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그림자가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따라다니는 가문의 이야기다. 비극을 끊어낼 비책이 없다. 어쩜 이렇게 비극이 자연스럽게 가문 전체를 뒤덮을 수 있을까. 보복으로 살인되고 살아남은 어머니조차 트라우마로 알코올에 의지해 살아야 했고 그마저도 자살로 생을 마감해야 하는 비참한 이야기가 쉴 틈 없이 이어져 내려간다. 가문의 마지막 생존자도 애틋한 사랑은 잠시 연인과 딸의 비참한 모습을 연이어 봐야 했던 비극은 암울한 분위기를 압도한다.
이 책의 전체적인 역사적 배경은 아일랜드와 영국 간의 대립이다. 식민 지배를 벗어나야 했던 아일랜드, 놓치고 싶지 않은 영국.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 결국은 사람들의 삶을 비극으로 이끌어간다. 제국주의 시대, 아일랜드의 투쟁의 역사. 그 속에서 운명의 꼭두각시처럼 바스러져 가는 개인들. 아일랜드와 영국의 지난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잔혹한 운명의 이야기 속에서 사랑하는 이들을 떠내 보내는 가슴 아픈 가족사의 이야기를 통해 늘 그렇지만 평온한 지금의 삶이 결코 값없이 주어진 것이 아님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
역사적 배경을 인지하지 않고 책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자칫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이거나 기숙학교의 남다른 풍경만 기억에 남게 되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것 같다. 슬픔과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자신이 목격한 그 장면을 회피하거나 또는 집요하게 붙잡는다는 특징이 있다. 등장하는 주인공들이 그렇다. 하지만 처참한 소용돌이 속에서도 작은 희망의 불빛은 여전히 작게나마 비추고 있다는 사실이다. 아픈 이들만 느낄 수 있는 온화한 불빛이며 상처로 난도질당한 이들만 볼 수 있는 감사의 불빛이기도 하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 윌리엄 트레버의 작품은 뭔가 남다른 점이 있다. 고요함 속에서도 울림이 크고 슬픔의 내러티브를 이어가지만 그 속에서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