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책소개
아픈 엄마의 보호자 노릇을 하는 동안,
엉망진창이 된 집 안에서 피어나는 아이의 따끈한 사랑
아파서 오늘은 유치원 못 가겠네.
심심하지 않게 책도 읽고, 아끼던 과자도 꺼내 먹고,
인형에 파묻혀 푹 자면 나을 거야.
그러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누워 있어, 엄마!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보내는 하루
한 아이가 장난감 구급상자를 들고 까만 눈동자로 우리를 응시한다. 삐뚤빼뚤한 어린아이 글씨로 ‘내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한다. 대체 무엇을 걱정하지 말라는 소리일까? 뒤이어 등장하는 장난감 청진기며 약 같은 것들이 넌지시 힌트를 주더니, 엄마의 음성으로 들리는 대사가 결정타를 날린다. “아파서 오늘은 유치원 못 가겠네.”
‘그래,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못 가는구나!’ 이런 예상과 함께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면 이야기는 우리를 시원하게 배신한다. 아이는 당찬 표정으로 쌩쌩하게 서 있고, 도리어 엄마는 축 늘어진 다리만 빼꼼 보일 뿐이다. 엄마가 아픈 바람에 아이를 유치원에 바래다주지 못한 날, 아이는 ‘보호자의 보호자’를 자처한다.
이영림 작가는 자신의 경험과도 맞닿은 이야기를 《내 걱정은 하지 마》로 그려 냈다. 굵직한 터치와 알록달록한 색감은 보는 즐거움을 더해 주는 동시에, 최선을 다해 엄마를 간병하려는 아이의 순수한 모습과도 어울린다. 아이가 엄마를 돌보겠다고 나설수록 엉망이 되어 가는 집 안에서, 엄마는 제대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을까?
조금 서툴러도, 많이 어질러도, 통하는 진심
엄마와 아이의 관계가 환자와 간병인으로 전복되는 순간, 집 안도 한바탕 뒤집어진다. 아이는 엄마에게 책을 읽어 주겠다며 큼지막한 책을 몇 권이고 꺼내서 쌓아 두고, 부엌을 어질러서는 자기가 아끼던 온갖 간식거리를 내준다. 소풍 온 기분이 나게 해 주겠다고 집 안에 있던 화분을 엎어 가며 엄마 곁으로 옮기고, 널브러진 엄마 위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양치를 하라고 외친다. 극진한 간병에 집이 점점 쑥대밭이 될 때마다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내 걱정은 하지 마!”
아이가 챙겨 준 인형들에 파묻혀 엄마가 잠든 사이 해는 뉘엿뉘엿 저물어 간다.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반사적으로 엄마를 찾던 아이는 결국 저녁이 다 되었을 즈음 엄마를 깨우러 온다. 하지만 코끼리 인형이 어디 있는지 물어보려고, 주스를 마셔도 되는지 허락을 받으려고 온 것은 아니다. 이불을 뒤집어쓴 엄마가 아이 손에 이끌려 나가 보니, 아름다운 석양이 거실 창밖을 가득 채우고 있다. 붉게 물든 하늘을 아이와 바라보며 기운을 되찾은 엄마는 함께 먹을 저녁을 준비한다. 앞 면지에서 의사놀이 장난감을 장착하고 진지하게 입장했던 아이는, 뒤표지에서도 두건과 앞치마를 갖춰 입은 채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퇴장한다. 파스타 면을 풀풀 날리고 달걀을 깨 먹어도, 엄마의 전문 간병인다운 직업 정신은 잃지 않는다.
모호함 속에 담긴 온기
책 제목이자 아이의 대사로 거듭 나오는 ‘내 걱정은 하지 마’라는 말은, 자기가 아파도 걱정 말라고 아이가 엄마에게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파서 유치원 못 가겠다’는 말은 아이가 아파서 유치원에 갈 수 없다는 뜻처럼 읽히기도 한다. 드러누운 엄마와 그런 엄마에게 누워만 있으라고 호언장담하는 아이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픈 사람이 아이인지 엄마인지 확실히 알기 어렵다. 동그란 단발머리에 호기심 왕성한 아이의 모습도 성별이 특정되지 않는다. 이처럼 책 속에 장치한 모호함은 독자에게 반전이나 궁금증, 자유롭게 상상할 여지를 주어 머릿속 세계를 넓혀 준다.
아이가 자기 걱정을 하지 말라는 것은 곧 엄마 걱정을 한다는 뜻과도 일맥상통한다. 반대로 엄마 입장에서는 자신이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어 걱정했을 것이다. 서로를 챙기는 마음은 온기가 전이되는 과정으로도 나타난다. 아픈 엄마에게서 나던 열은 아이가 침대 위에 쌓아 준 인형의 온기로 해소되고, 그렇게 엄마가 아이에게 나누어 받은 온기는 저녁상에 차려진 토마토 파스타의 온기로 이어진다.
아파도 괜찮아, 함께하는 시간이 약이니까!
《내 걱정은 하지 마》를 그저 엄마와 아이의 마음 따뜻해지는 이야기라고 끝맺자니, 양육자의 시선에서는 마냥 마음 놓고 웃기 어려울 것이다. 집 안 풍경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설상가상이요 점입가경, 아수라장이다. 아이가 엎어진 화분을 치우겠다고 장난감 포클레인을 가져와 더 어지르는 광경, 엄마에게 얼른 자라고 말하고서는 온갖 사소한 일로 엄마를 연신 불러 대는 모습은 현실감이 넘쳐서 귀엽고도 아찔하다. 겨우 기운을 차린 엄마가 온 집에 펼쳐진 난장판을 마주했다가는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리고 앓아눕고 싶어질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중요한 사실은, 이 책이 아이가 아이답게 엄마를 보살피는 모습을 진솔하게 그리고, 집을 치워야 하는 막막한 앞날보다는 지금 이 순간 둘이 나눈 애틋한 정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내 걱정은 하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기 위해, 엄마와 아이는 함께 성장의 언덕을 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