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김일성의 공식 직함은 내각 수상이었다. 비록 당을 장악했고 그 당으로 군을 장악했으며 심지어 내각까지 장악했지만, 그들 모두를 아울러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로써 그의 명칭은 어딘가 한 귀퉁이가 비어 있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국한 지 24년 만인 1972년에 중앙인민위원회를 만들고 김일성은 그 수반인 주석이 되었다. 이로써 그는 명함 한 장으로 당정군이라는, 국가 전 부문의 완전한 지배를 선언할 수 있었다.
2.
김일성이 사망할 때까지, 아니 사망한 이후로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국가 조직에 있어서 김정일의 공식 직함은 국방위원장이었다. 그가 조선로동당 총비서 직함을 계승한 것은 김일성의 3년상이 끝난 1997년이었다. 그러나 그는 총비서의 계승과 동시에 중앙인민위원회도, 주석 자리도 폐지하였다. 스스로 "나는 국가원수가 아니다"고까지 말하며 바지사장 김영남을 내세우던 그는 결국 자신이 집권한 지 15년 만에 자신의 공식 직함인 국방위원장을 국가원수로 만들어버렸다. 선군사상은 국가의 지도이념이 되었고 국방위원회는 국가의 군사관련 사업 전반을 지도하게 되었다.
3.
김일성은 평생 8500여일에 걸쳐 현지지도를 다녔다고 한다. 23년 연속으로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지지도를 다녔다는 소리다. 맞는지 아닌지는 내가 김일성이 아니니까 모른다. 다만 현지지도를 8500일이나 다녔다고 말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8500일씩이나 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는 소리다. 평생토록 방송에서 자기 목소리 몇 번 들려주지도 않은 김정일조차 1980년부터 2002년까지 현지지도를 5만km가 넘게 했다고 하니까 말 다했다.
수령은 전지전능한 존재다. 수령이 어느 지역, 공장을 방문하는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린다. 신의주를 방문하면 신의주가 개발되고, 청진을 방문하면 청진이 개발된다. 청산리에 가서 제안 하나를 하면 청산리방법이 되고 어느 농장에서 비탈에 강냉이 심자고 말 한 마디 했더니 온 북조선의 산들이 강냉이밭이 되었다. 그 과정에서 그 누구도 '전지전능하신 수령'께 반론하지 못한다. 그보다 앞서 제안하지 못한다. 그가 보지 않는 곳에서 말을 맞추지 못한다. 공무원, 간부는 들러리다. 들러리들은 그저 수령께 혼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굽신거릴 수밖에 없다. 김일성과 김정일은 직접 수만 km를 뛰어다니는 대가로 자신 이외의 모두를 바보로 만들었다. 그리고 그 바보들의 정점에 서서 군림했다.
4.
김정일이 사망할 때까지, 김정은은 국가 조직 내에서 어떠한 명함도 만들지 못했다. 조명록이 죽었는데도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자리를 꿰차지 못했다. 당중앙군사위원회는 어디까지나 당규약에 명시되는 당조직이지 헌법에 명시된 국가기관은 아니다.
당중앙군사위원회를 당에서 떼어내 헌법상의 국가 기관으로 만들자니 이미 국방위원회가 버티고 서 있다. 아버지 김정일이 국방위원장 직함을 이 나라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은 것은 고작 2년 전이다. 그렇게 만들기 힘들었다, 쉬웠다를 논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를 "나는 국가원수가 아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아무 불편함 없이 이 나라를 다스리던 그가, 자기 아쉬워서 국방위원장 명패에 금칠 하지는 않았으리라는 소리다.
5.
김정은에게는 당연히 자신 몫의 '국가 원수' 명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가 아버지가 했던 것처럼 '기존의 조직을 없애고' '자신의 조직을 강화시켜' 새로운 명함을 만들 것인가. 이것은 조직 내의 생사여탈권을 그러쥐고 권력을 확보하기에 매우 편리한 방법이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김정은에게 그 어떠한 국가 조직도 주어지지 않았다.
결국 그는 좋든 싫든 아버지가 남겨준 명패로 자신의 명함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국방위원회인지 어디인지는 문제가 아니다. 명패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서 보니 이미 아버지가 임명해 둔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 버티고 앉아서 위원장 동지를 바라보고 있다. 조직 내의 모든 이들을 벌벌 떨게 만들 생사 여탈권이 과연 새로운 위원장 김정은에게는 존재할까?
여기에는 '글쎄'라는 꼬리표를 달아두고자 한다.
6.
한 조직을 장악한다는 것은 엄청난 정력을 요구하며 막대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렇다. 스트레스. 지금까지 동서고금 수많은 위대한 지도자들이 적의 무기가 아닌 스트레스 때문에 죽었다. 알렉산더도 진시황도 병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지 칼 맞고 죽지 않았다. 아, 북조선 김씨 3대가 위대한 지도자라는 소리냐고 묻는다면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 너님을 국정원에 찔러야겠다.
지금 북조선의 새 지도자에게는 더 많은 정력이 요구된다. 더 막대한 스트레스가 되돌아온다. 그는 쓸 수 있는 사람이 없다. 북조선의 모든 간부들이 김정일의 말 한마디에 움직이는 로봇이 되었다. 말년에 당의 결정기능을 강화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결국 당 정치국 상무위원회는 2011년에 열리지 않았다. 여전히 김정은은 '전지전능한 수령'으로써 자신을 제외한 북조선의 모두를 바보로 만들며 돌아다녀야 한다.
그런데 김정은 같은 지도자는 본 기억이 없다. 그의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살쪄서 뒤뚱거리는 지도자 말이다. 피지인가 어디가 국왕부터 전국민이 뚱뚱해서 골치라는데 하여간 내가 두 눈으로 본 것은 김정은 뿐이다.
그 김정은을 TV에서 처음 보고 놀란 사람이 어디 한둘일까. 어렸을 때 그렇게 건강해 보이던, 주변 사람들의 증언으로는 농구를 그렇게 좋아한다던 사람이 말년의 할아버지 저리가라 할 정도로 살이 쪄버렸다. 대체 뭘 어떻게 하면 저렇게 찔 수 있을까. 좋아하던 농구를 끊은 건 당연한 일이다. 혹시 호르몬 처방이라도 하지 않았나 싶다. 이미 등장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로 온몸을 살찌워 등장한 김정은이다. 여기에 고혈압과 당뇨가 겹쳐 그의 스트레스는 현재 진행중이며 정치적인 문제까지 겹친다면 미래 발전형이다. 그는 과연 이 스트레스를 어떻게 극복할까. 정말 자신의 조직을 만들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제낄 수 있을까?
혹시 그 스트레스에 스스로가 잡아먹혀버리지 않을까?
아니면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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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토론하러 남겨두고자 한다.
첫댓글 개인적으로 내전은 필연적이라고 봄. 김정남 김정철은 빼더라도 군부세력 내에서 김정은을 좋아만 할거라고 믿지 않기 때문. 그리고 지금의 원수-차수-상장 애들 자리를 무한정 늘릴 수만 있는 것도 아닐 뿐더러 지금 걔네들 눌러둘 자금이 북한에 얼마나 있을지도 관심거리임.
전 내전의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고 생각합니다. 일인지하 만인지상. 사실 짜증나는 일이긴 할겁니다. 저놈 치워버리고 내가 그 부귀를 누리자. 북조선의 엘리트라면 당연히 그런 유혹에 빠질 수 있겠지만. 그런데 그런 유혹에는 전제가 하나 붙죠. 내가 들어엎어서 왕좌를 차지한다고 해도 기존의 구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부분에 대한 확신성이 잇어야한다는 점. 최소한 중국에 나라의 이권을 들어바치더라도 자기와 일가의 부귀영화가 쭉 이어질 것이라는 점에 대한 확신. 그런데 북조선은 그 부분이 없죠. 구체제가 무너지는 순간 자신의 부귀영화는 끝짱이라는 점을 북의 엘리트들은 너무나 잘알지 않을런지요.
사실 북이 무서운건 개정일 일가 나부랭이들이 아니라 그 오래묵은 구체제 아닐까요. 구체제는 김정은에게 권위를 부여해주고 (그것이 김일성이 만들었던 누가만들었던. 그리고 이 권위는 제아무리 바보를 데려다 놓아도 뻔듯하게 보여지는 뭔가가 있으니까) 관료집단들은 거기에 기생하여 복락을 누리는 그 구조....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이어지지 않을까요.
안바뀜니다. 적어도 쉽게는 안바껴요. 그렇게 따지면 북한보다는 훨씬 착한 시리아나 사우디아라비아는 진작에 바꼈게요. 자본주의하에서도 기득권은 더럽게 안바껴서 멕시코의 경우 대지주가 있고 그 밑에 갱단과 정치꾼이 있는 체제가 더럽게 안 바껴서 시민사회적인 룰을 이 카르텔에 적용시키려하니까 되려 어떤 가문은 멕시코의 한귀퉁에서 독자적 왕국을 만들다시피 하는 걸요. 우리나라는 매우 특수한 경우라서 한국전쟁이후 시민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군인이라고 하는 관료제적 중간계급이 대게 후진국형 천민자본주의에서 위에서 군림하는 세력(=자유당)을 몰아낸 뒤,
다시 그 것을 언론인이나 법조계로 대표되는 고학력 지성인운동(=민주화) 몰아내고, 지금은 다시 그 것조차 소상공인과 노동자, 대게 직제조직의 윗선을 차지하는 고학력엘리트에서 아랫쪽에 존재하는 젊은 계층위주로 바꾸려고 하는데 여기에 와서는 과거에 엘리트들이 내세웠던 민주화에 버금가는 명분이 없어서 사회변화가 지지부진해 지고 있는 중인, 하여간 제법 많이 바뀐 나라에 속하는데 우리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다 봅니다.
이건 뭐 모아니면 도라서 바뀌면 바뀌는거고 아님 아닌건데, 그렇게 보면 전세계의 평균은 북카니스탄이지 울나라는 아니라능.