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롤스 정의론
존 롤스 지음/황경식 옮김
영국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사람이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방식이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보니 모두가 같은 것을 좋아할 수밖에 없고, 이를 서로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게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는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막으려면 강한 힘을 가진 절대군주에게 권력을 넘겨줘야 한다고 했다. 왕이 강력한 힘으로 사람들 사이의 싸움을 말릴 수 있도록 하자는 얘기다.
홉스 이후 역시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국민이 정부에 권력을 맡기되 정부가 이를 잘못 사용할 경우에는 저항할 수 있다'는 대의(代議) 민주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세웠다. 뒤이어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국민은 주권자로서 정부를 감독할 권리를 가졌다"며 직접민주주의를 옹호했다. 롤스는 앞선 철학자들의 이론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계약론을 25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 동안 연구하여 1971년에 <정의론>이라는 책으로 발표하였다.
롤스는 <정의론>에서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하여 개인의 능력에 따른 차등을 인정하는 자유주의와, 평등을 지향하는 사회주의적 사상을 절충했다. 일반적으로 이 두 가지 사상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으로 이해되지만, 롤스는 자유와 평등의 두 가지 원리를 모두 수용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구축했다. 롤스가 제시한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실현하는 데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공정과 정의를 성취하기 위해서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사용한 것이다.
롤스는 '원초적 입장'이라는 개념을 통해 개인의 이해관계와 심리적 동기를 배제해야 공정한 기준을 확립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롤스의 원초적 입장에 서있는 개인들의 특징 두 가지는 무지의 베일(the vail of ignorance)과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이다. 무지의 베일이란 사회구성원 모두 자신의 자연적 재능, 사회적 지위, 자신의 가치관, 환경과 여건 등 특수한 사정들을 알 수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개인은 이러한 무지의 베일 속에서 누구든 자신에게 가해질 수 있는 최악의 경우를 배제하기 위해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숙고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상호 무관심한 합리성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합리적 존재라고 가정한다. 그래서 개인들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하며, 타인의 이해관계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심하고, 서로 간에 적개심이나 동정심 따위는 느끼지 않는다. 즉, 이 원리는 개인들이 서로에게 어떠한 심리적 동기도 가지지 않음을 가정한 것이다.
롤스의 정의의 제1원칙인 자유의 원칙은 모든 인간은 기본적 자유에 있어서 동등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사회구성원이 동등한 기본적 자유를 가지지 않는다면 불합리한 차별이 생길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로운 행위가 타인을 위협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국가나 사회도 이러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롤스는 정의의 원칙들이 단계적으로 충족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즉, 첫 번째 원칙인 자유의 원칙이 충족되어야 다음 두 번째 원칙을 고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중 자유의 원칙은 롤스가 제시한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며 항상 최우선의 고려사항이다. 그러므로 롤스가 제시한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 자유에 관한 동등한 권리를 법으로 확립하는 사회이다.
두 번째 정의의 제2원칙인 공정한 기회균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란 특정한 직위나 직업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오직 그 직위나 직업이 공정한 기회균등의 조건에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어 있을 때에만 허용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인종이나 경제적 능력 등의 불합리한 근거에 의해 특정 직업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기회균등의 원칙은 자유의 원칙 다음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두 번째 원칙이다.
그리고 차등의 원칙이란 모든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은 그것이 사회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에 있는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이익을 주는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것이다. 즉,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보다 더 큰 이익을 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사회적 약자의 불리한 환경을 더 향상시킨다면 차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 아니다. 이러한 차등의 원리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은 절차적 정의를 이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몇 사람이 케이크를 공정하게 나누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어떻게 해야 가장 동등하게 분할할 수 있을까? 해결책은 어떤 한 사람이 케이크를 먼저 자르고,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보다 먼저 케이크를 가져가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는 케이크를 자르는 사람이 자신의 몫을 보장받기 위해 모든 케이크를 동등하게 자를 것이기 때문이다.
롤스의 정의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유주의적 평등'의 이념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롤스는 '최소 수혜자'를 우선 배려해야한다는 전제 아래 정의의 구체적 내용은 시민간 자유로운 논의를 통한 중첩적 합의의 결과로서 도출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롤스의 정의론은 최소 수혜자를 포함, 부담과 이득의 체제를 모든 사회 성원에게 혜택이 가도록 편성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는 '천부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 모두가 도덕적으로 정당한 근거가 없는, 우연적인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래서 롤스는 모든 사람에게 공정한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이른바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구상하고 이를 보증할 사회구조, 사회체제를 모색하였다. 하지만 공정한 기회 균등을 보장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어려우므로, 롤스는 '절차적 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고 그 문제점을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을 통해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하였다. 또 롤스는 자연적 운과 사회적 운을 구분하고, 그 도덕적 정당성을 논의하기 위해 '운의 중립화'를 도입하였다.
저자 존 롤즈(John Rawls 1921~2002)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태어나 1950년 프린스턴대학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후 코넬대학과 MIT를 거쳐 1962년부터 하버드대학 철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지난 2002년 11월 24일 타계했다. 그는 1958년 「공정으로서의 정의」라는 논문을 발표한 뒤 사회 정의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연구하여 「분배적 정의」, 「시민불복종」, 「정의감」 등의 논문을 연이어 발표하면서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의 오랜 탐구의 결실로 나타난 것이 바로 그의 필생의 대작인 『정의론』(1971, 1991)인데, 이 책은 출간과 동시에 20세기를 대표하는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