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일에 공휴일이 있을 턱이 없는 바닷가는 평일보다 더 술렁거리게 마련이다.
여객선이 닿는 곳은 말할 것도 없지만 고깃배가 정박한 곳도 한산하지가 않다, 출어준비를 하느라 새 그물을 올리는 배도 있고, 열흘 이상 바다에 나가 먹을거리를 실어 올리기도 하고 잡다한 짐을 뭉쳐 올리느라 분주한 배가 눈에 띄는 걸 보니 태무네 회사직원들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일을 하고 있을 것이었다.
탐지기가 설치되면 지체하지 않고 바다로 나가려 마음이 바쁜 사람들이 까치발을 하고 기다리고 있는 판국이었다.
사무실이 쉬는 일요일 몫까지 차에 싣고 나온 직원들이 두 패로 갈라져서 배에 올라 한창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한 바퀴 돌아본다며 나온 태무도 현장을 돌아보느라 시간가는 줄 모르고 있었다.
혼자 덩그러니 남아있는 미숙은 퇴근 시간이 지나자 전화소리조차 끊긴 사무실을 지키다 무료한 듯 창밖에 길을 내려다보며 조바심을 내고 있었다.
바삐 어디를 가야할 일은 없지만 시간이 되면 공연히 좀이 쑤시듯 견디지 못하고 퇴근하고 싶은 것은 직장생활을 하는 버릇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상하게 태무만 보면 가슴이 두근거려 꼭 보고서야 퇴근을 하고 싶은 묘한 마음에 기다려지기 때문이었다.
차갑고 냉정한 표정이며, 이마에 흘러내린 머리카락만 봐도 손으로 쓸어 올려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나 가까이할 수 없는 거리에 있는 대상일수록 호기심이 생기는 모양이다.
친척 동생이라는 최 과장이 없는 빈자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더 그런가 보다.
작게 켜놓은 라디오에서는 애절한 목소리로 여가수가 못 이룬 사랑의 슬퍼하며 흐느끼듯 노래를 부르고 있어 마음마저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내가 안 들어와서 퇴근 못하고 있었지, 할 일이 좀 있으니 조금만 더 있다 퇴근해.”
“예, 사장님.”
급하게 들어와서 사장실로 들어가다 말고 멈칫 서서 힐긋 돌아보는 눈길과 마주치자 가라앉아있던 사무실 공기가 갑자기 후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지금까지 부산을 떠나 살아본 일이 없는 미숙은 무뚝뚝한 말씨를 듣는 기회는 많았지만 부드럽게 감겨오는 서울 말씨의 태무를 대하면 마치 봄날 양지쪽에 서 있는 느낌이었다.
시키지도 않은 커피를 들고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자 대답은 없고 누군가와 전화를 하는지 말소리가 들려 슬그머니 문을 열고 드려다 보는데 눈이 마주치자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예, 그날 꼭 입금을 해 주셔야 합니다. 그럼 그때 뵙지요.”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미숙을 향해 보일 듯 말 듯 고개를 끄덕이며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보는 것이었다.
“사장님 커피 가져 왔습니다.”
“그래, 이리 가져오지.”
앉은 체 책상 위를 눈짓으로 가리킨다.
조심스럽게 마주서서 찻잔을 놓고 손잡이를 돌려놓느라 몸을 약간 수그리는데 섶이 열린 가슴 깨를 뚫어지게 쏘아보는 눈길이 따갑다.
얼른 몸을 세우고 무의식적으로 한 손으로 가슴을 가리고 당황해 하며 서 있었다.
“미숙이도 인제 보니 남자들 많이 울리겠어, 무슨 향수를 쓰나? 향기가 좋은데.”
반쯤 몸까지 일으키고 얼굴을 내밀며 냄새를 맡는 척한다.
방황해 한걸음 물러서서 얼굴을 붉히고 눈을 내리깔고 서 있는 모양이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태무가 은근한 말투로 말을 잇는다.
“알 건 다 알 나이에 부끄러워하기는, 네가 예쁜 건 사실이잖니.”
예쁘다는 말이 싫진 않았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미숙은 자신의 숨소리만 들리는 것 같았다, 묘한 긴장감이 두렵기는 하지만 기분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았다.
그렇지만,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으로 얼른 사장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이, 사장님 농담도 잘하시네요, 제가 예쁘긴 어디가 예뻐요, 저 그럼 퇴근하겠습니다.”
한 걸음 더 물러서서 돌아서는 듯 몸을 돌리려 하자 태무가 옷걸이에서 옷을 벗겨 들며,
“응, 나도 나가봐야겠어, 같이 나가지.”
태무가 나간다는데 먼저 문을 나설 수 없어 한쪽으로 비켜서서 나가는 것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있었다.
문 앞에 다가선 태무가 손짓으로 먼저 나가라는 시늉을 하며 기다리고 서 있었다.
문을 반쯤 가리고선 태무를 지나 나가기가 난처한 듯 태무를 쳐다보자 얼른 나가라는 듯 손짓으로 재촉을 한다.
무의식중에 한걸음 떼놓고 태무를 스치는 순간 태무가 손을 뻗어 반대쪽 어깨를 움켜잡고 빙글 돌려세워 끌어 안아버리는 순간 숨이 훅 막히는 것 같았다.
가슴에 꼼짝달싹할 수 없게 끌어 안아버려 숨이 막히는 듯했지만 갑작스럽게 안긴 억센 남자의 품은 아찔하게 정신을 놓게 하는 것 같았다.
머리칼에 얼굴을 묻고 깊은숨을 들이쉬는 듯 하더니 머리를 뒤로 젖히려고 손에 힘을 주자 반사적으로 태무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게 돼버렸다.
남자의 체취가 콧속을 깊이 파고든다.
부드러운 고급 양복에서, 얇은 셔츠를 통해 풍기는 냄새가 잠시 이렇게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하고 몸에 힘이 빠져버린다.
헤어나야한다는 생각과 무슨 일이건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갈등을 하고 있었다.
“사장님, 이거 놔 주세요, 이러시면 안돼요.”
불쑥 두려운 생각이 들어 기운을 차리고 몸을 어렵게 비틀어 보지만 이미 힘을 놓아버렸던 채 생기를 찾지 못하고 몸이 품을 더 파고들고 있는 것 같았다.
“이대로 조금만 가만히 있어, 네가 좋아서 이러는 거야.”
말이 없이 가쁜 숨을 내쉬며 안고 있던 태무의 손이 허리를 내려와 엉덩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바짝 엉덩이를 끌어당기는 바람에 단단하고 뜨거운 것이 불룩 미숙의 예민한 골짜기를 압박해 오자 숨이 멈추는 것 같았다.
뒷걸음질치게 천천히 밀어붙이던 힘이 더 피할 수 없는 벽에 다다르자 더 피할 길이 없었다.
팔을 축 늘어뜨리고 저항을 포기한 미숙이 밑바닥에서 서서히 피어오르는 불길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태무의 무릎이 사타구니 사이를 파고들어 서서히 움직이는 것과 때를 같이하고 있었다.
고개를 이리저리 내둘러 피해 보지만 억센 손으로 턱을 잡아 세우고 입술을 혀로 핥자 뜨겁고 짜릿한 느낌이 입술을 꼭 다물고 있을 수 없게 한다.
참던 숨을 내쉬듯 입술을 열어 주었다.
다물고 있는 앞니 사이로 파고드는 혀는 집요하게 공격을 해오고 함락당하 듯 입술을 열어버렸다.
짜릿한 느낌에 몸을 내 맡기고 늘어뜨렸던 두 팔로 자신도 모르게 태무의 등을 감싸 안았다.
짧은 치마를 걷어 올리고 속옷을 파고든 손이 압박을 하더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 했다.
“너도 대단하구나, 옷이 다 젖었어, 너 지금 하고 싶지?”
미숙의 붉어진 얼굴이 태무의 가슴을 파고들고 목을 감싸 안은 팔에 힘을 준다.
“우리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디로 가자.”
고개를 끄덕이는 미숙을 풀어주며 태무가 앞장을 선다.
“사람들 눈에 띄니 뒷자리에 앉아.”
말없이 앞만 보고 운전을 하는 태무의 뒷모습을 보며 미숙은 잠시 생각에 빠진다.
남의 눈을 피해 짝을 지어 숨어 다니며 음침한 곳에서 후다닥 일을 치르고 시침을 뚝 떼고 구겨진 치마를 툭툭 털어버리면 감쪽같은 짓에 맛을 붙여 떼를 지어 몰려 다녔었다.
삼년씩이나 재수를 하고도 대학은커녕 해를 거듭할수록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전화나 받고 청소 심부름이나 하는 자리에 취직이랍시고 했지만, 보이는 것은 모두 심통 나도록 부럽고, 남들은 신명나게 사는 것 같아 보이기만 했었다.
제 손으로 돈을 벌어 옷가지라도 제 맘대로 사 입고 화장품을 사들여 치장을 해 보지만 항상 턱없이 부족한 해 불만스럽던 차에 돈 많은 사장이 가끔 쏘아보는 엉큼한 눈길이 싫지만은 않았었다.
오늘 은근히 탐내던 기회가 온 것이었다.
돈 많고 잘 생긴 사장이 관심을 가져 줄 것은 기대를 가져봐야 헛일이려니 생각했는데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행복한 순간이 온 것이었다.
같이 놀던 남자들이라고 해봐야 담벼락 구석이건 허름한 자취방에서건, 마구 엉클어지곤 했는데 역시 나이 듬직하고 돈 여유가 있는 사람은 달라도 이렇게 다른가, 회사 의자에서 발가벗겨 눕혀지나 했는데, 콧노래가 날 지경이었다.
“너 배고프지 않니?”
“예? 모르겠어요.”
“점심 아직 안 먹었지?”
“예.”
“어디 가서 밥이나 먹자.”
태무는 밖에 나와 사람들을 보자 그저 그게 그것 같은 특별난 것도 없는 여자를 탐냈던 순간이 우스꽝스러워 쓴웃음이 나올 것만 같았다.
그냥 돌려보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기왕 시작한 일이니 끝을 볼 생각이었다.
차창 밖으로 걸어가는 멋지게 차려 입은 여자들을 흘깃거리면서 설익은 멋을 부리느라 값싼 옷을 두르고 겁먹은 듯 편하게 앉아있지도 못하는 미숙이 마음에 썩 내키지 않기도 했지만 입막음으로라도 끝장을 봐야한다고 마음을 굳혔다.
데리고 논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이 여기에 머물자 움칠 몸이 사려지기도 하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잠시 혼란에 빠졌다.
속력을 높여 호텔로 차를 몰았다.
“스카이라운지에서 밥 먹으며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그만이야, 그리 가서 밥 먹자.”
호텔 정문에서 자동차 열쇠를 넘겨받는 문지기가 정중히 인사하는 바람에 얼떨결에 미숙이 마주 인사를 하자 태무가 난색을 보이며 팔을 잡아끌며 낮고 빠르게 말한다.
“그냥 못 본 척하는 거야, 촌스럽게.”
얼어붙고 주눅이 들어 눈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이끄는 대로 끌러가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데요?”
“밥 먹는 데로 가지 어딘 어디야, 이런 곳 처음 와?”
“예, 떨려요.”
“바보처럼, 이런 곳에도 와 봐야 해, 다 사람이 사는 곳이니까.”
촌스러운 사람 기죽이기 위해서는 천정이 높고 불이 밝은 곳이 제격이라는 것을 잘 아는 태무가 종종 사람을 처음 만날 때면 일류호텔 커피숍을 이용하는 태무가 여자를 후릴 때도 비슷한 방법을 쓰기도 하는 것이었다.
양식을 시켜 놓고 시간을 끌자, 뭘 어떻게 먹는지 잘 알지 못하는 미숙이 쩔쩔매는 것을 재미있다는 듯 지켜보며 즐기고 있었다.
세련되고 능숙하게 행동하는 사람과 마주앉아 있을 때와는 또 다른 흥미를 불러오는 것 같아 묘한 재미를 즐기고 있었다.
밥을 먹으며 받아든 방 열쇠를 손에 쥐고 태무가 일어나자 서둘러 미선이 따라 일어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다 중간층에서 내리면서 미숙을 보면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이렇게 중간에서 내리면 사람들이 알 수 없거든, 방에 들어가려면 일층 사람들이 보이는 곳에서 키를 받아야 하지만 이렇게 하면 아무도 몰라서 좋아.”
옷깃을 잡아끄는 태무를 따라 복도에 내려서자 푹신한 바닥이 마치 구름을 탄 느낌이었다.
붉은 융단이 깔린 길 복도에 서니 마치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든다.
태무의 팔에 매달려 길을 잃어버릴 것을 걱정하는 사람처럼 몸을 딱 붙이고 따라 걷고 있었다.
“들어가자,”
방문 앞에서 잠시 저항하는 듯하다가 못이기는 척 방안에 들어온 미숙은 하얀 시트에 눈이 머물자 온몸이 긴장되었다.
화산이 터지려는 예시 같았고, 태풍이 불기 직전의 고요와 같은 것이었다.
뒤로 손을 뻗어 문을 닫은 태무가 미숙을 끌어안고 입술을 찾자 미숙이 목에 매달려 혀를 깊숙이 빨아들였다.
한 쌍의 날렵한 표범이 힘차게 몸을 부딪치고 으르렁대는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뜨거운 불꽃을 태우기 시작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