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이후 중국 조선족,중국 정착 과정에서의 슬픈 역사-5]
1945년 8월 8일 대일전 참전을 선포한 소련군은 참전 선언과 동시에 중국 동북지역 탈환에 나섰다. 일본군이 응전했지만 소련군은 사기가 떨어진 일본군을 일방적으로 물리쳤다.
연변지역은 소련군에 의해 완전히 해방됐다.
연변지역은 당시 총인구의 70% 이상이 조선인이었다.
이 지역의 임시정부의 주요 업무는 조선인들이 맡았다.
연변지역은 지리적으로 소련 및 한반도와 인접한 변경지역일 뿐 아니라 남구권(서간도)과 북부권(동간도) 지역을 연결하는 핵심지역이다.
따라사 해방 직후 모든 세력은 연변지역을 장악하기 위해 특별한 관심을 기울였다.
소련군에 의해 연변이 해방됐지만 곳곳에는 여전히 국민당정부를 지지하는 일제 및 만주국 잔당과 토비들이 발호했다. 해방 초기 소련군과 연변지역 경비대의 주 임무는 토비를 숙청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혼란한 상황에서 만주국 잔여세력과 지주계급, 정치토비 등 국민당정부를 지지하는 세력은 연길과 용정에 지구당을 세우는 등 신속하게 세력을 확장했다.
국민당정부는 중국공산당이 우세한 연변지역의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비밀리에 지하조직을 만드는 형태로 세력을 넓혔다.
국민당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조직직이며 대중적 지지를 받는 중극공산당이 체제를 정비하면서 이 지역은 중국공산당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인의 지지는 중국공산당의 든든한 기반이 되었다.
중국은 신해혁명 이후의 과도기적 상황에서 국민당정부에 의해 통치되었으나 동북지역은 예외였다. 중국공산당과 싸우고 있던 국민당정부가 이곳까지 신경을 쓸 만한 힘이 없어 사실상 방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앙의 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라 조선인이 이곳으로 이주해 독립운동을 하기에는 적합한 환경이었다.
권력의 공백기에는 또 다른 권력자가 나타나기 마련인데 군벌 장학량이 동북지역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제를 도와 조선인을 탄압했다.
그리고 일제는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세운 후 동북지역에 대한 직접 통치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중국 동북지역에 거주하는 조선인을 상대로 공산주의 활동 및 독립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1926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흑룡강성 영안 지역에 설립했다. 서울에 조선공산당이 설립된 지 1년여 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1928년 12월 제3차 코민테른 회의에서 ‘1국 1당주의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동북지역의 조선인 공산주의자들은 1930년 조선공산당 만주총국을 해체하기고 결정했다.
따라서 조선공산당 지도하에 독립운동을 하던 이 지역의 조선인들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중국공산당에 가입해야 했다.
참고서적
조선족, 그들은 누구인가
곽승지 지음, 인간사랑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