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부채 193조… “26조 자구안, 정상화엔 역부족” 지적
주요 자산 매각 등 자구계획 발표
1분기 6조 적자… 8개 분기 연속 손실
“전기요금 현실화 근본 대책 필요”
노조 “임금동결 반대”… 진통 예상
빚더미에 앉은 한국전력공사와 한국가스공사가 2026년까지 총 41조1000억 원의 유동성을 확보한다. 직원 인건비를 줄이고 주요 자산을 매각하는 등의 내용이 핵심이다. 하지만 전기·가스요금의 현실화 없이 이 정도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두 공기업의 재무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자산 팔고 임금 동결
12일 오전 서울의 한국전력 영업지점. 2023.5.12. 뉴스1
한전과 가스공사는 12일 비상경영 체제를 선포하고 유동성 확보 방안을 담은 자구 계획을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자구안에 따르면 한전은 2026년까지 25조7000억 원 규모의 재무 개선에 나설 계획이다. 올 2월 나온 재정 건전화 계획(20조1000억 원)보다 규모가 5조6000억 원 더 커졌다.
한전은 우선 2급 이상 임직원의 올해 임금 인상분 전액, 3급 직원의 인상분 절반을 반납하기로 했다. 또 4급 이하 나머지 직원들의 임금 인상분 반납도 노조 협의를 통해 추진할 예정이다. 이와 별도로 경영평가 결과가 확정되는 올 6월경에 1급 이상은 성과급 전액, 2급 직원은 성과급의 50%를 반납할 방침이다.
부동산 자산 매각에도 나선다. 한전은 서울 영등포구 남서울본부를 매각하고 서울 서초구의 한전아트센터와 전국에 분포한 10개 사옥을 외부에 임대한다. 인력 감축도 추진한다. 한전은 전력 수요 증가와 에너지 신산업 확대에 따라 당초 1600여 명을 확충할 계획이었지만, 기존 인력 재배치를 통해 필요 인력을 충당한다. 전력설비 건설 시기와 규모를 조정해 1조3000억 원을, 업무추진비 등 경비를 줄여 1조2000억 원을 마련하는 방안도 내놨다.
가스공사 역시 2급 이상 직원들의 올해 임금 인상분을 전액 반납하는 등 총 15조4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을 내놨다. 비핵심 자산을 매각하고 프로농구단 운영비를 20% 줄이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선다. 가스공사는 관리소 무인화를 통해 인력 구조조정에도 착수한다.
● “근본 해결책은 요금 현실화”
두 에너지 공기업이 작지 않은 규모의 자구 계획을 내놨지만 최근 상황을 감안했을 때 재무구조 정상화는 아직 요원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발표된 한전의 1분기(1∼3월) 영업손실은 시장 전망인 5조 원을 웃도는 6조1776억 원으로 집계됐다. 한전의 영업손실은 2021년 2분기(4∼6월)부터 8개 분기 연속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30조 원이 넘는 적자를 낸 한전은 올해도 대규모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국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전기요금에 제때 반영되지 못하면서 전기를 팔수록 손실이 쌓이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부채가 작년 말 기준 192조8000억 원에 달하는 한전이 26조 원 규모의 자구안으로 정상화가 가능하겠냐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가격 인상 요인을 전기·가스요금 판매 가격에 반영하는 ‘원가주의’가 지켜져야 한전이나 가스공사의 재무구조를 제대로 개선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향후 자구안 추진 과정에서 진통도 예상된다. 한전은 전기요금 인상으로 국민 부담 증가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임금 동결 등 ‘고통 분담’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일선 직원들은 경영 부실의 책임을 내부로 돌리는 것에 반감을 갖고 있다. 한전 노조 관계자는 “회사 적자에 대한 책임이 일반 직원에게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임금 동결 추진에 대해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세종=김형민 기자
‘文정부 임명’ 정승일 한전 사장… 與 압박에 자구안 내놓은 날 사의
여권의 지속적인 사퇴 압박을 받아 온 정승일 한국전력공사 사장(사진)이 결국 경영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정 사장은 12일 입장문에서 “전기요금과 관련해 국민 여러분께 부담을 드리고 있는 것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오늘 자로 한국전력공사 사장직을 내려놓고자 한다”고 밝혔다.
산업통상자원부 관료 출신인 정 사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한국가스공사 사장, 산업부 차관 등 주요 보직을 거쳐 2021년 5월 한전 사장에 임명됐다. 그의 임기는 내년 5월까지였지만 윤석열 정부와 여권에서는 지난 정부 출신인 정 전 사장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는 데 대해 불편해하는 시각이 많았다.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핵심 이슈로 떠오른 지난달 말부터 여권에서는 그에 대한 사임 요구가 쏟아져 나왔다. 정 사장이 물러나면서 후임 한전 사장이 누가 될지에 대한 관심도 커진다. 한전 사장은 관례적으로 산업부 고위 관료 출신이 맡아 왔다.
세종=김형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