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른다’는 속담이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다이어트 중이라면 절대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밥도둑 꽃게장. 간장 게장은 양념 간장이 스민 달큰한 꽃게 속살을 ‘회’처럼 맛볼 수 있어 좋고 양념게장은 매콤달콤한 양념맛과 야채가 더해져 좋다. 풍요로운 이 계절, 제철 맞은 꽃게 찾아 떠나봤다.
‘군산’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고군산군도의 선유도? 전라도의 푸짐한 밥상이 시작되는 곳? 아득해진다면 잠시 지도를 살펴보자. 충남 서천에서 금강 줄기를 건너면 전라도 땅이 시작된다. 그 시작점에 군산이 있다. 군산을 지나 남쪽으로는 김제와 부안이, 동쪽으로는 익산·전주 등이 펼쳐진다. 서해 갯벌과 호남 평야를 양쪽에 품은 고장이라, 감이 오지 않는가. 민물과 짠물, 게다가 평야까지 품은 풍요로운 땅. 게다가 서해와 금강 줄기를 품고 있어 한반도 안팎으로 운송에 유리하다. 군산과 서천 경계를 가르는 금강 줄기가 밖으로는 서해, 내륙으로는 충남 강경까지 깊게 파고들며 바다와 한 몸으로 들고 나는 덕분이다.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천혜의 환경을 품은 이 땅은 일제강점기를 피해갈 수 없었다. 뭍에서도 물에서도 풍요로운 먹거리가 나는 동시에 운송에도 유리한 군산의 장점을 침략자들이 모를 리 없었다. 21세기, 우리들이 그저 군산을 제대로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근대문화역사여행’을 할 수 있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역사’라는 이름으로 박제된 상처들은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
밥도둑 간장게장. 제철 맞아 알이 꽉 찼다
서해 별미 꽃게 제철에 떠나는 맛기행
전체적인 군산 분위기를 살펴봤다. 오늘의 군산 여행은 너무나 맛있는 ‘꽃게 여행’이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는 고것! 날씬한 아가씨도 밥 두 그릇은 거뜬히 먹어 치운다는 밥도둑 꽃게장이 주인공이다. 다만 그냥 먹고만 오기에는 군산이 품은 이야기가 너무 많기에, 꽃게 요리를 먹고 이성당 빵집에 들르는 것만으로는 아무래도 아쉽다.
군산 꽃게 전문점 <대가> 꽃게장 한상
어디 그 뿐이랴. 풍요로운 환경 덕분에 군산에는 다양한 별미가 자리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빵집 <이성당>을 필두로 전국 5대 짬뽕의 하나로 꼽히는 <복성루>, (기자는 미처 확인하지 못했지만) 아시아에서 가장 큰 스케일을 자랑한다는 풍문을 품은 <군산횟집>까지. 꽃게 전문점을 차치하고도 전국구 맛집과 빵집 등이 넘쳐난다. 여기에 꽃게 요리로 유명한 <대가><계곡가든><한주옥> 등 막강한 음식점들이 더해진다. 옆 동네 전주만큼 ‘관광화’된 것은 아니지만 이곳 군산은 미식가라면 놓칠 수 없는 맛의 고장이다.
차림은 가뿐한 죽으로 시작한다
오늘의 주인공 꽃게를 만나러 가는 길, 문득 궁금해진다. 어째서 군산일까? 서해의 대부분 지역에서 꽃게가 나지 않던가. 그런데 왜 유독 군산 꽃게장이 유명해진 것일까. 일단 꽃게장의 시작부터 알아보자.
말이 필요없는 간장게장
우리가 알다시피 서해안에서는 꽃게가 많이 난다. 동해는 대게, 서해는 꽃게. 이름처럼 예쁜 꽃게는 껍질이 박하지(돌게)처럼 딱딱하지도 않고 대게보다 가격 부담이 덜해 남녀노소 부담없이 즐길 수 있다. 그렇다고 그 맛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니 어민들에게 이보다 더한 효자가 있을까 싶다.
꽃게장의 쌍두마차 매콤달콤 양념게장
하지만 꽃게 보관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살아있는 꽃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제 살을 파먹기 때문. 기술이 발달한 지금에야 ‘급속냉동’으로 싱싱한 꽃게를 바로 얼려 보관하면 되지만 어디 그때야 그랬을까. 금강 줄기 안쪽 내륙에 자리한 강경에 젓갈이 발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간장게장
꽃게를 오래 보관해야 했던 어민들은 염장을 생각했다. 처음에는 꽃게 내장을 제거하고 소금에 절인 것이 전부였단다. 꽃게를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하는 게 목적이었던 것. 하지만 이렇게 염장한 꽃게는 다른 젓갈류처럼 상하지 않고 오래 보관할 수는 있지만 너무 짰다. 꽃게살의 보드라우면서도 담백한 맛이 소금 짠맛에 가려졌다.
양념게장 게딱지
“어떻게 하면 꽃게 맛을 살리면서 오래 보관할 수 있을까?”
양념게장 게딱지에 비벼먹는 밥도 꿀맛
이 고민에서 전 국민의 밥도둑 간장게장이 탄생했다. 간장에 꽃게를 절이니 보존기간이 늘어남은 물론 간장과 꽃게살의 조화도 괜찮았던 것. 처음 간장게장을 만들어낸 사람은 얼마나 기뻤을까.
간장게장
간장게장을 만드는 방법은 손은 많이 가지만 의외로 생각보다 간단하다. 먼저 싱싱한 게가 필수. 간장게장의 맛은 ‘꽃게’의 신선도가 결정한다.
각종 야채와 고춧가루로 매콤달콤 양념한 양념게장
신선한 꽃게에 파, 마늘, 생강 등을 넣고 끓여낸 간장을 식혀서 부어준다. 골고루 양념이 스미도록 꽃게가 완전히 잠길 때까지 붓는다. 그리고 꽃게 속살에 간장양념이 어느 정도 배었다 싶으면 간장을 따라낸 후 다시 간장을 끓여 식힌 후 붓는다. 간장 게장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먹기 좋게 꽃게다리의 딱딱한 부분은 잘라서 내온다
이걸 세 번 반복하는 것을 '삼벌장'이라고 한다. 군산 꽃게장은 삼벌장으로 유명하다.
게딱지에 비벼먹는 것으로만 한그릇은 거뜬하다
싱싱한 꽃게 속살에 밥 한그릇 뚝딱!
맛있는 꽃게장, 어디서 맛볼까? 군산 개정면 금강로에 자리한 <대가>와 <계곡가든>은 사이좋게 옆집에 자리한다. 꽃게장 뿐만 아니라 꽃게탕과 찜 등 다양한 꽃게 요리도 맛볼 수 있다. 보통 오후 9시면 영업을 마치니 여유있게 찾아가는 편이 좋다. 오후 8시가 조금 넘어 도착했다 문 앞에서 발길을 돌린 경험이 있는 자의 팁이니 기억해 두시라.
한주옥의 꽃게장 백반에 아구찜이 더해진 꽃게장 정식
그리고 게 요리를 맛볼 때는 여러 명이 찾으면 좀 더 유리하다. 간장 게장과 양념 게장 모두 맛볼 수 있을뿐더러 꽃게찜과 꽃게탕 등의 메인 요리까지 다양한 꽃게 요리를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나홀로 여행객이나 연인들끼리는 꽃게 요리를 제대로 맛보기 조금은 어렵다. 가족 단위 가을 식도락 여행으로는 최고다. 맛있지만 멀기만 한 꽃게장은 몸값이 제법 비싸다.
꽃게장 백반과 정식 모두에 나오는 회
<한주옥>의 꽃게장 백반도 빼놓을 수 없다. 간장․양념 꽃게장과 생선회, 생선탕까지 나오는 상차림은 회정식을 떠올리면 비슷하다. 여기에 아구찜이 더해지면 꽃게장 정식이다. 생선조림과 박대구이 등도 더해진다. 푸짐한 남도의 한상 차림을 떠올리면 된다.
<한주옥> 간장게장
남당항 대하축제와 홍원항 자연산 전어꽃게축제, 안면도 백사장 대하축제가 9월 초부터 10월 말까지 펼쳐진다. 신나는 축제와 묶어 맛있는 군산 꽃게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