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 튀어나온 수컷, 몸길이 6.5m·몸무게 3700㎏까지 자란대요
코끼리물범
▲ 남방코끼리물범의 모습. /위키피디아
태평양 연안에 사는 코끼리물범이 범고래 등 포식자를 피해 깊은 바닷속으로 들어가 10분씩 '쪽잠'을 잔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 발표됐어요. 물범·물개·바다코끼리와 같이 지느러미처럼 변한 발을 갖고 있고 바다에서 먹이를 사냥하는 육식 포유동물을 통틀어 기각류(鰭脚類)라고 하는데요, 코끼리물범은 기각류 중 가장 몸집이 크답니다. 다 자란 수컷은 몸길이 최장 6.5m, 몸무게가 최대 3700㎏까지 자랍니다. 우리나라 서해 백령도 앞바다에 사는 점박이물범이 다 자라도 1.7m, 130㎏인 것과 비교하면 얼마나 큰지 짐작이 가죠.
코끼리물범은 사는 지역에 따라 두 종류가 있어요. 남극 대륙 주변 섬과 남아메리카 파타고니아 일대 등에서 살고 있는 '남방코끼리물범'이 있고, 미국·멕시코 서부 해안 지역에 서식하는 '북방코끼리물범'이 있어요. 상대적으로 추운 곳에 사는 남방코끼리물범이 덩치도 더 크고, 수명도 북방코끼리물범보다 더 길어요. 코끼리물범은 암컷과 수컷을 손쉽게 구분할 수 있는 동물이에요. 수컷 코끼리물범은 유독 코가 부풀어 올라 툭 튀어나와 있거든요. 코끼리물범이란 이름도 코가 코끼리를 연상시킨다 해서 붙었어요.
그런데 암컷은 수컷 몸집의 채 절반도 되지 않을뿐더러 코도 부풀어 올라 있지 않고 뭉툭해요. 전혀 다른 종인가 착각할 정도죠. 암컷과 수컷은 1년 중 상당 부분을 따로 지내다가 번식기 때만 잠깐 모여요. 남방코끼리물범의 번식기는 9~10월이고, 북방코끼리물범의 번식기는 12~3월이에요.
먼저 수컷들이 번식지 바닷가에 몰려들고, 나중에 도착할 암컷을 기다리면서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지죠. 이 싸움에서 이긴 가장 힘센 녀석이 최소 수십 마리에서 최대 100여 마리의 암컷을 혼자 독차지합니다. 수컷들끼리 싸우다 목숨을 잃는 경우도 있어요. 이 시기 수컷 코끼리물범의 커다란 코는 더욱 부풀어 오르고, 목덜미의 살갗은 아주 두꺼워집니다. 그래서 싸울 때 상대방을 위협하는 더 커다란 콧소리를 낼 수 있고, 상대방이 물어뜯더라도 타격을 덜 입을 수 있죠. 치열한 몸싸움을 거쳐 힘센 수컷이 수많은 암컷을 거느리는 이런 방식은 얼핏 비정해 보이기도 하죠.
그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강한 수컷의 유전자가 더 많이 뿌려져 전체적으로 생존율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고 과학자들은 말해요. 코끼리물범의 임신 기간은 사람보다 긴 11개월이에요. 출산한 암컷은 한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오직 새끼에게 젖만 물린대요. 먹지 않고도 거뜬히 버틸 만큼 몸속에 지방이 풍부한 덕분이에요. 이 지방을 노리고 코끼리물범을 사냥하는 사람들 때문에 한때 멸종 위기까지 내몰렸는데요. 다행히 사냥이 법으로 금지되면서 꾸준히 숫자를 회복하고 있대요.
정지섭 기자, 도움말=어경연 세명대 동물바이오헬스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