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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1: 38. 상속자니 죽이고 - 마 21: 40. 포도원 주인이 올 때
마 21: 38. 상속자니 죽이고 -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업을 차지하자.' 하고 )
농부들은 예수를 보고 하나님의 상속자임을 알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려고 했다.
1] 농부들이 그 아들을 보고 서로 말하되, '이는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의 유산을 차지하자.' 하고
악한 농부들은 마땅히 주인에게 지불해야하는 소작료를 지불하지 않으려는 것뿐만 아니라 포도원의 소유권을 빼앗으려고 모의하였다.
예수께서는 여섯 달 동안이나 당신의 제자들을 향해 예루살렘의 종교당국자들이 자신을 죽이리라고 하는 예언을 해 오셨다.
* 마 16: 21 -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마 17: 22-23 – 22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23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마 20: 18-19 – 18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죽이기로 결의하고 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제 당사자들 앞에서 그들의 속생각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셨다. '자 죽이고'라는 표현은 요셉의 형들이 동생 요셉을 죽이려고 모의할 때 사용하던 용어를 연상케 한다.
* 창 37: 20 -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특별히 이 용어는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불법적으로 모인 공회에서 예수를 제거하려고 음모를 꾸밀 때 그대로 사용되었다.
* 요 11: 47-50 – 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이르되, 이 사람이 많은 표적을 행하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느냐? 48 만일 그를 이대로 두면 모든 사람이 그를 믿을 것이요 그리고 로마인들이 와서 우리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가리라. 하니 49 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 도다. 50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 도다. 하였으니
마 21: 39. 내쫓아 죽임 -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어좇아 죽였느니라. )
그런데 그 지도자들은 그를 예루살렘 밖에서 죽일 것이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죽음을 예언하신 것이다.
1] 이에 잡아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마가복음의 경우 포도원 안에서 죽이고, 밖으로 내던졌다.
마태와 누가에서는 사건이 일어난 장소가 바뀌었다. 이는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 언덕에서 죽으신 예수의 수난 사건과 이 비유를 좀 더 연관되게 하기 위해서 마태와 누가가 각색한 것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A. W. Argyle).
알포드(Alford)는 예수께서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게 넘겨져 심판받은 사실을 암시한다고 본다.
* 요 19: 17-18 – 17 그들이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 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가시니 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 히 13: 12 -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2] 구속사역의 완성 ( 21: 33-39 )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도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강화하시는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이 악한 농부의 비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두 아들의 비유와 같이 도전자들이 비유를 통하여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죄악을 깨닫기를 바라고 나아가서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암시하고 인류 구속에 대한 하나님의 열심과 구속 사역의 절정이 바야흐로 임박해 오고 있음을 알려준다.
(1) 악한 농부의 비유
① 비유의 의미
악한 농부의 비유는 다음과 같은 상징적인 뜻이 있다. 즉 '집 주인'은 하나님, '포도원'은 이스라엘 나라, 또는 은혜의 세계를 뜻하고 '농부'는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 '종'들은 선지자들, 그리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상징하고 있다.
이 비유를 풀어 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민족)를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시고 율법(산울)을 보호벽으로 삼고, 예루살렘(즙 짜는 구유)을 은혜(포도즙)의 진원지로 정하시고 성전(망대)에서의 예배(신앙)를 통하여 이스라엘을 지키실 계획을 하신 후에 대제사장, 장로 등 종교 지도자(농부)들에게 맡겨 놓았다.
하나님은 믿음과 의의 열매가 풍성히 맺기를 기다렸다가 때때로 선지자들(종들)을 보냈으나 그때마다 이들을 핍박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참으시며 다시 선지자들을 보냈으나 역시 핍박하므로 하나님께서 최종적으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다. 그들은 그가 메시야인 줄을 알고도(상속자이니) 그를 성문 밖에 내어쫓아 죽였다는 말씀이다.
여기서 아들의 죽음은 며칠 후에 있을 일을 미리 예언하셨다.
② 세례 요한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
악한 농부의 비유는 앞에서 말씀하신 두 아들의 비유와 연관되어 있다. 즉 두 아들의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에 대한 종교 지도자들의 불신을 말씀하셨다. (21: 32)
악한 농부의 비유에서는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불신을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이 두 가지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역사적 과정을 설명하시고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종교 지도자들의 패악성을 지적하고 계신다.
구약의 율법(행위) 종교가 몰락하고 회개(요한의 세례)와 믿음(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새로운 종교(신약교회)가 시작되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다. 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얻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단계
① 종들을 보냄
하나님은 오랜 시간과 여러 종을 보내어 열매를 받으려고 하였으나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심히 때리거나 돌로 치거나 죽였다.
* 히 11: 37 -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② 최종적으로 아들을 보냄
이 비유의 절정은 포도원 주인이 최종적으로 아들을 보냈는데 그가 주인의 상속자임을 알고도 농부들이 그를 포도원 밖에 쫓아내어 죽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최종 단계를 암시하는 것으로 아사셀 양이 되어 성문 밖에 버림을 당할 대속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뜻하고 있다.
* 레 16: 10 - 아사셀을 위하여 제비 뽑은 염소는 산 채로 여호와 앞에 두었다가 그것으로 속죄하고 아사셀을 위하여 광야로 보낼지니라.
골고다의 십자가는 예루살렘 성문 밖에서 세워졌다. 율법을 주시고 그 삶의 열매를 기대하여 선지자들을 보내시던 하나님이 최종적으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보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그것을 알고도 빌라도에게 내주어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한 것은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최종 단계이며, 계시의 죽음을 통하여 인류의 구속 사역은 완성되고 이를 믿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③ 구속 사역의 완성
하나님은 인류의 구속 사역을 율법과 예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통한 복음을 주심으로 완성하셨다.
율법과 예언은 요한의 때까지였다.
* 마 11: 13 - 모든 선지자와 율법이 예언한 것은 요한까지니
그 이후는 복음의 시대다.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구원을 계획하시고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다.
이러한 구원의 방편이 개인에게 적용되게 하는 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이다. 세례 요한(회개), 예수 그리스도(믿음), 성령(중생)을 통하여 인간의 구원은 완성된다.
* 행 2: 38-39 –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3) 포도원을 빼앗긴 농부들
예수께서 이 비유의 결론을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는 도전자들의 대답으로 내리게 하고 있다. (21: 41)
그들은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스스로를 정죄하고 말았다. 예수의 탁월한 변론술이 앞서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처럼 그들 스스로가 자기 자신들을 심판하도록 하셨다.
그들은 그들의 악함으로 스스로 멸망할 것이다. 악은 불순종이며, 그것은 불신이다. 믿지 아니하면 적그리스도의 입장에 서게 되고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포도원)를 잃어 멸망하게 될 것이다.
마 21: 40. 포도원 주인이 올 때 -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뇨? )
주인이 포도원으로 돌아왔을 때에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1]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그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주인이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인가?
성령 혹은 부활하신 성자의 재림의 시기가 언제인가?
예루살렘 멸망 때(A. D. 70년) 혹은 최후심판 때라는 물음과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징벌의 때가 임했음을 알리는 표현이다.
2] 주인이 올 때
악한 농부의 비유를 끝나고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을 이루어야 할 때가 왔다. '그러면 포도원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예수께서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물으셨다.
그들은 '이 악한 자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 때에 열매를 바칠 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세로 줄지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이 비유를 말씀하신 목적을 달성하셨다. 예수의 질문과 도전자들의 대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상고해 보자.
(1) 주인이 올 때
①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악한 농부 비유의 마무리를 짓기 위하여 예수께서 물으신 말씀 가운데 '주인이 올 때'가 언제를 가리킨 것일까?
그것은 포도원을 다른 농부에게 줄 것이라는 말과 연관시켜 볼 때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때, 즉 주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하여 유대는 완전히 멸망하고 유대 민족은 세계 만방으로 흩어졌으며,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전파되어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주인이 올 때'는 심판의 날과 진멸의 날을 의미하고 있다. 악한 농부인 유대인 지도자들은 버림을 당하고 다른 농부인 이방인 지도자들에게는 '포도원'이 맡겨질 것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음은 이방인들에 의하여 선한 열매를 풍성하게 맺었다. 땅끝까지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면 이때 주인은 다시 오실 것이다.
* 마 24: 14 -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② 주의 재림의 때
주인이 올 때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의미한다. 이렇게 생각할 때는 '악한 농부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만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시대 전반에 걸쳐 사악한 교권주의자 전부를 가리키고 '다른 농부들'은 선한 사역자들을 의미한다.
이것은 다시 양과 염소, 즉 이웃을 사랑하고 봉사한 자와 그렇지 아니한 자를 분별해 내고 양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한 나라를 상속하고 염소들에게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에 던져질 것을 의미한다.
* 마 25: 31-46 – 인자가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 – 3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35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36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37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38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39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42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43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 44 그들도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45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46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어찌하든 '주인이 올 때'에는 심판의 날인 동시에 상속의 날이다. 그것은 행한대로 보상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2) 어떻게 하겠느냐?
① 운명의 열쇠
'주인이 올 때에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라고 하신 말씀에서 농부들의 운명은 주인에게 달려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모든 인간의 운명은 하나님께서 결정하신다.
어리석은 악한 농부가 풍성한 소출로 인하여 자기 도취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내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심으로 내가 살아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자체가 은혜이며 축복이다.
② 운명의 분기점
인생의 길에는 언제나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의 길이 놓여 있고다.
* 신 30: 19-20 – 19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
인간은 항상 그 분기점에 서 있다. 그리고 인간에게 어느 길로 가게 하느냐 하는 것은 '믿음'이 그것을 좌우한다.
믿음이 있는 자는 생명과 복의 길로, 믿음이 없는 자는 사망과 저주의 길로 간다.
* 마 9: 29 -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
믿음대로 된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운명의 열쇠를 돌리신다. '어떻게 하겠느냐?'라는 말은 열쇠를 어느쪽으로 돌리겠느냐는 의미이다.
오른쪽으로 돌리면 생명의 문이, 왼쪽으로 돌리면 죽음의 문이 열린다. 믿고 순종한 자(양)는 오른쪽으로 믿지 아니하고 불순종한 자(염소)는 왼쪽으로 갈라놓는다.
* 마 25: 32-33 -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 다른 농부에게
① 순종하는 자들에게
여기서 말하는 '다른 농부들'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농부들인데 이들은 유대의 종교 지도자에 대하여 이방인의 복음 사역자, 또는 광의에 있어서의 선한 주의 일꾼들을 가리킨다.
순종하는 자는 믿는 자다. 믿기 때문에 순종하고 순종함으로써 믿는 것이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은 것'(삼상 15: 22)이다.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눅 5: 5) 베드로는 헛수고라고 생각했으나 순종했다.
그리하여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잡았다. 순종은 자기 의지의 포기다.
② 제때 열매를 바치는 자들에게
'다른 농부들'은 '제때 열매를 바치는 자들'이다.
여기서 '제때'는 주인이 원하는 때이며, 그것은 열매 맺는 때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오늘'이다. 오늘 실과를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자여야 한다. 생명수 강가에 심기운 생명나무는 열두 가지 과실을 달마다 맺는다.
* 계 22: 1-2 –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새 예루살렘 성은 어린 양의 신부로 묘사되어 있다. 요한계시록 21: 9-10,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이르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그렇다면 그 성은 문자적인 성이 아니고 어린 양의 신부 즉 신약 교회를 상징한 것이라고 본다. 그 성의 영광, 크기와 거주민들에 대한 묘사나 그 성의 복됨에 대한 묘사가 그러하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생명수의 강이 흐른다. 그 강은 수정같이 맑다. 그것은 더러운 쓰레기와 오물, 오폐수로 더럽혀져서 사람들에게 해를 주는 이 세상의 강들과는 다르다. 생명수의 강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 강물이 사람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풍성하게 주는 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강물은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에스겔 47장에 묘사된 회복된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강물과 비슷하다. 만국을 회복시키는 강물로 묘사된 그 강은 세계 복음화를 보인 것이라고 본다.
생명수의 강은 길 가운데로 흐르고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달마다 맺힐 것이다. 그것들은 천국 백성에게 다양하고 풍성하게 생명력을 북돋울 것이다. 또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에 생명력과 활기를 주는 데 사용될 것이다.
에스겔 47장의 이스라엘 회복의 환상에서도 비슷한 말씀이 있다. 12절,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천국에는 생명의 쇠약함과 쇠잔함이 없을 것이다. 거기에는 병도 없고 병원도 없을 것이다. 천국은 항상 건강과 활기가 넘치는 곳일 것이다. 우리는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것이다.
생명수가 흐르는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다. 이 생명나무는 두 가지 배경을 갖고 있다.
ⓐ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하여 따 먹을 수 없게 된 생명나무를 가리킨다.
이 경우 에덴동산에서는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반면에 본 절에서는 그것이 회복되어 먹을 수 있게 되었다.
* 창 3: 22 -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 에스겔의 환상에 보인 성전에서 나와 흐르는 강가에 있는 각종 실과나무를 가리킨다.
* 겔 47: 12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러한 두 가지 배경을 가진 생명나무는 앞 절의 생명수와 같이 영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Morris).
ⓒ 생명나무 잎에서는 만국을 소성하는 힘이 나온다. (계 22: 2).
생명나무는 하나님의 생명(말씀)을 받은 사람을 말한다. 생명수의 강이 흐르는 곳마다 그 좌우에는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나 12종류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생기를 받은 아담이 생명나무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님이 생명(生命)나무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인 세마포 옷을 입고 어린 양의 아내가 된 새 예루살렘이 생명나무이다.
* 요 5: 25-26 –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생명나무에게서 생명수의 강이 발원하여 흐르는 곳마다 강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자라게 된다.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를 마시는 자들마다 생명나무가 되고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 되어 영생을 노래하게 된다.
이 생명나무의 열매는 에덴동산 안에 숨겨지고(창 3: 22) 예수님이 십자가의 핏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생명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는 새 예루살렘 성전에서 생명수의 강이 흘러나와 온 땅을 흐르게 되니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새로운 생명이 되어 만국을 소성(蘇醒)하게 하는 자들이 되기 바란다.
* 요 6: 53-58 –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 요 8: 51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내 말을 지키면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에스겔 서(書)에도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의 강 좌우에는 각종 먹을 실과나무가 달마다 새 실과를 맺고 있다.
* 겔 47: 12 -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과실나무가 자라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열매가 끊이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열매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를 통하여 나옴이라. 그 열매는 먹을 만하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
이것은 새로운 생명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열두 가지 열매를 맺히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히고'는 문자적인 의미의 열매가 풍성함을 의미할 뿐 아니라 생명나무의 생명력이 왕성하여 영생을 의미하는 열매가 풍성함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Johnson, Morris, Mounce).
왜냐하면 그곳에는 해와 달이 없고 대신 하나님과 어린 양이 빛이 되시므로 달마다 지속적으로 열리는 열매가 있다.
ⓓ 열두 가지 열매- 열매의 풍성함
실과(實果 열매)는 열매 실(實)이요 열매(과일) 과(果)이니 하나님의 열매는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외적인 열매는 열두 사도들이다. 그러므로 12제자들은 생명나무이신 예수님의 열매를 맺고 있는 나무들이다.
달마다 열매를 맺힌다는 것은 열매가 풍성하다는 것보다는 12제자들에게서 예수님의 생명이 왕성하게 흘러나오는 것을 말한다.
ⓔ 달마다 새 열매를 맺힘
'달마다 그 열매를 맺히고' - 12가지 열매가 달마다 맺힌다면 12개월이 그대로 있음을 볼 때 성 밖은 12개월로 변함이 없는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단지 하늘과 땅의 환경은 변하였다고 본다.
ⓕ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된다.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있다.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해 있다'는 겔 47: 12을 반영한다. 그러나 에스겔서에서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강조하는 반면 본문에서는 잎사귀 자체의 치유 능력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새 예루살렘에서 치유할 수 있는 잎사귀가 존재하는 것은 단순히 새 예루살렘에 질병과 고통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나무에 참여하면 전혀 고통이나 부족함이나 질병이 없는 완전함을 누리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Mounce, Ladd).
즉 새 예루살렘에 참여하여 생명나무의 열매을 먹는 자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의 고통에서 온전히 벗어났음을 암시한다.
* 마 11: 29 -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롬 8: 12, 19-23 – 12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19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 갈 2: 19 -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ㄱ 생명나무 열매와 생명나무 잎사귀들의 역할이 있다.
생명나무 열매는 에덴동산에서 먹기에 좋은 열매였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죄로 인하여 먹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 세상에서 예수의 피로 우리의 모든 죄를 씻고, 천년왕국에서 먹고 죄 없는 상태에서 영생하는 것이다.
생명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한 역할이 있다. 그렇다면 만국은 무엇일까?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성 밖의 많은 나라들일까? 성안에 있는 많은 사람들일까? 하는 의혹이 생긴다.
만국에 대한 용어가 계 21: 24에 있는데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에서 그 빛이란 그 앞 절인 23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성안에서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다니는 만국인데 혹시 땅의 왕들과 같이 성 밖에서 들어온 자들로 생명나무 잎사귀로 소성케 되고 열매를 먹는 자들인가에 대한 가능성을 추측해 본다.
생명나무에 참여하는 것은 생명과를 먹어 영원히 사는 자로 누리는데 그 전에 생명나무 잎사귀에 참여함으로 소성케 된 다음에 생명나무에 참여하는 것으로 본다. 그렇다면 거룩한 성안에 있는 자들은 다 소성케 된 자들인데 누가 또 소성케 되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그것은 성 밖의 사람들이 두루마기를 빨아서 성안에 들어갈 권세를 얻어 생명나무 잎사귀로 소성케 되고 생명나무 과일을 먹게 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ㄴ생명나무 잎사귀는 약(藥) 재료가 된다. (겔 47: 12)
본문에서도 생명나무 잎사귀들이 만국을 소성(蘇醒)하게 하기 위하여 있다. 예수님은 자기를 '포도나무'라 하시고 그 제자들을 '가지'라고 하셨다.
* 요 15: 1-4 -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 2 무릇 내게 붙어 있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것을 제거해 버리시고 무릇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열매를 맺게 하려 하여 그것을 깨끗하게 하시느니라. 3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여졌으니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본문은 생명나무가 새 예루살렘 성전이요 그 제자들은 생명나무 잎사귀들이라고 하면서 생명나무 잎사귀들이 만국을 소성(蘇醒)시키기 위하여 있다고 하신 것이다.
에스겔 서(書)에 기록된 것처럼 만국을 살리는 약 재료가 된다는 것이다. 그 잎사귀들을 먹는 자는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이 되는 것을 말한다. ( 더 자세한 강해는 저자의 성경종말론과 요한계시록 강해를 참조하십시오. jung8h@daum.net로 신청하시면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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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설교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도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강화하시는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기에 세상에서 얻는 것은 모두 "덤"이다.
욕심내지 말고 마음 비우는 오늘 이시길 바라며 늘 ~ 건강하세요.💖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도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강화하시는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
설교 감사합니다.
'다시 한 비유를 들으라'고 하시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 도전자들에 대한 경고의 말씀을 강화하시는 모습을 찾아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