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NBA에는 두 가지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레이 알렌의 통산 3점슛 신기록이고 또 하나는 제리 슬로언 감독의 사임입니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팬들에게 충격적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일 것입니다. 유타 하면 제리 슬로언이었으니까요. 슬로언 감독은 23년이라는 장고의 세월을 유타와 함께 했고 유타가 지금까지 큰 기복없이 팀이 유지된 가장 큰 이유도 슬로언 감독의 덕입니다.
분명 이번 사태에 대해서 데롱이에게 실망한 이들이 많을 겁니다. 선수가 감독을 내쫓는 건 경솔한 짓이고(결정은 팀 프론트가 하지만) 그것도 유타의 스피릿이라고 해도 좋을 슬로언을 그렇게 내쫓았으니까요. 사실 저도 실망스럽긴 합니다. 하지만 유타의 상황을 감안한다면 이번 일이 그렇게 이해가 안 되는 일은 아닙니다. 언젠가 터질 일이 터진 셈이죠.
아실 분들은 아시겠지만 데롱이와 슬로언은 애초부터 안 맞는 사이였습니다. 오랜 유타 팬분들은 잘 아실 겁니다. 두 사람간의 조합이 얼마나 어울리지 않는지를. 데롱이는 대학 때부터 지금까지 업템포 농구를 선호하는 반면 슬로언은 클래식한 하프코트 농구를 지향합니다. 서로 성향이 정반대이다보니 데롱이는 루키 시즌에는 제대로 출장 시간도 못 받았습니다. 그러다가 슬로언 감독이 조금씩 롤을 주면서 데롱이가 본격적으로 빛나기 시작한 겁니다. 그렇다고 해서 둘의 사이가 크게 개선된 건 아닙니다. 여전히 둘 사이는 좋다고 보기 힘들었는데 그런 갈등이 표면화되지 않은 이유는 故 래리 밀러 전 구단주의 중재 덕이었습니다. 그리고 팀 성적도 별 탈 없이 좋았으니 갈등이 드러나지 않았던 겁니다.
그러다 이번 시즌 들어 팀 성적 자체가 좋아지지 못하면서 갈등이 기어이 폭발했다고 봐야죠. 그런데 돌아보면 이런 갈등의 폭발 조짐은 어느 정도 있었다고 봐도 될 듯 싶습니다. 그 경과를 재구성해 보죠.
일단 빅 알의 영입부터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유타 팬들이라면 지금 빅 알의 모습에 대해 만족하기 힘들 겁니다. 물론 최근에는 폼이 살아나면서 논란을 어느 정도 잠재웠습니다만 여전히 뭔가 안 맞는 모습이죠. 개인 성적 자체도 미네소타 시절에 비해 내려갔지만 슬로언 시스템을 원활하게 소화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득점 대부분이 자신의 포스트업 공격을 통한 득점이죠. 데롱과의 픽앤롤은 많이 나오지 않습니다. 저도 빅 알을 데뷔 때부터 지켜봤지만(하워드의 라이벌이란 말만 듣고..-_-) 정통 빅맨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변칙형 빅맨이죠.
왜 그럴까요? 빅 알의 플레이스타일 때문입니다. 빅 알은 부저와 달리 정통 빅맨이 아닙니다. 고등학교를 바로 졸업하고 오다보니 부저만큼 기본기 단련이 되어 있지 않을 뿐더러 본인의 플레이도 자기가 공을 제법 가지는 빠른 공격을 선호하는 듯한 모습입니다. 보스턴에서도 그랬고 미네소타에서도 그랬습니다. 가드와의 연계 플레이보다는 본인의 포스트플레이 비중이 상당히 높죠. 그래서 일대일 스킬은 부저보다 좋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패싱이나 경기 조율능력 면에서는 부저보다 상당히 처집니다. 운동능력을 활용하는 모습도 많이 보이죠. 어떻게 보면 그는 공격농구 팀에 어울리는 빅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빅 알이 그의 스타일과 맞기 힘든 슬로언 농구가 뿌리를 내린 유타로 왜 왔을까요? 바로 데롱이 때문입니다. 데롱이가 팀에서 영입하기 원하는 선수가 빅 알이라고 한 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데롱이도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빅 알이 부저와는 다른 스타일이라는 점을요. 그렇다면 데롱이가 빅 알을 원했다는 건 본인도 공격적인 농구를 원했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그런 본인의 희망을 영입희망 선수를 통해 내비친 거죠. 슬로언 입장에선 내키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유타의 로스터는 점점 슬로언 스타일의 농구를 소화하기 힘든 구조로 가고 있었습니다. 슬로언 감독의 농구는 정형화된 공격과 물샐 틈이 없는 수비로 설명될 수 있는데 유타의 로스터를 보면 슬로언 농구의 조건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최근 몇 년간 그랬습니다. 지난 시즌까지는 적어도 공격에서는 3점능력이 좋은 오쿠어나 코버 덕에 하프코트 오펜스가 원활하게 돌아갔습니다. 데롱과 부저의 2대2도 위력적이었고요. 그러나 이 체제는 수비에서 너무 많은 허점을 노출했습니다. 오쿠어와 코버는 슈팅은 좋지만 수비에서는 문제가 많습니다. 부저도 수비가 좋다고 보기는 힘든 실정입니다. 그렇다고 AK나 브루어처럼 수비능력이 좋은 선수들을 중용하자니 외곽슛이 없습니다. 공수 밸런스를 맞추기가 힘들었던 거죠.
이런 과정에서 데롱이의 불만은 계속 쌓였을 겁니다. 현재 로스터의 특성상 정형적인 하프코트 농구, 수비 농구보다는 공격적으로 나가는 농구가 어울리고 데롱 본인도 업템포 농구를 선호하건만 슬로언은 그걸 절대 바꾸려하지 않았으니까요. 유타가 최근에 잘 나갔을 때도 이 팀은 수비에서의 고질적 약점(골밑 높이, 스윙맨 수비)을 극복하지 못하고 플레이오프에서 번번이 고배를 들이켰습니다. 그런 점이 데롱이의 반감을 더욱 샀을 듯 합니다. 데롱이 입장에선 차라리 더 공격적으로 나가는게 수비의 구멍을 상쇄하는 방법이라고 여겼던 거죠.(저도 개인적으로는 이게 맞다고 봅니다)
그러나 슬로언은 끝내 바꾸지 않았습니다. 골밑의 높이가 낮아지고 슈터 자원이 빈약해지고 스윙맨 자원이 빈약해도 끝까지 자신의 시스템을 고수했습니다. 현재 팀에는 이렇다할 슈터도 없고 수비가 좋은 장신 빅맨도 없고 상대 수비를 휘저어줄 변변한 윙맨도 없습니다. 그 윙맨과 슈터의 약점을 극복해 보려고 고든 헤이워드를 지명한 건데 손볼 데가 너무 많은 신인입니다. 결과적으로 약점이 그대로죠. 그럼에도 변화는 없었습니다. 저는 이게 조금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아무리 견고한 시스템이라도 약점이 있는 법. 더구나 로스터 자체에 극복하기 힘든 약점이 있는데도 그걸 고려하지 않고 끝내 슬로언은 자신의 철학을 고집했습니다. 저번에 뉴욕과의 홈 경기에서 이겼을 때도 수비가 안 좋았다며 이를 꼬집었죠.(이 때 유타는 131-125로 승리했습니다)
이렇게 팀의 약점이 심화된 상황에서 성적조차 내려가니 프론트 입장에서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겁니다. 데롱이야 말할 것도 없죠. 끝내 폭발했습니다. 그것도 선수, 코치 다 있는 라커룸에서요. 그렇잖아도 자신의 농구가 한계를 드러내고 있어서 큰 고민을 안고 있던 슬로언 입장에서 그토록 관계가 안 좋았던 데롱이의 폭발은 비수나 다름없었죠. 그래도 리그에서 이 녀석보다 잘하는 놈 찾기 힘드니 제갈량이 위연 쓰는 심정으로 썼는데 기어이 반골의 상을 드러내고 말았으니 슬로언 입장에선 할 맛이 안 났을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신임 구단주인 래리 밀러의 아들과 팀 운영진조차 슬로언을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도 뭔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데롱이가 폭발했을 때 슬로언을 비호해준 이는 없었습니다.(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데롱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알았을 거라고 봅니다) 결국 슬로언은 눈물을 흘리며 팀을 떠났습니다.
제가 생각한 슬로언의 사임 경과는 이렇습니다. 당장의 결과만 보면 데롱이의 일방적 잘못으로 비춰지지만 그 전부터 살펴보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어차피 슬로언은 언젠가 떠날 인물이었습니다. 다만 이렇게 팀을 떠나는 게 아쉬울 뿐이죠. 어쨌든 그는 떠났고 유타는 새롭게 정비해야 합니다. 그의 코치였던 타이론 코빈이 감독 대행을 맡게 되었습니다. 물론 당장은 큰 변화가 없겠지만 유타는 점차 컬러가 달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유타는 그렇다치고 문제는 이제 데롱입니다. 결국 데롱이도 또다른 decision을 해야 합니다. 슬로언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유타를 이끌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도를 할 것인지 말이죠. 그도 2012년에 FA가 됩니다. 마침 그 때 하워드, 멜로, CP3도 선택의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현재 상황을 감안하면 이들이 팀에 남으리라고 장담하기는 힘듭니다. 하워드의 올랜도는 샐러리 유동성이 없어서 더 이상 뚜렷한 보강을 하기 어렵고 멜로는 뉴욕행을 원하고 있으며 CP3의 뉴올리언스는 재정적 상황이 좋지 못해 그를 달래기도 쉽지 않습니다. 만일 폴의 말대로 정말 새로운 빅3라도 나타난다면? 그 때 데롱이가 흔들리지 않을까요? 요즘처럼 프랜차이저의 위상이 낮아지고 슈퍼스타의 조합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마당에 지금 상황에 데롱이가 만족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아시다시피 유타는 부자 구단도 아니고 시장이 큰 곳도 아닙니다. 빅 마켓의 자본력을 동원한 스타 사냥에 맞서 데롱이를 온전히 지키기 쉽지 않습니다. 폴의 공언대로 뉴욕에서 새로운 빅3라도 결성된다면 그 때는 데롱이도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집니다. 데롱이도 알고보면 승부욕이 정말 강하고 독기가 상당하기 때문에 자신의 현실이 나아지지 않는다면 유타를 박찰 수도 있습니다.
정말로 데롱이가 유타를 떠난다면? 아마 데롱이는 엄청난 욕을 먹을 겁니다. 브롱이가 클리블랜드에서 먹은 욕보다 몇 배는 많은 욕을 먹게 되겠죠. 그리고 그 욕은 평생 따라다닐 겁니다. 르브론처럼 아예 슈퍼 악당을 맡아서 참새들의 입을 막아버리면 모르겠으나 데롱이는 그런 위치도 아닙니다. 그가 스스로 악당이 되길 자처했다고 포장해줄 언론이 얼마나 될까요? 브롱이는 악당이 되겠지만 데롱이는 그야말로 나쁜 놈으로 찍히겠죠. 만일 데롱이가 유타를 떠난다면 온갖 욕은 다 먹을 각오를 해야 될 듯 합니다. 자기 힘으로 유타의 거목을 뽑아버린 것도 모자라 그 땅을 내팽개치고 떠난 선수를 유타 팬들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팬들도 좋게 보지는 않겠죠.
유타를 지키는 거목은 이제 사라졌습니다. 이제 새로운 거목을 심어야 합니다. 유타는 이제 그 작업에 심혈을 기울일 것입니다. 이 작업에 데롱이가 동참할 것인지 아니면 떠날 것인지가 관심거리가 되겠습니다. 유타의 행보가 앞으로 꽤나 이슈가 될 것 같습니다.
첫댓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근데 요즘 저런 슈퍼스타 뭉치기 움직임은 좀 우려스럽네요. 르브론이 잘못된 선례를 만든 듯 싶어 걱정스럽습니다. 스턴이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각종 제도로 전력 평준화를 지켜온 것이 NBA를 살려온 힘이라고 보는 저로써는 안타깝네요,
선례를 먼저 만든건 보스턴 빅3였습니다. LAL도 다른 팀들이 보유하기 힘든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고요. 르브론의 잘못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바클리 드렉슬러 올라주원
바클리 피펜 올라주원
샥 코비 말론 페이튼이 원조이긴 하죠 실패했지만 ㅜㅜ
근데 보스턴빅3와 LAL전당포 등이전사례는 선수들이 전성기가 지나간 선수생활후반인데...마이애미빅3는 앞으로6년을함께 전성기를 보내게된다는 점에서 르브론이 선례를 만든거라 볼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좀 노쇄해져서 나온 빅3라 르브론 웨이드 보쉬랑은 느낌이 많이 틀렸죠? 샥 코비 말론 페이튼이 정말 원조인거같은데... 피어스 앨런 가넷 전성기라면 모르겠지만..
만약에 데론이 우승은 못하더라도 유타의 프랜차이저로 계속 남는다면, 어떻게될까요?
좋은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그냥 쉽게 말해 '하극상' 인듯...데롱이에게 꺼꾸리 도사가 보이네요ㅎㅎ
지 원하는대로 감독까지 쫓아냈는데 팀을 나가버리면 정말 진짜 나쁜놈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