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화 아이들 꿈밭에 '밑거름' 되고파
|
▲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우산이 되어 주고 싶다는 인순이씨. | 감성적이면서도 폭발적인 가창력의 소유자, 인순이(체칠리아, 57)하면 그가 부른 노래 '거위의 꿈'이 떠오른다.
맨발로 무대에 올라 그가 내쉬는 모든 호흡이 만들어 내는 '거위의 꿈'을 듣고 있노라면, 가슴 깊이 묻어놓은 희망이 고개를 든다.
인순이씨는 지난해 3월 다문화가정 자녀를 위해 강원도 홍천에 대안학교 '해밀'을 설립했다. 맨발로 대안학교라는 새로운 무대에 선 그는 1년이 지난 지금 아이들과 어떤 희망을 꿈꾸고 있을까. 13일 서울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아이들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들이 조금 들떠 있었다면 안정감을 찾고 편안해졌어요. 공부하고 싶어하는 아이도 늘고,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고민한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에요."
해밀학교 이사장 인순이씨는 "요즘 아이들을 자주 안아주고, 기숙사에서 함께 깔깔거리고 웃고 떠들며 즐겁게 지낸다"면서 "자아정체성으로 고민이 많은 아이에게 사랑만 채워주면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은 6개국 출신 20여 명으로, 수업은 일반 교과목을 비롯해 함께 농사짓는 시간 등 다양한 특성화 교육으로 진행된다. 엄마와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아이를 위해 엄마의 모국어를 배우는 시간도 있다.
인순이씨가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한 건 2010년 공연장으로 가는 승용차에서 "다문화학교 학생 졸업률이 28%밖에 되지 않는다"는 라디오 뉴스를 듣고서다. 10여 년간 사회공헌활동으로 양로원, 고아원 운영 등을 고민했던 그는 뉴스를 듣고 무릎을 쳤다.
"'아, 이게 내가 해야 할 일이구나'했어요. 제가 다문화가정 자녀로 살아왔고, 그 아픔을 잘 아니까요."
주한미군 흑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순이씨는 지금 자신의 모습이 스스로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 없이 살아왔다. 남들과 대화를 나눌 용기도 나지 않았다.
인순이씨는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은 아이들을 보듬어 주는 '이모'로 통한다. "겨울방학 때 춤에 관심 있는 일본 학생에게 춤을 가르쳐준 적이 있어요. 당시 언론에서 일본의 망언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어요. 아이에게 '너 이럴 때 심정이 어떠니?'하고 물어봤어요. 그리고는 나도 사람들이 '양키 고홈'이라고 외치면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말해줬지요."
인순이씨가 또 일본과 한국이 축구경기를 하면 어느 나라를 응원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이는 "저는 한국에서 태어났어요"라고 답했다. 인순이씨는 아이에게 말했다.
"부모님 일은 부모님이 알아서 해결하실 거야. 우리만 생각하자. 너는 네가 사는 이곳에서 멋지게 살면 되는 거야."
인순이씨는 해밀학교가 문을 연 당시, 많은 인터뷰에서 "다문화가정 자녀들의 우산이 되어주고 싶다"고 밝혔다.
"다른 이들의 꿈을 보듬어 줄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에요. 제가 해야 할 일이 생겼다는 게 감사하고 아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기뻐요."
그러나 그는 "후원을 부탁하는 일이 쉽지 않아 사실 하루에도 마음이 오락가락한다"고 털어놨다.
"내가 왜 이 학교를 시작했지? '차라리 노래 연습을 더 해서 팬들에게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데' 하면서요. 노후 걱정도 되고요."(웃음)
그러나 그는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우리 아이들이 지금 뭐 하고 있을까 궁금해진다"며 "하느님이 알아서 해 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제가 나이와 상관없이 현역에서 이렇게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건 제 능력이 아니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한다"며 "하느님이 나를 쓰시려고 나를 올려놓으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도 무대 위에서 열정을 발산하며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는 자신의 모습이 미스터리라고 했다. 그는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대중들이 자신을 통해 하느님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36년 차 가수다.
그는 내년에 학교 이전 계획을 세우고 있어 요즘 후원자들을 만나느라 바쁘다.
인순이씨는 "해밀학교는 아이들을 인재로 키워내는 곳이 아니다"면서 "아이들이 한국사회에 잘 스며들어 탄탄한 마음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키우는 게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그는 "지금도 국제결혼이 많지만 미래에는 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지구촌이 될 것"이라며 다문화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버려달라고 부탁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다문화 가정 자녀들 위한 대안학교 '해밀학교'
|
▲ 김치를 담그고 있는 해밀학교 학생들. |
|
▲ 강원도 홍천에 있는 해밀학교 전경. | 해밀학교는 미인가 기숙형 중고교과정 통합 대안학교다. 다문화가정 자녀 학생들과 일반 학생들이 어우러져 다름의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배려하는 교육을 실현하기 위해 설립됐다.
현재 2014년도 신입생과 편입생을 수시 모집하고 있으며, 모집 대상은 중학교 1, 2학년이다. 입학 및 후원 문의 : 070-4184-8761 사진제공=해밀학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