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프의 객원논설의원인 먹물의가면의 변명과 데일리안의 논객 무명논객님의 반박의글입니다
비록 퍼온글이지만
제 목 뉴스의 블랙홀을 지배하는 자들
글쓴이 먹물의가면
작성일 2004-07-07
조회수 169
추천수 2
아마팀에 겁먹은 프로들
- 뉴스의 블랙홀을 지배하는 자들 -
생각해 보면 나의 뉴스 알레르기는 상당히 오랜 세월 체질화된 만성 질환이지 싶다. 세상 돌아 가는 것과 전혀 무관하게 살아갈 수 있는 직업을 가진 것도 아니면서, 뉴스를 접할 때마다 온 몸에 돋는 닭살 같은 소름이나 고개가 절로 돌아가는 외면은 사실 그리 간단한 증상이 아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45분 가까운 뉴스 시간 중 단 한 꼭지의 뉴스라도 내가 개인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품질의 뉴스가 포함되었다면 이런 특이한 증세에 시달리게 되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도 한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뉴스를 제작하는 사람이나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들 – 데스크, PD, 앵커, 리포터, 기자, 전문가들 등이 세상을 살면 얼마나 살았으며, 경험을 했으면 또 얼마나 대단한 경험을 하며 살았겠나. 대학을 나와 입사 준비를 하고, 신문사나 방송사에 들어 와 선배들이 하는 일을 배워가면서, 5년에서 15년 정도 커 온 인물들이 아니겠는가. 그 사이 책도 읽고 사람도 만나면서 나름대로 세상 보는 눈도 닦고, 뉴스라는 것의 속성도 익혔겠지만, 도대체 그 정도의 평균적 인간들이 자신의 인식능력과 이해의 틀 안에서 찍어 내는 뉴스에 무슨 대단한 혜안이 들어 있으며, 사물의 껍질을 벗겨 진실의 속살을 보여줄 수 있는 힘이 있겠는가.
아마 뉴스보다 조금 나은 것이 그래도 토론 프로그램이고, 그 보다 조금 더 나은 것이 르뽀나 특집 다큐 같은 것이리라. 토론에는 그래도 가끔 문제의 본질에 다가가는 순간이 있고, 르뽀나 다큐는 제작 목적과 전문적 시야 등이 비교적 긴 준비, 제작 기간을 통해 전달되어 온다. 그러나 그런 프로그램들에는 뉴스에 비해 현저히 적은 시간만이 주어진다. 뉴스는 매 시간 거의 똑 같은 내용을 똑 같은 사람이 똑 같은 어조로 반복한다. 폭격이나 세뇌와 다를 바 없다. 뉴스라는 이름으로 현대인에게 제공되는 인식의 틀, 이해의 창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어느 종교 단체도 매 시간 예배를 드리는 곳은 없다.
조지 오웰은 말했다.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뉴스는 현재이며 과거인 것이다. 뉴스를 지배하는 자가 바로 이 보이는 세계의 4차원적 디스플레이를 결정하는 마스터마인드인 것이다. 세계적 차원에서 뉴스를 지배하는 세력이 부시를 지배하고 토니 블레어를 지배하고 유엔을 지배하며, 이라크를 요절내고 테러리스트 영단을 발표하는 것이다. 그들이 WTO의 룰을 만들고, 미국의 할인율을 결정하며, 유가를 들었다 내려 놓았다 하는 것이다. 부시가 뉴스메이커고 OPEC이 뉴스메이커고, 알 쟈르카위가 뉴스메이커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자들이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다.
이 세력은 결코 그들 자신이 저항의 대상으로 노출되는 일이 없다. 자신들의 지배에 저항하는 목소리는 다만 그들이 그 시점에서 움직이는 장기판의 말을 향한 분노이며 항거일 뿐이지, 그것이 검은 말이든 흰말이든 장기판을 홀로 내려다 보는 보이지 않는 손은 그 모든 것을 냉정한 게임의 룰로 처리할 뿐이다. 집중 공격을 받는 부시라는 말의 효용이 다하면, 케리라는 새로운 말로 바꾸면 되고, 부시라는 말을 공격하던 세력에게 일시적 승리감을 선사하면 되는 것이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부시가 장군을 부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장기판이 재미있게 진행되면 되는 것이며, 모든 목소리를 장기판에 묶어 두면 성공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계적 뉴스 지배자들이 공급하는 인식의 틀에서 벗어 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우선 해야 하는 일은 그들의 한국 지부가 매일 돌리고 있는 뉴스라는 이름의 마약에서 벗어 나야 한다. 조중동과 사회의 온갖 뉴스메이커들이 만들어 내는 유사 마약의 금단 현상을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들의 게임 플랜은 효과적이지만 비교적 단순한 것이다. 대중의 인식이 그들의 정체성을 벗기기 위해 접근해 오면 그 후방에 불을 지르는 것이다. 친일의 본체에 접근하면 반공이란 불을 지르고, 반공의 정체를 깨닫기 전에 성장이란 불을 지르고, 성장의 모순을 외쳐대면, 공멸의 구호로 겁을 주는 것이다.
차떼기는 대통령 측근비리로 물타기를 하고, 물타기의 효과가 별무신통하면 탄핵을 시도한다. 개혁의 외침이 탄핵을 돌파하고 전진해 오면 박정희 개발독재의 향수를 뿌리고, 상생이란 최루탄을 쏘아 피아간의 구별이 힘들게 만든다. 조중동 박살을 외치는 자에게는 듣도 보도 못한 인간이 나서서 너는 별 수 있냐며 교수 임용 청탁이란 오물을 던져 세인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서영석이란 한 개인의 잘못이 그들이 밥 먹듯 자행해 온 비리와 부정에 비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냐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다. 그것을 이용하여 개혁을 외치는 세력이 자괴감을 느끼고, 내부적 분열이라고 일으킨다면 그들의 작전은 성공한 것이며, 개혁을 주창하는 정권의 도덕성에 일말의 의혹이라도 지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것이다.
그들이 달리 강하고 프로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기득권과 영향력에 도전해 오는 세력의 모든 함성을 잠재울 수 있는 끝없는 뉴스의 블랙홀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먹이 사슬을 끊고 동맹관계를 파괴하려는 세력들은 기본적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고, 훈련되지 않은 허점투성이 집단들인 것이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그들을 각기 지지하는 개혁적 민중들의 소리는 이구동성이 아니라 이구각성이며, 그들의 게임 플랜은 순진하다 못해 확신에 찬 어리석은 짓도 심심치 않게 저지른다. 단 한 번의 센터링으로 골문이 활짝 열리는 허망한 수비력을 자랑하고, 전진패스는 배운 일도 해 본 일도 없다. 볼만 잡으면 혼자 갖고 놀다 뺏기거나 고작 뒤로 패스하는 게 잘하는 일이다.
본 일도 없는 인물들이지만, 강준만, 진중권, 변희재, 이름쟁이 등의 인물들은 대략 자살 골 넣는 재미로 뛰는 아이들로, 원래 저쪽 편에서 뛰었어야 도움이 되었을 선수들이다. 서프가 무뇌아 광신도 노빠들의 집단 XX회장이라고 욕하면서, 굳이 이곳에 눌러 붙어, 모든 글들에 입에 못 담을 쌍욕을 집어 던지며 덤벼드는 모기떼들이나, 아군임을 가장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간교한 인간들은, 프로들에 의해 고용된 놈들이거나 자신의 무식과 용감성을 배설하기 위해 이곳을 화장실로 이용하는 놈들이다. 이런 놈들이야말로, 서영석이란 개인의 헛발질은 즐거움 자체이며, 어느 편이 이기느냐보다 더 재미있는 뉴스이며, 자신들만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뉴스의 블랙홀 속으로 투신 자살하고 싶어 안달 난 쥐새끼들이다.
서영석이란 선수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몇 백억 주고 데려 온 지단 클래스의 선수가 아니며, 잔디 구장에서 뛰어 본 경험조차 일천한 플레이어라는 사실, 우리가 더 잘 안다. 그리고 그가 저지른 헛발질 정도는 우리 모두 저지를 수 있는 개인기 미숙이란 것도 잘 안다. 그가 실축한 것이 안정환의 페널티 킥 실축과 같은 것이었든, 이을룡의 문전 패스를 날려보낸 최용수 클래스의 실축이었든, 나는 그가 우리 팀의 중요한 플레이어이며, 앞으로도 함께 땀과 피를 흘려야 하는 동지란 인식에 한 점의 의혹도 없다. 그의 어깨를 감싸안고,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우리는 이길 수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고슴도치라고 불러도 좋다. 서영석은 우리 새끼다.
조중동과 이 사회의 권위들로 구성된 프로팀 선수들이 매일 저지르는 실축에는 입 다물고 있다가, 그와 유사한 실축을 개혁팀 선수 한 명이 저지르면 스타디움이 터져 나가라고 야유와 물병을 던져대는 관중들을 위한 게임이 아닌 것이다. 우리가 치르는 이 게임은, 이 사회와 세상을 저들의 마음대로 재단하고 마음대로 누구에게 봉헌하기도 하고, 스스로 사령관이 되기도 하는 자들의 손에서 해방시키고자 하는 전투인 것이다. 상생을 노래하다가 시도 때도 없이 대통령이라도 된 듯 착각하고 마음대로 나라의 명운을 거는 독재자의 딸이 뿌리는 주술, 그리고 그런 자들을 선수로 내세워 우리 전부를 짓누르고자 하는, 뉴스의 블랙홀을 장악한 자들의 가공할 중력을 차단하기 위한 전쟁인 것이다.
우리 팀은 아마추어 팀이다. 서영석이란 서프의 오너가 스타 플레이어라서 오늘 이 중요한 게임을 뛸 수 있게 된 팀이 아니다. 우리는 과거를 통제하는 힘, 현재를 통제하는 힘의 부당성과 억압의 사슬을 끊고, 인간적 상식과 정의가 바람처럼 소통하는 세상을 위해 봉기한 민중 연합군이다. 백 명의 서영석이 부상하여 실려 나가도 우리는 결코 후보 선수들이 부족하여 패하는 일은 없다. 우리 모두가 뉴스의 블랙홀에 빠져 죽는 날이 오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없다. 모기떼나 쥐새끼들, 자살 골 넣지 못해 안달하는 놈들 모두 우리 상대가 아니다. 배부른 프로들로 구성된 우리의 적은 지금 게임을 할수록 불타오르는 아마추어들의 투지와 기량에 겁먹고 있다. 우리는 이길 수 있다.
먹물의가면(서프라이즈 객원 논설위원)
제 목 서프라이즈 ´먹물의가면´의 오버질.
글쓴이 [무명논객]
작성일 2004-07-07
조회수 294
추천수 22
장기판에서부터 축구에 이르기까지 단 한가지의 사실 적시도 없이 오직
비유로 시작해 가정으로 끝을 낸 ´서프라이즈´의 논객 ´먹물의가면´이란
이의 글을 읽으며 시종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 웃음의 의미는 유쾌함
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것을 확인한 후 짓
게되는 먹물의 가면표 씁쓸한 미소였다.
사실, 나는 이 글을 작성하기 전에 ´서프라이즈의 재탄생´이란 글을 썼다.
그 내용을 간략히 정리하면, "서영석이란 놈은 밉지만 서프의 순수한 논객
들은 대표 하나 잘못만나 머 된 심정일 테니 서프에 대한 직접적 비난은 삼
가하자"는 식이었다. 헌데, 쓰레기통에 쳐넣어버렸다. 그 이유가 바로 먹
물의 가면류와 같은 잘못 된 글쓰기를 하는 논객들을 내가 너무 순수하고
열정적인 차원에서 고려했기 때문이다.
먹물의 가면이 쓴 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서두에서 말했듯이 장기판에서
축구까지 비유로 도배를 하고 가정으로 끝을 맺었지만, 요점을 뽑아내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 바로, "서영석 보다 조중동과 기득권 층에게 잘못이 많
다. 서영석은 동지이니 같이 싸울 것이다. 조중동등 프로팀은 우리들에게
쫄았다. 우리가 싸우면 이긴다" 더 이상은 없다.
축구에 관한 그의 비유가 재미있다. "안정환의 페널티킥 실축이던, 이을용
의 문전패스를 날려보낸 최용수의 실축이었던 서영석의 실축에 스타디움이
떠나가라 야유를 하고 물병을 집어던지면서 정작, 조중동등 권위들로 구성
된 이들의 매일같은 실축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먹물의가면´의 허접함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조중동등 권위들로
구성된 프로팀이란 이미 97년에 새롭게 등장한 방송사의 권위로 이루어진
막강한 대표팀에 의해 조기축구로 전락한 팀이 되었다. 사회의 막강한 영
향력을 행사하던 과거의 영광이 오늘날에는 고작해야 20%대의 정보 도우미
로 전락했다.
아마츄어 서영석은 실제 아마츄어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엄청난 특혜
와 기득권을 누린 선수 정도가 아닌 축구협회 회장쯤 되는 파워를 가진 선수요,
대한민국 대통령과, 잘 나간다는 국회의원을 든든한 빽 그라운드에 포진시킨
선수를 능가하는 선수였음은 먹물의가면 빼고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허접한 선수의 ´청탁´에 알아서 길 차관은 없고, 지레 ´쎈놈´으로 받들어 모실
권력은 없다란 얘기다.
작금의 서영석은 실축이 아니라, 고의로 천금과 같은 페널티킥을 골 문 밖으로
차냈으며, 사실이 밝혀지자 관중들에게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동료 선수의 잘
못이라고 오리발을 내밀었고, 거룩한척 유세를 떨며 성난 관중 앞에서 동료의
잘못까지 자신이 감수하겠노라며 ´대표자격´으로 사과를 했다. 그러나, 경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관중에게 사과한 그 행위까지 역겨운 거짓말이었음이 드러난
´반칙´이다. 이런 경우엔 대부분 물병과 야유 정도가 아니라, 공항에서 극렬 팬
에게 총을 맞아 죽기도 한다.
더욱 우스운 건 권위와 싸우는 아마츄어를 응원하는 이들은 이 얼척없는 서영
석의 쇼에 놀아난 기득권층이란 점이고, 이들은 이미 국가권력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 하는 기득권층의 총애를 듬뿍 받고, 승부에 결정적인 역할을 미칠 수
있는 카드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이들이란 것이다. (대표적으로 유시민)
먹물의 가면이 가장 큰 우를 범한 대목은 서영석이란 서프의 오너를 조중동
의 음해에 피해를 입은 선량한 이로 호도한다는 것에 있다. 대단히 미안한
얘기지만, 서영석의 행위는 도덕성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파렴치한
행위였고, 사내자식의 행동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만큼 자신의 아내를 내세
워 면피하고자 했던 추잡스런 모습을 보였을 뿐이다. 옹호를 하면 할수록,
고슴도치임을 자랑스러워 하면 할수록 서프의 추락은 끝이 없을 것이다.
먹물의가면은 지금 뭔가 대단한 착각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서프의 보편타당한 의식이라면 서프는 존재의 가치가 없다. 김대중,노무현
으로 이어지는 대권장악은 한국 사회가 오랫동안 앓아왔던 시스템의 병폐를
치유하기 보다는 적당한 부패와 적절한 비리와 권력의 오남용을 답습했으며
고스란히 그것은 과거 부정부패의 모습과 단절하지 못하는 신기득권의 탄생
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김대중정권하에서 기득권을 차지한 세력들로 인해 김대업과 설훈이란 사기꾼이
출현해 정권의 몰락을 막았고, 희망돼지를 비롯한 각종의 불법선거 시비 속에
노무현 정권이 탄생 되었다. 이 새로운 기득권층은 급기야 국회 과반의석을 차
지했고, 권력의 절정기에 달해있는 시점에서 고작해야, 진정 고작해야 조중동
의 기득권을 운운하고 있다는 건 먹물의 가면이란 서프 논객의 글에서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부분이고 시작부터 끝까지 그것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어리석음에
대략 얼척이 없다.
먹물의 가면이 현재와 과거를 통제하는 힘의 부당성과 억압의 사슬을 끊자고
역설하는 부분은 글의 대미를 장식하는 또 하나의 억지에 불과하다. 현재와 과
거를 통제하는 힘의 부당성과 억압의 사슬은 ´개혁´의 본분을 망각하고 끊임없
는 악재와 부정 부패를 저지르는 현재의 부당성과 다르지 않고, 이는 조중동에
기인한 연결고리가 아닌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작금의 정권 하에서
기인 된 부패의 연결고리란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다.
무릇, 자신들의 잘못은 철저히 덮고 그 잘못까지 상대방에게 전가시키는 모습은
결코 ´개혁´이 될 수 없다. 똥 한덩어리 건져냈다고 똥물이 1급수 되는 건 아니
란 평범한 사실을 먹물의 가면 글에서 확인했다. 서프의 자정노력이 고작 이정
도라면 똥파리가 창궐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만큼, 이제는 인터넷 저질 언론을
진정으로 개혁하는 일이 시급하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먹물의가면´류와 같은
논설위원도 서프를 떠나는 것이 서프의 이미지 관리에 도움을 줄 듯 하다.
첫댓글 두번째 읽었지만 읽을 수 록 놀라운 필력에 감탄 할뿐입니다,무명검객님 건필하십시요,님은 대한민국의 희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