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7년 가해 12월7일 목. [(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수도회] 비우고 낮추는 사랑으로 맞이하는 주님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이사 26,1-6
† 복음 마태 7,21.24-27
◈ 오늘의 묵상
‘반석 위에 집 짓기’는 믿음을 기초로 우리 인생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우리 삶을 전개할 때, 우리는 세상 풍파
가운데서도 굳건하게 서 있는 존재가 됩니다. 주님의 가르침을 이 세상
한가운데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입니다.
‘모래 위에 집 짓기’는 불신을 기초로 우리의 인생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온갖 의심과 방황으로 우리의 삶을 펼칠 때, 우리는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존재가 됩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주님의 말씀을 외면하는
사람은 모래성을 쌓는 사람입니다.
슬기롭고 겸손한 사람은 고백합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자만하고 위선적인
사람은 어리석음에 탄식합니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다.”
자신이 높이 쌓은 교만과 위선의 탑이 허물어지기 때문입니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자신의 내면을
성숙시킵니다. 그는 하느님과 완전히 일치하고자 합니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핑계와 합리화로 거짓 자아를 키웁니다. 그는 점점
하느님과 멀어져 자신의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암브로시오 성인을 본받아 이 대림 시기에 주님의 말씀을
사랑으로 실천합시다. 주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외면하지 맙시다.
성인은 성경을 읽고 배우며 주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본보기를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성인은 이 세상 안에서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전하는
길, 평화와 자유의 사도가 되는 길을 보여 줍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매일 미사 -
◈ [인천]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
2017년 나해 12월7일 목.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제1독서
<신의를 지키는 의로운 겨레가 들어간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6,1-6
복음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21.24-27
일본의 어느 무인도에 사는 붉은 털 원숭이 가족의 행동양식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가 있습니다. 이 섬 연구자들은 해변에 고구마를 놔두고
원숭이를 관찰했습니다.
어린 암컷 원숭이 ‘이모’는 자기 고구마에 붙어있는 모래를 침을 뱉은
후 바다에 고구마를 쑥 넣더니 다른 손으로 고구마를 박박 문지르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바닷물로 깨끗이 씻은 고구마의 짭짤한 맛을
즐기며 먹었습니다. 그런데 근처에 다른 어린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이 원숭이 역시 ‘이모’의 행동을 따라서 고구마를 먹는 것입니다.
이제 재미있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암컷과 수컷을 막론하고 나이 많은 원숭이들도 고구마를 바닷물로 씻는
행동 양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어린 원숭이의 행동 하나가 섬 전체
원숭이에게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심지어 이 어린 원숭이의 행동은
부모 원숭이에게도 영향을 미쳐서 부모 원숭이도 똑같이 바닷물로
씻어서 고구마를 먹었습니다.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자녀가 배우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종종 자신은 어렸을 때 부모로부터 나쁜 영향을
받았다면서 부모를 원망하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러나 앞선 원숭이의
실험에서 볼 수 있듯이, 부모만 자식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자녀 역시 부모에게 영향을 미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 탓만
외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가 부모를 변화시키겠다는 마음과 노력을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를 비롯해서 ‘남’ 탓을 참으로 많이 외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내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생각만이 아닙니다. 변화하겠다는 마음가짐과 함께 실제로
행동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행동을 갖춘 사람이 바로 주님께서 오늘 복음을
통해 말씀하시는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입니다. 그는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또한 세상의 유혹에도 절대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말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야 진정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내
안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변화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래야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변화된
나는 물론이고, 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 모두 함께 약속의 나라인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저 사람이 왜 그렇게 싫은지
몰라.” 이 말 안에 정답이 있습니다. 모르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입니다(보관).
밀라노의 암브로시오 주교.
하늘나라
미국에서는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더 마시고 싶을 때에는 잔을 들어
살짝 흔들면 종업원이 와서 채워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요? 글쎄 잔을 치워간다고
하네요. 미국 사람이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런 일을 경험했다고 화를
낸다면 어떨까요? 잔을 치운 종업원에게 문제 있다고 하는 것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관습을 모르는 미국인의 무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을까요?
그 나라의 법을 알아야 서로 오해 없이 어울려 살 수 있으며, 그 나라
안에서 나름의 자유로움을 누리며 함께 살 수가 있습니다. 내 마음과
내 뜻에 맞지 않는다고 화 낼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이를 떠올리면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며 살아야 하는 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느님의 법을 알아야
하며, 하느님 나라의 원칙을 따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내 생각과 다르다고 내 뜻대로 하지 못한다고 화를 내며
불평불만을 가질 것이 아닙니다.
하늘나라의 가장 큰 원칙인 ‘사랑’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가졌던
부정적인 마음들을 줄여나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늘나라는
멀리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은 서울대교구 문정2동 성당에서 저녁 8시부터 대림 특강을 합니다.
문정2동 성당에 가까이 사시고, 시간되시는 분들은 오세요. 그리고
내일은 서울대교구 도봉동 성당에서 대림 특강이 있습니다.
어제 강의했던 의정부교구 화정동성당의 외부 모습입니다.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비우고 낮추는 사랑으로 맞이하는 주님 -
기 경호프란치스코 신부
2017년 나해 12월7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이사 26,1-6; 마태 7,21.24-27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마태 7,21)
비우고 낮추는 사랑으로 맞이하는 주님
오늘 제1독서는 이사야서의 묵시록의 계속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려고 성벽과
보루를 세우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는 이들에게 평화를
베푸신다.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26,1-5)
하느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하던 오만한 자들은 패배의
불운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 충실한 자들은 하느님 앞에 서
그분의 도우심을 받을 것입니다. 오늘의 화답송은 이를 잘 말해줍니다.
"제후들을 믿기보다 주님께 피신함이 훨씬 낫다네.”(시편 118) 우리는
겸손한 자세로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오시는 주님께 충실함을
보여드려야겠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말로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온 마음과 혼을
다해 실행하는 사람이 하느님과 일치하고 그분께서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느님의 뜻은 우리와 함께 하려고 다가오시는 주님의 손을 잡고 그분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자비이신 주님의 자녀로서 자비를 실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신 주님의 정의를 실행하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애정과 관심 속에 인내하며 받아들여 함께 사는
것이 주님의 뜻입니다.
대림절에 우리는 진지한 태도로 순수한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지
살펴봐야겠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자기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고통과 시련의 강물이 밀려오고 근심걱정과 욕망의 바람이 휘몰아치면
영혼이 완전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닌 그 누구도 나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없으며, 현세의 그
어떤 것도 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로 얼굴을 향하고 그분께 의지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진실하고
인간다운 삶의 태도입니다. 또한 그분의 뜻을 실행하는 것이야말로
사상누각이 아닌 참 행복의 집을 짓는 지름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끌지 않으시고 한없이 낮추시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람의
몸을 취하시어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 자신을 맡기며 한없이
작아지셨지요. 우리도 비우고 낮추며 주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주님을 삶으로 맞이했으면 합니다!
-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신부 -
강론채널 주소 : story.kakao.com/ch/francesco -
◈ [수도회]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
(마태 7, 24)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나해 12월7일 목.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반석 위에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을 것이다."(마태 7, 24)
우리가 거처할 집은 말씀의 집이며 실행의 집입니다.
우리에게 없는 것이 다름아닌 실행임을 가르쳐주십니다.
반석과 모래사이에서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삶입니다.
들은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삼 깨닫게됩니다.
너무도 당연한 것을 실행하지 않는 우리들입니다.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언제나 들음의 자리 실천의 자리입니다.
들음과 실천의 자리보다 더 튼튼하고 좋은 자리는 있을 수 없습니다.
실천은 우리의 내부와 외부를 바꾸어줍니다.
말씀과 실행은 하나입니다.
성탄을 준비하며 기다리는 대림시기는
실행을 향하여 나가는 시간입니다.
모든 것이 다 무너져도 무너지지 않는 것은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그 관계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실행의 자녀들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원] 하느님 나라를 차지할 사람! /
조욱현 토마스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나해 12월7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 7,21.24-27: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예수님은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21절)고 하신다. 이 말씀은 지금 언행이 일치하지 않음을 탓하시는
말씀이다. 하늘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 하느님의 뜻을
행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뜻이 바로 아들의 뜻이다. 아들은
아버지의 뜻과 반대되는 것을 가르치실 수가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먼 미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즉 우리가 죽은 다음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그분의 말씀은 현재의 삶에서부터 맺는 열매와
덕이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말씀의 열매와 덕은
삶의 어려움에 의해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안정을 누리게 된다. 온전한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때문이다. 폭풍이 불고 극심한 풍랑이 닥치고
유혹이 계속되어도 흔들리지 않는다.
“비가 내려 강물이 밀려오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반석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25절) 비와 강물과 바람이라는
말로 인생의 온갖 상황, 모략, 중상, 상실, 죽음, 가족을 잃는 일 등
삶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온갖 끄찍한 일을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에 뿌리박은 사람은 이런 재앙 어느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는다. 바위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이 ‘바위’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말한다고 하겠지만 더 근본적적으로는
예수님 자신이시다. 우리가 예수님께 기대고 굳건히 서 있는데 어떤
어려움이 우리를 넘어뜨릴 수 있겠는가! 그분과 그분의 가르침은 인간을
인생의 모든 파도 저 너머에 올려놓는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마태 16,18)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세운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짓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일은 없다. 그런 사람은
집짓는 수고를 다 하고서도 수고의 열매와 안식을 얻지 못하고 은총
대신 벌을 받기 때문이다. 강도, 간음, 위증하는 사람들도 자기 일을
하려면 수고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수고를 했어도 아무런 이익을
얻지 못할 뿐 아니라, 큰 손해까지 본다.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자들은 불륜이나 방탕, 만취 분노에 빠져 사는 이들이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사람에 비유되고 있다.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에게 힘을 주시는
그리스도(필리 4,13)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해낼 수 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보다는 자신의 본성에 따라 행동함으로써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져 어리석은 자가 된다.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우리가 항상 그분 안에 머물고 그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도록 이 대림시기를 노력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하자.
- 수원교구 상하 성모세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수원] 신뢰란 결단이다|전삼용 요셉 신부/오늘의 강론 묵상
2017년 나해 12월7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
<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복음: 마태오 7,21.24-27
신뢰란 결단이다.
사막의 교부 알렉산드리아의 성 안토니오는 젊어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엄청나게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젊은 재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느 날 성당에 들어갔었는데 미사가 행해지고 있었습니다. 그 때 복음
말씀이 들려왔는데 예수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네가 완전해지려거든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나를 따라라.”
이것이 마치 부자청년인 자신에게 하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사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라고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신 것인데, 특히 이 말씀이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렸던
것입니다. 그는 처음에 자신의 여동생 몫을 남겨놓고 재산을 다 처분해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완전히 따르는 것 같지 않아 여동생의 몫까지도
팔아서 완전하게 가난해졌습니다. 그리고 지인에게 동생을 맡기고
자신은 사막으로 들어가 극기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몇 명씩 사람이 모이게 되었고 그렇게 교회에 특별한 형태의
수도생활이란 삶의 형태가 탄생되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부자는 망해도 3년은 간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의 마음에는 그런 고생을 하며 사는 것이 주님께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도시로 나가 복음을 선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 강해질수록
그것이 마귀의 목소리임을 깨닫고는 “사탄아, 물러가라!”고 하며
마지막 유혹까지도 이겨냈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곁에서 끊임없이 당신의 목소리를 신뢰하라고
합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사실 이미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고 교회의
가르침에 다 나타나 있습니다. 안 들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의 주제는 당신을 신뢰하는 자들을 당신께서 직접 지으신
견고한 성읍에 들게 하여 평안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본래 신뢰하다(batah)는 히브리어 동사의 의미는 ‘피난하기 위해 서둘러
가다’란 뜻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신뢰하는 이들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이 아마도
소돔 땅에서 주님의 이끄심에 따라 서둘러 소돔 땅을 떠나 안전한
곳으로 서둘러 가는 롯과 그 가족의 모습이 아닐까합니다.
완전한 신뢰는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이끄심이 진정
옳은 길이라 여길 때는 양다리를 걸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세상의 영화를 완전히 끊지 못한 롯의 아내는 결국
소금기둥이 되어 이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는 처지가 되어버렸습니다.
“너희는 길이길이 주님을 신뢰하여라. 주 하느님은 영원한 반석이시다.
그분께서는 높은 곳의 주민들을 낮추시고, 높은 도시를 헐어 버리셨으며,
그것을 땅바닥에다 헐어 버리시어 먼지 위로 내던지셨다. 발이 그것을
짓밟는다. 빈곤한 이들의 발이, 힘없는 이들의 발길이 그것을 짓밟는다.”
결국 주님을 믿지 않고 자신을 믿는 이들은 세상 사람들로부터도
짓밟히고 맙니다. 자신을 믿는 이들이 높은 도시를 상징합니다.
자신이 높이 있으니 피신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주님의 가르침 때문에 이 세상의 영화를 온전히 포기할 수 없는 이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주님은 부자는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하는데도 그 말씀에 신뢰하지 않고 재산을 축적하는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라는데 미워하고 속옷까지라도 내어주라는데 더 가지려고 다른
이의 것을 빼앗는 이들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이렇게 강한데 어떻게
주님의 말씀에 신뢰하며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고 그분의 말씀에 따라
달려 자신을 피신시킬 수 있겠습니까?
루벤스의 그림 ‘사자굴속의 다니엘’이란 그림에는 다니엘이 며칠 동안
굶주린 사자굴 속에 빠져있는 장면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서운 사자들이 다니엘의 주위에 어슬렁거립니다. 그런데 다니엘은
사자는 전혀 쳐다보지 않고 빛이 들어오는 구멍을 향해 하느님께
기도만 드릴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는 여러 목소리가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려면 이 세상의 목소리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이 주님을 신뢰하는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주님께서 지으신 성읍에 들어가 살기에 합당한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달려가는 사람들인지 되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 수원 교구 영성관장 전삼용 요셉 신부 -
◈ [서울]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2017년 나해 12월7일 목.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하늘 나라에 들어간다.>
† 마태 7,21.24-27
작년에 경주에 지진이 있었고, 올해는 포항에 지진이 있었습니다.
지진의 여파로 수학능력 시험이 일주일 연기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지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내진설계를 해야만 된다고 합니다. 내진설계는 지진이 와도 견딜 수
있도록 건물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에 내진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으면 시련과 고통이 와도
이겨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마음에 내진설계가 되어있으면 지치고
힘든 사람들이 와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들 마음의 내진설계는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아주 간단하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튼튼한 바위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아서 비바람이 몰아쳐도, 거센 풍랑이 불어도 견디어
낼 수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마치 모래 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아서 바람이
불면, 풍랑이 몰아치면 곧 무너지고 말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활의 달인이라는 프로가 있었습니다. 봉투를 잘 붙이는 사람,
바구니를 잘 만드는 사람, 계란을 잘 까는 사람, 초밥을 잘 만드는 사람,
인형에 눈을 붙이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와 같은
사람들인데, 매일 열심히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하다 보니, 달인이
되었다고 합니다. 화가, 음악가, 운동선수는 재능과 노력으로 최고의
자리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의 달인들은 주어진 일을 매일
충실하게 함으로써 경지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교구청에서 사목국 일을 할 때였습니다. 제가 맡았던 일은 구역장,
반장들에게 2시간씩 강의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미사 때, 10분 강론만
하던 저에게 2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이었습니다.
처음 강의를 할 때, 한 참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 겨우 20분 지났습니다.
준비한 것도 기억이 나질 않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흐르고 어떻게
강의를 끝냈는지 모를 정도로 당황했었습니다.
나중에 사목국을 떠날 때쯤은 2시간 강의를 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습니다. 매번 강의를 준비하였고, 자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 뒤로
토론토에서 지낼 때, 사목국에서의 경험은 교포 신자들을 위한 교육과
강의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강의를 할 줄 몰랐던 저도 자주
하다보니까 2시간 강의를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두려움도 없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믿음의 달인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사랑의 달인이 되는 방법을 이야기 하십니다. 희망의 달인이
되는 방법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사람은
믿음의 달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사랑의 달인이 된다고 하십니다.
희망의 달인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단단한 바위 위에 집을
지은 사람처럼 시련과 고통, 슬픔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와도
흔들리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쉽고 간단한 것
같은데, 그 길이 참 멀고 험한 것도 사실입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데, 아무나 하지 않은 것이 하느님의 뜻을 삶 속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예전에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눈이 오는 하얀 겨울에는 소나무와
전나무만 푸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청주] 아버지의 뜻|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7년 나해 12월7일 대림 제1주간 목요일(마태7,21.24-27)
아버지의 뜻
작심삼일입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며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겠다고 다짐하지만 돌아보면 결심과 행동은 언제나
다릅니다. 신앙생활의 연륜이 쌓이면 쌓일수록 더 깊은 맛을 내야
하는데 세월이 가도 별반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틀에 박힌
법을 지키는 것보다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주님의 계명을 합리화
시키는 데 약삭빠르게 움직입니다. 아무리 긴 세월이 흘러도 진리는
변함이 없건만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물러지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율법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율법대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로마2,13). “그러니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야고1,22). 그리고 그 실천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기
좋아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진심으로 실행하십시오”(에페6,6). 정말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위입니다. 신앙고백이나 찬미의 말도 그 진실성은 얼마나
실천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한편 실행하는 것은 좋은 것이지만 내
뜻을 이루려고 애달아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원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이 아버지의 뜻이 아닐지 생각해봐야 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지순례나 기도회, 피정을 다녀와서는 너무 좋았다고
떠벌립니다. 그런데 그 사람의 삶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습니다.
좋았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새로운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에제키엘서에는 실천의 어려움을 “그들의 입에는 열정이 차서
그럴듯하게 행동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제 이익만 좇아간다”
(에제33,31).고 적고 있습니다. 집을 지으려면 기반을 잘 다지고 그
위에 지어야지 그렇지 않고 모래 위에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기초가 튼튼하면 큰 바람과 물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집을 지으면 비바람을 걱정할 틈도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을 듣고
실행하면 큰 믿음의 사람이 되지만, 듣기만 하는 사람은 환난이 오면
곧 흔들려 방황하게 됩니다. 사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7).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야고2,26). 마더 데레사는 말합니다. “예수님께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오히려 장애가 될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실천하지 않으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니까요”
그러므로 “하느님 앞에서 결정한 것은 미루지 말고 그분의 뜻대로
실천하십시오”(알베리오네신부). 우리 모두가 실천하면 할수록 더 큰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는 사실을 체험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고 하셨으니 실행함으로써 하늘나라를 차지하기를
기도합니다. 내 뜻을 고집하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헤아리는 날이
되기를 소망하되 한 번에 많은 것을 행하려고 욕심 부리지 말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구술이 서 말 이라도 꿰어야 보배'
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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