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이야기 8부- 오징어게임, 삶의 재미는 무엇인가
최근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개봉 4일 만에 미국을 비롯하여 전 세계 22개국에서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미국, 일본, 캐나다, 칠레, 이집트, 도미니카, 온두라스,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오만, 사우디아비아 등 40개국에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오징어 게임은 유료가입자 증가 둔화로 심각한 실적하락에 시달리고 있던 넷플리스를 살리고 있기도 하다. 오죽했으면 넷플릭스의 CEO인 리드 헤이스팅스가 오징어게임의 플레이어들이 입고 있던 옷을 입고 나와 기념샷을 찍었을까.
미국 경제지인 포브스는 "기이하고 매혹적이다. 뛰어난 연기와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 창의적인 설정으로 가득하다. 여섯번째 에피소드는 올해본 TV프로그램중 최고다"라고 극찬을 하였고, 뉴욕포스트의 대중문화 전문 사이트인 디사이더는 신선한 아이디어를 스릴 넘치는 드라마로 승화시켰다. 배틀게임류 중 세계에 통할 수 있게 만든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평하였다.
이 드라마의 성공배경은 현대인들이 안고 있는 불안감에 대해 공감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재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은 세대와 빈부의 갈등, 계급과 계층의 단절, 심각한 부의 편중과 극심한 자본주의의 심화 등 온갖 잡동사니와 같은 문제들로 가득찬 쓰레기통과 같다. 쓸데없는 경쟁과 행복의 의미를 재미의 유무로만 묻는 사회 풍토도 그렇다. 이렇게 부끄러운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전 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포스터 이미지/출처- 넷플릭스
주인공 성기훈은 이혼남으로 백발의 노모에 빌붙어 살고 있다. 기훈은 하나뿐인 딸 가영의 생일날 엄마 카드를 훔쳐 돈을 출금하고 우여곡절 끝에 456만원을 따게 되지만, 강새벽에게 소매치기를 당하고 때마침 찾아온 사채업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쓰게 된다. 집으로 돌아오던 기훈은 지하철에서 정장차림의 남자를 만나 10만원빵 딱지치기를 하게 되고 돈이 없어 빰을 맞으며 거금의 돈을 벌게 된다. 정장의 남자는 거금을 벌 수 있다는 게임의 참가를 제안하고 한장의 명함을 건네주고 사라진다. 기훈은 딸이 곧 엄마와 결혼한 새아빠와 같이 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오징어 게임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어 오징어 게임에 참여하기로 결정한다. 기훈은 총 456명이 참가한 게임에서 최후의 1인으로 살아남아 456억원이라는 상금을 얻어 집으로 돌아오지만 기훈의 어머니는 이미 사망한 후였다.
그 후 일년이 지났다. 하지만 기훈은 456억원에서 1만원만 인출하였을 뿐 그 돈을 쓰지 않고 폐인처럼 살아간다. 늦은 밤 강변에서 깡 소주를 마시고 있는 기훈에게 꽃장수가 다가와 꽃을 사달라고 애원하고, 꽃을 산 기훈은 꽃에 첨부되어 있던 초대장을 발견한다. 기훈은 초대장에 적힌 주소로 찾아가 병상에 누워있던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노인은 죽은 줄만 알았던 오일남이었다. 기훈은 일남에게 무슨 이유로 이 잔인한 게임을 기획했냐고 다그친다.
일남은 창밖의 영하에 날씨 속에서 술에 취해 죽어가는 노숙자를 발견하고, 자네 아직도 사람을 믿나? 라고 물으며 기훈에게 게임을 하나 더 하자고 제안한다. 자정이 되기 전까지 누군가 저 노숙자를 도와주면 자네가 이기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긴다는 것이다. 자정이 되어 행인의 신고를 받은 경찰차가 나타나고 노숙자를 데려가고 기훈은 내가 이겼다고 외치지만 이미 일남은 숨을 거둔 뒤였다.
오징어 게임의 참가자 456명은 모두가 신용불량자이거나, 살인자, 범죄자들로 사회의 낙오자들이다. 이들에겐 현실사회가 더 지옥이다. 첫 게임에서 255명이 죽었을때 게임을 계속할 것인가, 여기서 중단할 것인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투표가 진행되었고 1번 오일남이 반대표를 던져 게임은 중단되고 말지만, 결국 이들은 지옥 같은 현실 앞에 다시 목숨을 건 게임장을 다시 찾게 된다.
살길이 막막한 기훈은 편의점에서 깡소주를 마시다가 1번 참가자 오일남을 만난다. 일남은 기훈에게 여기가 더 지옥이라면 그곳에 가기로 했다고 말한다. 기훈은 당뇨진단을 받고 쓰러진 노모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전처의 집까지 찾아가 전처의 현 남편에게 돈을 빌리는데 성공하지만, 돈은 안갚아도 되니 다시는 찾아오지 말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어머니 수술비마져 던져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기훈에게도 오징어 게임속이 지옥이 아니라, 현실 그 자체가 지옥이었던 것이다. 결국 기훈은 그 지옥을 피해 목숨을 건 게임을 선택한다.
요즘 한국은 부동산가격의 급상승으로 영혼을 끌어모아 대출을 받는다는 영끌대출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고 있다. 현대인들 치고 한국사회에서 빚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없다. 게임에서 탈락하는 사람은 죽음을 맞이하듯 현실세계에서도 게임에서 진 사람의 결과는 비참하다. 기훈은 그곳에서 잘 나가는 동네 후배인 상우를 만나게 되는데 서울대 출신의 상우는 주식투자에 실패해 60억원을 빚지고 모텔에서 연탄불을 피워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다가 게임에 들어온 사람이다. 게임속 참가자들은 상금을 타기 위해 정식 게임 밖에서도 서로 죽고 죽이듯이 현실 속에서의 우리들의 모습 또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학생들은 입시경쟁, 직장인들은 승진경쟁을 벌인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에서의 투자경쟁에서 실패하게 되면 게임 속 주인공처럼 인생의 낙오자가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육체적, 정신적으로 피폐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숨을 거두기 전, 일남은 기훈에게 이렇게 말한다.
자네, 돈이 하나도 없는 사람과 돈이 너무 많은 사람의 공통점이 뭔 줄 아나?
사는 게 재미가 없다는 거야.
언제부터선가 내 고객들이 하나 둘씩 나에게 그러는 거야.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 것이 없다고, 그래서 다들 모여서 고민을 좀 해봤지. 뭘 하면은 좀 재미가 있을까 .
어릴 때는 친구들이랑 뭘 해도 재미있었어.
그런데 이제는 살면서 더 이상 즐거운게 없어. 죽기전에 꼭 한 번 다시 느끼고 싶었어.
관중석에 앉아서는 절대로 느낄 수 없는 기분을 말이야.
일남은 수많은 경쟁에서 살아남아 정상까지 올라왔지만 그의 종착점은 아무런 의미도 가치도 없는 허망한 것이었다.
인간에게 재미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아기자기하게 즐거운 기분이나 느낌이다. 우리는 늘 친구에게나 주변사람들에게 묻는다. 일하는 거 재미있니? 결혼생활은 재미있니? 인생의 행복은 과연 재미일까? 언제부터 재미가 우리 인생의 목표가 되었을까?
기훈은 죽어가는 일남에게 이렇게 외친다.
재미! 재미로 그런 짓을 시켰다구?
나는 아무에게도 게임을 강요한 적이 없어!
자네도 제 발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나?
도대체 인간에게 행복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행복을 그저 재미라는 즐거운 느낌으로만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불행하다고 여겨지기 쉽다.
재미는 순간적인 것으로 지속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삶의 의미를 재미에서 찾는 VIP들과 오일남과 같은 가진 자들 , 파멸의 길인줄 알면서도 스스로 게임속으로 기꺼이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기훈과 상우와 같은 가지지 못한 자들, 그리고 그 드라마를 감상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이 드라마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인가? 인생의 진정한 재미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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