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어의 봄밤
이연자
모음으로 번진 달빛에도
씻겨나가지 않는 밤이 있습니다
수면 가장 낮은 곳으로
물소리가 출렁거렸습니다
바야흐로 잉어의 산란기입니다
잉어의 몸이 강물인지
강물이 잉어 그림자로 흐르는지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봄밤은 바위같이 움직입니다
바위같이 강을 건넙니다
아가미 별자리가 어둠을 토해낼 때
봄밤은 절대 도망가지 않습니다
그때 잉어는
지상으로 올라오는 저녁달이 됩니다
저녁달은 오래 울지는 않습니다
흙속에 알을 묻기 위해
수양버들이 흙을 움켜쥔 곳으로 갑니다
부디, 몸 그림자 상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러나 명주꽃나비 떨어져 죽으면
저녁달도 화평하게 죽습니다
그렇게 봄밤으로 죽습니다
봄밤이 잉어인지 저녁달인지
나는 밤새 강물만 보고 왔습니다
서쪽이 붉다
남쪽에 참깨가 왔는데
참깨꽃 피는 늦봄의 저녁까지 온 것만 같다
왕고들빼기 잎사귀처럼 묶어놓은 끈,
죽은 아버지가 꼬아둔 새끼줄이 틀림없었다
나는 정말이지, 아버지 손때 묻은 것이라면
뭐든지 알 수 있다 멀리서도 다 보이니까
참깨 두 말이 왔는데 무겁지 않았다
참깨 한 알의 고소함이 힘을 솟게 한다
그동안 나는 휘청거리면서 살았는데
남쪽 흙냄새 맡으니까 늘어진 팔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힘줄이 불끈 켜진다
참깨 보내온 사람, 죽은 아버지가 아니다
죽은 아버지 집에서 농사짓는 내 동생이다
동생은 삶이 되풀이라고
되풀이하면서 삶은 살아지는 거라고 말했다
맞다, 가도 가도 나는 서쪽을 떠나지 못했다
서쪽은 나의 신앙
오늘도 서쪽의 산꼭대기에서 해가 진다
깨 한 알 씹어 먹었을 뿐인데
저 천관산을 부를 일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둠도 얼어붙기 싫은지
저희끼리 몸 부비고 있을 것만 같다
서쪽이 오래 붉은 이유를 알겠다
카페 게시글
지난호 읽기
시 두 편
잉어의 봄밤 외 1편 / 이연자
김명아
추천 0
조회 31
23.09.15 14:06
댓글 0
다음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