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에 밥 넣어줘도 씹어 맛을 보지 못하면 산송장일 뿐”
무량한 세월 두텁게 쌓인 무명이 너무 두꺼워서
어지간한 솜씨로는 그 안의 보물 찾아내기 어려워
그러나 임제선사의 솜씨는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바로 무명의 산을 쪼개어 여의주를 안겨주었으니…
강설
아무리 존귀한 이라도 끌려가지 말고, 아무리 귀한 것이라도 손 내밀어 구하지 말라. 그럴 수 있다면 문득 일체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말이나 행위가 늘 핵심을 가리킬 수 있어야만 온갖 시끄러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그대는 지금 그럴 수 있겠는가?
임제 의현(臨濟義玄, ?~867)선사는 당대(唐代) 선승으로 임제종의 개조(開祖)이시다. 황벽(黃檗)선사의 법제자로 하북성 정정현(正定縣)에 임제원(臨濟院)을 세우고 주석하여 후학을 지도하면서 그 선풍을 드날리셨다.
깨달음의 기연은 이렇게 전한다.
황벽선사의 문하에 있으면서 3년 동안 묵묵히 좌선만을 하고 있었는데, 선원을 책임지고 있던 수좌(首座)소임의 목주(睦州)스님이 방장인 황벽선사를 찾아뵙고 ‘불법의 대의가 무어냐’고 물어보라고 권했다. 방장실에 들어가 같은 질문을 세 번 했으나 세 번 다 주장자로 얻어맞았다. 인연이 없다고 생각해 황벽선사께 하직인사를 드리니, 황벽선사가 고안탄(高安灘)에 주석하는 대우선사를 찾아가라고 일러주었다.
대우스님께 인사를 여쭈니 곧바로 질문을 하였다.
“황벽스님이 어떻게 너를 가르치더냐?”
“가르쳐주기는커녕 ‘불법의 대의가 무어냐’고 세 번 물었다가 세 번 다 매만 맞았습니다.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황벽스님이 너를 위해 온갖 자비를 베풀었거늘, 그것도 모르고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묻다니, 이런 멍청한 놈!”
그 순간 의현스님은 불법의 대의를 깨닫고는 한 마디 했다.
“황벽스님의 불법이 별것 아니었구나.”
대우스님이 의현스님의 멱살을 잡고 다그쳤다.
“이런 오줌싸개 같은 놈! 조금 전까지 뭐가 뭔지도 몰라서 쩔쩔매던 놈이 황벽스님의 불법이 별것 아니라니! 뭘 알았느냐 빨리 말해 봐!”
의현스님이 대우선사의 옆구리를 세 번 쥐어박자, 대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스승은 황벽스님이니, 돌아가도록 해라.”
다시 돌아온 의현스님이 황벽선사께 인사를 올리자, 선사께서 꾸중을 하셨다.
“이렇게 왔다 갔다 하다가 언제 깨닫겠느냐?”
“스승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그러고는 대우스님을 뵈었을 때의 일을 설명하니, 황벽선사께서 말씀하셨다.
“대우 늙은이가 쓸 데 없는 짓을 했구나. 다음에 보면 가만 두지 않겠다.”
“다음까지 기다릴 게 뭐 있습니까.” 의현스님이 갑자기 황벽선사의 뺨을 한 대 갈기자, 황벽선사께서 호통을 쳤다. “이 미친 놈! 겁도 없이 호랑이 수염을 잡아당기다니.”
그러자 의현스님이 고함을 빽 질렀고, 황벽선사가 시자에게 지시했다. “이 미친놈을 선방으로 끌고 가라.”
정상좌(定上座)에 대한 특별한 자료는 없고,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암두, 설봉, 흠산스님이 입적하신 임제선사에 대한 일화를 들려달라고 청했다. 정상좌가 다음의 일화를 들려주었다.
“선사께서 어느 날 대중에게 물었습니다. ‘몸 안에 무위진인(無位眞人, 절대자유인)이 있어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통해 출입하고 있다. 아직 깨닫지 못한 이들은 잘 살펴보라.’ 그때 어떤 스님이 나와서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무위진인입니까?’ 임제선사께서 대뜸 그 스님의 멱살을 잡고는 다그쳤습니다. ‘말해봐라, 말해봐.’ 그 스님이 머뭇거리자 선사께서는 밀쳐버리며, ‘무위진인이 무슨 똥 덩어리냐’라고 말씀하신 후 곧 방장실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흠산스님이 말했다. “왜 무위진인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을까요?”
정상좌가 흠산스님의 멱살을 잡고 다그쳤다. “‘무위진인’과 ‘무위진인 아닌 것’이 어떻게 다른 가? 빨리 말해라, 빨리.”
흠산스님은 아무런 말도 못하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였다. 암두스님과 설봉스님이 절을 올리며 말했다. “이 신출내기가 좋고 나쁜 것도 모르고 상좌께 대들었으니, 바라건대 자비로 용서해 주시구려.”
정상좌가 말했다. “두 분 어르신이 아니었다면 이 오줌싸개 같은 놈을 요절냈을 겁니다.”
한겨울 긴 밤을 새우고도 임제선사를 만나지 못한다면 언제 다시 만나랴!
본칙 원문
擧 定上座問臨濟 如何是佛法大意 濟下禪床擒住 與一掌便托開 定佇立 傍僧云定上座何不禮拜 定方禮拜忽然大悟
본칙 번역
이런 얘기가 있다.
정상좌가 임제선사께 여쭈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핵심입니까?”
임제선사가 선상에서 내려와 (정상좌의) 멱살을 잡아 뺨을 한 대 갈기고는 확 밀쳐버렸다.
정상좌가 멍하니 서 있으니까 곁에 있던 스님이 일러주었다. “정상좌, 어찌 예배하지 않는가?”
정상좌가 바야흐로 예배하다가 갑자기 크게 깨달았다.
강설
상좌(上座)란 선원의 윗자리에 앉는 수행자이다. 이런 정상좌가 “무엇이 불법의 핵심입니까?”라고 묻다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 아닌가. 불법의 핵심도 모르는 사람이 어른의 자리에 있다니. 쯧쯧! 하긴 이런 일이 하도 많다보니 어쩌겠는가.
불법의 핵심이 뭐냐고? 임제선사께선 확실한 방법으로 알려주셨다. 냅다 갈겨버린 것이다. 얻어맞고도 모른다면 어쩔 도리가 없는 게지.
너무 친절했던 겐가? 넋을 놓고 있다니. 그때 친절한 이가 있어 손을 잡아주는구나. “자네, 왜 절을 하지 않나?”
임제선사가 허깨비를 높은 자리에 두지는 않았구먼. 그래도 절을 하다가 불법의 핵심을 깨닫다니.
송 원문
斷際全機繼後蹤 持來何必在從容
巨靈擡手無多子 分破華山千萬重
단제(斷際) 당(唐) 선종(宣宗)황제가 황벽선사께 내린 시호.
거령(巨靈) 중국 고사(故事)에 나오는 거령신(巨靈神). 대화산을 손으로 쪼개 화산(華山)과 수양산(首陽山)으로 만들고, 그 사이로 황하가 흘러 동쪽으로 가게 함으로써 수해를 줄였다고 함.
송 번역
단제선사의 모든 선기를 뒷사람 이었으니,
물려받은 그 솜씨 어찌 점잖게 두겠는가.
거령신 같은 임제선사 손을 들어 단숨에
화산처럼 겹겹이 쌓인 무명 쪼개 버렸네.
강설
백장-황벽-임제선사로 이어지는 지도법은 드세기 그지없다. 아차하면 목숨을 잃는다. 그러니 아끼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자만이 진짜 보물을 얻는다.
사실 황벽선사와 임제선사의 자비는 입안에 밥을 넣어주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씹어 맛을 보지 않는 놈이라면 산송장이랄 수밖에 없다.
무량한 세월동안 두텁게 쌓인 무명이 너무 두꺼워서 어지간한 솜씨로는 그 안의 보물을 찾아내기 어렵다. 그러나 임제선사의 솜씨는 가공할 위력을 지녔다. “불법의 대의가 무엇입니까?”라고 묻는 제자에게 바로 무명의 산을 쪼개어 여의주를 안겨주었으니, 거령신이 대화산을 쪼개는 솜씨보다 한 수 위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