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4일(화) 예레미야 14:7-15:9(1st. 14:7-12) 찬송 150장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언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고난 당한 때의 구원자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 같이,
하룻밤을 유숙하는 나그네 같이 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들의 발을 멈추지 아니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
13. 이에 내가 말하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이 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라 하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령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점술과 헛된 것과 자기 마음의 거짓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 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말미암아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장사할 자가 없을 것이요 그들의 아내와 아들과 딸이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악을 그 위에 부음이니라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상처로 말미암아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읍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알지 못하는 땅으로 두루 다니도다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15:1.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은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어려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5.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6.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7.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8.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
9.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개역 개정)
- 세 번에 걸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답변 -
오늘 말씀은 유다에 임한 가뭄 재앙과 관련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통해 유다에 대한 심판을 경고하는
예레미야의 여섯 번째 설교(14-15장)의 연속 부분으로,
극심한 가뭄 재앙이 유다 땅에 임한 사실을 보도한 어제 말씀(14:1-6)에 이어
가뭄 재앙을 통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유다에 대해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을 호소하는 세 번에 걸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본문은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하나님의 답변에 따라 자연스럽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먼저 전반부 14:7-12에서는 예레미야의 첫 번째 중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여기서 예레미야는 유다의 죄가 많음을 자복하고,
그들의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하여 심판을 유보해 주실 것을 호소하고 있다.(7-9절)
그러나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와 유다 백성들의
금식이나 제사 등에도 불구하고 유다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뭄 이후에는 칼과 기근과 염병을 통해 그들을 멸하실 것을 밝히심으로써
유다에 대한 심판 의지를 분명히 하신다.(10-12절)
다음으로 중반부 14:13-18에서는 예레미야의 두 번째 중보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첫 번째 기도에 대한 답변을 통해 유다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의지를
분명히 확인한 예레미야는 이번에는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거짓 평안과 안전을 예언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그릇된 길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제기하여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주실 것을 호소한다.(13절)
그러나 하나님의 답변은 거짓 선지자들을 멸할 뿐만 아니라
그 예언을 따른 백성들까지도 멸하시겠다는 것이었다.(14-18절)
이는 죄의 유혹을 받아들인 사람 역시 책임이 있음을 시사하며
이러한 죄의 용납 역시 죄의 유혹 못지 않게 중한 죄임을 말해 준다.
끝으로 후반부 14:19-15:9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 기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을 기록하고 있다.
예레미야는 거듭된 중보의 노력에도 소득을 얻지 못하자
이번에는 최후 수단으로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하여
유다를 멸하지 말 것을 호소한다.(14:19-22)
이는 하나님의 언약의 신실성에 대한 선지자의 확신에 근거한 호소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세 번째 중보 기도마저도 일언지하에 거절하시고
유다의 파멸은 피할 수 없는 일로서,
유다가 전화(戰禍)로 인해 황폐화되고 백성들이 잔인하게 살육당하며
이방의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을 예언하신다.(15:1-9)
물론 이러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거절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신실성을 의심하게 하거나
중보 기도의 무용성(無用性)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예레미야의 기도를 당장은 거절하셨지만
궁극적으로는 유다를 영원히 멸하지 않고 다시 회복시켰기 때문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을 살펴보면,
① 거듭된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를 단호하게 거절하신 하나님의 엄격함은
하나님은 어떠한 경우에도 죄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
공의로우신 분임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회개에도 기회가 있고
그 때가 지나면 회개하고 싶어도 회개할 수 없으며
그 결과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시7:12; 눅13:3)
② 유다 백성들에 의해 음해와 핍박을 받은 최대의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예레미야의 3번에 걸친 중보(仲保) 노력은 죄악이 관영했던
소돔과 고모라를 위한 아브라함의 중보(창18:22-33)와
대속의 십자가 위에서도 백성들의 죄악을 위해 중보하셨던
예수 그리스도(눅23:34)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이는 우리들은 불의에 대해서는 엄중히 책망하되 죄인을 향한
사랑과 희생 정신을 가지고 구원을 위해 끝까지 노력해야 함을 교훈해 준다.
③ 예레미야의 거듭된 중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유다에 멸망의 심판이 선포된 것은 어떤 인간의 중보도 결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고
오직 죄가 없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중보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할 수 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사53:6-10; 엡2:13-18)
④ 하나님께서 유다의 멸망에도 불구하고 다시 회복시키신 사실은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신 분으로 자기 백성이 범죄하면
그 죄에 대해서는 엄히 징계하면서도 백성 자체는 버리지 아니하시고
결국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히6:12-20)
9절) 「어찌하여 놀란 자 같으시며 구원하지 못하는 용사 같으시니이까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8절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선민에 대하여
자신을 거류하는 자와 같이 나그네와 같이 하신다고 하였다.
그런데 9절 후반부를 보면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라고 고백한다.
즉 하나님께서는 비록 선민에 대하여 자신을 나그네와 같이 하시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선민들 가운데 계신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고난을 보시면서도
마치 그들 가운데 잠시 머무는 거류자와 나그네와 같이 그들을 돕지 아니하셨지만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유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고난을 당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돕지 아니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가신 것처럼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서 떠나가신 것이 아니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계신 것을 분명하게 보았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마치 유다에 잠시 머무는 나그네와 같이
유다의 일에 전혀 관여하시지 않을 뿐이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일에 대하여 상관하시지 않으시면
백성들이 볼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서 떠나신 것처럼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선지자적 눈으로 본 예레미야의 고백처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결단코 떠나시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죄를 범하면 나그네처럼
그들에 대하여 아무런 일도 하시지 않는 것처럼 행하신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처럼 자기를 자기 백성에 대하여
나그네처럼 보이게 행하실지라도 그들에게서 완전히 떠나시는 일은 없다.
실상은 그 순간에도 그 백성들과 함께하신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돕지는 않으셨지만
바벨론에까지 자기 백성들과 함께 동행하셨다.
이사야 40장을 보면 선민의 포로 귀환을 예언하면서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3절)고 하였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바벨론에 함께하셨음을 전제하는 말씀이다.
유다가 망하고 그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갈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자기 백성이 포로되어 가는 곳까지 함께 동행하셨고
또한 그들이 회복될 때에 그들과 함께 돌아오셨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단 한 순간도 떠나시지 않는다.
그리고 이 사실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것은 여기에 우리들의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영원한 동행하심, 함께하심과 관련해 유명한 예화가 있다.
한 사람이 꿈 속에서 주님과 함께 해변가를 산책하고 있었다.
그리고 하늘 저편에서는 그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모든 장면들이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었다.
각각의 장면마다 그는 모래 위에 새겨진 두 줄의 발자국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하나는 그의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님의 것이었다.
그가 살아오는 동안 주님은 언제나 그와 함께 걸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장면이 펼쳐지고 있을 때쯤 그는 문득 길 위에 있는 발자국들이
어떤 때는 단지 한 줄밖에 나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것이 그의 생애에서 가장 절망적이고 슬픈 시기마다 그러했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것이 마음에 걸려서 그는 주님께 물었다.
‘주님, 당신은 내가 일단 당신을 따르기로 결심한다면
언제나 나와 함께 걸어갈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발자국이 한 줄 밖에 없습니다.
저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왜 당신은 정작 필요할 때면 저를 버리셨습니까?’
이에 주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내 소중한 아들아, 난 너를 사랑하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힘들고 고통스러웠을 때마다 너는 발자국이 한 줄밖에 없음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네 것이 아니라 내 것이란다.
바로 내가 그때 너를 업고 걸어갔기 때문이란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결코 당신의 백성들을 떠나시는 법이 없다.
만일 우리가 범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나가신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겠는가?
우리는 회복의 소망을 가질 수 없다. 하나님께 회개할 수도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완전히 떠나신 마당에
회개가 무슨 소용이 있고 회복의 소망을 어떻게 가질 수 있겠는가?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를 범할 때에
우리에 대하여 나그네와 같이 되시기는 하지만
우리를 완전히 떠나시지는 않고 여전히 우리 가운데 머물러 계신다.
그렇기에 우리는 회복의 소망을 가지고 회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비록 우리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하여
나그네와 같이 되셨다고 해도 낙심하지 말고 진심으로 죄를 뉘우치고 회개해야 한다.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 하고」 (신3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