍼짱짱!이더군요. 건필하시구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아아...감동적이에요...ㅠㅠ
하녀기님 반갑습니다.^^ 자칫 지루할지도 모르는 소설을 감동적이라고 표현해주시니 저도 감동이 밀려오는군요 ^^ 감사드립니다.언제나 행복하시길^^
우아ㅜㅜ증말 잘쓰십니다.정말 감동이예요. 정말 김여자님 본받아야할것같습니다 . 전 언제 김여자님처럼 쓸수있을까요. 전아직 부족한가봅니다. 정말 윗분님들말씀처럼 장편쩡말꼭쓰세요! 김여자님 항상건필하시고 좋은하루되세요!
예뽀예뽀님 반갑습니다.^^ 본받아야할것 같다니요; 제가 볻받아야 할 작가님들이 훨씬 많은걸요 ^^.. 예뽀예뽀님의 소설을 아직 못본것 같은데 언제 한번 올리시면 바로 보겠습니다.장편은.. 시간적여유가 생기면 도전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건필하겠습니다.언제나 행복하시길^^
어익후..님아.......진짜 장편쓰시면 맨날맨날 확인하고볼께요..보는내내눈물이..........ㅜ^ㅜ......엉엉엉..진짜 가슴이뭉클하네요...ㅠ_ㅠ..
하늘빛무지개님 안녕하세요.^^ 요즘 단편소설방에서 자주 뵙네요~ 으음.. 장편은 아직 짬이 잘 안나서 나중에나 올릴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꼭 도전하고 싶습니다. 이번 결말은 너무 후딱 끝내버린것 같아서 슬픈느낌이 덜할것 같았는데 대부분의 독자님들이 슬프다고 하시네요..^^; 언제나 행복하세요^^
너무 슬퍼요ㅠㅠㅠㅠㅠㅠ
파란호랑이님 반갑습니다.^^ 닉네임이 참 신비로워요. 그만 우세요~ 하하^^; 소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김여자님 몇살이세요,혹시?! ㅜ^ㅜ 아정말 김여자님 소설볼때마다 맨날 감동먹고 싸해지고....꼭 장편 해보세요 정말!!! 그럼 제가 맨날 읽어드릴텐데....으휴 정말 기대한만큼 저버리시지않는군요, 님 최고에요 정말...ㅜ^ㅜ
반공윤님 안녕하세요.^^제 나이는 쪽지로 살짝 보내드렸습니다. 저도 반공윤님 소설을 볼때마다 항상 새로운 감동을 받는답니다. 장편은.. 많은분들이 장편을 응원해주시는군요^^ 그 마음에 보답해서라도 나중에 꼭 써봐야하겠는걸요? 매일 소설 읽어주시고 감상평 남겨주셔서 감사드려요. 언제나 행복하시길^^
와아아아 ㅜ . 김여자님 . 저 정말 님소설 팬이에요. 어쩜 이렇게 글을 잘쓰시는 지..... 정말 부럽습니다 . 같은 작가로써 .... ... 아아 , 갑자기 엄청 슬퍼지는 . 님의 드문드문 나오는 소설을 위해 늘 단편소설방을 오가는 .....;ㅁ;.
유레카님 안녕하세요.^^ 제 소설을 언제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전 유레카님이 부러워할 정도의 실력이 못되는걸요; 제가 오히려 유레카님의 실력을 본받아야죠^^ 아.. 제가 너무 단편소설방에 얼굴을 안비치죠^^; 다음에는 더욱 실력이 나아진 소설 들고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삭제된 댓글 입니다.
종이인형님 안녕하세요^^ 또 뵙는군요. 밑에 종이인형님의 소설. 잘 봤답니다^^ 장편은 시간적 여유가 생겼을 때 꼭 연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와역시 김여자님이에요 ㅠㅠ!!!!이번소설도 짱재밌어요 ㅠㅠ 완전 잘쓰시네요 ㅠ^ㅠ!!!!!!너무 슬픕니다 ㅠㅠ 장편쓰셔도 완전 대박날꺼같은!!후후 여자님 소설은 정말 하나하나 재밌고 정말 마음에 듭니다!!ㅠㅠ~꼭장편쓰세요!
린짱님 안녕하세요^^ 재미있게 읽으셨다니 다행이네요^^.. 이번편은 스크롤의 압박때문에 걱정했는데; 아, 전 아직 잘쓸려면 멀었답니다; 많은 분들이 장편을 응원해 주시는군요; 나중에 꼭 쓰겠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멋있다멋있다멋있다.....이말밖에 안 나와요.완전 감동이에요ㅠㅠ
눈뎅이님 반갑습니다.^^ 이 부족한 소설에 멋있다라는 말을 연발해주시니 감사할따름입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행복하세요^^
아진짜 늦게 읽었네-_-ㅋㅋㅋ 이번편도 한마디로 짱.
보드레님 안녕하세요^^ 늦디 늦은 답변을 용서하세요..ㅜㅜ 이제서야 봐서요.. 언제나 제 소설을 읽어주시고 감상평 달아주셔서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답니다. 언제나 행복하시길^^
어떻게 제가 이리도 훌륭한 소설을 이제서야 보게됬는지!! 원~ 너무 멋져요ㅠㅠ 나진짜 완전 김여자님 적극 팬 할래요~ 김여자님 팬카페있어요?? 있으면 바로가입- 고고싱~~ 제가 만들고 싶지만 만드는방법몰라요;; 사실 이건 비밀인데 제가 컴맹이거든요;;;; <-;;; 하하- 무튼 정말 뭉클뭉클한 소설입니다!!! 이댓글 김여자님이 꼭~ 봐주셨음 좋겠다 하하-
슬퍼지자님 안녕하세요^^ 지금 슬퍼지자님의 감상평에 하나하나 답글을 달아드리면서 계속 감동하고 있답니다. 오늘은 슬퍼지자님의 칭찬에 여러번 기분이 비행기를 타네요^^ 저는 아직 팬카페가 없답니다. 그럴만한 실력도 아직 못되구요^^; 팬카페 까지는 바라지 않아요 슬퍼지자님 같은 분들이 이렇게 힘을 돋구워 주시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한걸요 ^^ ! 감사드리구요. 언제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