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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고수희
‘기적’을 아로새기고 백만 개의 인생을 유랑하다
2004년 가을, 취재를 위해 찾은 극단 골목길의 <청춘예찬> 연습실에는 스산한 가을장마 같은 암울함이 깔려있었다. 어떻게 발버둥을 쳐도 결코 빠져나갈 수 없는 일상에 묶인 군상들, 그들의 엮임은 또 하나의 짐을 지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 배우들 가운데 덩치 큰 여배우 한 명이 눈에 띄었다. 방황하는 남자 주인공(김영민)과 하룻밤을 보내고 그 날이 배란기 중 하루였다는 이유로 그, 또 그의 아버지와 좁은 단칸방에서 살림을 차리게 되는 간질에 걸린 다방레지. 그녀는 시종일관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듯한 표정으로 자신에게 부여된 ‘극’적인 고난과 대면하고 있었다.
연습이 끝나고 연출가와 배우들은 단골 선술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고시원에 사는 여배우는 창문이 있는 방에 대한 소중함을 얘기했고, 작고 개구진 남자 배우는 자기 손으로 연극 한 편을 만들고 싶은 꿈을 애기했다. 그곳에 그 덩치 큰 여배우는 아직 슬픔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늦게야 나타났다가 금세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대학로의 인파 속으로 사라져가는 그녀의 뒷모습에 난 위로의 눈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도발적인 파마머리로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등장했다. 이런, 완전 딴판이다. 여자 교도소를 휘어잡는 그 무시무시한 묵직함에 과연 저 여자가 <청춘예찬>에서 간질에 걸려 발작하던 그 여자인가 의문이 들 정도였다.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영화 <분홍신>에서는 분홍신을 향한 탐욕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더니 <너는 내 운명>에선 또 다시 삶의 무게를 짊어진 다방레지로 돌아왔다.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연기 행보를 접할 때마다 그녀의 실체에 대한 호기심의 강도가 더해갔다. 그리고 올해 초, 그녀에 대한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그녀가, 자신이 몸담고 있는 극단 골목길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로 동아연극상 여자 연기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이었다. 올해 서른둘의 여배우 고수희, 그녀의 10년 연기 인생에서 하나의 중간지점을 통과한 게 아닌가. 드디어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온전한 배우 고수희의 연기인생과 대면할 바로 그 때가.
배우와 관객이 아닌 대화의 상대로 대학로 안 카페에서 마주 앉은 그녀의 첫인상은 생기어린 편안함이었다. 머릿속을 활보하는, 작품 속 수많은 그녀의 이미지들은 잠시 잠재우기로 하고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우선 이번에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 타신 걸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웃음)
어디선가 고수희 씨가 상복이 없다고 말씀하신 걸 본 거 같은데.
영화고 연극이고 상이라는 걸 받아본 기억이 없어요. 초등학교 때 개근상, 또 거짓말 잘해서 받은 글짓기 상, 글씨 예쁘게 쓰면 주는 상 정도죠.
그러니 무척이나 감개무량했겠어요.
안 믿었어요. 그런데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연출을 맡으셨던 박근형 선생님이 전화로 알려줬어요. 또 동아일보사에서 프로필 보내달라고 하니까 겨우 실감나더라구요. 제가 연극한 지 10년이 됐는데 아직 그 상을 받기에는 어린 나이거든요. 희한하게 <청춘예찬> 때는 (박)해일이도, 윤재문 선배님도 상을 되게 많이 받으셨는데 저만 못 받았어요. 항간에는 심사위원들이 “쟤는 다른 데서 상을 받을 거야.” 하면서 상을 안주셨다는 말도 있어요.(웃음) 좀 감추고 수줍어하고 그래야하는데 그렇지 못할 정도로 좋네요.
연극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겠어요.
재작년까지도 굉장히 속상해하시고 당장 공무원시험 보라고 하셨어요. 어른들은 상을 받고 TV에 나오고 해야 인정을 하시잖아요. 영화에도 나오고 그러니까 그제야 좋아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영화에서 맡은 배역들이 부모님들이 달가워하실 모습은 아닌 거 같은데.
그렇긴 해요.(웃음) 작년 8월에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공연을 두 분이서 보러 오셨어요. 막 뒤에 구멍이 뚫려있어서 거길 통해 부모님을 봤는데 시종일관 눈물을 흘리셨어요. 어머니는 한 번도 내 딸 예쁘다, 착하다,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없었는데 그 연극을 보시고선 자랑스러워 하시더라구요. 그게 작년에 제가 받았던 가장 큰 선물이에요.
연극 <청춘예찬>이 첫 출연 작품이었죠? 그 전에는 연기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었나요?
연극을 처음 접한 건 초등학교 때였어요. 그때 언니가 대학교 1학년이었는데 고대 극회출신이에요. 그래서 집에 대본을 들고 와서 연습을 하는데 제가 상대역을 맡았어요. 그런데 대본 읽는 게 보통 책을 읽는 것보다 훨씬 재밌더라구요. 집이 대학로에서 가까웠는데 중학교 때 처음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게 됐고 대본만 보다가 실제 연극을 보니 너무 재밌더라구요. 제가 사실 공부는 잘 못했어요. 그래서 중학교 때 진학상담 선생님이 넌 야간이나 가야겠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야 되나 고민하고 있는데 예고는 여름에 시험을 보더라구요, 그래서 시험을 보고 합격을 했어요. 3년 동안 학교에 다니면서 대학 갈 생각도 없었고 졸업한 다음에는 엄마 도와서 옷가게 같은 걸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진학률 높여야 된다고 대학에 안 가면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얼떨결에 지방에 있는 전문대에 다니게 됐어요. 방송연예를 전공했구요. 연기를 하고 싶어서 미치거나 그렇진 않았기 때문에 별로 연기에 대한 욕심은 없었던 것 같아요.
대학을 나온 다음에는요?
취직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더라구요. 취직을 해도 돈도 제대로 못 받고. 좋은 학교 나오거나, 많이 배우거나, 어떤 기술이 있다면 달랐을 텐데, 막막했어요.
그럼 어쩌다가 연기를 시작한 건가요?
레저 이벤트 회사에 들어갔는데 6개월째 임금을 안 줬어요. 그래서 통신에서 취직자리를 찾아보니 인천의 한 아동극단에서 기획총무를 뽑는다는 거예요. 월 60만원. 그게 98년쯤인데 거기서도 돈을 안 주더라구요. 오가는 차비도 장난 아니었는데. 그 극단 멤버 중에 해일이가 있었는데 둘이서 너도 나와, 나도 나올게.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리고 어느 날 해일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대학로에 아는 극단이 있는데 기획일을 할 사람을 찾고 있다고 같이 해보자구요. 그때 박근형 선생님을 처음 만났고 저는 음향일을, 해일이는 조명일을 하게 됐어요. 작품을 하나 끝내고 바로 <청춘예찬>을 하게 됐는데 박근형 선생님이 배우를 한 번 해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해일이랑 출연하게 됐어요.
지금 대학로에 계신 연출가 분들 중에서 가장 인터뷰를 많이 하시는 분이 극단 골목길의 박근형 선생님인데 그땐 첫인상이 어땠어요?
거지 같았죠.(웃음) 행색이 거지같다는 게 아니라 그때 형편이 되게 어려웠어요. 쌀이 떨어졌다고 공연 연습하는 친구들한테 너희 라면봉지에 쌀 좀 넣어와, 맨날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다들 힘들 때 만났어요.
고수희 씨는 무서운 이미지로 알려진 거 같아요. 오늘 사무실에서 인터뷰하러 나오는데 선배기자가 누구 하냐고 묻기에 고수희 씨 한다고 하니까 “아, <친저한 금자씨>의 그 무서운 배우?” 그러더라구요.
저는 사실 그게 너무 속상해요. 실제로 제가 많이 무서워보이나요?
아뇨, 영화에서는 무척 강한 이미지였는데 실제로 보니까 무척 친근한 느낌이에요. 그런데 영화감독들이 연극배우를 섭외할 때는 그 배우가 나오는 공연을 보고 섭외를 하잖아요.
예, 그 공연의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가려는 경향이 많아요.
그럼 박찬욱 감독님은 어떤 공연을 보고 마녀 역을 맡기셨나요?
박찬욱 감독님은 예전에 제 공연을 몇 번 보셨어요. <친절한 금자씨>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저한테 오셔서 저를 모델로 한 역할이 있다고 이름도 수희라고 했다고 시나리오를 주시는데 정말 오수희라는 배역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날 보신 제 공연이 (배)두나랑 같이 한 <선데이 서울>이라는 작품이었어요. 전 거기서 무서운 사이비 교주로 나왔구요. 사람들 막 때리고 방언하고. 감독님이 그 작품을 보시고 시나리오를 수정할 거니까 좀 기다려달라고 하시더니 마녀 역을 만들었어요. 오히려 오수희를 괴롭히는 역할이었죠.
수정된 배역을 보고 좀 괴롭지 않았어요?
아뇨, 임팩트가 강해서 저는 좋았어요.
그런데 이런 후환이 올 줄은...
몰랐죠. 이미지 복구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리데요. 아직도 복구가 안 됐어요.
사람들이 보통 연극보다 영화를 보니까 마녀의 이미지가 더 많이 남는 거 같아요. 연극에서는 착한 역할을 많이 하는데. 그 뒤로는 어떤 영화들 섭외가 들어와요?
비슷해요. 점보는 점집 여자거나, 아니면 누구의 우악스러운 언니, 누구의 나대는 친구이거나. 농담처럼 사람들한테 늘 얘기하는 게 절실하게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런데 저희 매니저들이 전한테 각인을 시켜주는 거예요. 뚱뚱해도 멜로를 할 수는 있는데 투자가 안 들어올 거라고.(웃음)
요즘에 사진 많이 찍으시죠? 인터넷 미니홈피 보니까 직접 찍으신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던데.
예, 사람 찍는 걸 좋아해요. 저는 사진을 찍을 때 대상에 대한 사랑을 갖고 찍으면 뭔가 다른 구도의 사진이 나온다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제가 아는 선배 하나가 제 미니홈피에 들어왔다가 혹시 누구 좋아하지 않니? 그러는 거예요. 그 사람 사진을 여러 장 올린 것도 아니고 딱 한 장 올렸는데 보는 사람한테도 그 느낌이 오나 봐요. 너무 신기해요. 사진이란 건.
연기를 할 때 실제보다 나이가 많은 역을 맡으시죠?
예, 그런 경우가 많아요.
실제로 겪어보지 않은 일들인데 연기하는데 어렵지 않으세요?
박근형 선생님은 저를 남한테 소개할 때 늘, 이 친구는 나이에 비해 굉장히 많은 경험을 갖고 있고 다양한 감정을 표현해낼 줄 안다고 하세요. 제가 또래 친구들에 비해 삶이 순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청춘예찬>에서 제가 맡았던 다방레지는 실존하는 인물이에요. 그 대본이 어떻게 만들어졌냐 하면 박근형 선생님이 배우들한테 종이를 나눠주고 다음 날까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가장 중요했던 얘기를 적어오라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들을 조합한 게 <청춘예찬>이에요. 제가 적었던 다방레지는 고등학교 때 친군데 집을 나와서 다방레지를 시작했어요. 한 번 전화하면 인천에 있고 다음에 전화하면 저 멀리 지방에 있고, 제가 대학교 다닐 때는 자기가 하고 싶었던 걸 제가 꼭 해봤으면 좋겠다며 제 자취방에 찾아와서 그 일하면서 번 돈을 쥐어주곤 했어요. 그때 느꼈던 것들이 연기에 많이 반영이 된 거 같아요. 사실 그런 친구를 두는 것도 흔치 않잖아요.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에선 어떤 분이 연기의 모델이었나요?
저희 어머니요. 극중에 제가 맡았던 경숙이 엄마는 강인한 사람이에요. 마냥 한량인 남편을 기다리면서 힘든 삶을 살고. 그런데 저희 아버지도 한량이거든요. 어머니가 아버지 때문에 힘들어했던, 그래도 우리 앞에선 눈물을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던 모습들이 다 기억나더라구요. 아버지도 연극을 보면서 많이 우셨어요. 반성을 하시는 것 같더라구요.(웃음)
<친절한 금자씨>의 마녀 역할을 할 때도 배역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고 하던데요.
예, 이혼하기 직전이나 이혼한 지 얼마 안 된 언니들 얘기를 들었는데, 정말 눈에 독기가 서려있어요. 꼭 복수할 거란 얘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는 얘기도 많이 해요. 인육을 먹는 건 박찬욱 감독님의 생각이지만 그 언니들은 정말 씹어 먹고 싶다는 얘기를 해요. 그런 걸 흥분해서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람들의 특별한 경험을 듣는 게 습관이 됐을 수도 있겠네요. 스펀지 같아요. 주변의 얘기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능력이 있으신 거 같아요.
그러려고 노력해요.
영화 <분홍신>에서도 강렬한 연기를 보여주셨는데, 극중 분홍신처럼 엄청난 소유욕을 불러일으키는 물건이 있나요?
제가 어릴 때부터 갖고 싶은 차가 있었는데 좀 과장하자면 그 차를 가질 수만 있다면 누가 결혼하자고 해도 할 거 같아요.
어떤 찬데요?
재규어요. 어렸을 땐 그게 그렇게 고가의 차인지도 몰랐어요.
열심히 벌어서 사면 되잖아요.
그럼 또 의미가 없죠.
백마 탄 왕자처럼 재규어 탄 왕자가 짠 하고 나타나는 걸 바라시는 거죠?
그렇죠.(웃음)
지금까지 영화, 연극, 단편영화에도 출연을 하셨는데 고수희 씨에게 있어서 각각의 매력이 뭐예요?
가장 좋은 건 연극이에요. 무언가가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마무리되는 거 있잖아요. 기승전결로 쫙 가는 쾌감이 있어요. 마지막 커튼콜을 할 때 듣는 박수소리로부터 오는 쾌감도 있구요. 그래서 저에겐 연극이 마약 같아요. 그리고 단편영화는 제가 감독 역할도 하고 작가 역할도 하고 제작부도, 녹음도 맡게 되요. 열악하니까요. 그런데 그게 너무 인간적이잖아요. 단편영화는 특별히 지원이 많이 나오지 않는 이상은 사비를 털어서 하는데 그 정도 하려면 진짜 열정을 갖고 하는 거예요. 상업영화도 나름대로의 매력이 있구요.
임권택 감독님 좋아하시죠?
너무 좋아요.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세요?
너무 인간적이세요. 이번에 감독님의 100번째 영화 <천년학>에 짧게 출연을 하면서 열흘 정도 함께 지냈는데 그 분의 아우라는 진짜 누구도 흉내 낼 수 없을 거 같아요. 이런 일화가 있어요. 그 영화의 주연인 조재현 선배가 맡은 장면 중에 누군가 선배한테 돈도 주지 않으면서 뭘 사오라고 시키는 게 있어요. 그런데 조재현 선배 주머니에는 돈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배가 나름대로 고민을 한 끝에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돈을 만지작거리는 게 어떻겠냐고 감독님한테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그러셨대요. 돈이 없는 사람은 어느 쪽 주머니에 얼마가 들었는지 다 알고 있다구요. 그렇잖아요. 아, 이건 확실히 연륜에서 오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적극적으로 작품에 참여하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감독님을 되게 어려워하는데 저는 나이가 많은 분이든, 무서운 분이든 제가 무언가 잘못하지 않은 이상은 그렇게 사람을 대하는 게 힘들지 않거든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한테 이번에는 이렇게 해볼까요? 하면서 적극적으로 하고 또 감독님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다가 놓치고 가신 부분도 말씀을 드리고 하니까 감독님이 되게 좋아하시더라구요. 수긍을 해주시구요. 보통 어느 정도 위치에 있는 감독님들은 그냥 못 들은 척 하거나 “나도 그런 생각 했거든요?”하고 쌀쌀맞게 얘기를 하시거든요. 그래서 임권택 감독님의 사람을 대하는 방법이 너무 좋았어요.
수희씨는 순수하면서도 무척 적극적인 거 같아요.
(웃음) 그래요. 감독님한테 그랬어요. 감독님이 101번째 영화를 하면 지금보다 감독님하고 더 많이 보낼 수 있는 역할을 맡겨달라고. 혹시 안 되면 제가 찾아가려구요.
요즘은 수희 씨 몸이 좀 안 좋다고 들었는데.
예, 몸이 좋지 않아 술을 끊었어요. 원래 말술이었는데.
박근형 선생님하고 지내다보면 술 많이 마셔야 하지 않아요?
거의 매일 술이에요. 연습할 때는 만나면 술이고 작업이 없을 때도 일주일에 한두 번씩은 만나니까요.
이제 술을 끊었으니 박근형 선생님이 많이 아쉬워하시겠어요.
박근형 선생님은 사람들과 빨리 친해지고 잘 알게 되려면 자기 단점도 보여주고 실수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거든요. 그래야 더 두껍게 친해질 수 있다고. 그런데 선생님이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릴 때쯤 되면 제가 이제 그만 접을까요? 그러니까 그런 거에 약간 스트레스가 있으신 거 같아요.(웃음)
자신에게 있어서 박근형 선생님은 어떤 존재인가요?
아버지 같은 분이에요. 굉장히 인간적이시고. 저는 10년 동안 주구장창 선생님이랑 붙어 있었기 때문에 선생님을 많이 닮게 된 것 같아요.
이제는 결혼을 생각할 나이도 되지 않았나요? 친구들 중에 결혼을 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친구들도 많을 텐데.
실은 만만한 결혼생활을 하는 친구들이 주변에 별로 없구요, 오히려 범상치 않은 경험을 들려주고 연기의 소재를 제공해 줄 친구들이 주변에 많아요.(웃음) 결혼을 해서 새벽 드라이브 같이 하고 싶던 것들을 못하게 되는 건 싫어요. 그런데 아이는 너무 예뻐요. 결혼은 안 해도 아이는 하나 낳고 싶어요.
그런데 눈물이 좀 많은 편인 거 같아요. 아까부터 몇 번이나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는데요?
예. 그래서 작년에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공연을 하면서도 힘들었어요. 즐거운 대사를 하는데도 우리 어머니 얘기랑 오버랩 되면서 너무 속상한 거예요. 실제로 부모님이 연극을 보러 오셨을 때는 자제가 안 되서 흐느끼느라 대사를 놓친 적도 있어요.
요즘엔 무엇에 가장 열광하고 있나요.
일본어 공부요. 일본에 갈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거기서 친구들을 몇 명 사귀었어요. 그런데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과는 친해지는데 못하는 사람들하고는 친해질 수가 없는 거예요. 답답하니까 목마를 놈이 우물을 판다고 내가 일본어 공부를 해야지 결심하고 요즘엔 어학원에 다니고 있어요. 기본적으로 밥 먹었니? 어제 뭐했니? 이런 정도만 알아도 일본사람이랑 한두 시간은 함께할 수 있잖아요. 올해는 일본에서 공연도 해요. 몇 년 전에 재일교포인 정의신 씨 작품을 하는데 연출을 일본 분이 맡으셨어요. 정의신 씨는 말씀은 못 하셔도 우리말을 알아듣기는 하세요. 그런데 연출가 분은 우리말을 전혀 못하는 거예요. 게다가 연극을 잘 모르는 분이 통역을 하니까 되게 답답했어요. 정말 짧지만 내 감정을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게 됐어요. 또 얼마 전에 재일교포 친구가 놀러왔는데 그 친구는 한국말을 조금 하거든요? 내가 그 친구한테 내가 대사를 주저리주저리 하지 않아도 내 눈빛만으로 관객들은 내 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 친구는 그건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 친구의 말이 빨리 학원에 등록하게 만든 거 같아요. 저는 나중에 꼭 기타노 다케시와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런데 그가 나온 영화 <피와 뼈> 중에 한국에서 촬영한 부분이 있잖아요. 제가 기타노 다케시를 꼭 만나고 싶다고 박근형 선생님한테 말하니까 선생님은 저를 혼내시는 거예요. 너는 이만큼 큰 배우다. 그 사람들이 분명히 너한테 올 거다. 티내지 말고 기다려라. 그건 선생님 입장이고 제 입장은 다르다고 했더니 제가 스스로를 너무 믿지 않는다는 거예요. 스필버그 감독도 곧 저한테 올 거라고.(웃음)
그런데 미니홈피를 보니까 기적에 대한 염원이 담긴 글귀가 많이 보이더라구요.
저는요, 기적을 믿어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기적 같은 일들이 있었나요?
일단 최근에 임권택 감독님을 만난 것도 기적 같은 일이고, 또 제가 스물세 살 때 교통사고를 크게 당한 적이 있는데 그때 전 조수석에 있었고 운전을 하던 분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어요. 저는 정신을 잃었는데 저희 할머니가 되게 예쁜 모습으로 지나가시는 게 보이는 거예요. 할머니는 몇 달 전에 돌아가셨는데. 저는 비몽사몽간에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중얼거렸어요. 나중에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어머니에게 할머니를 본 얘길 했더니 할머니가 절 도우신 거라고 하셨어요. 전 그해 어버이날에 할머니 영정사진 앞에 카네이션을 놓아드렸어요. 또 박근형 선생님을 만난 것도 저한테는 기적 같은 일이에요. 저는 전혀 이쪽 일을 하려고 생각지도 않았던 사람이었잖아요.
혹시 점 본 적 있으세요?
점쟁이가 저는 장군이래요. 아무튼 돈 걱정 안 하고 태어났다고. 돈 걱정 안 하고 살 팔자라고.
그게 돈이 많아서 걱정하지 않을 팔자일까요? 아니면 돈에 구애받지 않고 살 팔자일까요.
후자죠.(웃음) 풍족하진 않지만 제가 쓸 만큼은 벌면서 사니까.
‘Just like miracle’이라 쓰인 그 문신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전 제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하고 헤어질 때마다 귀에 피어싱을 하나씩 했어요. 그러다보니 어느새 구멍이 네 개가 됐어요. 어쩌면 자학이었죠. 더 큰 고통으로 이별을 고통을 잊으려는⋯. 그래도 고통이 안 가셔서 코에도 피어싱을 했고 나중에는 혀에도 피어싱을 하고 싶었는데 주변에서 다 말렸어요. 혀를 뚫으면 제 배우생활 끝이라구요. 실제로 주변에서 혀에 피어싱을 한 애를 보니 발음이 새더라구요. 그러면 혀를 뚫을 수도 없고 뭘 해볼까 하다가 문신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문신을 어디에 하는가가 문제였어요. 저는 배우니까 드러나는데다가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발목 안쪽에 하게 됐어요. 먹고 살려다 보니까.(웃음) 문신을 새겨주는 분이 뭐라 써드릴까요 묻는데 제가 ‘Just like miracle’이라 새겨달라고 했어요. 새겨진 걸 보니 너무 만족스럽더라구요. 제가 어떤 각오로 그걸 새기게 됐는지 자꾸 각인시켜 주기도 하구요. 그리고 작년에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끝나고 또 기적을 바라는 무언가가 생겼어요. 그래서 쇄골 쪽에도 라틴어로 된 ‘Just like miracle’을 새기게 됐어요. 그런데 두 번째 할 때는 고통이 없고 쾌감이 있는 거야. 해주신 분이 이제 제가 바늘 맛을 아시는 거 같다고, 조만간 또 오실 걸요? 그러더라구요.(웃음) 전 아침저녁으로 씻을 때 문신을 보면서 다짐을 하죠. 분명히 나에게 그 기적은 일어날 거야. 그렇게요. 아마도 지금 바라는 기적이 이뤄지면 또 다른 곳에 문신을 할 것 같아요. 지금 바라는 기적은 어떤 사람에 대한 거예요.
예, 그 기적이 꼭 이뤄지길 바랍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는 마른 배우를 선호하잖아요. 신체적인 특징 때문에 수희 씨한테 들어오는 캐스팅에 조금은 제한이 있을 거 같은데, 좀 원통하지 않으세요? 수희 씨한테 붙은 ‘연기파 배우’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가 조금은 포함된 가 같은데.
전 연기파 배우라는 말은 무척 좋아해요. 캐릭터 배우라는 표현이 싫죠. 아까도 말했지만 제가 멜로 연기를 하고 싶다고 하는데 캐릭터 배우에게는 그런 역할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소리를 들어요. 실은 제가 세 달 전부터 다이어트를 해서 10kg을 뺐어요.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구요.
그로 인해 과거의 어떤 것들을 잃게 되진 않을까요?
고수희의 외모가 바뀔 뿐이지 고수희가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목표로 하는 몸무게가 있고 그럴려면 지금까지 뺀 만큼을 또 빼야 해요. 주변 분들은 제가 얼마나 열심히 하고 있는지를 아니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다이어트 방법은?
식이요법을 하구요. 매일 양지천을 15Km씩 걸어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저 때문에 매니저들이 고생이죠. 혼자 운동하는 게 싫어서 매니저랑 같이 걷거든요.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요?
아뇨, 건강이 더 좋아졌어요. 훨씬 몸이 가벼워지면서 의욕도 많이 생기구요, 제 스스로도 저 자신이 좀 더 밝아진 느낌이 들어요.
연기하시면 체력소모가 많을 거 같은데.
허기지죠. 눈물나도록. 보통 공연 끝나면 목에 먼지 빼야 된다고 삼겹살 먹고 술 마시고 괴로워하면서 역에 대해 고민하고 그러잖아요. 작년 11월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했는데 그때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공연이 있었어요. 회식자리에는 아예 갔어요. 그런데 그러다보니 소회감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방법을 터득한 게 회식자리에 가서 제가 구어서 단원들을 먹여요. 혼자 물 따라 건배하고.
영화 <삼거리 극장>에 나왔던 뮤지컬 배우 박준면 씨도 비슷한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저는 그런 소리만 들어와서 사실 너무 속상해요. 근데 실제로 캐스팅 보드 보면 나 아니면 (박)준면 아니면 목화에 계시는 (황)정민 언니, 이래요. 뻔해요. 내가 시나리오 받은 건 아마 준면이도 받았을 걸요? 그 중에 스케줄 되는 애를 쓰는 거예요. 제가 안 하겠다고 보낸 시나리오는 다 그런 거예요. 뚱뚱한 여자를 찾는다면 뚱뚱하면서 어떤 성격의 여자를 찾아야 하는데 그냥 뚱뚱한 여자에요. 어떤 역이냐고 물으면 그냥 덩치 좀 있구요, 이렇게 설명을 해요. 그게 정말 화가 나요. 제가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한 건 거기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예요. 그리고 제가 뚱뚱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들은 거의 다 한 거 같아요. 내 발전이나 노력 없이는 내가 원하는 것들을 얻을 수 없잖아요. 저는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뚱뚱하다는 사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었어요. 옷이야 큰 옷을 파는 가게에 가서 사면 되고. 그런데 이쪽 일을 하게 되니까 스트레스가 생기는 거예요.
그런데 <청춘예찬>에서 맡으셨던 역이 원래 ‘뚱뚱한 여자’로 설정이 되어 있었나요?
아니에요. 박근형 선생님이 인터뷰하신 걸 봤는데요, 어떤 기자가 물어본 거야, 박근형 선생님의 작품에는 늘 뚱뚱한 여자가 나온다고.
항상 고수희 씨가 나온다가 아니라?
예, 그래서 진짜 가서 그 기자를 때릴 뻔 했어요. 박근형 선생님이 얘기하시기를 뚱뚱한 여자가 아니라 연기를 잘 하는 배우를 찾다 보니까 고수희를 쓰게 됐고, 그녀가 뚱뚱하기 때문에 그렇게 비춰지는 것이다. 그러니 사실은 그 역을 누가 해도 상관이 없는 거다. 그런데 그걸 고수희가 했기 때문에 뚱뚱한 여자가 나온 거라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다른 곳에서 청춘예찬 공연을 할 때는 저와 똑같은 사이즈의 여자들을 찾아요. 바보 같이...
고수희 씨의 변신을 한 번 기대해 보겠습니다.
예, 6월까지는 연극 작업만 할 거예요. 그것도 많이 하지는 않을 거구요. 매니저들에게도 그렇게 얘기를 해 놓았구요. 연극하면서 좀 더 빼고 확 변신을 한 뒤에 영화 같은 외부 작업들을 할 예정이에요. 일단 6월까지는 손가락을 빨고 있게 생겼어요.(웃음)
그래도 점쟁이가 말했잖아요. 먹고 살 정도는 벌 수 있다고.
하하~ 또 계획이라면 극단 골목길 식구들도 늘어났는데 극단 살림에 신경을 좀 쓰려구요.
극단의 배우들은 형편이 좀 어때요?
연극 수입만으로 형편이 넉넉지 않으니까 꾸준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도 있구요, 작업이 없을 때는 일용직 일을 하는 분들도 있구요. 저희 후배가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연극을 하는데 사정을 들으니 가슴이 찢어지더라구요. 그 후배한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우를 꼭 해야겠니? 하고 물었을 정도에요.
같은 연극 배우의 입에서 그런 얘기가 나온다는 현실이 슬프네요...
그런데 인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네 시 이후에 식사를 안 하는 대신 하루에 천 원씩을 모았어요. 큰 돈은 아니지만 그 친구에게 줘요. 교통카드 채우라고. 그런 거라도 해주고 싶어요. 저도 동기부여가 되서 다이어트를 지속하는 힘이 되구요.(웃음)
신이 나타나 소원 세 가지를 이뤄준다고 하면 뭘 바랄 거 같아요?
음.. 가족과 이별하지 않게 해달라고 꼭 빌고 싶구요. 재규어 한 대와 재규어를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바라겠어요.
소박하시네요.
그거면 충분할 거 같아요.(웃음)
고수희, 그녀와의 이별의 포옹을 한 뒤, 가로등 불빛의 온기와 한겨울 찬바람이 힘겨루기를 하는 대학로 밤거리를 거닐다 영화 <플란다스의 개>에서의 그녀가 떠올랐다. 괴한에게 헤드록을 하고 자동차의 백미러를 향해 체중을 실은 발차기를 날리던 영화 속 그 모습처럼 그녀는 오늘도 그녀의 인생을 가로막은 것들과 유쾌한 결투를 벌이고 있겠지. 결국은 그녀의 우세승을 낙관한다. 허허…
페이퍼 2월호
첫댓글 그 극단 멤버 중에 해일이가 있었는데 둘이서 너도 나와, 나도 나올게.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리고 어느 날 해일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 극단 멤버 중에 해일이가 있었는데 둘이서 너도 나와, 나도 나올게.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리고 어느 날 해일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그 극단 멤버 중에 해일이가 있었는데 둘이서 너도 나와, 나도 나올게. 그렇게 나온 거예요. 그리고 어느 날 해일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부러워부러워 이미 떠난 사람이지만 ㅠㅠㅠ
플란다스의 개랑 친절한 금자씨에서 굉장히 인상이 깊었어요~고수희씨~연극도 보고싶다..박근형연출가분 이번에 최민식씨 주연으로 5월에 연출하시던데 보러갈려구요~
무슨 연극봤는데.. 여교주로 나왔을때 완전 ㄷㄷㄷㄷㄷ , 금자씨에서 너무 무서웠어요
인터뷰 정말 잘 읽었어요~ 멋지네요 고수희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