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서전을 쓰면 쓸 수록 답답한 점도 많이 생겨났다.
이궁리저궁리 하다가 문득 떠 오르는 사람이 있었다.
이필준 사장이었다.그는 2010년 강원도 횡성군에 옥스필드 골프회원권을 1억원에 사서
1년남짓 동호인들과 함께 골프를 즐겼던 동호인회 회장이었다.
머리가 아주 명석하고 빈틈없는 매너로 동호인회를 이끌었고,우리 부부도 1개월에 1~2번씩 같이
라운딩하고 점심을 같이 먹었던 분이다.그때 언듯 들으니 직업이 대필 작가라고 했다.
그래서 그분의 도움을 받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핸드폰 번호를 찾았지만 없어진 지 오래되었다.
할 수 없이 찾는 것들 포기했는데 네이버 주소록을 보자 그가 보였다.그때가 7월 중순이었다.
반가운 마음으로 그에게 전화했더니,옥스필드로 골프치러 가다가 교통사고로 지금 경찰병원에 입원해 있고,
9월중순이니 되면 퇴원할 수있을 거라고 했다. 며칠 후 병원에 그간 내개 쓴 원고 몇장을 가지고 그에게 갔다.
그러자,대충 읽어보고 9월중순 퇴원하면 전화주겠다고 했고 9월중순에 전화가 와서 굽은 다리역 3번
출구로 나와서 부근식당에서 갈치조림과 늦은 점심식사를 하면서 두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글쓰는 것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고,한국의 유명한 분들의 자서전을 본인이 대필했다고 했다.
또, 대필작가는 누구의 자서전을 대필했노라고 밝히지 않은 것이 예의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부터 만나면 녹음기와 시간 여유를 가지고 철저하게 서너번 만나서 녹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순간 생각했다.이런 전문작가에게 의롸하면 물론 나보다는 훨씬 전문적으로 작품을 만들 수 있겠지만
그럴 경우 나의 작품이 되지 않지 않겠나?
그리고 대충 들어보니,그 대가로 1,500만원내지 2,000만원정도 작가에게 주어야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어려운 주피터 국제결혼 사업도 내 혼자 개척했는데 굳이 남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겠느냐하는
생각으로 곧 포기했다.
그전에 나는 한국 대필작가협회라는 곳을 인턴넷 검색을 통해 알고 전화를 했더니 며칠 지나서 전화가 왔다.
그를 천호역 8번 출구에서 만나 동네 토종 보신탕집에서 만나 작품 쓰는 데 조언을 달라고 했지만
극히 피상적인 이야기만 해서 별 도움을 받지 못하겠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그는 아직 젊은 36세였지만,
자신도 앞으로 임대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그러면서 연봉 1억쯤 된다고 했다.
나는 평범한 대필작가가 연봉 1억의 수입이 된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웠고
또 어떻게 글을 써서 돈을 모아 임대업을 하겠다는 것인지 선뜻 이해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그는 심지어는 협회장이라면서도 아직 마땅한 사무실조차 구하지 못하고 아마 공동사무실에서
월세20~30만원정도 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와 더 이상 만나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인턴넷을 보니 홍대부근에서 책가방이라는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회원들과 비정기적인 모임을 갖는다고
해서 회비 2만원을 미리 인터넷 송금을 하고 갔더니,무슨 알아듣지도 못할 뜬 구름 잡는 이야기만을 하고
있어서 또 그것도 더이상 만나는 것을 포기했다.
그때 생각난 이가 성균관대앞에서 문방구를 하는 고모님의 큰 아들 인선이 생각이 났다.
십여년전 고모님이 돌아가실 때 만나고 아직까지 만나지 못했는데 그에게 찾아가서 오리고기에
저녁을 먹으면서 출판에 대해 물었다.
그는 요사이는 웬만한 책은 그냥 복사하면 되기 때문에 여러권 발행할 필요도 없고 20권정도 발행하고
나머지는 그냥 복사만 해도 된다고 했다.인선이는 동생이지만 나와 만나 술한잔을 하면 항상 그가 계산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가 화장실에 가자 내가 얼른 계산했다.
그리고 출판이나 인쇄에 대해서 더 잘 알려면 을지로에 있는 둘째 동생 인철이에게 가보라고 했다.
인철이에게 전화하고 다음날 인철이를 만나러 갔다.
그는 어떤 수준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책값이 천차만별이라면서 글을 다쓴 다음 만나자고 했다.
그러면서 왜 벌써 자서전을 썼느냐?요사이는 80이 넘어서 쓴다고 했다.
그래서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데 어떻게 80세까지 기다리느냐고 하고 나왔다.
안되겠다싶어 잠실 교보문고에 들러 '자서전 쓰는법'을 사고,또 틈틈히 내 젊은 시절 좋아했던 한수산의 '부초'를
어렵사리 인터넷을 통해서 구입했다.
또,조지훈 시인의 '돌의미학'을 구하려했으나,절품되었다고 했다.
이때 대학시절 내가 김성기 박사(일고 10회)에게 빌려 주었던 생각이 나서 반환해 달라고 카톡으로 요청했다.
그때 빌려갈 때,1개월만 보고 돌려 주겠다더니 내가 돌려 달라고 하자 '이 세상에 바보가 책을 빌려준 사람이고 더 바보는 빌린 책을 다시 돌려 주는 사람"이라면서 안돌려 주는 것이었다.그 이야기를 했더니,"내 가 그렇게 모질게 이야기를 했는가?어떻든 지금 없네.내생각에는 그 책은 돌려주고 유현종 교수의 문학개론을 자네에게 발려주고 못받았노라"고 했다.
이 분쟁을 들은 일고 12회 김대광형이 "내가 인터넷 검색해보니까 돌의 미학이 분명히 있네.내가 구입해 줄테니 책이 오면 가져고 갈테니 그때 술한잔 사게."그래서 며칠후 일고 1년후배인 박형진군과 종로 3가역에서 만나 빈대떡에 막걸리 4병 나누고 책을 받았다.술값 22,000원은 내가 계산했슴은 물론이다.
한가지 아이러니한 것은 엊저녁('17.2.11) 9시 조금 넘어 문득 지난 9월중순에 만난 이 필준 작가의 생각이 나서
그에게 전화했다.
내 혼자 쓴 글에 대한 강평을 부탁할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그는 대뜸 "고사장님이 어떤 출판사에게 맡겼는지 모르지만 왜 그런데 맡기느냐?좋은 작품을 만드려면 자신과 같이 한국최고의 대필작가에게 의뢰해야지 자칫 실수하는 것이고,그런 책은 독자들이 안읽는다"고 단언했다.나는 순간 당황했다."내가 대단한 전문 작가도 아니고 아마추어이기 때문에 최고수준의 작품을 기대하지 않는다.나중에 책이 나오면 한번 뵙고 보여드리겠다"고 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속으로 그렇다면 모든 작품은 이 사장같은 최고의 대필작가의 손에서만 나와야 될까?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괜히 전화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