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선양=연합뉴스) 안승섭 차병섭 특파원 = 홍콩 시위가 갈수록 격화하는 가운데 홍콩 경찰이 18일 시위대의 '최후 보루'인 홍콩 이공대에 진입해 시위대와 치열한 공방전을 펼치며 진압 작전을 단행했다.
홍콩 경찰은 이날 새벽부터 시위대의 강력한 저항을 뚫고 이공대 교정에 일부 진입해 음향대포, 물대포 등을 동원한 진압 작전을 펼쳤다. 이에 맞서 시위대는 교내 곳곳에 불을 지르고 화염병, 돌 등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이날 내내 시위대는 경찰의 포위망을 뚫고 이공대를 탈출하려고 했지만, 대부분 실패해 400명이 넘는 시위대가 경찰에 체포됐다.
시위대는 교내에 먹을 것이 부족하고 부상자가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며 '인도주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 경찰 '음향대포·물대포' vs 시위대 '투석기·활'
홍콩 경찰은 이날 새벽 5시 30분부터 수백 명 시위대의 격렬한 저항을 뚫고 이공대 교정에 일부 진입해 시위 진압 작전을 펼쳤다.
경찰의 진입을 막고자 시위대가 폐품 등을 쌓아놓고 건물, 육교 등에 불을 지르면서 이공대 교정 곳곳에서는 불길이 치솟고 폭발음이 들렸다. 폭발음은 시위대가 수십 개의 가스통을 터뜨리면서 난 소리로 추정된다.
이날 오전 8시 무렵 일부 시위대는 이공대 밖으로 탈출을 시도했지만, 경찰이 이공대 교정을 전면 봉쇄함에 따라 대부분 실패하고 교정 안으로 되돌아갔다.
경찰은 이날 오전에만 이공대 교정을 탈출하려는 시위대를 포함해 인근 침사추이 지역에서 지지 시위를 벌이던 시민 등 100여 명을 체포했다.
지난주 경찰과 시위대의 격렬한 충돌이 벌어졌던 홍콩 중문대를 비롯해 시립대, 침례대 등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시위대가 철수한 상태이다.
이에 따라 이날 격렬한 충돌이 벌어지고 있는 이공대는 홍콩 시위대 입장에서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시위대는 진입하려는 경찰에 맞서 화염병을 던지고 활로 화살을 쏘면서 격렬하게 저항했다. 자체 제작한 투석기로 화염병, 벽돌 등을 발사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시위대는 소방대원들의 화재 진압 작업조차 저지했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한 시위대는 "소방대원들이 들어와 불을 끄면 경찰들이 교내로 밀고 들어올 것"이라고 외쳤다.
경찰은 최루탄과 함께 물대포 차 2대를 동원해 파란색의 거센 물줄기를 쏘며 이공대 교정에 진입을 시도했다. 물에 파란색 염료를 섞은 것은 물대포에 맞은 시위대를 쉽게 식별해 체포하기 위한 것이다.
경찰은 지난 6월 초 송환법 반대 시위가 시작된 후 처음으로 '음향 대포'로 불리는 장거리음향장치(LARD)도 사용했다.
지난 2009년 미국 피츠버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시위 진압 때 처음 등장한 음향 대포는 최대 500m 거리에서 150dB 안팎의 음파를 쏜다.
음향 대포에 맞은 상대는 고막이 찢어질 듯한 아픔과 함께 구토, 어지러움 등을 느낀다고 한다.
다만 홍콩 경찰은 LARD가 무기가 아닌, 경고 방송용 장치라고 주장했다.
◇ 경찰, 시위대 등 향해 실탄 4발 발사…'전쟁터' 방불
이공대 시위 현장에는 지난주 퇴임한 스티븐 로 경찰청장의 후임으로 경찰 총수 자리에 오른 '강경파' 크리스 탕 경찰청장이 직접 나와 진두지휘하고 있다.
이공대 인근에는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 막사까지 있어 우려를 키운다.
전날 밤 시위대가 이공대 탈출을 위해 인민해방군 막사 인근에 설치된 저지선을 향해 돌진하자, 홍콩 경찰이 차량을 향해 실탄을 발사했다.
이 실탄 사격으로 다친 사람은 없었고, 차량 운전자는 유턴한 후 도주했다.
이날 새벽 3시에는 경찰이 이공대 인근 침사추이 지역에서 시위대를 향해 실탄 3발을 발사했다.
한 여성이 불법집회 참가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머리를 다쳐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시위대가 이 여성의 도주를 도우려고 하자 경찰이 실탄을 발사했다.
경찰은 "폭도들이 벽돌과 정체불명의 액체를 경찰관에게 던져 생명의 위협을 느껴 실탄을 발사했다"며 "실탄에 맞은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전날 밤 시위대는 활로 화살을 쏴 경찰
1명의 다리를 맞혔고, 경찰 장갑차에 화염병을 던져 이를 불태웠다.
한마디로 '전쟁터'와 같은 상황이 연출됐다고 할 수 있다.
경찰은 "시위대가 화염병, 활, 차량 등 살상용 무기로 공격을 계속할 경우 실탄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공대 내 부상자 속출…탈출하려다 400명 넘게 체포
이날 오전 이공대 텅진광 총장은 학생들에게 교정 밖으로 나올 것을 호소했지만, 전날 밤 경찰이 응급 구조요원까지 무차별적으로 체포하는 것을 본 시위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경찰은 전날 밤 이공대 내에 있는 사람들에게 교정 밖으로 나올 것으로 명령했지만, 막상 이들이 밖으로 나오자 시위대가 위장했을 가능성이 있다며 응급 구조요원이나
언론인 조끼를 입은 사람 51명을 체포했다.
야당 의원들과 요셉 하 홍콩 천주교 보좌주교는 직접 교정 안으로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길 원하는 학생들을 데리고 나오겠다고 경찰에 제안했다.
하지만 경찰은 이를 단칼에 거절하고,
이들이 폭동에 참여하고 있다면서 되레 강한 불빛을 의원들에게 쏘기도 했다.
홍콩 의료 당국은 전날 시위 과정에서 38명이 다쳤고, 이날도 오후 10시까지 116명이 다쳐서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밝혔다.
최고령 부상자는 84세였으며, 중태에 빠진 여성도 있다.
이공대 학생회는 "교내에 600∼700명 정도가 있다"며 "최소한 3명이 최루탄 등에 눈을 다치고, 40여 명이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심각한 저체온증에 시달리는 등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저녁에도 시위대가 탈출을 시도해 수십 명이 탈출에 성공했다. 이들이 학교 건물 옆 육교 등으로 내려오자 대기하고 있던 오토바이가 이를 태우고 달아났다.
하지만 탈출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시위대가 훨씬 많아 전날 밤 10시부터 이날 저녁까지 체포된 시위대는 400명을 넘는다고 경찰은 밝혔다.
이 과정에서 무기를 소지하지 않은 채 달아나는 시위대에 최루탄을 쏘거나, 곁에서 지켜보다가 항의하는 시민에게 총을 겨누는 일도 벌어졌다.
시위대가 체포되는 과정에서 다쳐서 피를 흘리는 장면도 목격됐다.
일부 강경파 시위대는 유서를 쓰고 이공대에 남아 있으며, '결사 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경찰은 이공대 내에서 폭력 행위를 하는 시위대에게 폭동 혐의가 적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홍콩에서 폭동죄로 유죄 선고를 받으면 최고 10년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
◇학부모들 "아이들 만나게 해달라"…재야단체 "유혈사태 우려"
시위대의 학부모들은 이날 인근 침사추이에서 집회를 열고 경찰 지휘부와 면담과 함께 이공대 안에 있는 자녀를 만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홍콩 재야단체 연합인 민간인권전선은 국제사회를 향해 시위대가 처한 '인도주의 위기'를 강조하면서 "우리의 미래 세대인 시위대가 유혈 사태 끝에 진압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혔다.
침사추이, 몽콕, 야우마테이 등 이공대 인근 지역에서는 이공대 시위대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일부는 이공대 내 시위대에 전달할 물, 수건, 마스크 등을 모으기도 했다.
최루탄, 고무탄 등을 쏘며 진압에 나선 경찰에 맞서 시위대는 돌, 화염병 등을 던졌다.
홍콩 시위대는 친중 재벌로 알려진 맥심 그룹이 운영하는 스타벅스 매장의 기물을 파손하는 등 극심한 '반중국 정서'도 표출했다.
시위대의 주요 공격 대상인 중국공상은행(ICBC)은 사이완호, 침사추이이스트, 조던, 야우마테이, 몽콕 등 5개 지점의 영업을 이날 중단한다고 밝혔다.
홍콩 도심 센트럴 등에서는 이날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나와 홍콩 시위대를 지지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캐리 람(林鄭月娥) 홍콩 행정장관은 전날 밤 시위대가 쏜 화살에 맞은 경찰이 입원한 병원을 찾아 그를 위로했다.
우첸(吳謙)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주말 홍콩 주둔 인민해방군이 홍콩 도로 청소에 나선 데 대해 "병사들은 시민들과 함께 청소했으며, 시민들의 환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홍콩에서 폭력 사태를 멈추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긴급한 임무이며, 홍콩 주둔군은 단호하게 국가 안보를 수호하고 홍콩의 장기적 번영과 안정을 지킬 능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한편 홍콩 시위대는 온라인 사이트 'LIHKG'를 통해 "염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며 "경찰이 철수하지 않으면 경찰 막사나 경찰서에서 염소폭탄이 폭발할 것이며, 이는 대학살이 될 것"이라고 보복을 경고하기도 했다.
현재 이공대를 포위하고 있는 경찰 병력은 2천여 명에 달한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ssah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