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축조는 조선 인조대였지만, 2000년 전부터 그 중요한 가치를 인정받은 터였다.
문득,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생각해보면, 여행을 떠날 때는 늘 다른 나라, 다른 도시로 갔다. 평생 살아 온 이 도시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역사가 있었는지도 잘 모르면서. 서울의 역사가 궁금해진 날, 동남쪽 방향으로 떠나보자. 그 곳에는 삼국시대부터 한강이 흐르는 이 땅을 지켜주었던 4대 요새 중 하나인 남한산성이 있다. 굳건한 돌담처럼 늘 백성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이 성에는 임금이 백성을 버린 치욕스러운 역사가 남아있다. 서울의 전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남한산성에 올라 성벽길을 천천히 따라 걸으며 이 땅의 긴 역사,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되새겨보자.
남한산성
사적 제 57호와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남한산성. 한양을 지키던 4대 요새 중 하나였다.
남한산성은 인조 대에 완성되긴 했지만 이미 삼국시대부터 요충지로 여겨진 곳이다. 안쪽은 평평하고 얕은 반면 바깥쪽은 높고 험해서 외부에서 공격하기가 쉽지 않았고, 야간습격도 어려운 지형덕분이었다. 그러니 한양 근처에서는 가장 안전한 피신처라 할 수 있었다. 왕이 임시로 지낼 수 있는 행궁까지 있어 마치 작은 수도처럼 보이기도 한다.
조선 인조 14년(1637) 병자호란 때, 청나라의 10만 대군에 밀린 조정은 남한산성으로 피신했다. 조선 왕실은 남한산성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하여 치열하게 청에 맞서 싸우기보다는 그냥 산성 안에서 버티다가 40여일 만에 항복한다.(삼전도의 굴욕,1650)
인조는 삼전도에서 청과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고, 화친의 조건으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을 포함한 주전파 군신들을 비롯해 50만 명의 부녀자가 볼모로 잡혀가 훗날 그 일부만이 되돌아왔다.
9km에 이르는 성채의 정상에는 왕실수호의 의지를 담은 수어장대(守御將臺)를 세우고, 성안에는 행궁과 관청은 물론 연무관(演武館)과 각종 무기고를 설치하고, 비상시 용수로 사용할 3개의 연못까지 파놓았다. 그 밖에 성안에는 1천 여호에 달하는 도읍을 형성해 산성의 일상적인 관리를 하며 서울 동부지역의 중심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면모는 일제가 성안의 기구를 광주와 하남으로 분리해 이주시키기까지 3백년 가깝게 이어져 왔다. 따라서 남한산성은 북쪽의 개성(開城)과 서쪽의 강화성(江華城), 남쪽의 수원성(水原城)과 더불어 서울 동쪽을 담당한 요새로, 전형적인 조선시대 산성 중 가장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6.25 전란 등으로 다소 훼손되기도 했지만, 제5공화국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차례 찾은 것이 계기가 되어, 일찍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거의 완벽한 모습을 되찾고 있다.
400년 전 치욕적인 역사의 현장은 오늘날 우리에게 편안한 산책길로 남아있다.
성벽에 올라서면 가파른 산 아래로 치욕적인 화친을 맺은 송파구 삼전동 일대와 유유히 흐르는 탄천이 손바닥처럼 내려다보이고, 멀리 굽이쳐 흐르는 한강을 따라 남산과 63빌딩 사이로 한강하구가 아득하게 이어지며 서울 전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지하철 8호선 남한산성역에서 성안까지 마을버스가 이어져 접근이 편리할 뿐만 아니라, 성책을 따라 걷는 길이 부담 없이 완만해 한나절 나들이 길로 더할 나위 없다. 해발 400m에 이르는 산성마을은 사방이 성책으로 둘러싸인 분지 형태를 이루고 있지만, 산 아래와 비교해 기온차가 3~4도까지 내려가기도 해, 선들선들 스치는 바람결이 한결 상쾌하다.
복정역 사거리에서 남한산성역 삼거리를 거쳐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성안을 관통해 광주~ 하남 간 산업도로와 이어져 승용차로는 멋진 나들이코스를 엮어내고, 마을버스로 올라 수어장대를 거쳐 송파구 오금동과 강동구 천호동으로 내려서는 산행길은 1시간대로 크게 무리가 없다.
성안의 가을철 별미로 당도가 높기로 이름난 산성배와 머루포도를 비롯해 산성주먹두부와 산성 한정식, 산성닭백숙집 등 내력있는 토속 먹거리도 구미를 돋아 사시사철 방문객들의 발길이 넘쳐나고 있다.
양반집의 상차림, 산성한정식 <백제장>
<백제장>은 남한산성 안에서 3대에 걸쳐 40년이 훨씬 넘는다는 한식집이다. 이 곳 음식은 조선시대부터 남한산성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선친이 남한산성의 훈련도감을 지낼 때, 할머니가 왕실 출입을 하며 익힌 양밥집 상차림이 배어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금의 주인 석남징(55세) 씨의 모친은 김제 부호집에서 태어나 석씨 가문으로 출가해와 서울 양반집 음식과 호남지방의 음식을 모두 손에 익혀 찬모들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주방에는 주인 말고도 할머니와 모친의 손맛을 익히며 42년을 몸담고 있는 서애모(63세)씨가 상차림을 맡고 있어 음식 맛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이런 내력을 알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두 차례나 찾아, 남한산성이 일찌감치 도립공원으로 지정되며 개발을 서두르게 된 계기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는 소문도 있다. 2인상부터 차려내는 한정식은 어른 2만1,000원에 내는데 15가지의 기본 찬이 오르고, 추가로 주문하는 일품요리로 숯불양념불고기 1만8,000원과 더덕구이 1만 6,000원 등이 있다. 고객들의 대부분이 10~20년씩 단골로 이어지고 있고, 예약손님들이 주를 이룬다.
한모씩 손으로 빚어내는 산성주먹두부 , <오복손두부집>
남한산성에서만 맛볼 수 있는 산성주먹두부는 100년 가까운 내력을 지니고 있다. 만드는 과정이 하도 정성스럽고 은밀해 누구나 흉내를 낼 수 없다는 남한산성의 고유한 토속 별미다. 가장 큰 특징은 두부를 빚을 때 두부모판을 사용하지 않고, 따끈한 순두부를 솥에서 한 주걱씩 떠 내 손수건 같은 하얀 면포에 싸서 한 모씩 손으로 빚는다. 주먹만한 크기의 손두부는 형체가 자연스럽게 이뤄져, 생긴 모습이 주먹 같아 이름을 "주먹두부" 라 부른다.
올해로 66년째 두부를 빚고 있다는 <오복손두부집> 오창순(82세) 할머니는 16세 되던 해 시집을 와서 시어머니와 함께 손두부를 빚기 시작해 한평생을 성안 음식점들에 두부를 대주는 일로 생계를 이어왔고, 며느리 박명자(63세)씨에게 이 일을 대물림해 3대째 가업으로 잇고 있다. 산성주먹두부는 맛도 특이해 두부냄새가 전혀 없이 담백하고 고소한 맛이 뛰어나, 마치 생크림을 뭉쳐놓은 듯 부드럽게 녹아드는 맛이 있다.
새벽 2시부터 시작해 하루 두 번 빚어내고 있다는 주먹두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두 여인의 손끝에서 이뤄진다. 300개가 넘는 하얀 수건에 순두부를 한 주걱씩 떠내 조심스럽게 싸서 손으로 어루만져 놓으면 간수가 서서히 빠져 나가며 두부모가 굳어지고, 식기를 기다려 수건을 풀고 찬물에 담근다. 다행스럽게도 집 앞 텃밭에 공원주차장이 들어서면서 받은 보상금으로 새집을 짓게 된 오씨 할머니 의 손자 박충환(34세)씨 부부가 <오복손두부집>을 열었다. 그 덕택으로 다른 손을 거치지 않고 100년 노하우를 지켜낸 주먹두부를 직접 맛볼 수 있게 됐다. 1~2층으로 이어지는 깔끔한 식당은 100석 남짓한 규모고, 산성주먹두부와 순두부를 전문으로 순수한 참두부 맛을 선보인다.
가마에서 금방 떠낸 따끈한 순두부에 밥과 7~8가지의 찬을 곁들인 순두부백반이 5,000원, 순두부백반에 주먹두부 두 모를 얹어 두부 맛을 고루 맛볼 수 있도록 한 오복순두부정식이 2인분을 기준해 2만4,000원이다. 식당 문을 연지는 오래지 않았지만, 이곳의 두부 맛을 본 고객들의 거의가 지금까지 맛볼 수 없었던 신비한 맛에 이제는 다른 두부를 먹을 수 없다며 계속 단골로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산성닭백숙, <남문관>
예로부터 남한산성하면 닭백숙을 떠올릴 만큼, 성 안은 물론 성 아래 남한산성 유원지에도 닭백숙집들이 촌을 이루고 있다. <남문관>은 성안으로 들어서면서 처음 만나는 산성로타리 주차장 우측으로 체모가 번듯한 한옥 기와집이다. 70년대 후반에 개업해 25년 내력을 지니고 있다. 주인 이종화(46세)씨는 24대째, 성안에 살고 있다는 토박이 산성사람이다. 남한산성이 도립공원으로 지정되고 관광객들이 찾아들면서 문을 열고 산채비빕밥과 닭백숙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지금은 어느 것을 더 앞세울 수 없을 정도로 산성안의 명물로 자리 잡혔고, 그 밖의 고객들의 입맛을 따라 오리한방백숙과 시골청국장, 돌솥비빔밥, 산성동동주 등을 내는데, 역시 별미로 꼽힌다고 한다.
[왼쪽/가운데/오른쪽]백제장 정식 상차림 / 오복손두부 정식 / 남문관 오리백숙 상차림
서리가 내려야 따는 산성배
배 맛이 각별하기로 이름난 산성농원 배나무집은 산성로타리에서 5km쯤 길을 따라 내려간다. 5천여 평에 이르는 양지바른 배 밭은 올해로 41년째 배 농사를 짓고 있다는 주인 최경자 (62세)씨의 독특한 농사법이 한몫을 한다. 장심랑과 신고배 두 가지 배나무가 고루 심어져 있는 배 밭은 유기비료를 사용하는 것은 물론, 수확 시기를 무서리가 내리는 10월 첫 주~2번째 주부터 따기 시작해 된서리가 내리는 11월 중순까지로 잡고 있다. 나무에서 충분히 익힌 배는 껍질을 벗기는 순간, 넘치듯 흘러내리는 뱃물이 손을 다 적시고 남을 정도고, 농익은 연한 속살은 씹지 않아도 입안에 녹아들 정도로 부드럽다. 마치 설탕에 재운 듯 달고 시원한 뱃물이 참 배 맛의 진수를 실감하게 해준다. 500여 그루에서 따내는 배가 결코 작은 양이 아니지만, 이미 소문이 나있어 매년 이맘때가 되면 단골 고객들이 직접 배를 사러 찾아오고, 선물용으로 미리 주문해 놓기도 해 시장에 출하할 것이 없다고 한다.
여행정보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731
- 문의 : 경기도 콜센터 031-120
백제장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780번길 3
- 문의 : 031-746-4296
오복손두부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남한산성로 745-10
- 문의 : 031-746-3567
남문관
- 주소 : 경기도 광주시 중부면 산성리 517
- 문의 : 031-743-65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