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치야 씨, 만나 뵈러 왔습니다. 만나 뵙게 되어 기쁩니다. 츠치야 씨가 기다려 주셔서 정말 감격하고 있어요."
나는 그의 손을 다시 또 한번 세게 꼭 잡았습니다.
그러나 그의 감은 눈에는 눈물이 다시 흘러내렸습니다. 고갈되고 왜소해진 그의 몸 속에 어떻게 이렇게도 물이 있었던 것일까 하고 신기하게 여겨질 만큼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 넘쳤습니다.
뼈마디가 튀어나와 너무나 앙상하다고 느끼게 하는 발을 주물러 드리면서 나도 또한 눈물이 흘렀습니다. 이렇게도 나를 아쉬워했던가 하고 생각할 때 너무나 고마워 큰 감동을 받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어느덧 꾸벅꾸벅 조는 것 같았습니다. 기분이 좋은 것 같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잠든 그의 얼굴을 지켜보고는 살며시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이즈의 고요한 봄바다를 바라보면서 어머니가 계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나는 츠치야 씨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은 다만 발을 주물러 드린 것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친척도 문병객도 없는 그에게, 그가 입원한 이래 의사나 간호사 이외에 자기 몸에 손을 댄 사람도 없었을 뿐 아니라, 더더구나 시간을 두고 발을 주물러 준 사람은 없었겠지요. 그는 피부에 닿는 사람의 온기가 고마웠나 봅니다.
"어디서 온 누군지는 몰라도 그 사람이 다시 찾아와 발을 주물러 준다"고 그는 한 번 더 기다려 보자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기다린다고 하는 희망이 한 달 이상 목숨을 연장시킨 것이겠지요.
아우슈비츠 수용소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 똑같이 비참한 조건 아래서도 마지막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기다려 주고 있다는 희망을 계속해서 지닌 사람들이었다고 『밤과 안개』속에 적혀 있습니다.
사람은 목숨의 한계에 달해도 역시 사느냐 죽느냐를 선택한다고 합니다.
마음 속 깊은 곳을 채워주는 희망이 있는 한, 병은 치유로 향하는 가능성에 넘쳐 있다는 것도 증명이 되고 있습니다.
언젠가 나는 친한 의사와 그런 화제로 얘기를 나눠봤습니다.
"병자에게 마음속을 깊이 채워 줄 희망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바로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한 그는 그의 체험담을 이렇게 말해주었습니다.
1984년 봄, 도쿄의 그 큰 국립병원에선 중환자들이 많았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의사들의 예측을 뛰어넘어 그 사람들은 며칠이고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런 현상은 그에게 왠지 모르게 신기한 느낌을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문득 그는 한가지 일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매일 점심시간이 지나 한 시 가까이가 되면
환자들이 팔팔해지기 시작하고, 잠들고 있던 사람도 번쩍 눈을 뜨는 것입니다. 어느날 큰 병실을 순회하고 있는데, 보조원 아주머니 한 분이 큰 소리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주로 연속극 '오싱'이 드디어 끝난답니다."
그 한마디로 병실의 중환자들 모두가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때 비로소 그는 모든 환자들이 당시 방영되고 있던 NHK의 연속극 '오싱'을 즐겨 시청하고 있었던 사실에 주목하게 된 것입니다.
아침시간에 TV를 볼 수 없었던 그들은 12시 45분에 시작되는 재방송을 고대하고 그것을 사는 보람으로 삼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싱'과 같은 시대를 살고, 비슷한 고생을 겪었던 그들은 '오싱'이라고 하는 여주인공에게 자기들 생애를 겹쳐놓고 제각기 자기들의 생애를 뒤돌아보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병의 경과를 지켜보고 있던 의사로서 그는 연속극 '오싱'의 방영이 그 막을 내리자 이제 환자들의 생명도 끝나는 게 아닐까 직감했습니다.
그리하여 그 다음 주에 그가 염려한대로 '오싱'이 마지막회를 맞은 그 날 밤, 네 사람이 세상을 떠났고 일주일도 채 못되는 동안에 열 사람이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숨을 거둔 것입니다. '오싱'을 무엇보다 낙으로 삼고 있던 분들이었습니다.
물론 단지 우연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오싱'을 낙으로 삼고 있던 분들이 오직 그 열네 사람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히 아침부터 그 시간을 기다리고 그것을 보람으로 살아온 것이라고 여겨지는 것입니다.
"기다리는 희망이 있는 사람은 그 희망이 살려는 결의와 연결되는가 봅니다"하고 말하며 그는 그 얘기를 마쳤습니다.
츠치야 씨는 내가 찾아간 뒤 계속 잠을 자다가 그 날 밤 조용히 숨을 거뒀다고 합니다.
이즈의 바다에서 지낸 한 어부의 일생이었습니다.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바다 한복판에서 검은 구름이 솟아오를 때엔 어서 개이기를 조용히 기다리고, 폭풍이 몰아칠 때엔 제발 바람이 지기를 기다리며 자연과 함께 살아간 생애였습니다.
자연을 상대로 '기다림'을 몸으로 익히며 또한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에 직결되어 있음을 알고 있는 생애였습니다.
첫댓글 얼마만에 보는 이름인지요? 아학의 열림이 기다려 지시고, 궁금하지 않으셨나요?(소문으로 아시겠지만~!) 간혹 글로라도 뵐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랫만에 뵙는군요~~. 자주 들르세요.
희망은 삶의 에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