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산사(匡山寺)가 위치한 광려산(匡廬山)은 중국의 명산인 여산(廬山)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의 기암절벽이 안개 속에 잠겨 있는 여산의 아름다움은, 수많은 시인묵객과 나그네들의 찬탄의 대상이 되었다.
광산사의 ‘광산(匡山)’ 역시 중국의 고사(故事)에서 유래된 말로, 은둔자의 대명사인 광유(匡裕)가 여산에 초당(草堂)을 짓고 살았다 하여 붙여진 여산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광산사의 창건주로 원효스님 외에 중국의 은신스님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신라시대에 창건된 이후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법등을 이어왔던 광산사는 6.25로 말미암아 폐허가 되고 현재의 가람은 그 이후에 새롭게 조성된 단출한 규모이지만, 사찰에 남아 있는 현판문이나 상량문 등을 통해 그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특히 이 중에서 「광산사중건상량문(匡山寺重建上樑文)」은 구한말의 항일운동가인 위암(韋庵) 장지연(張志淵) 선생이 직접 쓴 상량문으로 유명하다.
광산사 일주문
광산사 입구
광산사 법당 오르는 길
광산사 꽃길
광산사 해탈문
광산사에서 바라다본 전경
광산사 극락전
광산사 목조보살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440호
대웅전 중앙 불단 위의 아미타삼존상 중 향좌측 대세지보살상이다.
이 보살상은 당당한 체구에 허리를 약간 굽히고 머리를 내민 채 시선을 아래로 지긋이 굽어보며 결가부좌 하고 있다. 군의자락의 군데군데에는 도금이 벗겨져 옻칠이 드러나 있지만 나무의 결흔(缺痕)없이 상태는 전체적으로 양호한 편이다. 머리에는 후대에 보수한 것으로 보이는 보관을 쓰고 있으며, 보관에는 화염보주와 동일한 문양의 화문이 일정한 간격을 이루면서 반복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얼굴은 방형으로 이마가 좁고 빰과 턱은 도톰하다. 수평으로 긴 눈과 매부리코 모양의 오똑한 콧날, 살짝 올라가 미소를 머금은 입술은 자비로움을 담고 있다.
방형에 가까운 풍만한 얼굴과 결가부좌한 다리위로 흘러내리는 군의의 부채꼴 옷주름 표현은 조선후기 보살상의 조각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보살상은 표현기법이나 모습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작품으로 조성시기는 17~18세기로 추정된다. 17세기 후반 경상도지역 불·보살상의 신체 비례 및 얼굴과 의습의 세부적인 표현양식이 잘 드러난 뛰어난 작품이다.
광산사 선원
광산사 안심당
광산사 삼층석탑
광산사 해탈문
광산사 산신각
광산사 산신각내 산산탱
광산사 전경
광산사 독성각
광산사 독성각내
광산사 선원
광산사 범종
광산사 찾아가는 길
남해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서마산 IC(시청, 통영 방향)로 빠져나온 뒤 우회전하여 중리방향으로 간다. 약 2.5km 되는 지점에 이르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 좌회전하여(중리, 청아병원 방향) 다시 2.5km 정도 가면 동신아파트가 나오고, 동신아파트 쪽으로 좌회전한 뒤 청아병원을 지나 하천을 따라 계속 직진하면(약 5km 정도) 전안마을이 나온다. 마을이 끝나는 곳에서 조그마한 다리를 건너 우회전하여 산으로 오르면 산 중턱에 광산사가 위치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