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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낙산사여! |
양양에 산불이 나서 화마가 낙산사로도 번졌다는 소식을 접하고, 빨리 불길이 잡혀서 낙산사에는 피해가 없기를 마음 속으로 빌었으나 낙산사가 거의 전소했다는 마음 아픈 소식을 접하고 보니 왠지 가슴이 미어지는 느낌입니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대사가 건립한 천년 고찰인 낙산사! 강원도 여행가면 누구나 의례히 가 보는 곳이었던 낙산사의 옛 모습을 이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번 화마로 건물 37채 가운데 위쪽에 위치한 중요한 건물이 무려 22채나 불에 타 사라졌다고 하며, 다행히 의상대와 홍련암 그리고 해수관음상은 무사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화유산 중에서는 보물 1건과 강원도 유형문화재 3건이 사라졌으며, 특히 보물 제479호인 낙산사 동종은 안타깝게도 완전히 녹아내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도 낙산사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았습니다. 일전에 낙산사를 구석구석 소개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한 번 올립니다. |
강원 양양지역 문화유산 답사(1) 낙산사로... |
휴가 이튿날은 느즈막히 일어나서 아침을 먹고 속초에서 낙산사로 출발하였습니다. 낙산사는 20 여년 전과 10 여년 전, 여러 차례 왔었습니다만, 당시는 문화재에 관심이 없어서 눈에 띄는 것만 보았었습니다. 낙산사 입구인 낙산비치호텔 앞의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낙산사 매표소에서 입장료를 보니 1인당 2,500원씩 이었습니다. 한가족 4명이 들어가려면 입장료만 만원이더군요. 가족들은 여러 차례 왔던 곳 인데다가 입장료가 비싸서 들어가지 않겠다고 해서 혼자 들어가서 빨리 둘러보고 나오겠다고 하고 급히 서둘렀습니다. |
▲ 바닷가에서 바라 본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이 보이고 나무 위로 해수관음상도 조그맣게 보입니다. |
관동팔경의 한 곳인 낙산사는... |
낙산사(洛山寺)는 통일신라
문무왕 16년(676)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합니다.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의상은 기도를 하다가 관세음보살을 만나 보살이
가르쳐 준 곳에 법당을 지은 후 낙산사라 하였으며, 858년(헌안왕 2) 범일의 중건을 비롯하여 몇 차례 중건을
거듭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소실되어 1953년에 다시 창건한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절 옆에는 의상이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만나 불당을 지었다고 전해지는 자리에 홍련암과 의상이 앉아서 참선했다는 자리에 세운 의상대가 있으며, 낙산사는 해변에 위치한 특이한 구조의 사찰입니다. |
의상대와 홍련암... |
▲ 의상대에서 바라 본 홍련암 |
▲ 홍련암에서 바라 본 의상대 |
낙산사 매표소에서 길을 따라 들어가면 매점이 나오고 매점 앞에는 건물 두 채가 새로 지어져 있었습니다. 앞의 한 채는 의상기념관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뒷 채는 전통차와 음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정면으로 올라가면 사찰 경내로 가게되고 오른쪽으로 가면 의상대와 홍련암으로 가게 됩니다.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낙산사(洛山寺)하면 대부분 의상대와 홍련암을 먼저 갈 겁니다. |
의상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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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유형문화재 48호로 지정된 의상대(義湘臺)는 18세기까지는 시를 통해서 의상대가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으며, 근대 이전에 페허가 된 것을 1925년에 낙산사 주지 김만옹
스님이 이 곳에 정자를 새로 지었고, 예로부터 이 곳을 의상대로 불러 왔으나 이 때 정식으로 의상대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낙산사는 가족들과 1995년 1월에 다녀 왔었는데 당시에는 의상대가 무너질 것 같더니 복원이 되었더군요. 자료를 보니 1936년 폭풍으로 무너진 것을 1937년 재건하였으며, 1975년에도 중건하였고, 1995년 8월에 다시 해체, 복원하였다고 합니다. 의상대의 뒤로는 키가 큰 관음송이 있으며, 의상대 뒤편 관음송 옆에 있는 자그마한 바위에는 관음송(觀音松)이라는 글자가 음각이 되어 있습니다. |
▲ 의상대 전경 | ▲ 의상대 뒷편 | ▲ 관음송이라 음각된 돌 |
홍련암으로... |
의상대에서 나오면서 오른쪽으로 몇 분만 걸어가면 강원도 문화재자료 36호로 지정된 낙산사의 부속 암자인 낙산사 홍련암(洛山寺 紅蓮庵)이 보이며,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붉은 연꽃 위에 나타난 관음을 직접 보고, 대나무가 솟은 자리에 지었다고 합니다. 홍련암의 법당 마루에는 특이한 형태의 구멍이 뚫려 있는데, 구멍의 크기는 처음엔 30cm 가량이었으나 90년대 사람이 빠질 수 있다는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지금처럼 8cm 줄였다고 합니다. 전에는 법당 안으로 들어가서 구멍 밑으로 절벽과 파도치는 모습을 함께 볼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법당 안을 들여다 보니 구멍을 막아 놓았는지 볼 수 없었고, 자료를 보니 1999년에 홍련암도 해체 복원했다고 합니다. |
▲ 홍련암 전경 |
▲ 홍련암 감로수 |
▲ 홍련암 길목에서 본 의상대 |
낙산사 경내로... |
▲ 경내로 올라가는 길목 |
▲ 보타전 |
홍련암을 돌아 나와서 오른쪽 방향으로 경내로 올라가면 왼편에 관음지라는 연못이 있고 그 위에는 보타락(寶陀落)이라는 2층 누각이 있습니다. 보타락 오른편에는 부도와 부도비가 있으며, 바로 옆에는 감로수가 있습니다. 정면에는 보타전이 있으며, 보타전 왼편에는 해우당(解憂堂)이 있습니다. 이 곳의 건물들은 모두 지은지 10 여년 남짓하여 사찰의 고풍스러운 멋은 없습니다. |
▲ 보타락(보타루) |
▲ 낙산사 감로수 |
▲ 해우당 |
낙산사 경내로 가는 길은 보타전을 보고 내려와서 보타락 2층 누각을 끼고서 오른쪽으로 돌아서 올라갑니다. 보타전에서 해수관음상이 있는 곳으로 바로 가려면 보타전 오른쪽 계단으로 올라가면 됩니다. |
▲ 사천왕문 |
▲ 조계문 |
낙산사 경내 입구에 올라서면
사천왕문(四天王門)이 있으며, 사천왕문을 지나면 낙산사(洛山寺)의 사액이 걸려있는 조계문이, 왼편의 범종루에는 큰 범종이 걸려
있습니다. 조계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왼편에는 무설전(無說殿)이, 오른편에는 고향실(古香室)이, 고향실 왼편에는
낙산사 동종이 있습니다. |
▲ 범종 |
▲ 무설전 |
▲ 고향실 |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 |
낙산사 동종(洛山寺銅鐘)은
보물 479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범종각 안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제가 그 동안 보아온 동종으로는 좀 큰
편이더군요. |
** 문화재에 대한 역사(문화재청 인용) ** |
조선 예종 1년(1469)에 그의 아버지인 세조를 위해 낙산사에 보시(布施)한 높이 158㎝, 입지름 98㎝의 종이다.
종 꼭대기에는 사실적이고 기품 있어 보이는 용 2마리가 서로 등지고 있어 종의 고리역할을 하고 있다. 어깨 부분에는 연꽃잎으로
띠를 둘렀다. 몸통에는 가운데 굵은 3줄을 그어 상·하로 나누고, 위로 보살상 4구를 새겼다. 보살상 사이사이에는 가로로 범자를
4자씩 새기고, 보살상 머리 위로는 16자씩을 새겨 넣었다. 몸통 아래로는 만든 시기와 만들 때 참여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종의 밑 부분에는 너비 9.5㎝의 가로줄이 있어, 그 안에 당시에 유행하던 물결무늬를 새겨 넣었다. 큰 종으로는 조각수법이 뚜렷하고 모양이 아름다우며 보존상태가 좋아, 한국 종을 대표하는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499호) |
▲ 대성문 | ▲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499호) |
대성문을 올라서면 보물 499호로 지정된 낙산사 칠층석탑(洛山寺 七層石塔)이 있으며, 정면에는 원통보전이 있습니다. 낙산사 칠층석탑은 탑신부의 오른쪽 모서리 부분이 많이 훼손되어 있었습니다. |
** 문화재에 대한 역사(문화재청 인용) ** |
이 석탑은 창건 당시 3층이던 것을 세조 13년(1467)에 이르러 현재의 7층으로 조성한 탑이다. 이때 수정으로 만든 염주와 여의주를 탑 속에 봉안하였다 한다 조선이 유교를 통치 이념으로 삼음으로써 천여 년간 국교로 자리잡고 있었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불교와 관련된 조형 미술의 분야도 위축되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나마 조선 전기에는 불교미술 분야에서 조성 양식이나 수법이 고려적인 작품이 다소 조성되었다. 낙산사7층석탑도 고려시대의 여운이 남아 있는 석탑 중 하나이다. 탑의 받침이 되는 기단부는 정사각형의 바닥돌 위로 밑돌을 놓았는데 윗면에 24잎의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부는 지붕돌과 몸돌을 1층으로 하여 7층을 이루고 있다. 각 층의 몸돌 아래로는 몸돌보다 넓고 두꺼운
괴임이 1단씩 있어 특징적이다. 지붕돌은 경사면이 평탄하며 네 귀퉁이의 들림이 잘 어우러져 전체적인 모양이 경쾌하다. 탑의
머리장식부에는 가늘고 긴 쇠막대를 중심으로 원나라의 라마탑을 닮은 여러 장식들이 원형대로 보존되고 있어 또 다른 특징이 되고
있다. 고려시대의 양식을 이어 받고 있으나 전체의 조형이 더욱 간략화 되었다. 근처의 명주군에 위치한 정동진리오층석탑과, 강릉 신복사지삼층석탑·월정사팔각구층석탑 등의 탑신부와 비교해 볼 수 있다. |
최근에 지정된 보물은... |
칠층석탑 정면에 있는 건물이 낙산사의 중심 법당인 원통보전(圓通寶殿)으로 강원도 유형문화재 3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이 원통보전 내에는 최근에 보물 1362호로 지정된 낙산사 건칠관음보살좌상(洛山寺 乾漆觀音菩薩坐像)이 모셔져 있습니다. 법당안에 계신 보살님께 최근에 보물로 지정된 불상이 어디 있냐고 물어보니 금불상을 가르키시며, 저 불상이 보물로 지정된 불상이라고 하시더군요.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으니 안된다고 하셔서 밖에서 줌으로라도 찍으려고 하니 찍지 못하게 하더군요. 자료를 보니 표현수법으로 보아 고려 후반의 전통양식을 바탕으로 한 조선초기의 작품임을 짐작케 해준다고 하는데... 600년 가까이 된 불상이라고 보기에는 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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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통보전 안에 있는 보물 1362호로 지정된 낙산사건칠관음보살좌상(왼쪽 사진은 문화재청에서 가져 옴) |
해수관음상으로... |
원통보전에서 나와서 낙산사 동종 옆으로 나가면오솔길이 나옵니다. 이 길로 조금만 가면 해수관음상(海水觀音像) 있는 곳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수관음상을 보러 옵니다만, 당일에는 우리나라 사람보다는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와 있더군요. 해수관음상 앞쪽으로는 기도처인 관음전(아래 사진 중앙) 있습니다. 해수관음상에 대한 소개는 낙산사 홈페이지의 내용을 아래에 인용합니다. "낙산사 성보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바로 이 해수관음상이다.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해에 왔다가 낙산사를 찾는 여행객들이면 빠짐없이 들러 참배하는 것이 하나의 정해진 코스가 되어 있을
정도다. 1972년 처음 착공되어 5년 만인 1977년 11월 6일 점안했다. 크기는 높이 16m, 둘레 3.3m, 최대 너비 6m이며, 대좌의 앞부분은 쌍룡상, 양 옆에는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관음상은 대좌 위에 활짝 핀 연꽃 위에 서 있는데, 왼손으로 감로수병을 받쳐 들고 오른손은 가슴께에서 들어 수인을 짓고 있다 이 해수관음상은 우리 나라에서 양질의 화강암 산지로 손꼽는 전라북도 익산에서 약700여 톤을 운반해와 조성한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